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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프롤로그
창문 너머로 보이는 밤하늘에 별이 총총 박혀 있다. 잔잔하게 다가와 모래에 부딪히는 파도 소리도 일정한 박자를 두고 들려온다. 철썩철썩, 그런 상투적인 표현으로 파도 소리를 표현하기엔 너무도 아름다운 음악 소리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것에 아무런 감흥도 들지 않는다. 그녀를 바라보고 있는 남자의 두 눈동자가 더욱 아름다우니까.
‘어디서 봤더라? 많이 본 얼굴인데?’
그녀는 곰곰이 생각했지만, 기억이 떠오르지 않았다. 머리가 돌아가지 않는다는 표현이 정확하다. 술을 진탕 마신 탓이었다. 오뚝한 콧날과 날렵한 턱 선, 짙은 눈썹과 서양인처럼 크고 쌍꺼풀이 있는 눈. 한 번 보면 잊을 수 없는 아름다운 얼굴이기에 분명 그녀가 아는 사람이었다.
‘지금 누워 있는 침대에 오기까지 이야기를 나누었던 것 같은데.’
술기운이 점점 오르는 것일까, 아니면 조금씩 깨는 중일까? 어찌 됐든 지금은 그녀 위에 있는 이 남자의 행동 외에 다른 것은 떠올리고 싶지 않았다.
그녀의 몸 위에서 두 팔로 자신을 지탱하고 있는 이 아름다운 남자가 한 손으로 그녀의 얇은 랩 원피스를 풀고 맨몸을 지그시 눌렀다. 끈적끈적한 동남아 특유의 공기가 그녀를 휘감았지만, 그의 몸에서 나오는 뜨거운 열기에 비할 것이 못 됐다.
‘혹시 이 남자는 태양이 아닐까?’
남자의 온몸이 태양처럼 번쩍번쩍 빛나는 상상도 잠시, 그녀는 찌릿한 감각에 신음을 뱉었다.
“아응…….”
그의 손이 허리와 배꼽을 지나 가슴을 움켜잡았다. 통증이 느껴질 정도로 센 강도였건만, 그녀의 입에서는 어찌 된 일인지 신음이 흘렀다. 그는 신음이 흐르는 그녀의 입을 자신의 입술로 막았다.
그는 능숙하게 혀로 그녀의 입술을 벌렸다. 그리고 차가운 혀로 입안을 맛보기 시작했다. 그는 키스하면서 브래지어 속으로 손을 넣었다. 하나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 혀를 휘감는 솜씨에 그녀는 가슴의 통증은 느껴지지도 않았다.
그의 키스에 온몸이 녹아내리자 그녀는 팔을 그의 목에 둘렀다. 언뜻 만진 그의 몸은 탄탄하고 매끈했다.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몸에 손이 닿자 그녀는 더욱 흥분됐다.
그는 입술을 떼고 그녀를 응시했다. 그녀 역시 그를 바라봤다. 여전히 그는 알지만, 모르는 사람이었다. 분명 그녀가 알고 있지만, 누군지 명확히 떠오르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술기운과 흥분에 이성을 잃은 지 오래였다. 오로지 이 순간이 계속되기를, 꿈이라면 깨지 않기를 바랄 뿐이었다.
그녀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아름다운 그는 점점 몸을 아래로 내려 그녀의 온몸에 입술로 도장을 찍었다. 배꼽을 지나 그의 입술이 더 내려갈 것을 예감하고 대담하게 그녀는 무릎을 세우고 다리를 살짝 벌렸다.
그의 입가가 그녀의 기대 어린 몸짓에 슬며시 위로 올라갔다. 촉촉하게 젖은 눈으로 그를 내려다보던 그녀는 순간 얼굴에 열감이 확 올랐다. 하지만 부끄러움은 그 순간뿐이었다.
“아흣, 아아…….”
그녀는 조금 전의 부끄러움도 잊고 온몸을 떨었다.
‘세상에나.’
지금껏 한 번도 맛보지 못했던 쾌락이 온몸에 퍼졌다. 찌릿찌릿한 자극에 그녀는 발가락까지 움츠리며 몸에 힘을 줬다.
“힘 빼요.”
목소리까지 완벽하다. 중저음의 목소리로 남자는 말했다. 그의 말대로 힘을 빼면 그대로 정신을 잃을 것 같았지만, 그녀는 최대한 그에게 집중했다.
그는 이제 완전히 그녀 위로 올라왔다. 묵직한 무게가 온몸에 느껴졌다. 이미 절정에 닿을 준비가 된 그녀는 허리를 살짝 들어 그를 맞이했다. 흥분으로 이미 달아올라 그의 행동 하나하나에 그녀는 기대감 어린 눈빛으로 기다릴 뿐이었다.
“아, 아흣…….”
“하아…….”
두 사람은 동시에 신음을 흘렸다. 그는 얼굴만큼 아름다운 몸으로 움직였다. 강하고 약하게 아름다운 피아노곡을 연주하듯 그녀도 그에게 맞춰 합주했다.
머릿속은 온통 흥분과 쾌락의 파도로 출렁였다. 그녀는 교성을 한껏 내지르며 그의 등을 손톱으로 눌렀다. 최고조로 치닫는 움직임이 그의 절정을 말해 줬다.
‘이것이 섹스의 맛이라면 왜 나는 이렇게 늦게 안 것일까?’
그녀는 전 남자 친구와 보냈던 5년이라는 세월이 아깝게 느껴졌다.
“헉, 헉…….”
뜨거운 땀방울이 리드미컬한 움직임에 따라 그의 턱에서 그녀의 이마로 똑똑 떨어졌다. 고여 있는 물웅덩이에 작은 파도가 일듯, 그녀의 몸이 흔들렸다. 그로 인해 그녀는 숨이 가빠졌다.
“앙, 아항, 앗, 아앗.”
“흡!”
거친 숨을 몰아쉬며 그가 위에서 내려와 침대 옆에 누웠다. 한껏 움켜쥐었던 침대 시트에서 힘을 빼고 그녀는 곁눈질로 그를 슬쩍 바라보았다. 땀이 송골송골 맺힌 이마와 이어지는 오뚝한 콧날이 여전히 잘생겼다.
‘그나저나 이 사람이 누구였지?’
다시금 찾아온 질문이 그녀의 머리를 때렸다. 그녀는 힘들게 몸을 일으켰다.
“어디 가요?”
“저, 물 좀 마시러…….”
“아직 안 끝났어요.”
“뭐가요?”
그는 대답 대신 그윽한 눈길로 그녀를 향해 웃었다. 그리고 그녀의 팔을 끌어당겨 자신의 몸 위에 앉혔다.
“아…….”
너무도 아름다운 그의 몸은 아직도 뜨거웠다. 그리고 조금 전까지 그녀를 황홀하게 만들었던 그는 한 팔로 자신의 몸을 지탱하며 일어났다. 그리고 다른 팔로 그녀의 허리를 단단하게 잡고 그녀에게 키스했다.
농밀하고 찐득한 혀가 그녀의 입술 사이를 비집고 들어와 입안을 탐닉했다. 그녀는 슬며시 눈을 감고 그를 느꼈다. 자신의 가슴을 큰 손으로 감싸 쥐는 것을 느끼면서 숨을 헐떡였다.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그는 여전히 그녀의 입술을 머금은 채 그녀를 번쩍 들어 안았다.
“웁!”
깜짝 놀란 그녀가 눈을 번쩍 뜨고 입술을 뗐다. 하지만 놀란 것도 잠시, 그녀는 그의 움직임에 따라 엉덩이를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이성이 사라진 자리에는 본능만이 남았다. 앞서 있었던 정사의 여운도 잊힐 정도로 그녀는 지금의 행위에 집중했다.
마침내 그녀가 또 한 번의 절정에 다다르려 할 때 다시금 그가 그녀를 번쩍 안아 올렸다. 그리고 그녀를 침대에 엎드리게 했다.
“아…….”
폭풍처럼 몰아치는 격정의 움직임이 그녀의 온몸을 휩쓸었다. 오롯이 그에게 몸을 맡긴 채 그녀는 난생처음 느껴 보는 감정에 물들었다.
격정의 파도가 절정에 다다랐을 때, 그녀는 마침내 그의 이름을 떠올릴 수 있었다.
* * *
‘아으, 머리야.’
다정은 침대에서 눈을 뜨며 아픈 머리를 부여잡았다. 창으로 들어오는 뜨거운 햇살 때문에 눈이 제대로 떠지지 않는다. 입안이 텁텁하고 속이 메슥거렸다.
어젯밤 제대로 과음을 한 탓에 눈앞이 빙빙 돌았다. 몇 년 만의 과음일까. 대학 시절로 올라가니 5년도 더 전의 일이었다.
다정은 한숨을 푹 내쉬고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살갗을 스치는 뜨거운 바람에 소름이 확 돋았다. 내려다보니 이불이 내려간 자리에 그녀의 가슴이 그대로 노출되어 있었다.
“꺅!”
그녀는 깜짝 놀라 이불을 끌어당겨 몸을 덮었다. 29년 인생을 살아오면서 남자 친구와 밤을 보낸 이후 말고는 단 한 순간도 알몸으로 잠든 적이 없는 그녀였다. 그 말은 곧, 그녀가 어젯밤 누군가와 섹스를 했다는 것이다.
‘말도 안 돼. 꿈이었을 텐데?’
그녀는 아픈 머리를 굴리며 기억을 떠올리려 애썼다. 어젯밤 꾼 꿈이 사실은 꿈이 아닌가? 하지만 그럴 리가 없다. 어제 그 능숙한 섹스를 주도했던 사람은 분명…….
“일어났어요?”
“꺅!”
다정은 갑자기 어디선가 나타난 남자를 보고 다시금 비명을 질렀다. 그가 상의를 벗고 허리 아래는 수건으로 가린 채 촉촉하게 젖어서 나타났기 때문이 아니었다. 샤워하고 나온 것처럼 보이는 그의 얼굴이 어젯밤 그녀가 꿈이라고 생각했던 그 섹스의 주인공이었기 때문이다.
“당신, 이건우?”
이건우.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모르는 이가 없는 배우 중의 배우, 스타 중의 톱스타였다. 잘생긴 외모와 상냥한 성격으로 인터넷에는 그에 관한 미담이 끊이지 않았다. 일반인이든 연예인이든, 항상 여자들의 이상형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그였다.
그런 이건우가 그녀의 눈앞에 수건만 두른 알몸으로 나타난 것이다. 떡 벌어진 넓은 가슴에 조각 같은 근육이 자리 잡고 있었다. 물에 젖은 짙은 갈색 머리카락에선 윤기가 좌르르 흘렀다.
얼굴은 또 어떠한가. 기다란 속눈썹에 아직도 작은 물방울이 맺혀 햇빛을 반사하고, 오뚝한 콧날은 이마와 완벽한 조화를 이루었다. 촉촉한 입술은 마치 립글로스를 바른 것처럼 주름 하나 없고, 날카로운 턱에는 방금 면도를 마쳤는지 거뭇거뭇한 수염 자국 하나 없었다.
‘남자 얼굴이 저렇게 하얗고 뽀얗고 맑을 수 있단 말인가? 게다가 저 몸, 이게 진정 사람 몸이야?’
이 와중에도 다정은 그런 감상에 빠져 있었다.
“이, 이게 어떻게 된 일이에요? 여기는 어디고? 왜 이건우 씨가 나랑?”
“뭐야? 기억 안 나요?”
그는 황당하다는 듯 그녀를 바라보더니 이내 고개를 내저었다. 뭔가 일이 꼬였다는 듯 얼굴에는 귀찮음이 가득했다. 그 사이로 얼핏 실망감이 보이기도 했다.
“내가 왜 이건우 씨랑 있는 건데요? 왜 알몸이고요? 설마 우리 잤어요? 그럴 리가……. 술 취한 여자를 건드린 거예요, 당신?”
다정은 너무 당황한 나머지 머릿속에 떠오르는 질문을 마구잡이로 해 댔다. 그러자 그는 귀찮은 표정으로 대답 대신 허리에 두른 수건을 풀어 바닥에 던졌다. 그 때문에 그녀는 다시금 비명을 지르며 이불로 얼굴을 가렸다.
“뭐, 뭐 하는 짓이에요? 당장 옷 입어요! 아니, 여기서 당장 나가요!”
그녀는 이불 속에서 비명을 내질렀다. 당황하며 변명과 함께 문 닫히는 소리가 들려올 거라 예상한 그녀의 생각과 달리 그는 침대로 다가와 그녀가 덮고 있는 이불을 세게 잡아당겼다. 얼굴을 덮고 있던 이불이 내려가자 그녀는 두 눈을 꽉 감았다.
그는 여전히 알몸인 채 삐딱하게 서서 그녀를 빤히 바라봤다. 빠져들 것 같은 까만 눈동자가 그녀를 응시했다.
“여기 내 방이에요. 나가려면 그쪽이 나가요.”
“내 질문에 답부터 해요!”
그녀는 지지 않고 소리쳤다. 자신이 왜 알몸으로 그와 한방에 있는 것인지 이유를 알아야 했다.
“안다정, 나이 스물아홉. 서울에 살고 있고, 글 쓰는 것이 업인 여자.”
그는 그녀를 뚫어져라 바라보며 말했다.
“아버지는 어려서 돌아가시고, 어머니와 언니랑 함께 살고 있고요.”
“다, 당신, 그거 어떻게 알았어요?”
“그쪽이 말해 줬으니까.”
“내가요?”
다정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내가 언제요?”
“어젯밤에.”
“말도 안 돼…….”
“말이 되는 안 되든 그렇게 됐으니 어쩔 수 없고. 기억이 안 난다니 유감이긴 한데, 그것도 어쩔 수 없군. 그럼 이제 좀 나가지 그래? 내가 좀 바빠서 말이지.”
“이, 일단 옷부터 좀 입으면 안 돼요? 내 옷도 좀 주고요.”
그녀는 고개를 돌리고 눈을 꽉 감은 채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어디에 벗어 놨는지 모를 자신의 옷을 찾아 주길 바라면서.
한없이 기다려도 그에게서 아무런 반응이 없자 그녀는 한쪽 눈을 살짝 뜨고 그가 서 있던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려 했다. 하지만 그는 이미 그녀 앞에 앉아 얼굴을 바싹 가까이하고 있었다.
“꺅! 왜 이래요?”
“뭐지? 어제는 그렇게 적극적으로 반응해 놓고선.”
“기억 안 나요.”
“뭐? 기억이 안 난다고?”
“그, 그래요. 술을 많이 마셨단 말이에요!”
“아무리 그래도 나를 기억 못 할 리가?”
건우는 손으로 다정이 덮고 있던 이불을 빠르게 잡아당겼다. 그의 억센 손놀림에 상반신이 그대로 드러나자 그녀는 팔로 자신의 가슴을 가리고 침대에 누웠다.
“왜, 왜 이러세요?”
“기억 못 한다니까 열받잖아.”
그는 다정의 몸 위로 올라타 그녀의 허리를 한 손으로 지그시 눌렀다.
‘이, 이 느낌!’
기억이 안 날 리가 없다. 너무도 선명하게 기억났다. 그녀가 그의 몸 위에서 흔들며 맞았던 두 번째 절정도, 그녀 뒤에서 들어온 그와 함께 몸을 움직이던 세 번째 절정도, 모든 기억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의 얼굴이 점점 그녀에게로 다가오자 그녀는 눈을 꽉 감으며 외쳤다.
“기억나요! 기억한다고요.”
그 말에 그는 다정의 몸에서 떨어졌다. 그녀는 다시금 이불로 몸을 가렸다. 온몸이 덜덜 떨려 왔다. 꿈이라고 생각했던 섹스가 실제로 벌어진 일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그 상대가 이건우라는 것은 더욱 그랬다. 게다가 그의 본모습은 알려진 것과는 전혀 딴판이었다.
“옷 입고 나가요, 이제.”
어느새 그는 옷장 문을 열어 옷을 꺼내 입고 있었다. 살짝 그을린 몸에 하얀색 셔츠를 걸치고 검은색 반바지로 갈아입은 그는 여전히 침대 위에 누워 있는 다정을 이상하게 바라봤다. 왜 안 나가냐는 눈빛이었다.
“속옷 좀 주워 주시면 안 될까요?”
“이미 다 본 몸이에요. 그냥 일어나요.”
“그래도요…….”
다정은 눈물이 핑 돌았다. 술기운에 벌인 하룻밤 상대가 하필 이건우라니. 유명 연예인을 이 먼 타국에서 만난 것도 신기하지만, 어떻게 하룻밤을 같이 보낸 것인지 놀라울 따름이었다. 세간에 알려진 미담 따위와 거리가 먼 저 모습은 또 뭔지, 머릿속이 어지러운 것은 결코 어제 마신 술 때문만은 아니었다.
“처음 해 봐요?”
“네?”
“원 나이트 섹스 처음이냐고요.”
차가운 건우의 질문에 다정은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다. 그의 눈에 의심과 경멸이 가득 찼다.
‘당연히 처음이지! 너는 여러 번이냐?’
다정은 욱하는 마음에 눈물 맺힌 눈으로 그를 노려봤다.
“당신 혹시 꽃뱀이야?”
“뭐라고요?”
#프롤로그
창문 너머로 보이는 밤하늘에 별이 총총 박혀 있다. 잔잔하게 다가와 모래에 부딪히는 파도 소리도 일정한 박자를 두고 들려온다. 철썩철썩, 그런 상투적인 표현으로 파도 소리를 표현하기엔 너무도 아름다운 음악 소리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것에 아무런 감흥도 들지 않는다. 그녀를 바라보고 있는 남자의 두 눈동자가 더욱 아름다우니까.
‘어디서 봤더라? 많이 본 얼굴인데?’
그녀는 곰곰이 생각했지만, 기억이 떠오르지 않았다. 머리가 돌아가지 않는다는 표현이 정확하다. 술을 진탕 마신 탓이었다. 오뚝한 콧날과 날렵한 턱 선, 짙은 눈썹과 서양인처럼 크고 쌍꺼풀이 있는 눈. 한 번 보면 잊을 수 없는 아름다운 얼굴이기에 분명 그녀가 아는 사람이었다.
‘지금 누워 있는 침대에 오기까지 이야기를 나누었던 것 같은데.’
술기운이 점점 오르는 것일까, 아니면 조금씩 깨는 중일까? 어찌 됐든 지금은 그녀 위에 있는 이 남자의 행동 외에 다른 것은 떠올리고 싶지 않았다.
그녀의 몸 위에서 두 팔로 자신을 지탱하고 있는 이 아름다운 남자가 한 손으로 그녀의 얇은 랩 원피스를 풀고 맨몸을 지그시 눌렀다. 끈적끈적한 동남아 특유의 공기가 그녀를 휘감았지만, 그의 몸에서 나오는 뜨거운 열기에 비할 것이 못 됐다.
‘혹시 이 남자는 태양이 아닐까?’
남자의 온몸이 태양처럼 번쩍번쩍 빛나는 상상도 잠시, 그녀는 찌릿한 감각에 신음을 뱉었다.
“아응…….”
그의 손이 허리와 배꼽을 지나 가슴을 움켜잡았다. 통증이 느껴질 정도로 센 강도였건만, 그녀의 입에서는 어찌 된 일인지 신음이 흘렀다. 그는 신음이 흐르는 그녀의 입을 자신의 입술로 막았다.
그는 능숙하게 혀로 그녀의 입술을 벌렸다. 그리고 차가운 혀로 입안을 맛보기 시작했다. 그는 키스하면서 브래지어 속으로 손을 넣었다. 하나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 혀를 휘감는 솜씨에 그녀는 가슴의 통증은 느껴지지도 않았다.
그의 키스에 온몸이 녹아내리자 그녀는 팔을 그의 목에 둘렀다. 언뜻 만진 그의 몸은 탄탄하고 매끈했다.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몸에 손이 닿자 그녀는 더욱 흥분됐다.
그는 입술을 떼고 그녀를 응시했다. 그녀 역시 그를 바라봤다. 여전히 그는 알지만, 모르는 사람이었다. 분명 그녀가 알고 있지만, 누군지 명확히 떠오르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술기운과 흥분에 이성을 잃은 지 오래였다. 오로지 이 순간이 계속되기를, 꿈이라면 깨지 않기를 바랄 뿐이었다.
그녀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아름다운 그는 점점 몸을 아래로 내려 그녀의 온몸에 입술로 도장을 찍었다. 배꼽을 지나 그의 입술이 더 내려갈 것을 예감하고 대담하게 그녀는 무릎을 세우고 다리를 살짝 벌렸다.
그의 입가가 그녀의 기대 어린 몸짓에 슬며시 위로 올라갔다. 촉촉하게 젖은 눈으로 그를 내려다보던 그녀는 순간 얼굴에 열감이 확 올랐다. 하지만 부끄러움은 그 순간뿐이었다.
“아흣, 아아…….”
그녀는 조금 전의 부끄러움도 잊고 온몸을 떨었다.
‘세상에나.’
지금껏 한 번도 맛보지 못했던 쾌락이 온몸에 퍼졌다. 찌릿찌릿한 자극에 그녀는 발가락까지 움츠리며 몸에 힘을 줬다.
“힘 빼요.”
목소리까지 완벽하다. 중저음의 목소리로 남자는 말했다. 그의 말대로 힘을 빼면 그대로 정신을 잃을 것 같았지만, 그녀는 최대한 그에게 집중했다.
그는 이제 완전히 그녀 위로 올라왔다. 묵직한 무게가 온몸에 느껴졌다. 이미 절정에 닿을 준비가 된 그녀는 허리를 살짝 들어 그를 맞이했다. 흥분으로 이미 달아올라 그의 행동 하나하나에 그녀는 기대감 어린 눈빛으로 기다릴 뿐이었다.
“아, 아흣…….”
“하아…….”
두 사람은 동시에 신음을 흘렸다. 그는 얼굴만큼 아름다운 몸으로 움직였다. 강하고 약하게 아름다운 피아노곡을 연주하듯 그녀도 그에게 맞춰 합주했다.
머릿속은 온통 흥분과 쾌락의 파도로 출렁였다. 그녀는 교성을 한껏 내지르며 그의 등을 손톱으로 눌렀다. 최고조로 치닫는 움직임이 그의 절정을 말해 줬다.
‘이것이 섹스의 맛이라면 왜 나는 이렇게 늦게 안 것일까?’
그녀는 전 남자 친구와 보냈던 5년이라는 세월이 아깝게 느껴졌다.
“헉, 헉…….”
뜨거운 땀방울이 리드미컬한 움직임에 따라 그의 턱에서 그녀의 이마로 똑똑 떨어졌다. 고여 있는 물웅덩이에 작은 파도가 일듯, 그녀의 몸이 흔들렸다. 그로 인해 그녀는 숨이 가빠졌다.
“앙, 아항, 앗, 아앗.”
“흡!”
거친 숨을 몰아쉬며 그가 위에서 내려와 침대 옆에 누웠다. 한껏 움켜쥐었던 침대 시트에서 힘을 빼고 그녀는 곁눈질로 그를 슬쩍 바라보았다. 땀이 송골송골 맺힌 이마와 이어지는 오뚝한 콧날이 여전히 잘생겼다.
‘그나저나 이 사람이 누구였지?’
다시금 찾아온 질문이 그녀의 머리를 때렸다. 그녀는 힘들게 몸을 일으켰다.
“어디 가요?”
“저, 물 좀 마시러…….”
“아직 안 끝났어요.”
“뭐가요?”
그는 대답 대신 그윽한 눈길로 그녀를 향해 웃었다. 그리고 그녀의 팔을 끌어당겨 자신의 몸 위에 앉혔다.
“아…….”
너무도 아름다운 그의 몸은 아직도 뜨거웠다. 그리고 조금 전까지 그녀를 황홀하게 만들었던 그는 한 팔로 자신의 몸을 지탱하며 일어났다. 그리고 다른 팔로 그녀의 허리를 단단하게 잡고 그녀에게 키스했다.
농밀하고 찐득한 혀가 그녀의 입술 사이를 비집고 들어와 입안을 탐닉했다. 그녀는 슬며시 눈을 감고 그를 느꼈다. 자신의 가슴을 큰 손으로 감싸 쥐는 것을 느끼면서 숨을 헐떡였다.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그는 여전히 그녀의 입술을 머금은 채 그녀를 번쩍 들어 안았다.
“웁!”
깜짝 놀란 그녀가 눈을 번쩍 뜨고 입술을 뗐다. 하지만 놀란 것도 잠시, 그녀는 그의 움직임에 따라 엉덩이를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이성이 사라진 자리에는 본능만이 남았다. 앞서 있었던 정사의 여운도 잊힐 정도로 그녀는 지금의 행위에 집중했다.
마침내 그녀가 또 한 번의 절정에 다다르려 할 때 다시금 그가 그녀를 번쩍 안아 올렸다. 그리고 그녀를 침대에 엎드리게 했다.
“아…….”
폭풍처럼 몰아치는 격정의 움직임이 그녀의 온몸을 휩쓸었다. 오롯이 그에게 몸을 맡긴 채 그녀는 난생처음 느껴 보는 감정에 물들었다.
격정의 파도가 절정에 다다랐을 때, 그녀는 마침내 그의 이름을 떠올릴 수 있었다.
* * *
‘아으, 머리야.’
다정은 침대에서 눈을 뜨며 아픈 머리를 부여잡았다. 창으로 들어오는 뜨거운 햇살 때문에 눈이 제대로 떠지지 않는다. 입안이 텁텁하고 속이 메슥거렸다.
어젯밤 제대로 과음을 한 탓에 눈앞이 빙빙 돌았다. 몇 년 만의 과음일까. 대학 시절로 올라가니 5년도 더 전의 일이었다.
다정은 한숨을 푹 내쉬고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살갗을 스치는 뜨거운 바람에 소름이 확 돋았다. 내려다보니 이불이 내려간 자리에 그녀의 가슴이 그대로 노출되어 있었다.
“꺅!”
그녀는 깜짝 놀라 이불을 끌어당겨 몸을 덮었다. 29년 인생을 살아오면서 남자 친구와 밤을 보낸 이후 말고는 단 한 순간도 알몸으로 잠든 적이 없는 그녀였다. 그 말은 곧, 그녀가 어젯밤 누군가와 섹스를 했다는 것이다.
‘말도 안 돼. 꿈이었을 텐데?’
그녀는 아픈 머리를 굴리며 기억을 떠올리려 애썼다. 어젯밤 꾼 꿈이 사실은 꿈이 아닌가? 하지만 그럴 리가 없다. 어제 그 능숙한 섹스를 주도했던 사람은 분명…….
“일어났어요?”
“꺅!”
다정은 갑자기 어디선가 나타난 남자를 보고 다시금 비명을 질렀다. 그가 상의를 벗고 허리 아래는 수건으로 가린 채 촉촉하게 젖어서 나타났기 때문이 아니었다. 샤워하고 나온 것처럼 보이는 그의 얼굴이 어젯밤 그녀가 꿈이라고 생각했던 그 섹스의 주인공이었기 때문이다.
“당신, 이건우?”
이건우.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모르는 이가 없는 배우 중의 배우, 스타 중의 톱스타였다. 잘생긴 외모와 상냥한 성격으로 인터넷에는 그에 관한 미담이 끊이지 않았다. 일반인이든 연예인이든, 항상 여자들의 이상형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그였다.
그런 이건우가 그녀의 눈앞에 수건만 두른 알몸으로 나타난 것이다. 떡 벌어진 넓은 가슴에 조각 같은 근육이 자리 잡고 있었다. 물에 젖은 짙은 갈색 머리카락에선 윤기가 좌르르 흘렀다.
얼굴은 또 어떠한가. 기다란 속눈썹에 아직도 작은 물방울이 맺혀 햇빛을 반사하고, 오뚝한 콧날은 이마와 완벽한 조화를 이루었다. 촉촉한 입술은 마치 립글로스를 바른 것처럼 주름 하나 없고, 날카로운 턱에는 방금 면도를 마쳤는지 거뭇거뭇한 수염 자국 하나 없었다.
‘남자 얼굴이 저렇게 하얗고 뽀얗고 맑을 수 있단 말인가? 게다가 저 몸, 이게 진정 사람 몸이야?’
이 와중에도 다정은 그런 감상에 빠져 있었다.
“이, 이게 어떻게 된 일이에요? 여기는 어디고? 왜 이건우 씨가 나랑?”
“뭐야? 기억 안 나요?”
그는 황당하다는 듯 그녀를 바라보더니 이내 고개를 내저었다. 뭔가 일이 꼬였다는 듯 얼굴에는 귀찮음이 가득했다. 그 사이로 얼핏 실망감이 보이기도 했다.
“내가 왜 이건우 씨랑 있는 건데요? 왜 알몸이고요? 설마 우리 잤어요? 그럴 리가……. 술 취한 여자를 건드린 거예요, 당신?”
다정은 너무 당황한 나머지 머릿속에 떠오르는 질문을 마구잡이로 해 댔다. 그러자 그는 귀찮은 표정으로 대답 대신 허리에 두른 수건을 풀어 바닥에 던졌다. 그 때문에 그녀는 다시금 비명을 지르며 이불로 얼굴을 가렸다.
“뭐, 뭐 하는 짓이에요? 당장 옷 입어요! 아니, 여기서 당장 나가요!”
그녀는 이불 속에서 비명을 내질렀다. 당황하며 변명과 함께 문 닫히는 소리가 들려올 거라 예상한 그녀의 생각과 달리 그는 침대로 다가와 그녀가 덮고 있는 이불을 세게 잡아당겼다. 얼굴을 덮고 있던 이불이 내려가자 그녀는 두 눈을 꽉 감았다.
그는 여전히 알몸인 채 삐딱하게 서서 그녀를 빤히 바라봤다. 빠져들 것 같은 까만 눈동자가 그녀를 응시했다.
“여기 내 방이에요. 나가려면 그쪽이 나가요.”
“내 질문에 답부터 해요!”
그녀는 지지 않고 소리쳤다. 자신이 왜 알몸으로 그와 한방에 있는 것인지 이유를 알아야 했다.
“안다정, 나이 스물아홉. 서울에 살고 있고, 글 쓰는 것이 업인 여자.”
그는 그녀를 뚫어져라 바라보며 말했다.
“아버지는 어려서 돌아가시고, 어머니와 언니랑 함께 살고 있고요.”
“다, 당신, 그거 어떻게 알았어요?”
“그쪽이 말해 줬으니까.”
“내가요?”
다정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내가 언제요?”
“어젯밤에.”
“말도 안 돼…….”
“말이 되는 안 되든 그렇게 됐으니 어쩔 수 없고. 기억이 안 난다니 유감이긴 한데, 그것도 어쩔 수 없군. 그럼 이제 좀 나가지 그래? 내가 좀 바빠서 말이지.”
“이, 일단 옷부터 좀 입으면 안 돼요? 내 옷도 좀 주고요.”
그녀는 고개를 돌리고 눈을 꽉 감은 채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어디에 벗어 놨는지 모를 자신의 옷을 찾아 주길 바라면서.
한없이 기다려도 그에게서 아무런 반응이 없자 그녀는 한쪽 눈을 살짝 뜨고 그가 서 있던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려 했다. 하지만 그는 이미 그녀 앞에 앉아 얼굴을 바싹 가까이하고 있었다.
“꺅! 왜 이래요?”
“뭐지? 어제는 그렇게 적극적으로 반응해 놓고선.”
“기억 안 나요.”
“뭐? 기억이 안 난다고?”
“그, 그래요. 술을 많이 마셨단 말이에요!”
“아무리 그래도 나를 기억 못 할 리가?”
건우는 손으로 다정이 덮고 있던 이불을 빠르게 잡아당겼다. 그의 억센 손놀림에 상반신이 그대로 드러나자 그녀는 팔로 자신의 가슴을 가리고 침대에 누웠다.
“왜, 왜 이러세요?”
“기억 못 한다니까 열받잖아.”
그는 다정의 몸 위로 올라타 그녀의 허리를 한 손으로 지그시 눌렀다.
‘이, 이 느낌!’
기억이 안 날 리가 없다. 너무도 선명하게 기억났다. 그녀가 그의 몸 위에서 흔들며 맞았던 두 번째 절정도, 그녀 뒤에서 들어온 그와 함께 몸을 움직이던 세 번째 절정도, 모든 기억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의 얼굴이 점점 그녀에게로 다가오자 그녀는 눈을 꽉 감으며 외쳤다.
“기억나요! 기억한다고요.”
그 말에 그는 다정의 몸에서 떨어졌다. 그녀는 다시금 이불로 몸을 가렸다. 온몸이 덜덜 떨려 왔다. 꿈이라고 생각했던 섹스가 실제로 벌어진 일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그 상대가 이건우라는 것은 더욱 그랬다. 게다가 그의 본모습은 알려진 것과는 전혀 딴판이었다.
“옷 입고 나가요, 이제.”
어느새 그는 옷장 문을 열어 옷을 꺼내 입고 있었다. 살짝 그을린 몸에 하얀색 셔츠를 걸치고 검은색 반바지로 갈아입은 그는 여전히 침대 위에 누워 있는 다정을 이상하게 바라봤다. 왜 안 나가냐는 눈빛이었다.
“속옷 좀 주워 주시면 안 될까요?”
“이미 다 본 몸이에요. 그냥 일어나요.”
“그래도요…….”
다정은 눈물이 핑 돌았다. 술기운에 벌인 하룻밤 상대가 하필 이건우라니. 유명 연예인을 이 먼 타국에서 만난 것도 신기하지만, 어떻게 하룻밤을 같이 보낸 것인지 놀라울 따름이었다. 세간에 알려진 미담 따위와 거리가 먼 저 모습은 또 뭔지, 머릿속이 어지러운 것은 결코 어제 마신 술 때문만은 아니었다.
“처음 해 봐요?”
“네?”
“원 나이트 섹스 처음이냐고요.”
차가운 건우의 질문에 다정은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다. 그의 눈에 의심과 경멸이 가득 찼다.
‘당연히 처음이지! 너는 여러 번이냐?’
다정은 욱하는 마음에 눈물 맺힌 눈으로 그를 노려봤다.
“당신 혹시 꽃뱀이야?”
“뭐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