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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1. 계약(2)


그가 여리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 단순한 행동에도 위협적인 느낌이 서려 여리는 자신도 모르게 몸을 움츠리고 뒤로 물러났다.
이현은 화를 내지도, 웃지도 않은 채 뻗은 손을 가만히 두고 기다렸다. 쳐다보는 그의 눈이 깊고 날카로웠다. 여리는 천천히 상체를 기울여 그의 손끝에 제 얼굴이 닿을 수 있도록 했다. 이현이 긴 손가락으로 여리의 턱 끝을 들어 올렸다.
“얼마나 별 볼 일 없으면……. 쯧.”
이현은 여리를 지탱하던 실낱같은 가면을 한 번에 벗겨 냈다. 이런 일 따위는 아무렇지 않은 척, 몸뚱이 하나 파는 것 정도는 아무것도 아닌 양 여린 속을 감추던 여리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기어코 참아 낸 눈물이 고삐 풀리 듯 주룩주룩 쏟아졌다.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더 비참해지지 않도록 입술을 깨물어 흐느낌을 참아 내는 것뿐이었다. 이현은 그런 여리를 차분한 시선으로 쳐다보았다. 여리의 눈물에 당황하지도, 미안하지도 않은 아주 차분한 모습이었다.
이윽고 이현이 다시 손을 뻗었다. 긴 손가락이 여리의 눈과 뺨을 지나쳐 입술을 매만졌다. 힘을 줘 깨문 탓에 핏기가 돌았다.
“깨물면 안 돼. 이제 네 것도 아니잖아.”
이현이 꽤 다정한 얼굴로 웃어 보였다. 정말 알 수가 없는 사람이었다. 분명 잘생긴 얼굴로 매혹적인 미소를 짓고 있을 뿐인데도 한기가 서리고 소름이 돋았다. 손발이 덜덜 떨렸다.
“무서워?”
이현이 그런 여리의 손을 안쓰럽다는 듯 쳐다보았다.
“싫으면 나가도 돼. 억지로 하는 건 나도 싫어. 너한테 강요하는 사람 없어.”
정말이지 그는 그래도 된다는 듯 여유로워 보였다. 깊은 눈이 부드러웠다. 덕분에 여리는 흔들렸다. 지금이라도 고고하게 일어나 지하 연습실로 향할까 고민이 짙었다. 하지만 자신의 성공만 기다리는 가족과 지칠 대로 지친 멤버들이 떠올랐고, 매일이 울상인 소속사 대표와 직원들이 떠올랐다. 무엇보다도 피지도 못한 채 시들고 있는 자신의 꿈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이미 상상의 나래를 펼친 욕망은 멈출 수 없을 만큼 열렬했다.
고개를 저었다.
“싫은 거 아니에요.”
단호한 어조의 말과 달리 목소리가 떨렸다.
“그냥…… 이런 게 처음이라 그래요.”
“이런 거…….”
줄곧 부드러운 시선을 유지하던 이현이 눈빛에 날을 세웠다. 클럽에서 일어났던 일이 떠올라 여리는 절로 어깨가 떨렸다.
“그래?”
장난스러웠던 목소리는 한없이 낮아져 발목을 간지럽혔고, 잘생긴 얼굴에 걸렸던 미소는 거두어져 마냥 차가웠다.
그가 턱을 괴고 여리와 눈을 맞췄다. 풀어진 소매 사이로 드러난 팔목이 야했다.
“처음이면 아무것도 모르겠네.”
“뭐를…….”
이현이 중얼거리듯 말을 이었다.
“나랑 계약하면 내가 원할 때까지 파기는 없어.”
마주한 시선이 보이지 않는 수갑으로 변해 온몸을 묶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네가 뭘 하고 있든 나는 관심 없어. 내가 원하면 너는 나한테 와야 돼.”
이현이 시가를 태웠다. 독한 시가 연기가 여리의 목과 손목, 발목을 휘감았다.
“감당할 수 있겠어?”
그가 놀리듯 소리 내어 웃자 여리는 느리게 눈을 감았다가 다시 느리게 떴다. 이제 와 고결한 척 고개를 젓고 싶지 않았다.
“네, 도망 안 가요.”
이현이 와인 잔을 기울여 남은 술을 삼켰다. 술을 마시는 와중에도 그의 날 선 눈빛은 여리를 향해 정확히 고정되어 있었다. 그가 테이블 위로 핸드폰 하나를 건넸다. 여리가 하얀색의 핸드폰을 조심스럽게 손에 쥐었다.
“전화하면 언제, 어디서든 재깍 받아. 네가 나한테 전화할 수 있다는 말은 아니야. 넌 나한테 전화 못 해.”
이현은 단호했고 여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계약이 끝날 때까지 너는.”
이현이 자리에서 일어나 여리의 뒤에 섰다. 그가 여리의 어깨를 가볍게 쥐었다. 이현의 짙은 향수 냄새와 시가 냄새가 공기에 실려 여리의 몸을 감쌌다. 여리는 등부터 허리까지 뻣뻣해지는 긴장감으로 몸을 떨었다.
“완전한 내 소유야.”
참고 있던 숨이 뱉어졌다. 그는 자신을 소유한다고 했고 그것이 완전하다고 표현했다. 여리는 습관처럼 입술을 깨물었다. 굳게 닫힌 호텔 방 문이 보였다. 지금 나간다면…….
“대신.”
이현이 여리의 어깨를 놓고 앞으로 가 허리를 숙여 눈을 맞췄다.
“가장 높은 곳으로 데려다줄게.”
끔찍했고, 동시에 탐이 났다.
“다신 내려가고 싶지 않을 만큼 높은 곳으로.”
여리가 이현의 깊은 눈 속의 더 깊은 곳을 바라보았다. 한 치의 거짓도, 허세도 없는 온전한 진실이었다. 무너지지 않을 부와 약해지지 않을 힘을 가진 자만이 할 수 있는 확신이었다. 그녀도 그의 확신에 확신을 가졌다.
“데려다주세요.”
이현이 여리의 눈을 보며 웃었다.
“가장 높은 곳으로.”
그리고 그대로 고개를 숙여 입을 맞췄다. 계약은 그것으로 성사되었다.
그가 마시던 와인의 달고 쓴 향이 여리의 입 안 곳곳으로 퍼졌다. 그의 손이 여리의 잘록한 허리를 쓰다듬었고 허리를 안은 팔에 힘을 줘 일으켜 세웠다. 여리는 하이힐과 입맞춤 때문에 중심 잡기가 어려웠지만 이현의 두 팔이 허리를 감싸 단단히 고정했다.
“잠깐마안…….”
“괜찮아.”
이현은 본능적으로 자신을 밀어 내는 여리를 달래듯 부드럽게 중얼거렸다. 한 손으론 여리의 허리를, 한 손으론 그녀의 목을 쥐고 입술을 파묻었다.
“잠깐…… 간지러워요.”
이현은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해서 여리의 목을 물었다. 붉은 생채기가 곳곳에 피어났다.
그는 여리를 벽으로 몰아세웠다. 익숙한 손길로 허벅지 안쪽을 쓰다듬으며 여리를 뒤돌게 했다. 매끈한 등을 따라 원피스의 지퍼가 반짝였다. 그는 능숙한 손길로 지퍼를 끌어 내렸고 힘을 잃은 원피스가 하얗고 작은 몸 위로 아슬아슬 걸쳐졌다. 벌어진 틈 사이로 이현의 손이 들어가 여리의 맨 허리를 감쌌다. 감기는 허리가 이름처럼 가냘파서 이현은 평소보다 조금 급해졌다.
여리가 아찔한 느낌에 고개를 젖혀 눈을 감았다. 수치심과 황홀감, 자유로움과 속박이 번갈아 느껴지는 탓에 정신이 없었다. 그의 손이 여리의 허리에서 가슴으로 향했다. 브래지어 후크쯤은 가볍게 풀어낸 그가 봉긋하게 솟은 가슴을 양손에 잡아 쥐고 부드럽게 어루만졌다.
가슴에 닿는 찬 기운에 몸을 움찔거린 여리가 팔에 매달리자 이현이 소리 내어 웃었다. 그의 입술이 여리의 귓불을 살짝 물었다가 떨어졌다.
“귀엽네.”
이현이 여리를 번쩍 들어 침대로 향했다. 멈출 줄 모르던 행위로 내내 정신을 놓고 있던 여리가 품에 안긴 채 숨을 골랐다. 클럽에서와 마찬가지로 폭력적이고 위협적일 거라 생각했던 이현과의 스킨십은 꽤 부드러웠고 매너를 보이고 있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다정했다.
이현은 여리를 침대 위에 눕히고 흐물거리는 원피스를 말끔하게 벗겨 냈다. 여리의 몸을 가리고 있는 건 베이지 색의 속옷 한 장뿐이었다.
여리는 두 눈을 질끈 감았다. 감은 두 눈 밑으로 또 한 번의 키스가 이어졌다. 처음보다 깊고 짙은 입맞춤이 여리의 남아 있던 이성을 농밀하게 휘저었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잠자리도 아니었고, 쾌락을 위한 하룻밤도 아니었지만 여리는 충분히 흥분하고 있었다. 그래서 더욱 혼란스러웠다.
이현이 끈적이는 입술을 떼고 일어나 제 옷을 벗었다. 그의 몸도 여리와 마찬가지로 뜨겁게 열이 올라 있었다. 전라의 그는 넓은 어깨와 조각처럼 정리된 적당한 근육으로 빛이 났다. 여리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던 남자의 몸과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이현이 낮게 웃으며 귓가를 간질였다.
“눈 뜨고 봐.”
그가 다시 한번 붉은 자국을 만들어 냈다.
“하앙……!”
이현은 여리의 가슴에 한껏 파묻혔다. 작은 품에서 나는 온기와 옅은 과일향이 기분을 좋게 했다. 또 그런 제 머리를 끌어안는 여리가 귀엽기도 했다. 이현이 손을 내려 여리의 허벅지와 아래를 어루만졌다.
“하…… 하지 마아……!”
“뭐를 하지 마.”
이현이 여리의 말을 따라 하며 웃었다. 오히려 보란 듯이 더 노골적으로 움직였다. 그의 손은 이미 여리의 속옷 안으로 들어가 움직이고 있었다. 계속되는 자극에 여리의 발끝은 한껏 오므라들었고, 고개는 좌우로 흔들렸다.
“이렇게 민감해서 어떡해.”
그는 즐거운 듯 웃어 보였다. 이현이 아래로 내려갔다.
“하앗…… 이, 이사님!”
이현은 대답하지 않았다. 아니 대답할 수 없었다. 그가 젖은 혀로 여리를 잔뜩 흥분시키고 있었다.
“아, 제발……! 흐앗…… 하아.”
여리는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꿈을 꾸는 것 같았다. 몸이 둥둥 떠오르는 기분이었고 머리는 아찔한 느낌에 전기가 팍팍 튀는 듯했다. 여리는 급하게 제 입을 막았다. 좀 전보다 더 크게 터져 나오는 제 신음 소리를 듣고만 있기에는 너무 민망했다. 다른 한 손으론 이현의 머리카락을 움켜쥐었다.
이현은 한참을 아래에서 머문 후에야 고개를 들었다.
“달다.”
그 말은 여리의 얼굴을 화끈거리게 했다. 그 틈을 타 이현은 여리의 다리 사이로 자리를 잡았다. 줄곧 정신 못 차리고 쾌락에 몸을 맡기던 여리가 다시 긴장하기 시작했다. 이현이 움직이려는 순간, 여리는 그의 어깨를 잡았다.
“자, 잠시만요!”
“왜. 흥 깨지 마.”
반듯한 미간을 찌푸리며 말한 그의 두 눈은 이미 뜨거운 열망으로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천천히, 천천히 해 주세요.”
여리는 두려움을 애써 감추며 부탁했다. 이현은 그런 여리가 짜증 난다는 듯 피식거렸다.
“순진한 척이라도 하고 싶은 거야?”
이현이 여리의 뺨을 톡톡 건드렸다.
“수작 부리지 마. 어떻게 할지는 내가 정해.”
여리는 그런 게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입을 열기도 전에 이현이 몸을 움직여 그의 것을 밀어 넣었다.
“읏―”
죽을 만큼 고통스러운 것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아무렇지 않은 것도 아니었다. 몸이 갈라지는 기분이었다. 여리는 깊은 곳에서부터 올라온 탄식을 뱉어 냈다. 동시에 이현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뭐야.”
이현이 사나운 눈으로 여리를 노려보았다. 반면에 여리는 뻣뻣한 허리와 아래로부터 전달되는 이상한 고통에 달뜬 숨만 토해 냈다. 이현의 긴 손가락 하나가 여리의 입술 안을 휘저었다.
“너 처음이야?”
대답하고 싶어도 입 안을 놀리는 손가락 때문에 여리는 말할 수 없었다. 오히려 이현의 손가락을 피해 말을 하려 애쓰다 살짝 깨물었다. 고의는 아니었지만 이현의 눈이 빛났다.
“야.”
이현이 젖은 손가락으로 여리의 입술을 문질렀다.
“하기 싫어졌어. 나가.”
이현은 유흥을 위해 즐기는 관계에서 쓸데없는 죄책감까지 느끼고 싶지 않았다. 그런 의미에서 순진한 척이 아닌 진짜 순진한 여리는 자격이 없었다.
여리는 뜨거웠던 머릿속에 얼음물이라도 부은 것 같은 차가움을 느꼈다. 이성적인 불안함과 이성적이지 않은 아쉬움이 동시에 해일처럼 몰려왔다. 그가 기울이고 있던 몸을 일으키려 하자 여리는 이현의 목에 가는 팔을 둘렀다. 본능이라면 본능이었고, 욕심이라면 욕심이었다.
“이사님, 자, 잠시만요.”
“손 안 치워?”
이현은 싸늘했지만 여리는 덜덜 떨리는 팔을 풀지 않았다.
“하, 할 수 있어요. 가지 마세요……. 할 수 있어요.”
마주한 이현의 눈이 가늘어지고 입술엔 조소가 걸렸다.
“네가 뭘 할 수 있는데.”
“알려 주세요. 뭘 해야 하는지.”
“나 참을성 없어. 아까 봤잖아.”
이현이 눈을 빛내며 일갈하자 여리는 다시 한번 그의 목에 매달려 애원했다.
“가, 가르쳐 주시지 않아도 돼요. 제가 따라갈게요.”
둘 사이에 정적이 흘렀고 짧은 기 싸움이 이어졌다.
“보기보다 뻔뻔하네.”
이현이 웃었다. 이현에게 여리는 당돌했고, 여리에게 이현은 간절했다.
“하는 동안 아무 소리도 내지 않고 버텨 봐. 그럼 봐줄게.”
말을 마침과 동시에 이현은 여리의 가슴을 입에 물고 부드럽게 혀를 굴렸다. 손에 잡히는 크기가 작았지만 탄력 있고 말랑거리는 것이 꽤나 야했다. 식었던 몸이 다시 끓어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반면에 여리는 필사적으로 제 입을 막느라 바빴다. 그가 목을 핥아도, 허벅지를 쓸어도, 소리 내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이현이 멈춰 있던 허리를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처음이라는 것을 한 번에 느낄 수 있을 만큼 경직된 여리는 뜨거웠다.
“하아…….”
이현이 나지막히 숨을 뱉으며 여리의 귓가에 속삭였다.
“긴장 좀 풀어. 움직일 수가 없잖아.”
여리는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한 채 그의 어깨에 매달렸다. 긴장을 어떻게 푸는지, 자신이 어떻게 해야 이현이 편해지는 건지 알 수 없었다. 그저 새어 나오는 신음을 틀어막고 퍼져 오는 쾌감을 모른 척하며 흔들리는 제 몸을 이현에게 의지할 뿐이었다.
이현이 여리의 발목을 잡고 벌렸다. 여리는 뻑뻑한 이물감과 커져 가는 흥분에 허벅지를 모으려 애썼지만 힘을 쓸 수가 없었다. 그가 허리를 움직일수록 여리는 아찔해지는 정신에 기분이 이상해졌다. 고통도 느껴졌지만 쾌락 역시 분명하게 느껴졌다.
황홀감을 참으려는 여리의 손톱이 이현의 등을 파고들었다. 이현의 손이 닿는 곳마다 화상을 입는 것 같은 뜨거움을 느꼈다. 진작부터 뜨거워진 아래 역시 단단한 충만감이 가득했다.
“잘 참네.”
이현이 여리의 귓가를 간질이며 더 깊이 여리를 가졌다. 잔뜩 붉어진 얼굴로 빨간 입술을 애처롭게 막고 있는 여리의 모습은 최근 본 그 어떤 광경보다 자극적이었다. 깊게 몸을 마주할수록 여리의 안이 부드러워지는 것을 이현도 느낄 수 있었다.
이현이 여리의 양다리를 올려 제 어깨에 걸쳤다. 살끼리 부딪치는 외설스러운 소리가 방 안을 가득 채웠다.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이불을 움켜쥐고 있는 여리를 본 이현이 허리를 숙였다.
“잘했어.”
그의 큰 손이 다정한 손길로 여리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상 줄게.”
그러고는 입술을 막고 있는 여리의 손을 떼어 자신의 목에 둘렀다. 그가 다시 허리를 움직였다.
“하앗……! 하앙…… 핫…….”
참고 있던 신음이 울분처럼 토해졌다. 이현이 만족스럽다는 듯 웃으며 여리의 귓가에 입을 맞췄다.
“이제 소리 내도 돼.”
이현이 속도를 높였다. 가는 몸이 거칠게 흔들렸다.
“하아…… 핫! 이사님…… 너, 너무 빨라요.”
소리를 낼 수 있게 되자 오히려 감각은 더 예민해졌다. 까마득한 정신에 여리는 눈물이 차올랐다. 이현이 그런 여리의 머리를 감싸 안았다.
“괜찮아질 거야.”
여리가 다짜고짜 이현의 어깨를 당겨 꼭 끌어안았다.
“하아…… 하…… 이사님…….”
둘의 얼굴이 작은 틈을 남겨 두고 가까워졌다.
“하…… 좋아요. 지금, 좋아요.”
여리는 어울리지도 않는 말을 뱉어 내며 이현과 함께하기를 원했다. 어색하게 구는 제 모습 때문에 아까처럼 모든 것을 멈출까 두려운 탓도 있었다. 동시에 본능적인 말이기도 했다. 알싸한 고통과 함께 짜릿한 전율이 느껴지면서 미간이 구겨지고 발끝이 저렸다. 낯선 남자와의 밤이 끔찍함에서 멈추지 않아 당황스러웠다.
“하, 씨발.”
이현은 눈이 돌아 속도를 높였다. 이윽고 여리는 온몸이 부서지는 듯한 절정감과 함께 눈물을 쏟았다. 그 위로 이현의 몸이 무너졌다.
한 번의 행위만으로도 충분했다. 완전한 일치감과 절정의 쾌락을 맛본 두 사람은 서로의 체취를 느끼며 거친 숨을 몰아쉬기에도 바빴다.



#2. 비밀(1)


부서지는 햇살에 여리는 몸을 뒤척였다. 움직이는 순간 누군가 여리의 허리를 가까이 끌어당겼다.
잠든 이현이 보였다. 여리는 눈앞의 이현을, 저를 끌어안고 잠에 빠져 있는 남자를 가만히 쳐다보았다. 아침에 일어나면 이현은 당연히 없을 줄 알았다. 여리는 어색함과 민망함에 손가락 하나를 까딱하지 않고 얌전히 숨만 쉬었다.
“아…….”
조금씩 정신을 찾자 어제 마신 양주 기운이 올라와 머리가 지끈거렸다. 몸을 조금만 뒤척여도 절로 앓는 소리가 나왔다. 허리와 다리 전부가 두들겨 맞은 것처럼 뻐근했다.
여리는 오른손을 들어 이현의 감긴 눈 앞을 휘휘 저었다. 아무런 미동도 없는 것을 보아 깊이 잠들어 있는 것 같았다. 타는 갈증이 몰려왔다. 밤새 비명을 질러 댄 탓에 목이 건조해진 모양이었다. 침대에서 조금 떨어진 탁자 위에 놓인 물 한 잔이 오아시스처럼 간절했다. 허리에 감긴 이현의 팔을 천천히 풀어내려는데,
“왜.”
이현의 낮은 목소리가 귓가에 닿았다.
“으악!”
잠든 줄 알았던 이현의 목소리에 여리는 자신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덕분에 이현의 얼굴은 순식간에 구겨졌다.
“자고 계신 줄 알았어요. 목이 너무 말라서…….”
아침에 마주한 이현은 밤과는 조금 다른 느낌을 자아냈다. 위태롭기만 하던 분위기는 편안해져 있었고, 거칠게 일렁이던 두 눈은 차분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여전히 긴장은 되었지만 숨 막히도록 두렵지는 않았다. 몸을 섞은 탓인지, 밤과 다른 분위기 때문인지는 확실하지 않았다.
“물 마시는 것도…… 허락받아요?”
여리의 질문에 이현은 실없이 웃었다. 진심으로 궁금해서 물어본 듯 보였다.
“아니, 마셔.”
이현이 여리를 안고 있던 팔을 풀고 두꺼운 이불을 걷었다. 하얀 나신이 아무런 방해 없이 드러났다. 서늘해지는 체온과 민망함으로 여리가 얼굴을 붉혔다.
“어…… 그냥 안 마실래요. 괜찮아요.”
여리가 다시 이불을 끌어당기며 고개를 젓자 이현이 느린 호흡으로 피식 웃었다. 내뱉은 말과 달리 여리는 얼른 일어나 물도 마시고 싶었고, 지난밤의 흔적을 씻고도 싶었다. 이현이 몸을 일으켜 어서 호텔을 나서기를 간절히 바랐다. 아무리 이사라지만 평일인데 출근 안 하나. 여리는 궁금해졌다.
“저기 근데…… 이사님.”
“왜.”
“출근 안 하세요?”
여리가 이불로 제 몸을 돌돌 감싸고는 물었다. 이현이 어이가 없다는 듯 눈살을 찌푸렸다.
“내 출근을 왜 네가 걱정해.”
“그냥…… 늦으실까 봐요.”
여리가 어색하게 웃어 보였지만 이현은 여전히 무언가 마음에 안 드는 사람처럼 인상을 구겼다.
“이 새벽에 누가 출근해.”
여리는 이현 너머로 보이는 창밖을 쳐다보았다. 밖이 환했다. 새벽은 무슨, 아침 해가 뜬 지 오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