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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화루 1권 22화

第七章 승천무투대회 上(2)





소주 호구(虎邱).

소주에서 가장 아름다운 경치를 자랑하는 이곳에는 며칠 후에 열릴, 승천무투대회가 열리는 장소이기도 하였다.

곳곳에 유명 방파들의 깃발들이 휘날리고 중앙에는 흰색으로 된 거대한 무대가 세워져 있었으며 군데군데 작은 무대들도 세워져 있었다.

주동동과 북궁설은 대회 등록을 위해 접수부가 위치한 곳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의 앞에는 수십 명의 사람들이 일렬로 쫘악 늘어져 있는 가운데 사람들이 너무 많은지라 과연 오늘 내로 등록이나 할 수 있을까 의심스러웠다.

접수부의 분위기는 시끌벅적한 게 완전 시장 통 같았다.

혈기 넘치는 젊은 무림인들이 모인 자리라서 그런지 잦은 충돌도 발생하였는데 그 즉시 집행부가 나와 사태를 해결하고는 하였다. 그리고 개중에는 영약에 욕심이 있는지 나이가 지긋한 노인들도 몇몇 보였다.

접수부는 총 세 군대로 나누어져 있었다.

첫 번째 창구인 금룡문(金龍門)은 승천무투대회 집행부에서 발행한 초청장을 가져오면 바로 통과되는 곳이었다. 이곳은 대회 당일 날 사람들이 오기 때문에 지금은 아무도 보이지 않는 상황이었다. 주로 무림명숙들이나 문주(門主)급 인사들이 오는 곳이다.

두 번째 창구인 은호문(銀虎門)은 무림에 이름 좀 알렸다 싶은 사람이 가는 곳으로 지금 아주 우스운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곳이었다.

한 덩치 큰 사내가 접수부의 사람들 앞에서 막 소리 치고 있었다.

“나 무적쌍부(無敵雙斧) 나일출이야, 몰라? 나일출 몰라?”

접수부의 사람이 표정이 매우 안 좋은 것으로 보아 이름도 없는데 자꾸 우기는 것 같았다.

세 번째 창구인 동구문(銅龜門)에 주욱 늘어진 사람들이 그것을 보고 모두 한바탕 웃음을 터뜨렸다.

“와하하하하.”

동구문에 있던 누군가 무적쌍부에게 소리쳤다.

“일출아 그러지 말고 이리 와 어? 일출아!”

그 말에 동구문 사람들이 또 한바탕 웃었다.

“와하하하.”

나일출은 그 말에 발끈하며 등에 매인 쌍 도끼를 빼들었다.

“어떤 자식이여, 얼른 나와라이!”

그러자 나일출 뒤에 있던 누군가 앞으로 나오며 나일출의 엉덩이를 걷어차 버렸다.

“커억!”

발끝이 나일출의 급소에 깊숙이 박히자 나일출은 그대로 눈을 까뒤집더니 거품 물고 쓰러져 버렸다.

집행부는 재빨리 나오더니 기절한 나일출을 끌고 어디론가 갔다.

또다시 웃는 사람들.

“와하하하.”

“완전 웃겨!”

나일출의 엉덩이를 깐 사람이 손을 탁탁 털며 투덜거렸다.

“그냥 비킬 것이지.”

그러자 그를 본 누군가 소리쳤다.

“옥룡이다!’

“옥룡 선우휘윤이다!”

그러자 줄 서 있던 북궁설이 고개를 스윽 들며 옆 창구에 있는 선우휘윤을 바라보았다.

선우휘윤은 사람들이 자신을 알아보자 오만한 미소를 지으며 부채를 쫘악 펼쳤으나 다음 말에 허리를 휘청일 수밖에 없었다.

“냉혈무정검한테 개박살 난 옥룡이다!”

그 순간 공교롭게도 선우휘윤은 줄 서 있는 북궁설과 눈이 마주쳤다.

“아니, 네놈은!”

이를 으득 가는 선우휘윤을 한번 슥 보더니 웬 개가 짖냐는 듯이 무시해 버리는 북궁설.

“크윽!”

선우휘윤의 손에 쥐고 있던 부채가 부서져 나갔다.

선우휘윤이 한 사람만 보며 눈에 힘을 콱 주고 있자 사람들은 당연히 선우휘윤을 시선을 좇아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는 모두들 눈을 크게 떴다.

그리고 들려오는 소리에 또다시 휘청거리는 선우휘윤.

“그 옥룡을 개박살 낸 냉혈무정검이다!”

세 번째 창구의 사람들은 함께 줄 서 있는 북궁설을 보고 놀라는 눈빛과 동시에 의문스럽다는 눈으로 쳐다보았다.

“냉혈무정검이라면 저기로 가야지 왜 여기 있데?”

“글쎄, 나도 몰라.”

북궁설은 검지로 자기를 가리키더니 고개를 갸웃거렸다.

“나?”

끄덕끄덕.

집행부 사람이 의자에서 일어서더니 북궁설을 향해 손짓했다.

“이리 오시오! 냉큼 오시오!”

북궁설은 시키는 대로 천천히 은호문 앞으로 걸어갔다.



* * *



객잔 앞에 도착하자, 천태성은 왕소군에게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잠시 실례하겠소.”

이젠 이 말에 어느 정도 적응했는지 왕소군은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천태성은 왕소군을 업고 객잔 안으로 들어갔다.

객잔 안은 남정네들의 채취와 술 냄새 그리고 시끄러운 말소리로 엉켜 있었다.

눈이 보이지 않는 왕소군은 현재 모든 것을 천태성에게 맡긴 상태였다. 때문에 아무리 생소한 곳이라 할지라도 전혀 무섭지가 않았다.

객잔 안은 천태성이 들어가자 점점 조용해져 갔다. 그리고 남자든 여자든 천태성을 보면 눈을 돌리지 않고 입을 살짝 벌렸다. 아니, 눈을 돌렸던 사람도 다시 쳐다보았다.

여자들은 왕소군을 부러운 눈으로 보았고 남자들은 왕소군의 미모에 감탄하고 있었다.

천태성은 점소이와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왕소군은 천태성의 등에 뺨을 댄 채 업혀 있었다.

‘들린다. 그의 심장 소리가 들린다. 들린다 그의 말소리가.’

천태성은 점소이에게 장태봉이 잡아 놓은 방을 안내 받고 들어갔다. 그리고 가는 점소이에게 방으로 식사를 가져다 달라고 하였다.

침상에 왕소군을 내려놓은 천태성은 허리를 쭉 펴며 이야기했다.

“왕 소저 너무 상심하지 마시오. 꼭 가족들을 찾을 수 있을 거요.”

“네.”

곧이어 주문한 음식을 점소이가 가져오자 천태성은 수고 했다며 은자 한 냥을 쥐어주었다. 그러자 점소이는 몇 번이고 인사를 하며 또 시켜달라고 하였다.

천태성은 왕소군이 밥 먹을 때마다 반찬을 하나씩 올려주었다. 그러면 왕소군은 고맙다는 뜻으로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왕소군은 눈이 멀어서 모르지만 지금 천태성은 한시도 왕소군에게서 눈을 떼지 않고 있었다.

왕소군이 젓가락을 내려놓으면 아무 말 없이 손에 잔을 쥐어 주고 물을 따라 주었다.

“이렇게 안 해주셔도 되는데…….”

“내가 좋아서 하는 거니까 너무 부담 갖지 마시구려.”

‘아.’

왕소군의 가슴이 두근두근 뛰기 시작했다.



* * *



승천무투대회 접수를 마친 북궁설은 주동동과 배를 타고는 소주 유람을 하고 있었다.

좁은 강가 사이로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곳을 지날 때면 완전 난리가 났다.

“저기 봐 너무 잘생겼다!”

“어디 어디? 꺄아!”

절세미남 둘이 조그마한 배를 타고 지나가니 길 가던 처자들의 발걸음을 죄다 멈춰 세우게 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처자들이 주동동을 향해 손을 마구 흔들자 멋모르는 주동동은 환하게 웃으면서 마주 손을 흔들어 주었다.

“북궁 형, 소주 사람들은 전부 친절한가 봐요. 다들 반갑다고 손 흔들어 주네요.”

북궁설은 팔짱을 낀 채 무심한 얼굴로 경치를 보고 있었다.

‘여기까지는 오지 않았나 보군.’

항상 주동동과 함께 외출을 하면 느껴지던 살기가 항주를 떠나면서는 느껴지지 않았다.

주동동이 탄 배가 돌아 넓은 곳으로 빠져나가자 높다랗게 솟은 누각들과 커다란 배들도 보였다.

“우와! 여기도 항주하고 비교해서 전혀 뒤떨어지지 않네.”

어둑어둑해지는 하늘과는 반대로 강변은 하나둘 켜지는 불로 인해 환하게 빛나며 빼어난 경관을 연출하였다.

그것을 보고 마냥 신기해 하는 주동동.

그때 어디선가 주동동을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다.

“동동 오라버니! 동동 오라버니!”

“응?”

주동동은 소리가 나는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자기들 배보다 약간 큰 놀잇배 위에서 손을 흔들고 있는 주소소가 보였다.

“어떻게 알고 여기를 왔지?”

무심코 고개를 돌리는 북궁설, 그리고 그를 발견한 주소소는 더욱 밝은 표정으로 손을 흔들었다.

두 배가 가까워지자 주소소는 폴짝 뛰어 주동동의 배로 건너오려 하였다. 그런데 그만 발을 헛디뎌 팔을 허우적거리며 강물에 곧 빠질 듯하였다.

“어어어?”

그런데 누군가 팔을 뻗더니 주소소를 잡아 주었다.

터억.

주소소는 고개를 들고 자신을 구해준 팔의 주인을 보았다.

강바람에 살랑거리는 곱슬머리, 한일자로 굳게 다문 입술 그리고 긴 속눈썹. 너무나 보고 싶어 했던 북궁설이었다.

북궁설을 본 주소소는 팔을 잡아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다리에 힘이 빠져 아래로 쑥 떨어졌다.

“어!”

그 순간 북궁설의 손에 힘이 들어가며 주소소를 위로 확 끌어올렸다. 그와 동시에 본의 아니게 북궁설의 품에 안기게 된 주소소.

북궁설은 어느새 손을 놓고 고개를 들고 있었으며 주소소는 눈을 꼭 감고 북궁설을 껴안은 채 떨어질 줄 몰랐다.

옆에 있던 주동동이 주소소를 툭툭 치며 말했다.

“야, 지금 뭐 해?”

“어? 꺄아!”

그제야 자신이 북궁설의 품에 안겨 있다는 것을 자각했는지 주소소는 화들짝 놀라며 떨어져 나왔다.

“야, 너 얼굴은 왜 또 그래? 뭐 매운 거라도 먹은 거야?”

“뭐?”

주소소의 얼굴이 홍당무처럼 새빨개져 있자 주동동이 그것을 보고 한 말이었다.

주소소는 지금 가슴이 뛰고 얼굴이 화끈거려서 주동동의 말은 귀에 잘 들어오지 않는 상태였다.

곧이어 백중훈과 구설란이 주동동이 있는 배로 건너왔다. 그리고는 주동동을 향해 정중하게 허리를 굽혔다.

주동동은 손을 드는 것으로 그들의 인사를 받았다.

한편 주소소는 뭐 마려운 강아지처럼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이를 어째…… 이를 어째.’



소주의 강물 위를 지나는 커다란 누선(樓船)은 마치 물 위에 떠 있는 커다란 궁전 같았다.

컴컴한 저녁 하늘을 배경 삼아 곳곳에 화려하게 밝혀져 있는 불은 천천히 나아가는 누선을 참으로 돋보이게 하였다.

그 누선의 선창에는 선남선녀들이 웃고 떠들며 즐기고 있었는데 그들은 이번에 승천무투대회를 위해 모인 강호의 후기지수들로써 신진사룡(新進四龍)과 더불어 오대세가의 자제들과 구대문파의 젊은 제자들이었다.

그중에는 무림삼봉의 일원인 유리봉황 나예은도 있었다. 그리고 바늘이 가면 실이 따라가듯 그녀의 곁에는 남궁연지가 있었다.

나예은은 다른 후기지수들과 어울리지 않고 선창에서서 잔잔한 강물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사람.’

나예은의 머릿속으로 슬며시 떠오르는 차가운 사내, 북궁설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는 남자.

‘연지가 분명히 전해줬다고 했는데 아무런 답변이 오지 않았다.’

나예은은 몇 번이고 망설이고 망설인 끝에 북궁설에게 한 번 만나자는 편지를 썼다.

나예은으로써는 참 쉽지 않은 결정이었는데 무엇보다 옆에 있는 남궁연지의 응원이 큰 힘이 되어 주었다. 그런데 며칠이 지나고 지나도 북궁설에게서 답변이 오지 않는 것이었다.

나예은은 화낼 만도 했지만 그러한 감정은 전혀 들지 않았다. 도리어 아무런 소식이 없는 게 답답하기만 하였다. 그리고 보면 볼수록 자신과 비슷한 북궁설이 자꾸만 생각났다.

사람의 마음이 한순간에 움직일 수도 있지만 떨어지는 빗방울을 커다란 항아리에 모으듯이 점차 움직이는 경우도 있는데 나예은이 후자의 경우였다.

그 커다란 항아리에 물이 가득 차면 겉잡을 수 없게 되는 법, 하나 나예은의 상태는 아직 그 정도까지는 아닌 듯했다.

자기가 중원제일미라는 사실도 까마득히 잊고 있는 나예은, 실은 그러한 명호를 나예은 또한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남궁연지가 나예은의 뒤에 조심스럽게 다가서며 말을 걸었다.

“무슨 생각하고 있는 거니? 혹시 그 사람 생각?”

“아무것도…….”

남궁연지는 편지를 전해준 날 이후로 나예은의 표정이 점점 예전처럼 어둡게 돌아가고 있는 듯 보이자 걱정되었다.

기다려도 묵묵부답인 매정한 얼음땡이.

남궁연지는 다시 한 번 찾아가 말을 한 번 직접 전해 볼까도 생각해 봤지만 내일이면 오겠지 하는 생각 때문에 미뤄왔다. 그것이 지금까지 오게 된 것이었다.

그러다 최근에 남궁연지는 마음 먹고 낙화루를 찾아갔었다. 그런데 거기 사람으로부터 뜻밖의 말을 들었는데 바로 여기 승천무투대회에 그 얼음땡이가 참가한다는 사실이었다.

남궁연지는 이 사실을 나예은에게 알리지 않았다. 그리고 다른 이유를 둘러대서는 억지로 이곳 소주 땅으로 끌고 온 것이었다.

“예은아, 그 사람 꼭 만날 거야. 그러니 너무 상심하지 마, 인연이 있다면 분명히 만날 수 있을 거야.”

남궁연지의 밝은 목소리는 확신에 차 있었다. 그러나 나예은은 그 말을 부인하기라도 하는 듯이 고개를 확 틀어버렸다. 그런데 그만 나예은은 무엇을 보았는지 눈을 크게 떴다.

누선과 좀 떨어진 곳으로 지나가는 작은 배, 배는 작았는데 그 위에 사람들이 꽤나 타고 있었다. 그런데 그곳에 그 남자와 비슷한 사람이 있는 것이었다.

‘그 사람인가?’

큰 키에 기다란 머리, 그리고 마구 떠들고 있는 듯한 다른 사람에 비해 꼼짝도 하지 않고 팔짱만 끼고 있었다.

누선과 그 작은 배는 진행 방향이 반대인지라 점차 멀어졌는데 나예은의 몸도 자연스럽게 작은 배를 따라 움직였다.

남궁연지는 처음에는 영문도 모르다가 나예은의 시선을 좇아 강물 위를 바라보았다.

“어머!”

남궁연지가 그렇게 감탄사를 터뜨리자 나예은은 몸을 확 돌리더니 남궁연지의 손을 잡았다.

“그 사람 맞지?”

남궁연지는 화사하게 웃으며 나예은의 물음에 답하였다.

“응!”

그러자 한껏 죽어 있던 나예은의 표정이 상기되었다.

남궁연지는 나예은과 배 뒤쪽으로 천천히 이동하며 말했다.

“여기에 온 걸 보면 분명 그 대회 때문에 온 거야. 다시 볼 수 있을 거야.”

나예은은 멀어져 가는 작은 배를 바라보며 남궁연지를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