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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중누각(空中樓閣) 3화







무이문의 후계자가 돌아왔다!

발 없는 말이 천 리(千里)를 간다 했다. 호담자(豪談者)를 통해 퍼진 소문은 복건성을 비롯해 인근 성(城)까지 파다하게 퍼졌다. 객잔에 삼삼오오 모여 있던 이들이 흥미로운 소문에 저마다 입을 열었다.

“가짜가 아닐까?”

“청림방의 단 방주가 확인했으니 진짜겠지!”

“그럼 무이문의 후계자가 진짜로 돌아왔다는 거야?”

“그렇겠지!”

무릎을 탁! 친 사내가 은밀하게 속삭였다.

“진정한 후계자가 돌아왔으니 이제 무이문도 부활하겠구만.”

덩달아 목소리를 낮춘 다른 사내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무이문의 재산은 대부분 단 방주가 가지고 있잖나. 과연 순순히 돌려줄까?”

“보는 눈이 많은데 뭘 어쩌겠나? 더구나 복건쌍절이라 불릴 만큼 장절과 절친한 사이였잖나. 당연히 돌려줘야지.”

“크! 아깝겠구만그래.”

그렇게 말하면서도 사내의 얼굴은 희희낙락했다. 강호에 자자한 단천악의 명성과 별개로 청림방의 은밀한 횡포를 잘 아는 탓이었다. 애초에 청림방이 복건에 세를 뻗친 것도 무이문의 영역을 차지하면서부터였다. 겉으로는 친우의 복수를 위해서라지만 그 속을 누가 알겠는가. 그를 좋게 보는 이들만큼 다른 시각으로 보는 이들도 있었다.

“네 당주도 돌아가려나?”

“에이. 이미 청림방 식구인데 이제 와서?”

“하긴. 그보다 운이 좋았어. 그날 자리를 비운 네 사람만 살아남았잖나.”

“살 사람은 산다는 거지.”

어깨를 으쓱한 사내가 히죽 웃었다.

“흐흐. 앞으로 볼만하겠구만.”

“쉿. 입조심하게. 요즘 청림방도들이 눈에 불을 켜고 돌아다니고 있으니.”

“흥. 이미 퍼진 소문인데 어떻게 잠재우려고?”

“킬킬킬. 그건 그렇지.”

숙였던 허리를 든 사내들은 아무렇지 않게 술잔을 기울였다. 이미 화제는 다른 것으로 넘어갔다.

“아. 그 소식 들었나? 명교가 완전히 사라졌다는…….”

“아니. 그게 아니라 파가 완전히 갈라졌다는데? 그, 뭐냐. 새외에 천마신교라고 뭔 세력이 나머지를 흡수하고 있다나?”

“에잉. 거기야 밥 먹듯이 뭐가 나타났다가 사라지잖나. 그보다 흑야련(黑夜聯)이 다시 움직인다던데?”

“뭐? 이거 큰일…….”

무심코 목소리를 높였던 사내가 화급히 입을 틀어막았다. 그는 주변을 둘러보다 큼큼 헛기침했다. 청림방을 얘기할 때보다 더 조심하는 기색이었다.

“쓸데없는 소리 말고 술이나 먹자구.”

“그래. 그러자고.”

덩달아 눈치 보던 동료가 냉큼 말을 맞췄다. 이윽고 두 사람은 말없이 술만 퍼마시기 시작했다. 문가에 서서 동냥밥을 퍼먹던 취걸개가 씩 웃었다. 발 없는 소문을 달고 천 리를 떠돌고 있을 제 제자가 돌아오면 상을 줄 생각이었다. 그는 누런 이를 뽐내며 크게 소리쳤다.

“아이고, 배고파라! 박이 비었네! 박이 비었어!”



***



무이문 생존자의 소문은 섬서성 화음현의 연화봉 정상에까지 닿았다. 다급히 선도원(仙道院)으로 달려가는 한 청년의 얼굴에 기대가 가득했다.







第二章 재회





“사제!”

여장을 챙겨 연화동을 지나치던 사내가 우뚝 걸음을 멈췄다. 뒤에서 달려온 여인이 그의 소매를 붙잡았다. 높게 틀어 올린 머리카락과 수수한 도복 차림으로도 가릴 수 없는 미인이었다.

“본가에 다녀온다고 들었어. 인사도 안 하고 가?”

“대사저.”

사방평정건(四方平頂巾) 아래의 아름다운 얼굴이 미려한 미소를 지었다. 살짝 얼굴을 붉힌 여인이 작게 헛기침했다.

“마지막 수련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무슨 급한 일이 있어 고향에 가겠다는 거야?”

“오래전 죽은 줄 알았던 친우가 살아 돌아왔다고 합니다.”

그 말에 여인의 눈이 살짝 커졌다. 사내의 ‘그 친우’라면 그도 알고 있었다. 함께한 세월이 수년이다 보니 모를 수 없었다. 더군다나 십 년 전의 혈사는 아직도 회자될 만큼 의문스러운 사건이었다.

“확실해? 단 사제가 죽었다고 했잖아. 가짜가 아닐까?”

“가짜든 진짜든 제 눈으로 확인하려 합니다.”

“……이미 매화 다섯을 피웠으니 말릴 수도 없겠네. 이리 당당한 걸 보니 사숙(師叔)께도 허락받았을 테고.”

여인의 입에서 깊은 한숨이 터졌다. 그는 한동안 보지 못할 사내를 물끄러미 쳐다보며 손을 놓았다.

“아쉬워. 사제와 하는 대련이 가장 즐거웠는데.”

“돌아오면 얼마든지 상대해 드리겠습니다.”

“…….”

후일을 기약하는 말에 여인은 싱긋 웃었다. 심부로 삼킨 말이 목 끝까지 치밀었지만 떠나는 이에게 내보일 만한 것은 아니었다.

“부디 돌아왔다던 사람이 네 친우이길 바라.”

사내, 단화명이 환하게 웃었다.

“저도 그러길 바랍니다.”



***



강호의 소문은 떠들썩했지만, 청림방은 몇 달간 내부 단속을 하며 침묵을 유지했다. 수많은 강호 인사가 날린 전서구도 청림방의 담장을 넘지 못했다. 단천악은 ‘보호’라는 명목으로 능운소를 향한 접근을 모조리 막았다.

능운소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는 얌전히 객방에 머물며 외출도 하지 않았다. 하는 일이라곤 명상 또는 수련뿐이었다. 남몰래 동향을 살피던 이들이 지루해할 정도였다. 그쯤 되자 단천악이 먼저 그를 찾아 제안을 건넸다.

“무이문의 후계자가 돌아왔으니 문파를 다시 세워야 하지 않겠느냐.”

그 말에 능운소가 고개를 저었다.

“기억이……. 큼.”

작게 헛기침한 그가 허락을 구하듯 단천악을 응시했다. 몇 번의 만남으로 항상 행하던 일이라 바로 허락이 돌아왔다.

-기억이 온전치 않은 데다 이미 사부님의 절기를 물려받아 능씨 가문의 무공으로 무이문을 재건하는 건 어려울 듯합니다.

귀를 맴도는 전음에 단천악이 작게 탄식했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능운소는 가문 무공의 진전을 보기 전에 화를 당했다. 그를 하대방이 거둬 지금껏 키웠으니 다시 가문 무공을 익히려면 긴 시간이 걸릴 터였다.

“가망이 없는 건 아니다. 본디 십절공은 양의 무공이다. 네 가문의 무공도 같은 성질이니 초절정은 아니라도 오래도록 수련하다 보면 큰 진전을 볼 것이다.”

-저도 그 생각을 안 해 본 것은 아니나 가문 무공을 익힐 방법이 없습니다. 능씨 집안은 손이 귀해 방계가 없고 비급도 남아 있지 않습니다.

“……그건.”

단천악이 입을 달싹였다. 그는 잠시 망설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내 방법을 찾아보마. 네가 가문을 찾아야 부모의 원수도 갚을 것 아니냐. 네 복수는 내 복수이기도 하니 기꺼이 도와주마. 그리고 조만간 연회를 열 것이다. 다시 기지개를 켜려면 세간에 눈도장을 찍어야지. 인근 문파 사람과 장원 내 식객을 모두 불러 너를 소개하마. 위대한 장절의 아들이 돌아왔다고.”

-감사합니다. 숙부님. 큰 신세를 지게 되었습니다.

능운소가 감격한 얼굴로 포권했다. 그 손을 잡으며 단천악이 자애롭게 웃었다.

“너는 내 아들과 다름없으니 당연한 일이다. 도움이 필요하면 무조건 내게 말해야 한다. 기억이 돌아와도 가장 먼저 나에게 오고. 어떤 적이 무이문을 공격했는지 모르니 항시 사람을 조심하거라.”

“……예.”

“이곳에 화명이가 있었다면 좋았을 것을…….”

“…….”

“너와 가장 절친한 동무였잖느냐. 많은 위로가 됐을 것이다.”

-화산에 큰 용 하나가 있다는 소문은 들었습니다. 절세의 미남자이자 그 실력 또한 남사룡(南四龍)의 으뜸이라고요.

능운소의 칭찬에 단천악이 화색이 인 얼굴로 대꾸했다.

“그렇지! 같은 팔룡(八龍)이니 너도 잘 알겠구나. 서로 만난 적은 없고?”

-아쉽게도 없습니다. 주로 새외에서 활동했으니까요.

“하긴. 북사룡(北四龍)의 멸염창이 중원에 들어왔다면 금세 소문이 퍼졌겠지.”

-과분한 별칭입니다.

“하하! 하 대협의 제자라면 능히 실력이 뛰어날 것이다. 겸양할 것 없다.”

단천악이 껄껄 웃으며 능운소의 어깨를 두드렸다.

-그래도 단 형에겐 안 될 겁니다. 새외에서 떠돌던 제가 화산파 매화검수의 상대가 되겠습니까. 요즘은 아무리 수련해도 제자리걸음입니다.

“너무 자조하지 마라. 네 실력에 큰 진전이 없는 것은 좋지 않은 몸 상태와도 연관 있을 것이다. 널 만났을 때부터 약초 냄새가 진동하더구나. 여전히 아픈 것이냐?”

능운소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종종 흉통이 느껴집니다. 의원 말로는 정신적인 문제라 하더군요.

“쯧쯧쯧. 그리 큰일을 겪었으니…….”

나직이 혀를 찬 단천악이 생각하고 싶지 않다는 듯 고개를 털었다. 그는 할 말을 다 마쳤는지 자리에서 일어났다.

“너무 수련에만 매진하지 말고 바깥바람도 쐬려무나. 네가 하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니 항간엔 내가 가뒀다는 헛소리마저 돌더구나.”

웃음기 어린 목소리에 능운소가 머쓱하게 웃었다.

“그럼 연회 때 부르마.”

“예.”

단천악이 방을 나섰다. 문을 열었던 장일이 능운소에게 눈인사하곤 그 뒤를 따라갔다. 문이 닫히자마자 능운소의 미간이 일그러졌다. 대화하는 내내 은밀하게 파고들던 기의 그물이 거슬리기 짝없었다. 반응하지 않으려 잔뜩 신경 썼더니 온몸이 뻐근했다. 자신이 능운소라는 걸 의심하진 않으나 진정한 실력을 알 수 없으니 끊임없이 탐색 당하고 있었다.

“읏.”

능운소는 가면을 붙잡았다. 그 안의 일그러진 피부가 통증을 호소했다. 수천의 바늘에 찔리는 것 같으면서도 용암에 녹아내리는 듯한 고통이었다. 다급히 품을 뒤적여 환약을 꺼내 씹어 먹었다. 서서히 통증이 가라앉았다. 자주 먹으면 안 좋다지만 고통을 견디는 것보단 나았다.

능운소는 눈을 감고 마음을 다스렸다. 새까만 시야로 화마의 환영이 어른거렸다.



***



오랜만에 청림방의 문이 활짝 열렸다. 미리 연통을 받은 수많은 무림인이 정문을 통과해 안으로 들어갔다. 본디 연무장이었을 곳이 거대한 연회장으로 변해 그들을 맞이했다.

“오. 이게 누구신가. 오랜만이오.”

“허허. 이곳에서 볼 줄 몰랐소. 잘 지냈소?”

그리고 그곳은 만남의 장으로도 변했다.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꽃을 피우던 그들은 방주 단천악의 등장에 각자의 자리로 돌아갔다.

“호오. 저 사람이……?”

“그런데 얼굴이…….”

사람들의 웅성거림이 커졌다. 단천악의 뒤를 따라오는 한 사람 때문이었다. 커다란 신장과 몸에 서린 기세가 절정에 오른 무림인임을 나타냈으나 화상으로 흉이 진 외향이 가장 먼저 눈에 띈 탓에 일어난 소란이었다. 참혹했던 무이문 혈사의 현신을 보는 듯해 사람들의 소란이 가라앉지 않았다.

“흠흠!”

단천악이 크게 헛기침했다. 그제야 능운소에게 몰린 시선이 흩어졌다.

“뜻깊은 자리에 함께해 주신 무림 동도들을 환영하오. 소생은 과분하게도 권절이라 불리는 단천악이외다.”

능청스러운 소개에 사방에서 와하하! 웃음이 터졌다. 연회장을 채운 이들은 인근 문파 사람이거나 청림방에 몸담은 식객들이니 이해 못 할 반응은 아니었다.

“이 연회의 주인공을 소개하겠소. 노호창 하대방 대협의 제자이자 안타깝게 목숨을 잃은 제 친우인 장절 능만엽의 아들, 능운소요.”

능운소가 단천악과 나란히 섰다. 그는 포권하며 깊숙이 허리를 숙였다.

“무림말학이 여러 대협을 뵙습니다. 능운소입니다.”

“하대방 대협의 제자?”

“그렇다면 저자가 북사룡의 멸염창인가? 이름이 무명(無名)이라던?”

“허허…… 왜 ‘이름이 없는 자’인가 했더니 진명이 따로 있어서 그랬구먼.”

“하 대협이 큰일을 했어. 큰일을…….”

능운소의 일그러진 얼굴은 금세 흥미에서 비켜났다. 사람들은 혈사에서 살아남은 생존자이자 후기지수(後起之秀)의 수좌를 다투는 북사룡 멸염창에게 더 관심을 가졌다.



강호에 뛰어난 여덟 용이 있으니 남쪽의 넷, 북쪽의 넷을 합쳐 무림팔룡(武林八龍)이라 부른다. 그중 남사룡의 옥안미룡(玉顔美龍) 단화명과 북사룡의 멸염창(滅炎槍) 무명이 가장 실력이 뛰어나 다시 남북이룡(南北二龍)이라 칭하니 이들이 곧 정도 무림의 미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