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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화




제법 큰 소리가 터져 나왔지만, 부부를 배려한 탓인지 방음 장치가 훌륭했던 탓인지 사용인들은 달려오지 않았다. 얼떨결에 자리에서 일어나게 된 글로리아는 조금 높은 곳에서 그의 얼굴을 내려다보았다. 훤칠한 얼굴에 박힌 호박색 눈은 저처럼 흔들리고 있었고 대답을 못 하는 입술은 붙었다 떨어지기를 반복했다.

말문이 막힌 글로리아는 다시 자리에 앉았다. 세상에는 설마라는 단어가 있다. 그와 한 침대에서 일어났던 날, 손에 잡히고 몸에 닿아 오던 것들을 떠올리면 상상을 부정할 수밖에 없지만, 빈센트라 불리는 바로디 제국의 후작은 감정 표현에 그렇게까지 박한 인간이 아니었다.

“기능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닙니다.”

이번 대답은 단호했다. 글로리아는 떨리려는 입에 힘을 주었다. 마침내 그 소리가 튀어나왔다.

“설마 단 한 번도…….”

“…….”

두 나라의 국교는 자유를 신봉하는 만큼 방탕한 구석이 있었다. 성관계를 대놓고 장려하지는 않았지만, 교리를 들어 막지도 않았다. 물론 그럼에도 있긴 했다. 순결에 큰 가치를 부여하는 이들이.

말이라는 술이 엎질러진 마당에 그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다시 한번 고민하게 된 글로리아는 둥근 눈을 천천히 깜빡였다. 비웃거나 신기해할 생각은 없지만, 거론되는 것만으로도 수치스러울 수 있는 일이었다.

“지극히 사적인 이야기를 캐물어 미안합니다.”

그래서 덮기로 마음먹었다. 흐지부지한 끝이 마음에 차지 않았지만, 서로의 혓바닥이 길다 경쟁할 만한 화제도 아니었다.

그러나 빈센트의 생각은 다른 모양이었다.

“미안해하실 것 없습니다. 반려하고만 몸을 섞고 싶은 건 부끄러운 일이 아닙니다. 그보다 아직 합의가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대는 반려를 위해 정절을 지키고 싶어 하고 나는 상대가 필요하니 서로 신경 쓰지 않는 쪽으로 해결할 수는 없는 건가요? 그대라면 몰라도 이제 와 내가 그러는 건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만.”

애인을 심심하면 갈아 치웠는데 새삼 지킬 것이 남아 있을 리 없다. 글로리아의 얼굴을 쳐다보던 빈센트는 한참을 망설이더니 마침내 결심을 굳힌 듯 입을 열었다.

“전하께서는 지금, 제 반려십니다.”

잠시 사고가 멈췄던 글로리아는 곧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정략결혼이라 한들 부부가 되었으니 그대가 내 상대가 되겠다는 말입니까?”

이게 무슨 마른하늘에 벼락 칠 소리인가. 멀쩡한 하늘이 번쩍이는 착각이 들 정도로 머리가 흔들렸다. 술기운이 확 깬 그녀는 맨손으로 값비싼 테이블을 부수는 대신 주먹을 쥐었다 펴기를 반복했다.

짧은 시간 동안 혼이 빠질 만큼 먼 길을 돌아왔으나 토대는 달라진 게 없었다. 내외하는 성정 따위는 없으니 누구든 부실한 놈만 아니라면 까짓것 의무라 치고 밤을 보내겠지만, 누차 생각해서 저희는 서로의 목숨을 노리던 원수였다. 합의를 통해 잡냄새가 나는 관계에 약간의 간을 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과거를 완전히 잊기는 어려웠다.

“내가 그대 위에 올라타 목을 조를 가능성은 고려하지 않습니까?”

“만약의 경우 전하가 아니라 제가 올라타게 되겠지만 일이 이렇게 된 이상 의무를 저버릴 분은 아니라고 믿습니다.”

글로리아는 앞머리를 쓸어 넘겼다. 단단한 두개골 속 물컹한 살이 무거운 것에 눌린 듯 머리가 지끈거렸다. 상황을 외면하기 위해 머리를 굴리던 그녀는 새삼 인상을 찌푸렸다. 빈센트의 발언이 묘하게 거슬렸다.



‘만약의 경우 전하가 아니라 제가 올라타게 되겠지만 일이 이렇게 된 이상 의무를 저버릴 분은 아니라고 믿습니다.’



그가 올라탄다는 부분도 몹시 별로지만, 딱 하나만 집어서 긁어낼 수 있다면 답은 조금 더 앞에 있었다. 만약의 경우? 문맥을 보자면 해당 내용은 잠자리를 칭했다. 결론은 머지않아 도출되었다.

그러니까 결국, 그에게 잠자리는 ‘없을 확률이 높은 일’이라는 소리였다. 좀 더 직설적으로 말하자면 저치는 제가 저를 못 먹을 것이라 생각해서 되지도 않는 말을 늘어놓고 있다는 소리였다.

글로리아는 입매를 비틀었다. 세상에 독이 든 케이크를 먹으려 하는 사람은 없었다. 푹신한 빵과 층마다 쌓인 크림이 식욕의 깃을 세워 흔든다고 해도 떨떠름하게 바라볼 뿐, 죽고 싶은 게 아니라면 달려들 리 없었다.

그러나 강철도 소화하는 위장을 지니고 있다면 케이크의 맛이 궁금해서라도, 혹은 독을 품었다는 사실이 고까워서라도 씹어 볼 만하지 않나?

후자의 영향을 크게 받은 글로리아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섬뜩한 기세를 눈치챈 빈센트가 대비하기 전에 그의 허벅지 사이에 무릎을 끼워 넣은 그녀는 넓게 벌어진 어깨에 손을 올렸다.

“그럼 시험해 볼까요.”

상황이 미쳐 돌아가고 있음은 옛적에 인지했지만, 이상한 곳에서 자존심을 다친 글로리아는 과격하게 행동했다. 여자와 이런 식으로 접하는 것이 진실로 처음이었던 빈센트는 앞과 뒤 어느 쪽으로도 나아가지 못한 채 바삭하게 말라가는 입을 열었다.

“농담이 지나치십니다.”

“농담이 아닙니다. 그대가 나의 상대가 되어 준다고 했으니 시험해 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후작의 말대로 의무를 저버릴 생각은 없으니 걱정하지 마세요. 오늘 밤은 레펠 공작의 이름으로 그대의 안전을 보장합니다.”

글로리아는 그렇게 말하며 입술을 겹쳤다. 부드럽고 따뜻한 피부가 닿아 오는 감각에 허둥거리던 빈센트의 손이 그녀의 등과 허리에 닿았으나 서툰 남자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리 많지 않았다. 무릎에 힘을 주어 남자의 아래를 자극하던 여자는 벌어진 입술 사이로 혀를 집어넣었다. 달아오르며 질척해진 살덩이에서 민망한 소리가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가볍게 치열을 고르던 살덩이가 깊숙하게 파고들어 목 안쪽을 건드리고 천장을 쓸어내렸다. 도망가는 남자의 혀를 얽어 뿌리가 아플 정도로 당기고, 각도를 틀어 다른 곳으로 침범하면 닿아 있던 손에 힘이 실린다. 입 안을 희롱하며 그의 턱을 매만지던 손이 목 줄기를 타고 내려갈 때가 되어서야 글로리아의 머리를 끌어당긴 빈센트는 감질나게 굴던 혀를 쫓아 달려들었다.

상식적으로 생각하자면 쫓는 게 아니라 도망쳐야 할 상황이었다. 아니, 이걸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되는 걸까. 애당초 상식이 맞기는 한 걸까. 그러나 터질 듯 박동하는 심장이, 홧홧하게 달아오른 숨이 멀쩡하던 이성을 마비시켰다. 가는 손이 몸을 만지는 감촉을 꼼짝없이 받아들이며, 그는 목 끝까지 올라온 신음을 집어삼켰다. 사실 뱉을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

서로의 호흡을 집어삼킬 듯 빨아들이고, 잠시 입을 떼어 모자란 숨을 헐떡였다. 그러다 눈이 마주치면 같은 일을 몇 번이고 반복했다. 달뜬 숨소리와 젖어 드는 소리가 이어지고 맞닿은 몸에서는 이성이 녹아내린다. 그의 혀끝에서 잊고 있던 푸른 술의 맛을 찾아낸 글로리아는 가볍게 웃었다.

“하…….”

기대 이상이었다. 행동 자체는 서툴지만, 본능만큼은 훌륭하다. 대담하게 파고들어 거칠게 안을 휘젓는 살덩이의 감촉 덕에 벌써 등줄기가 짜릿했다.

글로리아는 녹아내리려는 표정을 갈무리하며 말했다.

“나쁘지 않군요.”

무릎에 닿아 덩치를 불리고 있는 남근도, 탄탄하고 탄력적인 몸과 훤칠한 외모도, 찌르듯 강렬해진 호박색 시선도 나쁘지 않았다. 아주 솔직하게 말하자면 그가 바로디의 후작이라는 사실이 새삼 아쉬울 정도였다. 이런 남자를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신이 반려라고 내려 주었다면 진작 곁에 두었겠지.

그런데 왜 이렇게 만나게 되었을까.

아쉬움을 삼킨 글로리아는 천천히 다리를 움직였다. 그의 중심에 박힌 것이 뜨겁게 요동치고 거친 숨소리는 귀 끝에 닿았다. 투박한 손은 어느 순간부터 그녀의 몸을 매만지고 있었다.

다시 긴 키스가 이어지고 얇은 가운이 흘러내렸다. 능숙한 솜씨로 빈센트를 침대 위로 끌어당긴 글로리아는 예고했던 대로 그의 위에 올라타서 빳빳하게 고개를 쳐든 좆의 머리를 짓눌렀다. 그가 짐승처럼 허리를 비틀 때마다 거대한 감각이 그녀의 하반신을 스치고 지나갔다.

“윽…… 전하……! 크윽…….”

“가만히 좀…….”

그가 처음임을 바다와 같은 마음으로 고려하고 있었지만, 그만을 위한 시간은 아니었다. 남자의 가슴팍을 더듬으며 우뚝 솟은 그의 중심으로 아래를 자극하고 있던 여자는 나른하게 신음했다. 넣지 않아도 크기를 알 수 있을 만큼 물건은 대단했다.

길고, 굵고, 단단하다. 안에 넣으면 뜨겁게 박동하는 것도 느낄 수 있겠지.

한껏 흥분한 글로리아는 다짜고짜 그의 목에 이를 세웠다. 두꺼운 피부를 자극하면서 그대로 숨을 들이마시면 격해진 감정은 머리와 배에서 불길을 품었다. 시시각각 색을 달리하며 들썩이는 남자의 몸 위에서 행복을 만끽하던 여자가 그의 손을 들어 올려 제 볼에 대었다.

“아, 그러고 보니 아직 호칭도 정리하지 못했네요. 빈센트라 불러도 괜찮겠습니까? 그대가 내 이름을 부르는 것도 허락하지요.”

그리고 잡아 둔 손을 느긋하게 미끄러뜨렸다. 졸지에 가는 목과 둥근 어깨를 매만지고 풍만한 가슴을 손에 담게 된 빈센트가 혀를 씹었다.

이국에서 만든 천보다 부드럽고 갓 태어난 짐승보다 따뜻한 살결이 손안에서 흔들렸다. 생경한 감촉이 무엇인지 확실히 하기도 전에 여자의 신음이 내려앉는다. 뇌리에 박힐 만큼 자극적인 광경에 마침내 이성의 끈을 온전히 토막 낸 남자가 여자의 몸을 끌어당겼다.

“아……. 읏……!”

“하아……. 크읏……!”

가는 허리를 붙들어 굳건한 물건을 자극하고 남는 손으로 가슴을 모아 주물렀다. 허리에 걸려 있던 가운이 젖어 들었지만, 누구의 탓인지는 알 수 없었다. 쾌감을 멀리하는 방법을 알지 못함은 물론 그렇게 할 생각도 없었던 글로리아는 정갈하다 못해 탄탄하기까지 한 근육을 손바닥으로 덧그렸다. 낮은 신음으로 젖어 가던 음부가 또다시 들썩였다.

이젠 정말 한계였다. 이대로는 견딜 수가 없었다. 이미 흘러내리고 있던 가운과 속옷을 벗어 던진 그녀는 허리를 들어 우뚝 선 성기의 머리를 집어삼켰다. 미끈거리는 액체로 범벅되어 있던 아래는 마찬가지로 끈적하게 젖어 있던 남근을 서서히 빨아들였다.

“잠깐……! 아, 으윽……!”

“읏…….”

아래를 고통스럽게 하는 크기였다. 길이도 문제지만 시각적으로도 굵직한 그것은 꾸물거리는 내벽을 젖히며 파고들었다. 글로리아는 달뜬 숨을 토하며 조심스럽게 몸을 내렸다. 어지간한 길이와 굵기면 단번에 잡아먹어 게걸스럽게 씹고 있었겠지만, 그의 중심은 한입에 삼킬 수 있는 물건 따위가 아니었다.

뜨거운 뱃속이 탐욕스럽게 꿀렁이며 자극을 받아먹었다. 발끝이 오그라들고 그와 닿은 피부가 화끈거렸다. 어떻게 이런 것을 달고 지금껏 경험이 없었는지 알 수가 없다. 크게 숨을 들이마신 글로리아는 다시 허리를 움직였다. 피가 몰린 물건이 쥐어짜이는 쾌감에 정신을 놓고 있던 빈센트가 입술을 씹으며 허리를 쳐올렸다.

“하아……. 아, 빈센트……. 아읏……!”

더 이상 파고들 수 없을 만큼 아래는 꽉 맞물려 있었으나, 그의 것은 기껏해야 절반 정도 들어간 상태였다. 본능적으로 물건을 빼낸 빈센트가 그것을 다시 밀어 넣었다. 행위를 반복할 때마다 부푼 성기가 더욱 깊숙이 파고들었다. 글로리아는 교성을 내지르며 허리를 비틀었다. 난폭하게 맥동하는 물건은 가장 깊은 곳을 찌르다 못해 밀어 내고 있었지만, 놀랍게도 뿌리는 아직이었다.

“아……! 너무 깊…… 읏, 하읏!”

“그렇게, 조이시면……. 윽!”

본인의 것을 기어이 끝까지 밀어 넣은 빈센트가 윗몸을 일으켰다. 세상에서 가장 예민해진 그를 잡아먹은 몸이 코앞에서 일렁거렸다. 손끝에서 놀던 가슴은 부드럽게 흔들리고 달콤하던 입술에서 귀 끝을 물들이는 소리가 새어 나왔다. 이따금 더해지는 ‘빈센트’라는 이름은 이미 그가 알고 있던 것이 아니었다.

다시 신음 섞인 이름이 들려왔다. 몇 번이고 반복적으로 들려왔다. 그 소리가 내려앉을 때마다 심장이 터질 듯 부풀었다. 무엇이 그리 만족스러운지. 또 무엇이 그리 기쁜지. 행위라는 게 본래 이런 것인가. 아무것도 알 수 없다. 아무것도 알 수 없었지만…….

거대한 이물감에 숨을 헐떡이는 글로리아가 멀어지지 못하도록 끌어안은 빈센트가 더욱 힘껏 허리를 쳐올렸다. 그녀 또한 덮쳐 오는 쾌락을 피할 생각이 없었기에 그의 어깨를 붙들었다.

“크윽……!”

“하으……. 아……. 아앗!”

깊숙이 박혀 있던 남근이 거칠게 경련하고, 곧 뜨거운 내부를 가득 채우고도 남을 액체가 쏟아졌다. 빈센트와 함께 절정을 맞이한 글로리아는 호흡을 정돈했다. 하얗게 점멸되었던 시야가 서서히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