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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화



“내 방으로 가자.”

귓가에 대고 속삭이자 엘레나가 모로 고개를 기울였다. 눈이 마주치자 드라이칸의 숨이 느려졌다. 언제나 똑같은 무감동한 시선. 감히 저를 이렇게 바라봄에도 드라이칸은 그녀에게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맑은 하늘같은 눈동자가 한 번 끔벅이고, 또 한 번 끔벅이려는 찰나 드라이칸이 그녀를 낚아채고 빠르게 움직였다.

이미 앞섶은 숨기기 어려울 정도로 부풀어 있었다.

드라이칸이 다른 사람들보다 엘레나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침대 위에서의 엘레나 클로이트다.



거친 신음이 허공에 흩뿌려졌다. 드라이칸의 집요한 눈이 아래 깔린 매끈한 여체를 핥았다. 흰 침대 시트 위로 땀에 젖은 머리카락이 흐트러져 있었다. 검고 매끄러운 머리카락을 한 아름 움켜쥐고 그 향을 맡았다. 폐하의 향은 몰라도, 이 여자의 향은 잘 알고 있다. 차가운 얼굴을 한 주제에 그 향은 어찌나 달콤한지. 가슴 깊은 곳이 간질거리는 기분에 드라이칸은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나 곧 단단히 힘을 얻어 꺼떡이는 남성을 발견하고 깨달았다는 듯 고개를 주억였다.

“흐읏.”

골반을 붙잡아 세게 끌어당겼다. 뿌리 끝까지 삼킨 엘레나가 허리를 뒤틀며 신음했다. 그녀는 느끼는 것을 숨기지 않는다. 은밀함이 보장되는 한 마음껏 지르는 신음이 좋았다.

중독성이 짙은 쾌감. 그녀의 섹스는 한 번 빠지면 헤어 나올 수 없는 늪이었다. 가장 큰 쾌락은 육체의 것보단 정신적인 희열에서 온다. 손가락 하나 들 힘이 없을 정도로 쥐어짜면서도 끈질기게 엘레나를 지분거리는 것은 그런 이유였다.

“나한테 하고 싶은 말이 있었지?”

허벅지를 단단하게 붙잡았다. 흰 살결에 자신의 붉은 손자국이 남았다. 고개를 숙여 혀로 핥자 엘레나가 몸을 부르르 떨었다.

“언제?”

“기사의 정원에서, 눈이 마주쳤을 때.”

“착각이에요.”

허벅지를 깨물자 신음이 흘러나왔다. 선명히 남은 이빨 자국을 만족스럽게 바라보며 그 위를 입술로 쓸었다. 탄력 있는 살결은 묘하게 중독적이라 손을 떼기가 싫었다.

“기다리고 있었잖아?”

“뭐를, 흑.”

자신이 깊숙이 파묻힌 여성을 강하게 문지르자 엘레나가 충격 받은 얼굴로 허리를 튕겼다. 달콤한 액체가 손에 묻어 나왔다. 씨익 웃고는 여성을 거칠게 문지르자 엘레나가 약한 비명을 질렀다.

“이거 말이야.”

끝까지 뺀 후 쉴 틈 없이 끝까지 박아 넣었다. 갑자기 뿌리 끝까지 품는 것은 여자의 입장에선 공격 받는 느낌일 것이다. 드라이칸은 히죽거리며 허리를 잘게 튕겼다. 여성이 수축하여 드라이칸을 꽉 죄었다. 파묻힌 상태로 남성을 흔들자 물기 어린 소리가 흐른다.

“네가 좋아하는 거.”

“천박한 소리, 하지 말라고, 아윽!”

또 한 번 끝까지 뺐다가 뿌리 끝까지 박아 넣었다. 이건 단점. 침대 위에서까지 수치를 안다는 것. 이 딱딱함을 공략하는 것 역시 쾌감이지만. 드라이칸은 유쾌하게 웃으며 엘레나의 다리를 벌렸다. 길고 날씬한 다리가 양 옆으로 벌어지자 그 사이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엘레나가 고개를 돌려 드라이칸을 바라보았다. 벌려진 입술 사이로 흩어지는 숨. 보일 리가 없건만 물기 어린 숨이 보이는 느낌이었다. 순간적으로 시간이 느려진다. 쾌감으로 풀린 하늘빛 눈동자가 자신을 보고 있었다. 울긋불긋하게 달아오른 사랑스러운 광대. 축축하게 젖은 붉은 입술. 이 여자는 온통 키스하고 싶은 곳밖에 없었다.

이런 얼굴을 보는 건 나뿐이겠지. 그건 기묘한 고양감이었다. 뜨거운 눈으로 엘레나를 내려다보며 입술을 핥았다. 허벅지를 쥔 손에 힘이 바싹 들어갔다. 그대로 들어 손자국과 이빨 자국이 모조리 남은 살결을 빨아들였다. 허벅지에서 내려온 입술이 종아리까지 가 한참을 물고 빨았다. 그의 흔적이 하얀 다리를 온통 물들이고 있었다.

“그만!”

슬슬 아프기까지 하자 엘레나가 망설임 없이 드라이칸의 정수리를 내리쳤다. 씹어 먹을 것처럼 잘근거리던 드라이칸이 슬쩍 고개를 들었다. 더 한다면 용서 안 할 기세다. 아쉬운 눈으로 다리를 내려다보고는 허리를 세웠다.

다리뿐 아니라, 가슴 부근도 붉은 자국이 꽃처럼 흩어져 있었다. 여러 겹의 천으로 만들어진 두꺼운 드레스는 벗길 때는 빌어먹도록 짜증스러운 드레스지만 자국을 마음껏 남길 수 있다는 점에서는 마음에 들었다.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드라이칸이 쉼 없이 허리를 튕겼다. 아플 정도로 움켜쥔 골반은 멍이 들 낌새를 보이고 있었으나 드라이칸은 물론 엘레나까지 신경 쓰지 않았다.

“아, 아, 아아!”

엘레나의 신음소리가 점점 높아질수록 드라이칸의 허리짓도 속도를 높여 갔다.

헉. 뜨거운 신음이 엘레나의 가슴 위에 흩어졌다. 다리에서 타깃을 바꾸어 가슴을 물어뜯는 드라이칸의 이빨 아래서 엘레나의 연약한 살이 신음했다. 드라이칸이 짚단처럼 거친 검은 머리카락 사이로 손을 넣고는 힘을 주었다. 피식, 낮은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누가, 이런 당신을 보고 얼음꽃이라고 하겠, 윽, 어?”

엘레나가 허리에 다리를 감자 결합이 더욱 깊어졌다. 완전히 파묻힌 느낌. 드라이칸은 이 여자와의 감각이 너무나도 좋았다.

“시답잖은 소리.”

말투는 변함이 없었지만 목소리는 평소와 달리 흔들렸다. 약간의 짜증이 묻어 있는 것도 같았다.

“응? 맞잖아. 마켈라 단장의 얼굴을 봤어? 당신을 보자마자 넋이 빠졌어.”

가슴을 꽉 움켜쥐자 그녀가 통증에 몸을 웅크렸다.

“그 얼굴을 봤지? 당신이 가고 나서 어찌나 엘레나 찬양을 부르짖던지. 내가 모르는 일화들을 참 많이도 알고 있더군.”

크게 허리를 띄웠다. 엘레나가 몸을 움찔한 순간 콱, 박아 넣었다.

“폴은 당신에게 청혼서를 보냈다며?”

두 손으로 가슴을 내리누르며 물었다. 동시에 정신을 차릴 수 없게 마구잡이로 허리를 놀렸다. 엘레나가 신음을 흘리며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기억, 앗, 안 나.”

“하하, 불쌍한 폴.”

울상을 지을 폴의 얼굴이 스쳐 지나갔다.

“조만간 마켈라 단장이 당신에게 접근할지도 몰라.”

“으응?”

느슨하게 풀린 눈동자가 깜박거렸다. 얇은 눈꺼풀 위로 입을 맞추었다.

“아니, 그 인간은 멍청해 보이지만 일하는 것을 보면 그렇게 실없는 인간은 아니야. 혹시 이미 수작을 부린 거 아닌가?”

휘슬 마켈라. 망나니 기사단이라 불리는 제3기사단의 단장. 다른 기사단보다는 대우받는 처지가 아니라지만 그래도 일개 기사가 아닌 단장이었다. 그것은 실력뿐만이 아니라 그를 받쳐 주는 가문 또한 만만치 않다는 뜻이었다. 게다가 장남이라고 하니, 부친이 죽는다면 가문은 그에게 주어질 것이다. 부친이 백작이라고는 하나 고작 삼남일 뿐인 자신과는 대외적인 조건 자체가 다르다. 물론 그런 너절한 자식보다는 자신이 낫다고 생각하지만, 결혼을 꿈꾸는 여자들의 생각은 다를 수도 있다는 것도 안다.

“말해 봐, 엘레나. 그가 접근한 적이 있었어?”

은근한 목소리로 물었다. 뜨거운 혀가 젖꼭지를 야하게 핥자 엘레나가 눈을 감았다. 살짝 벌어진 입술 사이로 거친 한숨이 터져 나왔다. 드라이칸이 대답을 재촉하자 눈살을 찌푸렸다. 영롱한 눈동자에 설핏 불만이 어렸다.

“말을 건다거나. 청혼서라면 사를로테가 모를 리 없을 테고, 아니면 편지를 보낸다던가?”

집요한 물음이 이어졌다.

“무슨 말을, 하는 건지.”

한쪽 눈이 찌푸려졌다.

“집중이나 해요.”

“…….”

“쓸데없는 소리 말고.”

칼 같은 대꾸에 놀란 드라이칸이 눈을 끔벅였다. 잠시 굳어졌던 입이 서서히 벌어졌다. 엘레나는 성가신 기색이었다. 그가 왜 단장에 대한 얘기를 꺼내는 것인지도 아는 눈치가 아니다. 그녀의 눈에 담긴 것은 자신밖에 없었다. 그게 비록 쾌락뿐일지라도.



어쩐지 목구멍이 간질간질해서,

“하……하하하!”

기침처럼 웃음이 흘러나왔다. 어깨가 들썩일 정도로 웃다 짜증 어린 엘레나의 얼굴 여기저기에 입을 맞추었다. 고개를 옆으로 비틀자 귓불까지 가리지 않고 키스했다.

“뭐하는 거예요.”

달려드는 드라이칸을 받아 주던 엘레나가 이내 파리를 내쫓듯 손을 휘저었다.

“오늘은 아무래도 안 되겠네요.”

인내심이 다한 모양이었다. 유능한 사람들이 보통 그렇듯, 그녀 역시 시간 낭비를 싫어했다. 자신을 밀치고 침대 아래로 내려가려는 엘레나의 허리를 뒤에서 붙잡고 다시 침대 위로 던져 올렸다.

성능 좋은 침대라 살짝 튀어 오르는 그녀의 다리 사이에 재빨리 자리를 잡고 자신을 밀어 넣었다. 제 자리를 찾은 기쁨에 아랫배가 단단해졌다. 더 이상은 말이 오가지 않았다. 드라이칸이 미친 듯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 아읏, 흐아아!”

하늘하늘하게 풀린 목소리가 좋았다. 저 음성만을 따 매일 밤 귓가에 퍼부어 줬으면.

‘그럼 아마 자는 것은 포기해야겠지.’

큭, 웃은 드라이칸의 얼굴에서 차차 웃음이 잦아들었다. 하얀 피부가 붉게 변해서는 정신없이 신음을 터뜨리던 엘레나가 그를 빤히 바라보았다. 눈이 마주쳤다. 열기로 촉촉해진 하늘색 눈동자 앞에서 그의 여유란 바람 앞의 촛불과도 같았다.

“엘레나.”

쉰 목소리로 부르자 엘레나가 눈을 감았다. 근육이 박힌 드라이칸의 팔뚝에 힘줄이 솟았다.

곧이어 방 안에는 뜨거운 신음밖에 남지 않게 되었다.



엘레나가 따뜻하게 달아오른 피부 위로 옷을 걸쳤다.

스르륵.

천끼리 스치는 소리가 왠지 아깝다. 드라이칸은 침대 헤드에 등을 기댄 채 단장을 하는 엘레나를 보고 있었다. 눈동자만 움직여 엘레나를 쫓는다. 전신에 기분 좋은 나른함이 흘렀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건 기분 좋은 잠자리의 여운 같은 것이다. 그러나 그와 달리 엘레나는 피곤해 보이지 않았다.

‘체력은 어지간한 사내보다도 낫군.’

그것이 좋은 일이냐면 꼭 그렇지는 않았다. 섹스할 때 쉽게 지치지 않는 것은 좋지만 가끔은 혼자 딸을 친 것 같은 기분이 들 때가 있는 거다.

‘뭐, 막 그렇게 같이 있고 싶은 건 아니지만…….’

내심 투덜거리며 쿠션을 끌어안았다. 사를로테가 하듯이 섹스가 끝난 뒤에도 끌어안고 쪽쪽 대는 것은 취향이 아니었다. 그러나 엘레나를 알면서 그 취향에 변화가 생겼다. 섹스가 끝난 뒤 바로 일어나는 것도 절대 취향은 아니다.

조금 더 솔직히 말하자면.

“맥 빠지는군.”

“……방금 뭐라고 했나요, 하우어?”

엘레나가 흘낏 돌아보자 드라이칸은 떨떠름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말을 안 해 보진 않았다. 굳이 볼 일 끝난 사람처럼 일어날 필요는 없지 않냐고 빈정거리다가 무시당한 뒤로는 알겠다고 손을 들었다. 각자의 스타일이니 존중해야지 어떻겠나. 그녀와 그는 딱 그 정도의 사이였다.

쿠션에 턱을 괴고 엘레나를 응시했다. 어깨와 목, 뒷덜미, 등 할 것 없이 붉은 자국이 여기저기 나 있다. 그렇게 붉게 물든 엘레나의 몸은 마치 꽃이 피어 있는 것 같아서 그 몸이 하얀 드레스 사이로 사라지는 것을 보고 있자면, 문득 옷을 찢어 버리고 싶다는 밑도 끝도 없는 충동이 든다. 다시는 입을 수 없게.

그러나 후일을 생각하면 안 하는 게 나은 짓이다. 순백의 드레스가 하얀 몸을 삼키는 것을 바라보며 아쉽게 입맛을 다셨다.

“여자들의 드레스는 혼자 입기 힘든 것 아니었나.”

조금 따분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매일 드레스를 입는 귀족 여자들은 하급 귀족일지라도 옷시중을 드는 여자가 한 명씩은 붙는다. 코르셋 때문인 것 같지만 어쨌든 드레스가 입기 힘든 옷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엘레나는 능숙했다. 하긴 비단 드레스 입는 것뿐이랴. 저 여자가 뭘 못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 패배할 일 없는 엘리트 인생은 다 저럴까, 싶다가 얼간이 마켈라 단장이 떠오르자 고개를 저었다.

‘그치도 꽤나 권세 있는 가문일 터인데.’

잘하는 거라곤 거드름을 피우며 명령하는 것밖에 없으니. 쯧쯧 혀를 찼다.

옷을 다 입은 엘레나가 머리를 그러모으고 있던 손을 뗐다. 기다렸다는 듯이 매끄러운 머리카락이 등 뒤로 흘러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