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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듣기론 면접도 거의 형식상이고. 원장님 줄이래.”

“그렇구나.”

애정은 대꾸를 하는 둥 마는 둥 고개를 끄덕였다. 같은 학교 출신이라고 해서 거기 의사들을 제가 죄 아는 것도 아니고 하물며 저는 의대생도 아니었는데, 동기의 눈빛은 꼭 아는 사람 아니냐는 듯한 눈빛이었다.

“자기 아는 사람 오는 거 아니야?”

거봐라.

“내가 아는 사람이 어디 있어. 신의 손 정도로 유명하다면 모를까.”

“하긴, 그렇지?”

“그래.”

싱겁지도 않은 대화였다. 애정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한국대 출신 NS. 제가 아는 사람으론 딱 한 명 있긴 하다.

심도훈.

“아, 또.”

꿈을 꾼 것만으로도 짜증 나 죽겠는데 하루의 반나절도 지나지 않아 또 이렇게 떠오르고야 말았다. 애정은 잔뜩 미간을 찌푸렸다. 그러자 제 업무를 보기 위해 자세를 고쳐 앉던 동료가 갑작스런 애정의 목소리에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눈을 키웠다.

“응?”

“어? 아무것도 아니야. 그냥 잠깐 혼잣말했어.”

“왜 그래, 무섭게.”

“일 봐, 일.”

아무렇지 않은 듯 애정도 자리에 앉아 서류 낱장들을 보기 쉽게끔 제 앞으로 끌고 왔다. 하지만 하얀 건 종이요, 까만 건 글씨로다. 한 번 떠오른 그 이름 세 음절이 뭐라고 금세 집중력이 고갈되었다. 하는 수 없이 의자를 밀고 일어나 탕비실로 향했다.

믹스커피 스틱 하나를 까서 컵에다 붓고 뜨거운 물을 담아 그것을 티스푼으로 휘, 휘 내저으며 밖으로 시선을 던졌다. 여전히 시린 계절.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제가 제일 좋아하는 분홍으로 온 세상이 물들겠지. 그렇게 봄이 오겠지.

‘난 봄이 제일 좋아. 오빠는?’

봄을 떠올리다 보니 예고도 없이 훅, 하고 목소리가 날아들었다. 기억 어딘가에 먼지가 쌓인 채 박혀 있을 것만 같은 대화가 한동안 이어졌다.

‘좋아하는 계절 같은 거 없어.’

‘왜?’

‘어차피 시간 지나면 다 다시 돌아오잖아. 딱히 특별할 것도 없고 때마다 의미 부여할 것도 없고.’

‘아무리 그래도…….’

좋아하는 계절 하나쯤은 누구나 있지 않나.

‘퍽도 감성적이다, 너는.’

‘왜, 계절마다 느낌이 다르잖아. 봄은 따뜻하고 여름은 파릇하고 또 가을은 청명한 데다 겨울이 되면 온 세상이 하얗게 물들고.’

‘그런 소녀 감성은 벌써 졸업했어야 하는 거 아니야?’

‘…….’

특유의 퉁명스러운 목소리와 별 감흥 없는 눈빛. 좋아하는 음식이 무엇인지, 좋아하는 색깔이 어떤 것인지 이것저것 궁금해서 물어보려고 해도 언제나 딱히, 딱히, 딱히, 하며 머물러 있던 대답들. 그게 또 뭐라고 쉽게 상처를 받고 또 쉽게 동요가 되어 좋았던 기분을 망치고 돌아선 하루들이 여태껏 남아 있다. 빤히 알면서도 궁금했다. 어떤 대답이 돌아올지 다 알고 있었으면서도 무슨 고집에 그렇게 물어봤을까.

“…….”

왜 하필 또 그걸 떠올려 가지고선.

알맞게 잘 어우러진 커피를 들고 애정은 이만 창밖으로 던졌던 시선을 거둬 냈다. 저는 그에게 많은 걸 바란 게 아니었다. 제가 봄이 좋다고 얘기하면 저는 다른 계절이어도 좋으니 그저 언제가 좋다, 하는 것 정도. 제가 매운탕이 가장 좋다고 말을 하면 거창하진 않더라도 그냥 순대, 라고 대답하는 정도. 작은 거라도 대화를 하고 싶었고, 사소한 부분이라도 그 사람에 대해서 좀 더 알고 싶었다.

그렇게 서로에 대해서 알아가는 거라고 여겼는데……. 제가 바란 건 거창하고 대단한 것들이 아니라 그냥 그저 그런 것들이었는데 심도훈 앞으로만 가면 죄 말살이었다.

그런 사람이 뭐가 좋다고.

이렇게 또 꿈까지 꾸게 된 것인지.

“어떻게 사는지 궁금하지도 않아, 정말.”

애정은 꼭 치가 떨린다는 듯 혼자 중얼거리고선 그것으로도 모자란지 어깨까지 부르르 잘게 떨었다.

두 번 다시 엮이기 싫어. 꿈만 꿔도 이렇게 싫은걸.



2.



전쟁 같은 출근길. 너도 나도 바쁘고, 시간을 지켜야 하기에 어쩔 수 없이 한꺼번에 몰리는, 사람들이 꽉꽉 들어찬 만원 버스며 만원 지하철은 채 출근하기도 전에 사람의 기력을 죄 앗아 가는 것 같았다.

“잠깐만요, 좀 지나갈게요. 잠깐만요, 내릴게요.”

틈을 비집고 비집어 내리는 사람들 속에 섞여 버스에서 내리니 벌써 녹초가 되어 있었다. 옷은 구겨졌고, 머리칼은 그새 엉클어졌다.

절로 나오는 한숨을 푹 내쉬며 드디어 갑갑한 공간에 꽉 들어차 있던 텁텁한 공기가 아닌 탁 트인 곳의 신선한 공기를 좀 더 마시나 했는데 멀찍이 보이는 횡단보도 신호가 곧장 초록색으로 바뀌었다.

“아, 하필.”

세월아 네월아, 할 시간 여유는 없지만 어쨌든 다음 신호를 기다렸다 가도 되는 짬 정도는 있었다.

하지만 군중 심리라는 게 생각보다 엄청난 것이어서 건너편에서도 우르르, 이쪽 편에서도 우르르 횡단보도로 나서니 자연스레 마음은 급해졌고, 발에는 거의 자동 반사 수준으로 가속도가 붙어 달리게 되었다.

“후우, 하아…….”

17초를 남겨 두고 횡단보도에 입성해 잰걸음으로 건넜더니 오늘 하루치 운동량은 다 채운 기분이었다.

“어? 이게 갑자기 왜 이래.”

그렇게 운동 아닌 운동을 하며 사무실 앞까지 잘 와 놓고는 갑자기 사원카드가 말썽이다. 이걸 찍어야 지문도 찍고 그래야 출근 시간이 기록되는데 리더기에 이렇게도 가져다 대 보고, 저렇게도 가져다 대 봐도 제가 여태 들어왔던 그 ‘삑’ 소리는 도통 들릴 줄을 몰랐다.

“뭐지, 뭐가 문제인 거지?”

내가 카드를 대고 있는데 왜 읽지를 못 하니, 왜!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속속들이 도착한 사람들이 제 뒤로 줄을 서기 시작하니 더욱 진땀이 났다.

“저기…….”

묵묵히 뒤에서 그걸 지켜보던 사람이 보다 못해 목소리를 냈다. 애정은 식은땀을 거둬 가며 잔뜩 미안한 얼굴로 뒤를 돌아보았다.

“……네?”

“그거 신용카드인 것 같은데.”

“네에?”

아니, 그럴 리가요.

제가 지금 신용카드와 사원카드도 구별하지 못해서 여기서 이렇게 민폐 아닌 민폐 짓을 하고 있는 걸로 보입니까? 이건 필히 리더기가 고장인 게 분명하다.

왜냐하면 제가 지금 손에 들고 있는 건, 바로! 어라? 이것은 왜 사원카드가 아닌 것인가.

“아, 이게 그…… 버스에서 내려서부터 계속 쥐고 있었던 거라. 하하, 아 여태 착각하고 있었네요.”

거짓말이다. 친히 지갑을 열어 뒤적이다 꺼내 놓고선.

뒤에 서 있는 사람들은 몇 되지 않았지만 쪽팔림은 무수한 무리 앞에 서 있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죄송합니다.”

드디어 제대로 된 사원카드를 가져다 대자 이보다 더 명쾌할 수 없는 승인음이 들렸다. 애정은 고개를 한껏 푹 숙이고 서둘러 사무실 안으로 들어섰다. 자리를 찾아 앉기가 무섭게 긴장이 풀려 후우, 하는 긴 한숨이 나왔다.

“오늘 왜 이러지.”

잠도 푹 자고, 여유롭게 집에서 나섰는데 병원 근처로 오자마자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아…….”

멍하게 보내지 말고 정신 바짝 차리고 보내야지. 뭔가 평소와 다른 일진일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이 있으니까.



“여기 홍보마케팅 팀 사무실이 몇 층인가요?”

이것저것 부러 시선을 사로잡게끔 치장하지 않아도, 그 자체만으로도 빛이 날 수 있는 사람들이 더러 있기 마련이다. 바로 지금 눈앞에 있는 이 남자처럼.

요즘 만화를 찢고 나온 남자라고 해서 만찢남이라는 게 유행이던가? 이 사람은 만찢남이라는 수식어로는 좀 부족하다. 흠, 뭐가 어울릴까. 그래! 화찢남인 것 같다. 화보를 찢고 나온 것 같은 남자.

대놓고 빤히 보진 않았지만 어쨌든 아래부터 위로 또 위부터 아래로 감상하느라 질문을 완벽하게 듣지 못하긴 했다. 목소리도 한 번 더 들을 겸, 그윽한 눈동자를 명분 있게 들여다볼 겸, 반문을 했다.

“네?”

“홍보마케팅 팀 사무실을 찾고 있습니다만.”

와, 어쩜! 목소리도 완벽하다.

“아, 홍보마케팅 팀. 제가 마침 그쪽으로 가던 길이니까 저 따라오시면 되겠네요. 제가 안내할게요.”

몇 층에 내리면 어디쯤 위치해 있다, 정도만으로도 충분할 걸 여자는 살랑거리는 눈웃음을 지으며 친히 남자보다 반걸음 앞섰다. 그쪽에 볼일이라는 것 따위 애초에 있지도 않았으면서 말이다.



“애정 씨.”

“…….”

“정 대리?”

“…….”

“정애정 대리!”

“어? 아, 응.”

한 사람을 세 번이나 그것도 각각 다르게 호명을 한 후에야 그 장본인인 애정이 정신을 퍼뜩 차렸다. 저를 부르는 소리에 뒤늦게 화들짝 놀라 옆을 보니 언제부터 있었던 건지 팀 동료가 의아한 표정으로 그녀를 보며 서 있었다.

“어디에다 정신을 그렇게 팔고 있는 거야, 대체?”

바로 코앞에서 이렇게 불러도 못 듣고 말이야.

“아, 미안해. 나도 모르게 잠깐 딴생각을…….”

“뭐야. 뭔 생각을 그렇게 골똘히 하기에. 점심 안 먹을 거야?”

“응?”

점심이라니? 그제야 사무실에 빈자리들이 하나, 둘씩 애정의 눈에 들어왔다. 그렇게 주위를 둘러보는 지금도 분주하게 한산해지고 있는 중이었다.

아,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구나. 애정은 벽에 걸린 시계를 한 번 흘끗 보았다.

“일어나, 점심 먹으러 가자.”

“아…… 유미 씨 다녀와. 난 오늘 밥이 별로 안 끌려서.”

“왜? 밥이 왜 안 끌려. 사람이 밥심으로 일을 해야지! 가서 맛있는 거 먹자.”

그래 봐야 구내식당으로 갈 거면서 유미는 마치 대단한 맛집이라도 데려갈 것처럼 초롱초롱한 눈을 했다.

“나 아까 오는 길에 샌드위치 사 왔는데 그거 먹으려고 해.”

“아, 그래? 정말 후회 안 하겠어?”

아까 사 왔던 샌드위치라면 유미도 잘 알고 있었다. 양이 얼마 되지도 않는 그 조그마한 빵 쪼가리. 그녀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제 사전에 그런 빵 쪼가리는 간식이 될 순 있어도 절대 주식이 될 순 없었기 때문이다.

“응.”

하지만 애정은 달랐다.

“알았어, 그럼 다녀올게.”

“응. 식사 맛있게 하고 와.”

애정을 향해 미련 없이 고개를 끄덕이고서 유미는 점심시간이 되면 항상 그랬듯 비장한 표정으로 사무실 문을 열어젖혔다. 그녀가 떠난 쪽을 한 번 물끄러미 보았다가 다시금 사무실을 둘러보니 어느새 조촐하게 저 혼자만 남은 애정이다.

“아휴.”

딱히 입맛이랄 게 없어서 샌드위치도 끌리지 않았다. 하지만 배는 고프다고나 할까. 텅텅 비어 있는 위장이 우렁차게 울며 음식을 달라고 아우성이라 도무지 더 앉아 있을 수도 없었다.

이만 샌드위치를 들고 애정 또한 자리에서 일어났다. 빨리 끼니를 때우고 정신이 개운해지도록 후식 커피나 한잔해야지, 하면서.



“여기가 홍보마케팅 팀 사무실이에요. 그런데 점심시간이라 다들 자리 비운 것 같은데, 급한 볼일인가요?”

요청하지도 않았던 과도한 친절로 인해 여차저차 사무실 앞까지 함께 다다랐다. 길을 안내해 주기에 앞서 본인도 볼일이 있다고 하지 않았던가. 잠자코 안내를 받았던 이가 그 말에 짧게 의문을 품었다가 거두었다, 그러고서 이미 텅 비어 있는 사무실을 제 눈으로도 확인하고 도훈은 이만 고개를 가로로 내저었다.

“아닙니다. 제가 이따가 다시 들르면 되니까요. 어쨌든 여기까지 동행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뭘요, 어려운 일도 아닌데. 혹시 뭐…… 더 궁금하다거나 알려 드려야 할 건 없나요?”

“네, 없습니다. 저 때문에 괜히 시간 할애하셨을 것 같은데 먼저 가 보셔도 됩니다.”

도훈은 일부러 길을 터 주는 시늉을 하며 여자에게서 반걸음 물러섰다. 하지만 저쪽에서는 오히려 그런 호의에 손사래를 했다.

“네? 아, 아뇨. 시간을 할애하다뇨. 이 외에 더 용건 있으시면 아까 2층 중앙 데스크 있죠? 그리로 오시면 돼요. 제 자리가 거기거든요.”

“네, 그러겠습니다. 그럼 실례 많았습니다.”

뭐가 그리 아쉬운 건지 좀처럼 발을 떼지 못하던 여자가 하는 수 없이 도훈의 묵례에 저 또한 가볍게 고개를 한 번 숙인 후 먼저 등을 보이고는 저벅저벅 복도 끝으로 사라졌다. 그제야 도훈은 죄 자리를 비워 고요한 사무실을 한 번 더 훑어보았다.

[대리 정애정]

자리마다 붙어 있는 이름표 때문에 구태여 샅샅이 뒤져 보지 않아도 제가 여기서 만나고 싶은 사람의 빈자리를 바로 찾을 수 있었다. 저마다 일어난 방향을 따라 멈춰 있는 의자들 중에서 책상 안으로 곱게 들어가 있는 의자는 자리 주인의 변함없이 여전한 습관을 보여 주는 것 같았다.

“…….”

참 희한했다. 부재중인 주인의 빈자리를 보면서도 쓸쓸하거나 씁쓸하기보다는 오히려 안도감이 밀려들었다. 피식, 하며 입매 끝으로 그 안도를 방증하듯 미소가 흘렀다.

하, 제대로 찾아왔긴 했구나.

도훈은 다시 한 번 눈짓으로 이름표에 적힌 이름을 곱씹어 마음속으로 읊었다.

정. 애. 정.

몇 분간 가만히 서 있기만 하다 이내 방향을 틀었다. 자리를 확인했으니 더 적당한 때를 맞추어 다시 찾아오면 되겠다, 싶어서였다.

줄지어 있는 사무실들을 하나, 둘 지나쳐 엘리베이터를 타려다 에스컬레이터가 편하겠다는 생각에 코너를 꺾었다. 그러자 보이는 직원들의 휴게실. 닫힌 유리문 너머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한 사람이 곧장 눈에 들어왔다. 사람을 완벽하게 식별해 낼 만큼 가까운 거리는 아니었지만 이 정도여도 저 한 사람이 누구인지 알아내기엔 충분했다.

의도하지 않아도 바라면 이뤄질 타이밍이라는 건 이래서 참 귀신같기도 했다.



“밥을 먹어야지. 빵 가지도 되냐, 어디.”

점심시간이 다가온 것도 몰랐던 만큼 생기라곤 조금도 없는 낯빛으로 정신을 어디 머나먼 곳에 둔 사람처럼 반나절을 보냈다. 그에 걸맞게 입맛이 없다며 함께 식사를 나서잔 동기도 마다했었는데 웬걸, 그랬던 사람과 동일 인물이 과연 맞나 싶을 만큼 네 조각의 샌드위치를 눈 깜짝할 새에 한 조각으로 줄이고 있던 와중이었다.

휴게실 안으로 사람이 들어오는 기척 같은 건 조금도 느끼질 못했는데 예기치 않게 훅 끼치는 타인의 음성에 애정은 저도 모르게 어깨를 흠칫 떨었다.

“이건 그냥 빵이 아니라 샌드위……”

치인데요.

조금 놀라긴 했어도 의구심 같은 건 아예 없었다. 그저 식사를 조금 빨리 마무리하고 올라온 동료 중에 한 명이겠지, 싶어서 목소리가 들린 쪽으로 몸을 틀었다. 입 새로 나가던 대답이 너무나 익숙한 패턴이었다는 걸 인지하기까진 비록 수 초가 걸렸지만 말이다.

“……?”

뭐지? 지금 눈앞에서 보고 있는 게 정녕 사람이 맞나?

“무, 뭐…….”

양팔을 꼬곤 삐딱하게 기대어 선 채 제 쪽을 바라보고 있는, 이 병원에서 처음 본 이의 등장이 웬일인지 낯설게 느껴지지 않았다. 누구냐고 물어보면 신상까지 줄줄이 읊을 수 있는 너무나 익숙한 낯이라서 그럴까.

하.

거짓말.

꿈을 꾸었던 건 벌써 일주일도 지난 일인데, 어째서? 왜?

“…….”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 환영으로까지 나타날 필요가 있나.

아니겠지?

“설마.”

혹여나 싶어 애정은 들고 있던 마지막 샌드위치 조각을 이만 내려 두고 자유로워진 양손으로 눈을 비볐다.

“말도 안 돼.”

잠시나마 뿌옇게 흐려졌던 시야가 곧장 맑아져 다른 사물들이 죄 뚜렷했다. 제 앞에 서 있는 사람 또한 뚜렷하기는 매한가지였다. 심지어 저를 향해 구겨지는 미간이 제법 선명하기까지 했다.

“설마, 뭐가 말이 안 되는데?”

다시 한 번 공간을 울리는 육성이 어디 하나 삐끗하거나 꺾이는 데 없이 너무나 맑았다.

하, 이럴 수가.

“…….”

애정은 제가 보고 있는 사람이 환영이 아니라는 걸 완벽하게 알아차린 그 후로 아무런 대꾸를 하지 못한 채 아까 내려 두었던, 한입 크기로는 조금 크다 싶은 샌드위치의 남은 조각을 일부러 한 번에 우걱우걱 욱여넣었다.

“뭘 그렇게 한꺼번에 먹어? 내가 달라고 할까 봐 그래? 이쪽은 뺏어 먹을 생각도 없는데.”

빤히 제가 저를 알아보았다는 걸 알고서 용케도 말을 걸어왔지만 애정은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 그저 음식 씹는 소리만이 대답을 대신한다는 듯 휴게실 내에 울려 퍼질 뿐이었다.

“…….”

턱관절에 윤활유를 넣은 것처럼 열심히 씹어 대도 입 안을 가득 채운 크기가 좀처럼 작아질 줄을 모르자 이번엔 아예 억지로 꿀꺽 삼켜 버렸다. 누구 보라는 듯 오기와 반항이 다분히 묻어난 행동이었다.

“큽…… 컥!”

덕분에 음식의 과도한 주입으로 놀란 식도가 꽉 막힌 것처럼 아파 와 주먹으로 가슴을 두어 번 두드려 줘야 했고, 기도를 트기 위한 기침을 서너 번은 토해 내야 했다.

“거봐라. 빤히 탈 날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