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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공 냠냠 2화

1. 혹하는 제안 (2)





캄캄한 동네는 쥐 죽은 듯 고요해 자전거 바퀴 소리만이 거리에 울려 퍼졌다. 남들 다 자고 있을 이른 시간에 밤이슬을 맞으며 향한 곳은 우유 대리점이었다.

“저 왔습니다.”

“어, 왔냐? 오늘도 수고해.”

“넵.”

그의 하루는 우유 배달 아르바이트로 시작되었다.

새벽에 할 만한 아르바이트는 한정적이었다. 심지어는 우유 배달조차도 면허가 있어야 하는 시대였다.

늘 그렇듯 침착한 얼굴로 ‘자전거로 오토바이 속도를 따라잡을 수 있습니다’라고 말한 승언이었으니 면접에 붙을 수 있던 거였다. 실제로 그 정도 역량이 받쳐 주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지만 말이다. 덕분에 승언은 새벽마다 신선한 우유를 한 잔씩 마실 수 있게 되었다.

우유 배달은 각자 주어진 구역이 있었는데, 승언은 가장 가까운 대신 언덕이 많은 곳을 맡았다. 자전거로는 조금 힘들었지만 운동하는 거라 생각하면 나름대로 괜찮았다.

특히나 마지막으로 배달해야 하는 집은 가장 높은 곳에 있었는데, 그 집 배달을 끝내고 가파른 언덕에서 아침을 맞이하며 마시는 우유는 꿀맛이었다.

그다지 덥지 않은 새벽임에도 자전거로 언덕을 오르다 보면 저절로 땀이 났다. 승언은 티가 몸에 들러붙는 것 같은 기분에 오른손으로 옷자락을 펄럭거렸다.

집집마다 떨어져 있어 배달하는 데에 꽤나 시간이 걸렸다. 마지막 배달을 마친 승언이 옷으로 대충 흐르는 땀을 닦아 냈다. 양손으로 자전거 손잡이를 잡고 언덕길을 천천히 걸어 내려오면서 머릿속으로는 연신 새 일자리 생각뿐이었다.

“이제 임상 알바도 끝이라 빨리 다른 일 찾아야 되는데.”

승언의 미간에 주름이 졌다. 며칠째 새로운 일자리를 찾아봤지만 썩 마음에 드는 게 없었다. 오늘로써 마지막인 임상 시험만큼 벌이가 제법 쏠쏠한 아르바이트가 또 있으면 좋으련만.

물론 임상 시험 아르바이트의 벌이가 제법 쏠쏠한 이유는 그만큼 위험 부담이 커서라는 사실을 승언도 잘 알았다. 그러나 그는 제 건강한 신체를 믿었고, 무엇보다 돈이 급했다. 결과적으로는 아무 일도 없기까지 했으니 안 그래도 없던 겁이 더 없어질 만도 했다.

어째서 임상 시험 아르바이트는 연이어 할 수 없는 것일까. 이번에 끝나면 투약 실험은 앞으로 또 몇 개월 기다려야만 했다.

‘외국에선 몇 개월씩 장기 프로젝트도 하던데…….’

종종 그런 글을 보곤 했다. 몇 개월 정도 어디에 갇혀 있는 대신 얼마를 준다고 하면 하겠느냐는 내용의 글이었다. 계산해 봤을 때 자신이 벌 수 있는 이상을 준다고 한다면 승언은 얼마든지 할 의향이 있었다. 문제는 실제로 그런 제안을 해 올 리가 없다는 점이지만.

지금껏 해 온 임상 시험 중 가장 길었던 건 한 달이었다. 일주일에 2박 3일에서 3박 4일 정도 묵으면서 상태 점검과 채혈 검사를 진행하는데, 실험이 종료될 때까지 꼬박꼬박 약 챙겨 먹는 것과 하루에도 몇 번씩 피를 뽑는 게 번거롭기는 하다만 매시간 밥도 주고 간식도 주는 게 퍽 적성에 맞았다. 육체적 노동을 많이 해 왔던 제게 그 시간은 휴식을 취하는 거나 다름없었기에 더더욱.

꼭 임상 시험이 아니더라도 그와 비슷한 조건의 일자리가 있으면 바로 하고 싶은데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았다. 이제 곧 대학교 방학이랑 겹칠 텐데, 사람 몰리기 전에 대충 시간만 맞는 거로 해야 하나……. 이런저런 생각을 하던 승언은 언덕이 끝나는 부분에서 다시 자전거 위에 올라타 페달을 밟았다.

해가 길어져서인지 벌써 날이 밝아 오고 있었다.



***



6월의 끝자락, 후덥지근한 바람이 그의 머리카락을 스쳤다. 병원으로 향하는 길은 역시 자전거가 함께했다. 햇살 머금은 나무는 싱그러운 초록빛으로 생동감이 넘쳐흘렀다. 이어폰을 꽂은 채 그 옆을 지나는 승언의 모습이 청춘 드라마 속 남자 주인공처럼 근사했다.

에어컨 바람이 시원한 병원에서 자잘한 검사와 마지막 채혈까지 모두 마친 승언이 아쉬운 발걸음을 돌려 막 빠져나오려던 참이었다. 주머니 속에서 진동이 울렸다. 핸드폰을 꺼내 발신자를 확인하자 처음 보는 번호가 눈에 들어왔다.

승언에게는 이렇게 종종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걸려 오곤 했는데, 받아 보면 대부분 아는 사람이었다. 그가 저장을 안 했을 뿐. 또 그런 것이겠거니 생각하며 전화를 받자 낯선 남자의 음성이 들려왔다.

-공승언 씨 되십니까?

“네, 맞는데 누구세요.”

-안녕하십니까. APS 코리아 전략기획실 대외협력파트 강원우 팀장입니다.

승언의 검은 눈동자에 어리둥절한 빛이 떠올랐다. APS 코리아면 승언도 익히 들어 아는 곳이었다. 알피어스 제약 회사.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다국적 제약 회사로, 한국 지사는 그리 오래되진 않았지만 무서운 속도로 성장하고 있다는 얘기를 언뜻 들은 것 같았다.

사실 그런 것까진 별 관심이 없고, APS 코리아 덕분에 임상 시험의 폭이 조금 더 넓어졌다는 정도로 인식하고 있었다. 바로 오늘까지 참가한 실험 역시 APS 코리아에서 진행 중인 거였으니까.

“APS 코리아에서 무슨 일로 제게…….”

-실험과 관련하여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어쩐지 불안함이 엄습했다. 혹 실험했던 약물에 무슨 문제라도 생긴 걸까?

“실험이라면…….”

-괜찮으시다면 직접 만나서 말씀드리고 싶습니다만……. 실례지만 차후 일정이 어떻게 되시는지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지금 한국 병원에서 나가려던 참입니다. 잠깐이라면 시간이 비는데요.”

-한국 병원요? 제가 지금 한국 병원인데……. 아.

잠시 휴대폰 너머로 말소리가 끊기나 싶더니 누군가 승언의 앞을 막아섰다.

“……공승언 씨?”

사내는 늘씬한 체형에 전체적으로 선이 가느다란 미인이었다. 테가 얇아 차갑고 날카로운 느낌을 주는 안경을 쓰고 있었는데, 워낙 인상이 부드럽기 때문인지 사납기보단 지적인 분위기를 풍겼다.

거기에 더해 키가 무척 커서 호리호리한 느낌을 자아냈다. 저와 눈높이가 비슷한 사람은 오랜만이었다.

승언을 보고 확신이라도 들었던지 사내는 통화를 종료했다. 승언의 휴대폰 화면도 본래대로 돌아왔다.

“여차하면 계신 곳으로 직접 가려고 했습니다만, 여기서 이렇게 뵙다니 운이 좋았군요. 다시 인사드리겠습니다. APS 코리아 전략기획실 대외협력파트 강원우 팀장입니다.”

능숙하게 명함을 꺼내 든 사내가 습관처럼 미소를 지었다. 승언은 얼떨결에 명함을 받았다. APS 코리아 아래 그의 부서와 직책, 이름이 눈에 들어왔다.

“강, 원우…… 팀장.”

“여기 이렇게 서 있지 말고 자리를 옮길까요?”

원우는 묘한 재주가 있는 사내였다. 그림같이 웃으며 안내하는 원우의 태도에 저도 모르게 응할 뻔했던 승언이 눈을 찌푸리며 멈추어 섰다.

“왜 그러시죠?”

“제가 공승언이라는 건 어떻게 아셨습니까? 제 번호는 또 어떻게 아셨고요?”

“아, 이런. 제가 마음이 급해서 설명을 못 드렸더니.”

원우는 난처하다는 듯 눈을 찡긋거리며 웃었으나 여전히 습관처럼 걸린 미소였다.

“찬찬히 말씀드리겠지만, 이번에 APS 코리아에서 생물학적 동등성 시험을 새로 진행할 예정입니다. 공고를 올리기 전에 이전 참가자들의 명단부터 훑던 차에 공승언 씨의 지난 실험 기록을 살펴보게 되었고, 적합하다고 판단되어 이렇듯 개별적으로 연락을 드리게 되었습니다. 혹 불편하셨다면 사과드리겠습니다.”

“……생물학적 동등성 시험이요? 생동성 아르바이트 말씀하시는 겁니까?”

“네, 그렇습니다. 기간이 긴 시험인 만큼 중간에 그만두는 참가자의 수를 최대한 줄이기 위하여 경험자들 우선으로 연락을 드리고 있습니다. 그중 공승언 씨는 센터 내에서 압도적으로 좋은 평가를 받고 계시기에, 이렇듯 직접 찾아뵙게 되었고요.”

“저만 한 참가자를 찾기가 쉽진 않으시겠죠. 이해합니다.”

압도적으로 좋은 평가라는데도 승언은 얼굴 하나 붉히지 않고 태연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했다. 그에 원우가 가볍게 웃음을 터트렸다.

사실 체력이면 체력, 근력이면 근력 빠지는 구석이 없는 승언이었다. 남들은 흔히 겪는 두통이나 오한 등의 부작용도 전혀 없었고, 예민하지 않아 잠자리가 바뀌거나 생활 패턴이 완전히 엉망이 되어도 아무렇지 않았다.

본래도 일찍 일어나는 편인 만큼 아침 채혈도 무리 없었으며 남들은 지루하다고 투덜대는 시간에 영어 단어를 외우고 있을 정도로 홀로 부지런하기까지 했다.

“관심이 생겼습니다.”

“네. 그럼 자리를 옮길까요?”

고개를 끄덕인 승언이 원우의 뒤를 따랐다. 병원을 빠져나오자 언제 시원했느냐는 듯 후덥지근한 바람이 두 사람을 감싸 안았다. 아무렇지 않던 원우의 얼굴이 희게 질린 건 그때였다.

“……윽.”

“왜 그러시죠?”

손으로 입과 코를 막으며 허리를 굽히는 원우의 모습에 승언이 황급히 다가섰다. 그러자 원우의 얼굴이 더욱 하얗게 질리며 황급히 상체를 뒤로 뺐다.

“아니, 아무것도 아닙니다.”

“어디 편찮으신 것 같은데요.”

승언이 자세히 살피려고 들자 원우는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 제 코를 틀어막았다. 손수건이었다. 그제야 원우의 얼굴에 조금이나마 혈색이 돌았다.

“……전 괜찮습니다. 제가 후각이 예민한 편이라……. 병원 냄새는 웬만큼 익숙해졌는데, 담배 냄새와 기름 냄새가 섞이니 괴로워서.”

“기름 냄새요?”

담배라 함은 거리가 아주 멀긴 하지만 담배꽁초를 입에 물고 있는 이들이 한둘 보였으니 그렇다 쳐도, 기름 냄새라니…….

“설마…….”

승언은 제 팔을 들어 올려 킁킁 냄새를 맡았다. 주유소 아르바이트 전후로 깨끗하게 씻는다고 씻는데 기름 냄새가 남아 있는 걸까? 그런 생각으로 취한 태도였다. 원우는 크게 당황하여 손을 휘저었다.

“말씀드렸다시피 제가 워낙 예민해서 그렇습니다. 평범한 사람들은 전혀 맡지 못할 거고요.”

정말로 제 몸에선 비누 냄새밖에 나질 않았다. 지금껏 기름 냄새가 난다는 얘기도 들은 적이 없고 말이다.

“힘드시겠네요.”

“익숙해져서요. 그보단 무례를 범했네요. 사과드리겠습니다.”

“딱히요.”

대수롭지 않은 투로 어깨를 으쓱이는 승언을 보며 원우가 눈을 가볍게 휘며 웃었다.

“혹 고칠 방법이 있을까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제약 회사에 지원했던 건데 아직은 때가 아닌가 봅니다. 언젠간 괜찮아지겠지요.”

여전히 손수건으로 코와 입을 막은 상태였기에 목소리가 조금 맹맹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승언이 무언가를 떠올리곤 ‘아’ 짧게 목소리를 내뱉었다.

“전에 임상 시험 센터에서 뵈었던 것 같은데.”

“이제 기억나십니까?”

“그때도 이렇게 얼굴을 가리고 계셨죠?”

“네, 맞습니다.”

키가 큰 남자가 손수건으로 얼굴의 반을 가리고 있는 모습은 흔히 볼 수 있는 게 아니어서 기억에 남아 있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임상 시험 센터에서 몇 번 마주친 적이 있었다.



카페에 들어선 두 사람은 아이스 아메리카노 두 잔을 받아 햇볕이 잘 드는 창가 자리에 앉았다.

“잘 마실게요.”

감사 인사를 전한 승언이 빨대로 커피를 빨아 마셨다. 그사이 원우는 가방에서 서류를 꺼내어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간단히 설명 드리자면, 이번에 테스트하게 될 약은 에스시탈로프람(Escitalopram)이라는 항우울제로 이미 안전성이 검증되어 전 세계적으로 널리 판매되는 약입니다. 특허 만료로 여러 제네릭 의약품이 출시되었고요. 보통 신약 개발은 안전성이 검증되지 않았기에 위험 부담이 클 수밖에 없지만, 지금 하려는 건 이미 판매되고 있는 약물과 같은 성분으로 복제약을 만들어 효과가 같은지를 확인하는 시험이므로 문제가 현저히 적을 수밖에 없습니다.”

승언은 귀로는 원우의 말을 들으면서 눈으로는 서류를 훑었다. 지금 원우의 말을 길고 자세하게, 전문적으로 풀어놓은 내용이었다.

이미 출시된 약을 먹는 실험군과 APS 코리아에서 복제한 약을 먹는 실험군, 이렇게 두 가지 군으로 나누어 효과와 지속 시간, 혈중 농도와 분해 속도, 대사 등을 확인한다는 것까지 읽어 내린 승언이 입을 열었다.

“이것도 투약 후 경과를 지켜보는 겁니까?”

“그렇습니다. 이제 곧 공고문도 올라가겠지만, 한 달 일정으로 10일간 매일 정해진 시각에 병원을 내원하여 투약하고, 3박 4일간의 입원으로 채혈과 검사를 진행하며 또 열흘간 투약과 3박 4일의 입원을 반복합니다.”

“그렇게 해서 제가 받는 돈은 얼마죠?”

원우는 서류 한 장을 더 꺼내 들었다. 거기엔 실험 방법과 주의 사항, 부작용 등은 책임질 수 없다는 경고 문구와 함께 지급될 금액이 적혀 있었다. 아무래도 한 달 일정이다 보니 금액이 꽤 컸다.

‘혹하기는 하는데…….’

문제는 3박 4일의 입원이 두 번이나 반복된다는 점이었다. 1박 2일까지는 직원들과 얘기해서 쉬는 날을 잘 맞추면 가능할 것도 같은데, 3박 4일은 무리였다.

‘그렇다고 이것만 하기엔 금액이 애매해.’

차라리 다른 알바를 구하는 편이 지금으로선 더 나은 선택이었다. 승언이 고민하고 있으려니 잠시 기다려 주던 원우가 입을 열었다.

“……사실, 승언 씨에겐 따로 또 제안드릴 게 있습니다.”

“뭡니까?”

“이번에 저희 APS 코리아와 한국 대학이 공동으로 진행하는 프로젝트가 있는데, 승언 씨가 도와주셨으면 합니다.”

승언이 더 말해 보라는 듯 쳐다보자 원우가 목을 축인 후 말을 이어 갔다.

“사실 항우울제라는 게 개인의 체질적 특성도 큰 영향을 미치지만 환경에 따라서도 그 효과의 차이가 큽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고의로 환경을 조성하여 더욱 객관적으로 제품의 효과를 입증해 낼 계획입니다. 또한 처한 환경과 상황이 사고 능력과 심리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연구도 동시 진행될 텐데요…….”

원우는 고심하다가 서류 한 장을 더 꺼내 들었다. 빠르게 글자를 훑어 내려가던 승언의 눈이 크게 뜨였다.

“매일 24시간 한 달 동안 진행되는 실험이요?”

“네, 그렇습니다.”

내용은 아무리 승언이래도 당황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충격적이었다.

요약하자면 이랬다. 실험은 한 달 동안 진행된다. 개별적으로 방이 주어지며 참가자는 한 달 동안 방을 벗어날 수 없고 그곳에서의 모든 행위가 기록되어 자료화 된다. 컴퓨터와 TV, 창문을 통한 바깥 구경 등 어떤 것도 자유롭게 행할 수 있지만 다른 이와의 접촉이 금지된다.

“……단, 검사와 채혈을 위한 접촉은 제하며 하루 한 번 두 시간 동안 다른 참가자와 면담 시간이 주어진다?”

“네, 맞아요. 저희가 하려는 건 사회와 완전히 단절된 후 심리 변화를 보고자 하는 게 아니기 때문에, 최소한의 접촉을 허용할 예정입니다. 물론 매일 두 시간의 면담이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는 세심하게 파악할 겁니다.”

원우의 말을 잠잠히 듣고 있던 승언이 진지한 표정으로 물었다.

“밥은요?”

“하하, 밥은 당연히 매시간 규칙적으로 제공되고요. 간식 역시 제공됩니다. 식사와 간식, 책이나 기타 물건 등은 원하시는 게 있다면 주문이 가능하지만, 수화기 너머에선 최소한의 대답 외에는 돌아오지 않을 거예요.”

“하루 두 시간을 제하곤 한 달 내내 갇혀 산다는 거군요.”

“그렇긴 하지만……. TV는 물론이고, 컴퓨터도 있기에 완전한 단절이라곤 볼 수 없죠. SNS 등은 막아 놓겠지만요. 게다가 냉방 시설도 잘 갖춰 놓을 텐데, 이 더운 날 시원한 곳에서 휴가를 보낸다고 생각하심이……. 어떠실는지.”

시원한 곳에서 휴가! 그렇지 않아도 냉방비 아끼느라 무더운 한여름에도 선풍기 하나로 버텨 왔는데……. 승언의 눈동자에 희미하게 빛이 스민 것을 눈치챘는지 원우가 싱긋 웃었다.

“밖에 나가지 못하는 것과 두 시간 외에는 사람을 만나지 못하는 것. 이 두 가지 외에는 불편한 거 없으실 거예요. 아, 실험 기간 내내 하루 한 번씩 약도 복용하셔야 되고요. 또 2주에 한 번씩 채혈과 검사는 예정대로 진행될 겁니다.”

분명 좋은 기회임이 틀림없었다. 여러모로 혹할 수밖에 없었으나……. 한 달 동안이나 어디 한곳에 갇혀 살아야 한다는 건 부담이 컸다. 승언이 생각에 잠기자 원우는 황급히 말을 덧붙였다.

“아무리 최소한의 접촉을 허용한다고는 하지만 심리적으로 불안해질 가능성이 있고, 한 달이라는 긴 시간 동안 참가자들은 아무것도 할 수가 없기에 그 모든 것을 고려하여 페이는 신경 써서 책정했습니다.”

“……어느 정도기에.”

원우는 주변을 의식한 듯 낮은 목소리로 금액을 얘기해 주었다. 지금껏 덤덤하던 승언의 동공이 일순 미세하게 떨렸다.

그는 약간 놀란 것 같은 목소리로 원우에게 물었다.

“제가 제대로 들은 게 맞나요?”

“네, 맞습니다. 다시 말씀드릴까요?”

원우가 다시금 말해 주었으나 여전히 현실 감각이 제대로 돌아오지 않았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너무 많은 것 같은데요.”

“한 달 동안은 아무 일도 할 수가 없으니까요. 물론 중도에 포기하게 되면 이 금액을 시급으로 계산하여 참가하셨던 시간만큼의 액수만을 지급해 드립니다.”

빙긋 웃으며 말하는 원우를 보다가 승언이 생각에 잠긴 듯 조용히 빨대를 만지작거렸다. 혹하다 못해 두 팔 벌려 환영할 만한 제안이었다. 이만한 기회가 또 있을까?

거기에 육체적 노동 또한 없다. 우울증 치료제라는 게 조금 마음에 걸렸지만, 이미 출시된 약을 복제한 것뿐이니 별문제가 없으리란 생각이 들었다. 한 달 동안 못 나가는 것도 휴가를 얻었다고 생각하면 되고 말이다.

‘딱 내가 바라던 일이야.’

여러모로 너무 좋은 조건이다 보니까 오히려 부담스러워지고 있었다. 말없이 창밖을 바라보는 승언에게 원우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다른 지원자들도 구해야 하니 천천히 생각해 보시고 연락 주세요.”

“시간을 얼마나 주실 수 있습니까?”

“네? 아, 그건 다른 지원자들이 모두 모일 때까지…….”

“만약에 이 일을 하게 된다면……. 제가 지금 알바를 여러 개 하고 있어서 정리할 시간이 좀 필요해서요.”

“……아, 네. 아마 다른 지원자를 구하기까지 시간이……. 좀 걸리지 않을까요?”

승언이 작게 고개를 끄덕이자 원우가 먼저 일어나며 말했다.

“전 이만 가 봐야겠습니다. 승언 씨 같은 분들을 또 찾아야 해서……. 승언 씨가 꼭 도와주셨으면 좋겠네요.”

“네, 생각해 보고 연락드리겠습니다.”

승언의 말에 원우가 살짝 웃은 뒤 빠른 걸음으로 뒤돌아갔다. 그는 사라져 가는 원우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한동안 그곳에 앉아 있었다.



***



“모집 공고……. 올라왔네.”

주유소 의자에 앉아 핸드폰 화면을 내려다보는 승언의 얼굴에 짙은 그림자가 졌다. APS 코리아 전략기획실 대외협력파트의 강원우 팀장이라는 사람이 제안했던 생동성 아르바이트 공고가 새로 올라온 탓이었다.

비록 항우울제 투약 내용만 적혀 있고, 승언에게 따로 제안했던 한 달간의 프로젝트는 언급되어 있지 않았으나 모르는 일이었다. 자신처럼 이런 임상 시험 알바에 자주 참여하는 사람들이 있을 텐데, 그중 장기 프로젝트도 가능하겠다 싶은 이들에겐 따로 제안이 갈는지도.

즉, 이렇게 좋은 기회를 고민하는 사이 놓치게 될지도 모른다는 얘기였다.

‘그 금액이면 학비는 웬만큼 해결될 테고, 종료 후에 바로 알바 자리를 알아볼 필요도 없을 거야. 역시 해야겠지? 최대한 빨리 지금 하는 일부터 정리해야겠어.’

고민하는 승언의 곁으로 현욱이 살금살금 다가섰다. 그는 승언의 눈치를 살피며 말을 건넸다.

“야, 무슨 일 있냐?”

“아니. 생각할 게 좀 많아서.”

“무슨 생각?”

“어떻게 주유소를 그만둘 건지.”

“뭐?”

예상치 못한 말에 현욱이 아연실색했다. 이러다가 주유소에 뼈라도 묻는 거 아닌가 싶을 정도로 성실했던 승언이 갑작스레 일을 그만둔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왜 그만두는데? 이렇게 갑자기?”

“괜찮은 일자리가 하나 생겼거든.”

“뭔데? 야, 나도 같이해!”

“임상 시험인데?”

덤덤하게 말하는 승언의 얼굴을 바라보며 현욱이 질린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아, 됐다……. 너 많이 해……. 아니, 그보다 넌 안 무섭냐? 그거 하다가 잘못되면 어떻게 해.”

“보다시피 멀쩡하고. 잘못된다면 뭐……. 어쩔 수 없지. 내가 선택한 거니까.”

“그러니까 애초에 그런 선택을 안 하면 되잖아?”

“시끄러워.”

제 쪽으로 몸을 기울이는 현욱을 손바닥으로 밀어 내며 자리에서 일어서는데, 마침 주유소 안으로 차 한 대가 들어왔다.

“고휘만 왔네. 일어선 김에 네가 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