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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에르메키아 월드
프롤로그


2020년 한국.
세계 최초의 가상현실 온라인 게임 ‘에르메키아 월드’가 세상에 나왔다.
세계의 외신들은 극도로 흥분한 상태에서 이 사실을 전 세계에 알렸다.
소설에서나 등장할 만한 게임이 나왔으니 말이다.
카오스 사에서 비밀리에 10여 년 동안 야심차게 제작해 온 에르메키아 월드는 국내는 물론 전 세계의 게임사들을 두려움에 떨게 만들었다.

2020년 3월 31일 오픈 베타!

“에르메키아 월드라…….”
한 소년이 게임 잡지를 보면서 중얼거리고는 곧장 벽에 걸려 있는 달력을 쳐다보았다.
오늘은 3월 9일. 앞으로 남은 날은 22일.
“오늘이 내 생일이군.”
그리고 쓸쓸하게 중얼거리는 소년.
“현아, 무슨 생각을 하는데 그렇게 슬픈 표정이니? 이제 조금 있으면 점심시간 끝난다. 책 정리만 하면 되니까 어서 하고 가거라.”
“아! 예, 선생님.”
이 쓸쓸한 소년의 이름은 김현(金賢). 나이는 19살, 고3이다. 현명하게 살라고 부모님이 현이라 지어 주셨다.
오늘은 그의 생일이지만 축하해 줄 가족은 없었다. 그의 부모님은 5년 전 오늘 그의 생일이던 밤에 집으로 귀가하다가 교통사고로 돌아가셨다. 가까운 친척이 없었던 현이는 물려받은 집에 혼자 살고 있었다.
“야, 현아!”
“응?”
현이의 친구 현동, 약간 뚱뚱한 편이지만 보기 싫을 정도는 아닌 체형에 머리는 감자머리 ‘신X구’처럼 밀은 녀석이었다. 좋아하는 것은 판타지 소설, 군사 밀리터리 잡지이다. 특히 북한군 마니아다. 학교 도서관에서 도서부원인 현이가 도서관 일을 마치고 돌아가는 중 복도에서 현동이 불러 세운 것이다.
“현동아, 무슨 일 있어?”
“소식…… 헉……헉…… 들었지?”
“무슨 소식?”
멀리서 뛰어왔는지 헉헉거리는 현동이였다.
“에르메키아 월드 말야! 오픈 베타한다는 가상현실 게임!”
“아, 그거? 그게 뭐 어쨌는데?”
“얌마, 우리가 찬양하는 판타지 소설이 현실처럼 나오는데 넌 하나도 안 기쁘냐?”
‘우리냐? 너겠지…….’
“나오면 뭐하냐? 캡슐 가격이 300만 원이나 하고 월정액이 10만 원이나 하는 게임을 우리 같은 평범한 고등학생이 어떻게 할 수 있겠냐? 게다가 우리는 고3이야. 난 대학 갈 생각이 없어서 공부 안 하지만, 너는 어떡할 건데?”
“우씨! 공부 안 한다는 놈이 전교에서 맨날 열 손가락 안에 드냐? 확 인민재판을 해서 사형시킨다.”
현이는 확실히 이름값 하게 공부를 잘한다. 하지만 현이는 대학을 갈 생각이 없었다. 부모님께서 물려주신 유산은 많지만 대학을 졸업할 만큼의 돈은 아니었다. 그래서 거의 포기한 상태였다.
“그나저나 넌 캡슐 살 수 있냐?”
“어. 엄마가 지난번에 성적이 전교 60등 안에 들었다고 사 주신다고 하셨어.”
‘부러운 놈.’
“역시 네놈은 프롤레타리아가 아니라 부르주아였어. 이 인민의 적.”
“뭐?”
현이는 현동이 뭐라 하기 전에 냉큼 그 자리에서 도망쳤다.

“오늘 하루 수업 끝났다. 야자 할 사람은 야자 준비하고 나머지는 알아서 가도록.”
담임선생님의 종례 시간은 간단한 말씀과 함께 끝났다.
오늘은 야자가 없어서 일찍 하굣길에 올랐다. 학교에서 걸어서 5분 정도 떨어져 있는 단독주택이 현이의 집이었다.
“다녀왔습니다.”
하지만 어둡고 조용한 집이 그를 반겼다. 현이는 옛 생각에 눈에 눈물이 고였다.
항상 다정다감하게 반겨 주시던 어머니, 퇴근하시면 항상 자신을 찾으시던 아버지.
“어머니…… 아버지…… 칫!”
문득 거울이 보였다. 두발자유화로 기른 웨이브진 단발머리에, 이목구비가 뚜렷한 갸름한 얼굴. 잘생겼지만 슬픔에 찬 얼굴은 행복해 보이지 않았다.
‘아들이 이렇게 잘 컸는데…….’
탁!
서걱서걱.
보글보글.
부엌의 불을 켜고 저녁 준비를 했다. 집에서 혼자 모든 일을 한 지 5년이 되었다.
오늘의 메뉴는 미역국. 자신의 생일을 자축하기 위해서였다.
“잘 먹겠습니다.”
마치 누가 옆에 있는 듯 중얼거리는 현이. 중얼거리는 것이 벌써 습관이 되었다.
삑!
리모컨을 집어 들어 TV를 켰다. 게임 채널이었다.
―자, 그러면 윤성준 씨. 이번 달에 새로 오픈 베타하는 에르메키아 월드의 게임 장면을 소개해 주시겠습니까?
―예, 알겠습니다. 자, 저와 함께 한번 보실까요?
곧 TV 화면이 바뀌었다. 화면에는 은빛의 화려한 기사 갑옷을 입은 전사가 기다란 검을 들고 오우거와 화려하게 싸우는 장면이 나왔다. 뒤이어 커다란 장궁을 든 궁수가 많은 수의 고블린들에게 한 번에 화살 3발씩을 날리는 장면이 나왔다. 화살은 고블린들의 목만 꿰뚫었다. 그리고 이번엔 초록색 로브를 걸친 마법사가 나타나 마녀들과 마법 전투를 하는 장면이 나왔다. 마녀들의 마법을 일일이 막으면서 자신의 마법으로 마녀들을 제압해 버리는 모습은 현란하고 멋있었다. 그 뒤 도적과 성직자의 모습도 나왔다.
멍…….
현이는 게임 장면에 빠져서 밥 먹는 것조차 잊은 채 TV를 바라보았다.
―이야, 대단한데요? 마치 영화 같았어요.
―이것이 에르메키아 월드의 장점이죠. 게다가 직업도 다양해서 수를 셀 수 없을 정도라고 카오스 사에서 밝혔습니다. 그중에는 히든 클래스도 있다고 합니다. 히든 클래스의 직업은 카오스 사에서 비밀로 부쳐서 자세히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굉장해! 하고 싶어!’
현이는 고3이라는 사실을 망각하고 얼른 안방에 있는 통장을 꺼내서 잔금을 보았다.

잔금 18,000,000원

‘딱 300만 원을 써 볼까? 아니…… 안 돼. 이 돈은 나중에 취업하기 전까지 써야 하는 생활비야.’
“휴우! 아쉽군…….”

그로부터 두 달이 지났다. 그사이에 에르메키아 월드는 오픈 베타를 했고 가입자가 현재 500만에 이르렀다. 그 덕분에 카오스 사의 주식은 엄청나게 높아져 버렸다. 동시 접속자 수도 30만에 이르러 다른 게임사들은 게임이 망해 문을 닫거나 축소되었다. 망한 회사들 중 몇 개는 카오스 사에 흡수되어 카오스 사의 지부로 변해 여러 게임 업체들을 잔뜩 긴장시켰다.
현이는 지금 명동에 있었다. 전에 입던 바지가 현이의 커진 키 때문에 작아져 버린 것이었다.
“청바지나 살까? 청바지가 없는데…….”
이쪽 저쪽을 둘러보며 오래 돌아다닌 끝에 결국 산 것은 평범한 면바지였다. 한 장에 1만 원으로 싸기 때문에 샀다.
‘돈을 아껴야 산다. 돈 아껴서 남 주냐?’
청바지를 사고 싶었지만 비쌌다. 그래서 꾹 참으며 스스로 위안을 하고는 집으로 돌아가는 현이였다.
“저희 카오스 사에서 에르메키아 월드 오픈 베타 기념으로 실시하는 경품 이벤트! 이름과, 집 주소, 전화번호를 적으시고 응모해 주세요! 오늘 저녁 10시에 추첨하여 당첨되시는 한 분께는 무료로 가상현실 게임 캡슐과 6개월 무료 이용권을 드립니다!”
얼굴이 예쁘장한 누나가 배꼽이 보이는 옷에 짧은 치마를 입고 춤을 추면서 마이크로 사람들에게 경품 응모 행사를 진행하고 있었다. 한쪽에는 사람들이 줄을 서서 종이에 자신의 이름과 주소, 전화번호를 적고 응모함에 넣고 있었다.
‘뭐? 무료 캡슐에 6개월 무료 이용권이라고? 한번 해 봐? 어쩌면 될지도 모르잖아?’
현이도 냉큼 그 줄에 서서 응모해 보았다. 당첨 여부는 저녁 10시 정각에 전화로 통지한다고 한다.
집으로 돌아온 현이는 두근거림 속에서 기다렸다.
어느덧 해는 저물고 시간은 점점 10시에 가까워져 갔다.
현재 시각 9시 56분.
두근두근.
현이의 심장이 울렸다. 게임을 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다. 현재 시각 9시 59분 37초. 초침은 점점 위로 올라갔다.
째깍째깍.
두근두근.
‘10, 9, 8, 7, 6, 5, 4, 3, 2, 1…….’
따르르르르르르르릉!
“헉!”
전화벨이 울렸다. 현이는 심장이 멈추는 줄만 알았다.
“설마, 설마.”
부르르 떨리는 손으로 수화기를 들었다.
“여…… 여보세요?”
―축하드립니다! 김현 님, 경품에 당첨되셨습니다. 캡슐은 내일 김현 님께서 말씀하시는 시각에 보내 드리고요, 6개월 무료 이용권은 캡슐에 등록되어 있으므로 가입만 하시면 자동으로 이용권이 사용됩니다.
“아, 감사합니다. 캡슐은 내일 오후 5시쯤에 보내 주세요.”
―알겠습니다. 김현 님, 그럼 편안히 주무세요. 홍보부의 안기현이었습니다.
뚜뚜뚜.
전화가 끊겼다. 현이는 천천히 수화기를 내렸다.
당첨된 것이다. 그토록 하고 싶었지만 돈 때문에 마음을 접어야 했던 게임을 무료로 하게 된 것이다.
“드디어, 드디어 나도 에르메키아 월드를 할 수 있다. 만세! 으하하하하하. 가만…… 이거 꼭 흔하디 흔한 게임 소설의 이야기잖아? 뭐 어떠냐? 난 평범한 유저가 될 것인데. 핫핫핫핫!”
오랜만에 현이의 집에서 웃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1장 돼지 사냥(1)


띵동땡동.
“차렷! 선생님께 경례!”
종례가 끝나자마자 현이는 야간 자율학습을 빼먹고 곧장 집으로 향했다.
그리고 집에 들어간 후 기다림의 시간 끝에 어느덧 5시가 되었다.
띵동!
‘정확하군.’
현이는 대문으로 나가 잽싸게 문을 열어 주었다.
“김현 씨?”
“예, 맞습니다.”
“안녕하세요. 경품 행사에 당첨되셨죠? 축하드립니다. 어디에 설치해 드릴까요?”
“제 방에 설치해 주세요. 방은 현관 바로 오른쪽에 있습니다.”
설치를 하러 온 아저씨들은 커다란 박스를 들고 내 방으로 들어갔다. 캡슐은 커다란 계란에다가 지렛대를 고정한 것같이 생겼다. 아저씨들은 캡슐에 코드를 연결하고는 이름과 주민등록번호를 물은 후 캡슐에 입력시켰다.
“설치가 끝났습니다. 이 붉은색 버튼을 누르면 캡슐 안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자세한 사항은 이 설명서에 있습니다. 그리고 여기 사인 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