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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화
10장 부하 N, I(2)


레오나르도가 진심으로 걱정하며 말했다.
“괜찮습니다. 설마, 제 친구가 저를 팔겠습니까? 게다가 저는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습니다.”
“그러시다면 됐습니다. 하지만 엘레나는 어떡하실 건가요? 이제 둘은 찐한 사이……. 쿠웩!”
퍼억!
“아이 참, 오빠도 부끄럽게…….”
엘레나가 부끄러운 표정을 지으면서 왼손은 볼을 만지작거리고 오른손은 다이너마이트 틱한 주먹을 레오나르도에게 날렸다. 레오나르도는 그 주먹을 맞고 그대로 뻗어 버렸다.
“……엘레나, 너는 지난번에 인간들에게 잡힐 뻔했잖아. 나 따라가다가 또 잡히면 어떡하려고?”
뻗어 있는 레오나르도를 뒤로하고, 데네브가 말했다.
“피이…… 그래도 갈 거야. 이번에는 새로운 무기도 생겼어. 내가 안 가면 섭하지.”
“그래도…….”
“갈! 거! 야!”
“예, 살펴서 같이 가십쇼.”
“아, 잠시만요, 데네브 님.”
‘오…… 이번엔 금방 부활했네.’
어느새 부활한 레오나르도가 부러진 코를 잡으며 일어났다.
“가시기 전에 저도 그 총 하나 만들어 주시면 안 될까요?”
‘이놈의 엘프가……. 그럼 진작에 만들 때 말할 것이지. 엘레나에게 부탁해서 영원히 뻗어 버리게 할까?’
데네브가 총기 제작할 때 말은 안 했지만 레오나르도도 같이 있었다.

“그럼 이제 가 볼게요.”
“잘 가세요.”
해가 서산으로 갈 무렵, 화를 참으며 억지로 인사하는 데네브에게 레오나르도는 싱글벙글한 얼굴로 배웅해 주었다. 한 손에는 번쩍거리는 화승총을 들고서. 데네브는 다시 화승총을 제작하느라 고생을 많이 했다.
“아, 데네브 님. 손 좀 내밀어 보세요.”
“왜요?”
데네브가 손을 내밀자 레오나르도가 손등을 잡았다. 그 순간, 데네브는 손등에 뜨거운 고통을 느꼈다.
“어? 어?”
“참으십시오.”
떼어내려는 데네브를 막기 위해 레오나르도의 악력이 강해졌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 데네브의 손등에서 느껴지던 고통이 사라질 때쯤 레오나르도는 손을 뗐다.
“이건?”
[‘숲의 가호’를 받으셨습니다.]
데네브의 손등에는 넝쿨에 포도가 달려 있는 화려한 문양의 에메랄드 빛 그림이 그려졌다. 문양은 점점 옅어지더니 살 속으로 녹은 듯이 사라졌다.
“이것은 우리 엘프들의 문양입니다. 여행을 떠나는 엘프들에게만 주어지는 것으로 마을과 연락하기 위해서 만든 것입니다. 만약에 무슨 일이 생기면, 그 손등에 손을 문질러서 저에게 연락하세요. 그러면 도와드리러 가겠습니다.”
아까와는 딴판으로 레오나르도가 근엄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죠. 야, 엘레나! 언제 나오는 거야? 옷을 만드니?”
“그래! 지금 나간다!”
덜컥.
엘레나가 나왔다. 그녀는 연두색 원피스에 두꺼운 가죽 벨트, 단검과 화약, 총알이 들어 있는 면 주머니를 매 놓은 차림이었다. 가슴에는 철로 된 가슴 갑주를 입고 어깨에는 어깨 보호대를 입었으며 발에는 무릎까지 오는 가죽 장화를 신었다. 마지막으로 머리는 포니테일로 묶은 뒤 반짝이는 보석이 있는 화려한 서클렛을 둘렀다.
“어때? 나 예쁘지? 우훗.”
엘레나가 자세를 잡으니 각선미가 제대로 나왔다.
“에휴……. 너답다.”
보통 같으면 캡처를 하겠지만, 데네브는 머리가 아픈지 이마에 손을 얹었다.
“너는 인간들의 도시로 가서, ‘나, 엘프예요. 어서 빨리 잡아가세요. 유후……♡’ 하려는 거 맞지?”
“아니.”
데네브의 귀가 힘없이 축 늘어졌다.
“원피스는 왜 그렇게 짧아? 우리가 놀러 가는 줄 알아?”
“뭔 상관? 왜? 나 보니까 못 참겠어? 데.네.브?”
엘레나가 데네브라는 단어에 힘을 주었다.
“트롤이 발레 하는 소리 하고 있네. 너는 정말로……. 휴우, 그만 하자. 이 여행자 망토를 걸쳐. 후드도 쓰고.”
데네브는 레오나르도에게 얻은 칙칙한 회색의 여행자용 망토를 엘레나에게 주었다.
“싫어! 그렇게 칙칙한 건 입고 싶지 않아. 나의 아름다움이 사라진다고.”
“엘레나, 두. 고. 간. 다?”
“당연히 입어야 하는 거지? 그치? 어서 줘.”
“그럼, 당연하지.”
데네브의 협박에 태도가 180도 변하는 엘레나였다.
“아, 데네브 님. 정령과 계약을…….”
이제는 정말로 나가려는 데네브에게 레오나르도가 말했다.
“아, 깜빡했네. 정령과 계약을 어떻게 하는 거죠?”
“자…… 잠시만요. 마나를 소모하지 않고 계약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레오나르도는 자신의 방으로 부랴부랴 가더니, 잠시 후에 돌로 만든 대야를 가지고 나왔다. 대야에는 물이 가득 차 있었는데, 모서리에는 온갖 룬어들이 새겨져 있었다.
“이것은 우리 엘프들이 정령과 계약할 때 쓰는 겁니다. 이 대야는 정령계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우선 데네브 님의 피 한 방울을 넣으시고, ‘나 누구누구가 그대들과 계약을 하고 싶다. 계약을 하고 싶은 정령은 내 앞으로 나오라’라고 하십시오. 그러면 데네브 님의 정령 친화력에 따라 정령계에 있는 정령들 중 데네브 님을 마음에 들어 하는 정령 또는 정령들이 대야를 통해서 나올 겁니다. 대야에서 나오는 순간 그 정령은 데네브 님과의 계약이 저절로 완료됩니다.”
“예? 그러니까 랜덤으로 나오는 정령과 계약을 해야 합니까?”
“네, 마나가 소모되지 않는 대신에 그렇게 됩니다. 마법진을 그려서 소환하면 원하시는 정령을 얻으실 수 있지만, 시간도 많이 걸리고 엄청난 마나를 소모합니다.”
“에휴, 어쩔 수 없죠. 그럼.”
“바늘을 받으세요.”
레오나르도가 준 바늘을 받은 데네브는 새끼손가락을 찔렀다.
똑!
피 한 방울이 대야에 떨어졌다.
화아아아아악!
덜덜덜덜덜.
대야가 요동치면서 하늘색의 빛을 뿜기 시작했다.
번쩍!
룬어들이 노란색의 빛을 뿜자 대야의 요동이 사라졌다.
“지금입니다. 얼굴을 대야에 보이시고, 말하세요.”
“나 데네브가 그대들과 계약을 하고 싶다. 계약을 하고 싶은 정령은 내 앞으로 나오라.”
웅웅웅웅웅웅웅.
대야는 웅웅거리기만 했다.
“아무것도 안 나오는데요?”
“조금만 더 기다려 보세요.”
5분이 지났다.
“그래도 안 나오는데요?”
“정령들이 부끄러워하거나 서로 나오려고 싸우나 봅니다. 이런 일은 흔해요. 조금만 더 기다려 보세요.”
30분이 더 지나갔다.
“원래 이건 이렇게 오래 걸리는 겁니까?”
데네브가 다시 레오나르도에게 물었다.
“하암…….”
엘레나는 지루한지 하품을 했다.
“글쎄요. 이상하네……. 보통은 오래 걸려도 10분이면 되는데…….”
“이제는 못 참아.”
데네브가 소매를 걷어 올렸다.
“뭘 하실려구요?”
레오나르도가 위기감을 느꼈는지 자리에서 일어났다.
“보고만 있으세요.”
데네브가 대야에 양손을 집어 넣어서 휘젓기 시작했다.
“뭐 하시는 거예요? 어서 손을 빼세요!”
“기다려 봐요.”
“참아 봐, 오빠. 데네브도 생각이 있나 보지.”
레오나르도가 막으려 하자 엘레나가 말렸다.
‘음……. 이건 따뜻한 느낌, 요건 차가운 느낌, 저건 바람처럼 시원하고.’
데네브는 손을 휘저으면서 손에 느껴지는 느낌을 분석해 보았다. 그것들이 데네브의 손가락을 잡았지만, 데네브는 뿌리쳤다.
‘미안하지만 난 땅의 정령이 필요하거든. 광석을 찾을 때 유용하니까.’
처음부터 이런 계산하에 대야에 손을 담근 데네브였다.
‘얼레? 요건, 어째서 손이 사라지는 느낌이지? 요것은 내 손을 당기고…… 옳지, 이것이다! 흙이다! 흙 느낌이야! 옆에 있는 건 물인가? 차갑네. 그렇지만 딱딱하구. 좋다! 건진다!’
“나와라! 나의 부하들아!”
데네브는 그것들을 꽉 붙잡은 후 대야에서 건져 올렸다.
“끄아아아악! 내가 미역이냐! 건져 올리게! 뭐 하는 짓이냐?”
“……끄큭큭큭큭.”
데네브의 손에서 나온 것은 땅의 상급 정령 노에스와 처음 보는 쇠같이 생긴 정령이었다. 둘 다 데네브의 무릎만 한 크기의 남자같이 생긴 흙과 철의 어린 꼬맹이 같았다.
“으으으으. 인간……. 아니, 엘프에게 이렇게 치욕적으로 건져져서 계약이 되다니…….”
노에스가 서러운지 땅을 치며 통곡을 했다.
“저…… 정령을 강제로 건져서 계약을 하다니……. 말도 안 돼.”
레오나르도가 중얼거렸다.
[땅의 상급 정령 ‘노에스’와 계약을 하였습니다. 광석의 정령 ‘아이레스’와 계약을 하였습니다.]
‘광석? 그런 정령도 있었나? 아무튼.’
“핫핫핫! 너희들은 이제 나의 부하들이다! 땅의 정령 노에스와 광석의 정령 아이레스여!”
“시끄러! 아니, 서로 계약하려고 싸우는 여자 정령들이나 잡아서 건질 것이지, 왜 구경하는 나와 부하 I를 잡는 건데? 그리고 내가 네놈의 부하가 될 것 같애? 안 그래? 부하 I?”
그동안 조용히 있던 광석의 정령 아이레스가 입을 열었다.
“큭큭큭! 네에, 네. 그렇습니다, N 님.”
부하답게 아부하는 듯한 목소리로 아이레스가 말했다. 그 정령은 뭐가 재미있는지 계속 기분 나쁘게 웃기만 했다.
“헤에, 여자 정령들이 그랬었어? 음……. 신기하군. 정령 사회에 계급은 있다지만, 부하까지 있다니……. 가만, N 님? 부하 I? 왜 그렇게 부르는 거야?”
“흥. 이름을 제대로 부르기엔 길어서 불편하잖아. 그리고 광석의 정령들은 우리 땅의 정령이 없으면 존재 자체가 불가능하거든. 그래서 부하다.”
노에스가 콧대를 높이고 코를 벌름거리면서 자랑스럽게 말했다.
“흐음…… 그럼 이제부터는 내가 너희들의 주인이다. 노에스, 넌 이제부터 부하 N이고, 아이레스는 부하 I다. 날 부를 때는 D 님이라고 부르도록. 알겠나?”
“싫어! 내가 왜? 너같이 우리 하늘 같은 정령님들을 낚아 올리는 파렴치한 엘프 놈에게 부하가 돼 줄 것 같애? 부탁을 해도 소용없어.”
“우리 형님이 싫다잖아. 큭큭큭.”
“호오…….”
데네브는 엘레나와 레오나르도를 쳐다보았다. 둘은 어깨를 들썩이고 알아서 하라고 손짓했다. 데네브는 자신의 화승총을 반대로 잡아서, 개머리판을 두 정령 주위에 휘두르기 시작했다.
후웅. 후웅. 휘익. 휙.
“헤에…… 헤에…… 어느 놈을 칠까요?”
다양한 각도로 정령들이 맞을 듯 말 듯 스치게 하고, 속도를 점점 높이면서 개머리판을 강하게 휘두르는 데네브였다.
“으윽!”
“무섭습니다. 어쩌죠? N 님.”
정령들은 데네브가 개머리판을 한 번 휘두를 때마다 몸을 사시나무처럼 떨면서 서로를 꼭 껴안았다.
‘안 되겠군.’
“이제부터는 진짜다.”
데네브가 정령들의 머리 위로 개머리판을 높이 올렸다.
“으윽! 어쩔 수 없다.”
노에스가 앞으로 나왔다. 비장한 각오를 한 얼굴로.
‘흐음? 기백이 달라졌다? 저항을 해 보겠다는 건가?’
데네브는 노에스의 기백에 잠시나마 놀라는 바람에 이마에 식은땀을 흘리고 말았다.
쿵!
“음?”
노에스가 땅바닥에 있는 힘껏 손을 박았다.
‘저 자세는…….’
“잘못했어요, D 님. 한 번만 봐주세요.”
노에스…… 아니, 부하 N은 땅에 무릎을 꿇고 데네브에게 용서를 빌었다.
“큭큭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