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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 팀장과 윤 팀장



강 팀장과 윤 팀장(1화)
프롤로그(1)


“너네들 그러다가 미운 정 든다.”
서로 의견이 맞지 않아 머리를 맞대고 이것저것 말다툼을 하는 우리를 보며 가볍게 툭 말을 던지시고 지나쳐 가는 과장님께, 동기이자 입사한 지 8개월 차 되던 나와 그 녀석은 목에 핏대를 세우고 고함을 내질렀다.
“절대로 그럴 일 없거든요!”
둘이 동시에 외치고 나면 또 동시에 기분이 나빠져서 서로를 노려보기 일쑤였다.
“어이구. 절대로 그럴 일이 없어? 이 양반아. 네 주제에 나 정도면 감지덕지지.”
내가 이렇게 따지면 녀석은 적군을 코앞에 둔 병사가 총을 장전하듯 목부터 큼큼 하며 다듬고서는, 같은 사무실의 여사원들이 유난히 눈길이 간다고 칭찬하는 그 고운 입술을 떼어 냈다.
“감지덕지라는 말의 의미를 잘 모르는가 보구나, 너.”
“왜 몰라? 너 같은 짠돌이가 나 같은 우아한 여자를 만나는 걸 의미하는 거지?”
“짠돌이? 미안하지만, 된장녀한테는 관심이 없어요, 나는.”
이 타이밍에선 언제나 그러하듯, 과장님이 대리님을 힐끔 쳐다보며 하는 말씀이 들린다. ‘쟤들 또 시작한다.’라고.
남들의 구경거리가 되는 것은 싫었지만 더 싫은 건 그 녀석에게 처참하게 백기를 들고 지는 것이었다. 나는 그 녀석을 이기고 싶었고 기어코 꺾어 버리고 싶었다. 비록 그게 쓸데없고 유치한 말다툼에 불과할지라도 기필코 그러고 싶었다.
“된장녀? 내가 왜 된장녀야?”
“나보고 짠돌이라고 하니까.”
“그게 말이 되냐?”
“말이 안 될 것도 없지.”
“된장녀란다, 진짜. 이 남자가 어디서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로 사람 성질머리를 건드려?”
“귀신이 씨나락 까먹는 소리 듣기나 해 봤어?”
“들어 봤다. 왜.”
“거짓말하고 있네.”
싸우고 있는 우리 둘을 직원들은 쯧쯧 혀를 차며 바라보았지만 어느 누구도 말리지 않았다. 주임님도 대리님도 과장님도 심지어는 팀장님마저 그저 막내사원들의 싸움을 재미있다는 눈빛으로 쳐다볼 뿐이었다. 마치 그것은 막상막하의 점수로 진행되는 야구 경기를 보는 것처럼 흥미진진하게 빛나고 있었다.
“거짓말 같으면 우리 집에 직접 와서 들어 보든가.”
“내가 너네 집을 왜 가냐? 미쳤냐?”
“너 원래 미친 애 아니었냐? 나는 미친 애라서 말을 고따구로 하는 줄 알았지.”
거짓말 같지만 이것이 26살 다 큰 어른들의 유치한 대화였다. 여기서 더 거짓말 같은 건, 정말 아무도 우리 둘을 말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어쩌냐? 이따구라도 잘만 살아가는데.”
“사내새끼가 쪼잔하게 한마디를 안 져 줘, 왜?”
“그러는 너야말로 연약해야 할 여자가 왜 그렇게 억세게 구는데.”
사실 우리 둘은 알아 온 시간에 비해 서로를 너무 잘 알고 있었다. 자신의 실수나 싫어하는 부분을 너무나 정곡으로 찔러 버리는 바람에 더 불같이 화를 냈던 것인지도 모른다. 이때의 나는, 그저 자기 잘난 맛에 사는 이 인간이 미웠고, 그래서 단점을 찾는 데에만 혈안이 되어 있었다.
“재수 없어, 너.”
“You too.”
“하.”
“하. 같은 소리 하고 있네. 아무튼 이거 다 작성해서 오늘 나한테 이메일로 보내라. 너랑 더 이상 말하기 싫다.”
“야. 나도 마찬가지거든? 윤준호!”
녀석이 내 일갈에 눈썹을 구기며 나를 쳐다보기에 나도 눈을 부릅떴다. 서로가 아직도 분에 못 이겨 한참을 노려보다 녀석이 자기 자리로 돌아가고, 나는 모니터로 시선을 돌리고 나서야 사무실엔 평온이 찾아왔다.


1화(1)


난희는 출근을 하면서 벌써부터 피곤함이 몰려오는 것을 절실히 느낄 수 있었다. 달력을 보아하니, 오늘이 벌써 출장을 간 ‘원수’가 돌아오는 날이었다. 대충 보름 정도 되는 시간 동안 자신을 괴롭히고 터치하는 원수가 없어서 편하고 안락한 생활을 해 왔는데, 그 원수가 다시 돌아온다는 생각을 하니, 한숨이 저절로 터져 나왔다.
그러자 옆에서 잠자코 앞만 쳐다보고 있던 양 대리가 난희를 웃음 반, 안타까움 반이 섞인 조금은 우스꽝스런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윤 팀장님 돌아오는 게 그렇게도 싫어요?”
“양 대리 같으면 좋겠어?”
난희가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그러다가 이내, 입술을 삐죽 내밀고 울상이 되어 버렸다. 윤준호. 다시 돌아온 윤준호는 얼마나 더 강해져 있을 것인가? 이번 출장의 목적이었던 프로젝트가 성공적으로 끝나서 본부장님이 포상 휴가에 휴가비까지 직접 지원해 주신다는 소문이 있던데……. 그 잘난 척을 얼마나 하겠냐고. 얼마나.
“그래도 제가 볼 때는 강 팀장님하고 제일 친한 건 윤 팀장님인 거 같아요.”
“그래? 그래 보여? 양 대리가 보기에는?”
“네. 그것도 엄청 친해 보여요. 이번 신입 애들도 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모양이던데요? 둘도 없는 절친 같대요.”
터무니없는 양 대리 말에 난희는 골이 다 흔들리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렇게 아웅다웅 원수가 따로 없는데, 남들에겐 둘도 없는 절친처럼 보인다니, 요즘 애들은 눈을 발바닥에다가 붙이고 다니는가 보다.
윤준호. 직함은 팀장. 현재 나이는 먹을 만큼 먹어 주신 32살. 30대 초반치고는 뭘 그렇게도 잘 챙겨 먹었는지, 반들반들한 얼굴이 딱 20대 초반 정도로 보인다.
훤칠한 키와 잔근육이 붙어 있는 몸매에, 그것이 적절하게 드러나도록 입는 슈트까지. 처음에 그를 봤을 때, 난희는 ‘세상에. 아직도 이 대한민국 땅에 저런 남자가 존재하고 있다니, 저런 사람들을 보고 흔히들 남신이라고 말하지.’ 하며 감탄을 했다.
그 정도로 준호는 모든 여자들이 한눈에 반하기 딱 좋은 그런 타입이었다. 그리고 보통의 여자들과 별다른 점이 없었던 난희 역시 빗나가지 않고 준호에게 반했었다. 그것도 아주 홀딱. 모두 한낱 추억이 되어 버린 6년 전 이야기지만.
“팀장님, 먼저 올라가세요. 저 커피 사고 스타킹 좀 사 갈게요.”
“같이 갈까?”
“아니요. 혼자 금방 갔다 올게요.”
“응.”
양 대리가 편의점으로 향하는 것을 빤히 바라보다가 난희는 시선을 돌려 하늘 높이 솟아 있는 회사 건물을 올려다보았다. 태양열을 잔뜩 받은 고층 빌딩 유리창들이 전부 반짝거렸다.
“아, 오늘따라 진짜.”
회사가 지옥의 무시무시한 동굴로 보인다. 바글바글한 박쥐들 사이에 대왕 박쥐가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기다리고 있을 것만 같은 아주 까마득한 동굴.
난희는 나지막이 한숨을 내쉬고서는 높은 구두를 신은 발을 힘차게 내디뎠다. 로비를 지나 모퉁이 하나를 꺾으니, 막 닫히려는 엘리베이터가 보였다. 한 번 올라가면 꽤나 기다려야 했으므로 다급한 마음에 발부터 쭉 뻗었다. 그러나 엘리베이터를 막아 세우려던 난희의 계획과는 달리, 미끄러운 스타킹에서 미끄러져 나간 구두가 슝 하고 엘리베이터 안으로 내던져졌다. 그리고 그 모습에 넋이 나간 난희를 두고 잔인하게도 문은 닫혀 버렸다.
“뭐, 뭐야?”
야속하게 엘리베이터는 난희의 구두 한 짝을 싣고 열심히 위로 올라가고 있는 중이었다. 젠장맞을. 출근부터 이게 무슨 염병할 짓이야? 난희는 구두를 신지 않은 발의 엄지발가락으로 간신히 균형을 유지하고 있었다. 아주 처참한 모습이었다.
“팀장님?”
때맞춰 같은 부서 직원들이 속속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들은 난희의 속도 모르고 인사를 하며 큭큭, 웃음을 참느라 바빠 보였다.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었다.
당장이라도 비상구 계단으로 몸을 숨기고 양 대리를 시켜 신발 좀 사 오라고 말하고 싶었으나, 맘 크게 먹고 55만 원이나 주고 산 신상 구두를 혼자 두었다는 죄책감이 더 컸기에 자리를 뜰 수 없었다. 제발. 어서 엘리베이터가 내려오기만을 간절히 바랄 뿐이었다.
1초가 10분처럼 흘러가는 긴장감 속에서 드디어 엘리베이터가 다시 내려왔고 문이 열렸다. 난희의 머릿속이 까맣게 타들어 가는 순간이었다.
엘리베이터 구석 어딘가에 분명히 혼자 덩그러니 누워 있어야 할 구두를 찾는데, 없다. 난희는 구두가 없는 것을 확인하고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는 와중에도 혹시 출근하는 준호가 보고 비웃을까 봐서 재빠르게 비상구를 향해 달려갔다.

웃겨서 혼자 타고 있는 엘리베이터에서 그만 박장대소를 터트려 버렸다. 닫히던 찰나의 문틈으로 흰자를 훤히 다 드러내고 목젖까지 보이며 놀란 표정으로 구두를 집어 던지던(?) 난희의 모습이 머릿속에서 떠나지를 않았기 때문이다.
“미치겠다, 강난희.”
준호는 난희가 던져서 처참하게 내팽개쳐져 있는 구두를 집어 들었다. 엘리베이터가 열리고 준호는 곧장 사무실로 들어왔다. 미리 출근한 직원들이 모두 일어나 꾸벅 그에게 인사를 건넸다.
준호는 직원들의 인사에 눈길만 보내며 자신의 자리로 가서 구두를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앙증맞고 아담한 난희의 몸하고 딱 어울리는 자그마한 사이즈의 구두였다. 구두를 들어서 이번엔 손바닥 위에 올려 보았다. 자신의 손바닥보다 아주 조금 큰 사이즈였다.
“이게 들어가나?”
신기할 노릇이었다. 이렇게 자그마한 것이 어떻게 들어가지? 그건 그렇고 자꾸 웃음이 터져 나왔다. 1층 엘리베이터 앞에서 구두 한쪽 없이 무슨 표정과 무슨 포즈로 낙담해하고 있을지, 궁금했고 또 보고 싶어 죽을 것만 같았다.
그 곤란한 표정을 보며 아침부터 고소함을 느꼈다. 그러다가 문득 직접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구두를 가지고 다시 아래로 내려가려고 발걸음을 옮기려던 때였다.
“아휴, 나 진짜 미쳐 버려.”
밖에서 난희의 짜증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준호가 빠끔히 고개를 내밀고서는 소리가 나는 쪽을 살폈다. 온갖 인상이란 인상은 다 쓰고 있는 난희가 절뚝이며 들어오고 있었다. 출장을 나가 있는 보름 내내 생각이 나고, 심지어는 꿈에서까지 등장했던 난희가 말이다.
“팀장님! 왜 그러세요? 구두 한 짝 어디다가 두고 오신 거예요?”
단연, 맨발인 한쪽 다리를 절뚝거리면서 들어오는 난희는 톡 하고 건드리면 우왕 하고 눈물을 터트릴 것 같은 얼굴이라 사무실에 있는 모든 직원들의 이목과 궁금증을 끌기에 충분했다.
“나 글쎄! 구두를! 아, 나 기가 막혀서 말도 다 안 나오네. 몰라. 좀 진정되면 자세히 말해 줄게. 지금은 좀 아니야, 상태가.”
“아차, 강 팀장님. 윤 팀장님 오셨어요.”
“출근 벌써 했어?!”
“네.”
준호는 자기 자리에서 몰래 나와 자신에게 등을 보이고 있는 난희에게 살금살금 다가갔다. 난희와 대화를 하다가 자신을 발견하고 흠칫하는 직원에게 손가락으로 조용하라는 신호까지 보내면서 준호는 그녀에게로 아주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아니, 그 인간은 잠도 없나. 뭐 귀국하자마자 출근을 했어? 암튼, 혼자 부지런한 척은 다 해요. 그렇지 않아? 자기가 일 안 하면 회사 못 돌아간다니?”
“저, 팀장님.”
난희가 그제야 자못 심각한 얼굴을 한 직원을 발견했다. 직원이 눈짓하는 동선을 따라 돌아본 순간.
“아악!”
바로 코앞에 서 있는 준호를 보고 놀라 자지러지듯 고함을 터뜨렸다. 너무 놀란 그녀가 다리에 힘이 풀려 뒤로 벌러덩 넘어가려던 찰나에, 덥석 준호가 난희의 허리를 감싸 잡아 주었다. 그 바람에 난희는 온전히 준호에게 몸을 맡기며 놀란 토끼 눈으로 올려다보았다.
“윤, 윤준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