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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4화


잭스와 알파는 다급했다.
저 멀리서 들려오는 폭발음과 붉은 리자드맨 사냥꾼들의 비명 소리를 들으니, 상대가 하려는 일은 너무도 명확했다.
“미친. 설마 솔로잉으로 보스 레이드에 도전한다는 거야?”
“이곳의 보스 몬스터인 ‘붉은 리자드맨 킹’은 레벨이 65가 넘는 괴물인데, 설마…….”
믿을 수 없는 일이지만, 모든 정황은 그들의 상상이 진실이라고 가리키고 있었다.
늪지에 진입했을 때부터 살폈지만, 함께하는 동료는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쾌속전진(快速前進)하여 어느새 보스 몬스터가 활동하는 지점을 앞두고 있었다.
‘만약 놈이 레이드를 하다가 게임 오버를 당하면 형님이 세운 계획은 완전히 망가진다.’
‘절대로 그렇게 내버려 둘 순 없다고!’
평소에는 서로 경쟁심을 불태우던 잭스와 알파지만, 이 순간만큼은 한마음, 한뜻이었다.
은밀히 움직이는 것도 포기한 채로 전력을 다해 라이프가 사냥을 하고 있는 지점으로 달렸다.
그들을 관찰하고 있는 매서운 시선이 있다는 것도 눈치채지 못한 채로…….

***

[준비해. 거의 다 도착했으니까.]
‘나도 알아.’
[그나저나 난 언제 소환해 줄 거야?]
‘아직은…… 때가 되지 않았어.’
[쳇!]
보채는 다솜을 달래며 라이프는 완벽하게 준비된 덫을 바라보았다.
이곳은 늪지대. 지금 라이프가 있는 곳은 속이 전혀 보이지 않는 탁한 물들이 무릎 높이에서 찰랑거리는 곳이었다.
‘뭔가를 숨기기에는 최적의 장소지. 그리고 시야도 좋고.’
라이프는 머더러들의 습성에 대해서 잘 알았다.
소드 앤 매직을 시작하기 전까지 플레이한 ‘라스트 워’에서 지겨울 정도로 머더러들과 전투를 벌였으니까.
그들이라면 목표물이 허무하게 사라지는 것을 결코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분명 준비했던 계획들마저 포기한 채로 이곳을 향해 달려오겠지. 하지만 은밀함을 잃은 어새씬은 이미 내 적이 아니야.’
라이프가 걱정하는 건 오직 하나였다.
은신 스킬을 사용한 채로 인내심을 갖고 주위를 맴도는 것.
그것만큼은 라이프로서도 감당하기 힘들었다.
아무리 정신력과 집중력이 뛰어나다고 해도 언젠간 지치기 마련이고, 반면 상대는 다수의 인원으로 교대가 가능하니, 먼저 틈을 드러낼 수밖에 없기 때문이었다.
‘놈들을 다급하게 만들어야 해. 그리고 내가 준비한 무대 위로 초대하는 데 성공한다면, 승리의 확률은 더욱 올라가지.’
[그래서, 얼마나 오르는데?]
‘한 5%? 원래 90%였으니까, 이제 95%쯤 될 것 같네.’
[……아우, 저렇게 건방 떨다가 코가 한 번 납작해져야 하는데.]
얄밉다는 듯 눈을 흘기는 다솜에게 열심히 달려오고 있을 머더러들의 위치를 물었다.
들어보니 이제 지척이다.
라이프는 살짝 눈을 감고 더러운 늪지 속에 몸을 숨기고 있는 언데드 몬스터들의 위치를 느꼈다.
가장 외각의 스켈레톤 나이트부터 시작해서 가장 근접한 거리에 숨은 스켈레톤 메이지까지…….
이것은 마치 거미줄과 같은 형상이었다.
한 번 들어온다면 어떻게 해도 빠져나갈 수 없는!
[거의 다 왔어. 5, 4, 3, 2…… 바로 지금!]
쒜에엑―!
다솜의 목소리가 끊어지기 무섭게 날카로운 파공성이 귀를 자극했다.
라이프는 미리 준비해 놓은 본 쉴드를 소리가 들려온 방향을 향해 본능적으로 펼쳤다.
까가가강―!
마치 우박이 벽을 두드리는 것마냥 시끄러운 소음을 울리며 투척된 암기가 뼈의 방패를 뚫지 못하고 바닥으로 떨어졌다.
동시에 라이프가 눈으로 식별할 수 있는 위치에서 플레이어 둘의 그림자가 아지랑이처럼 사라져 버렸다.
거의 달인의 경지에 이른 은신(隱身) 스킬!
하지만 라이프에게도 준비한 패가 있었다.
쿵―!
라이프가 새롭게 얻은 거대한 낫의 손잡이로 바닥을 두드리는 순간, 숨어 있던 언데드 몬스터들이 일제히 몸을 일으켰다.
“헛!”
라이프가 서 있는 곳으로 향하는 모든 진로를 둘러치고 있는 언데드 몬스터들의 등장에 은신 스킬을 사용해 접근하던 잭스가 당황하여 발을 헛디뎠고, 그 순간 주위에 있던 언데드 몬스터들이 일제히 달려들었다.
서걱, 서거걱―!
“컥! 이, 이것들이…….”
어새씬들은 정면 승부에 약하다.
하지만 잭스는 57레벨에 수많은 실전으로 단련된 플레이어였다.
언데드 몬스터들에게 둘러싸여서 일방적으로 수세에 처하긴 했지만, 잠깐의 시간 정도는 벌어줄 것이다.
‘이게 어부지리(漁父之利)라는 건가?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친구. 내가 곧 네크로맨서를 무력화시켜서 구해주도록 할 테니.’
다행히 은신 스킬이 깨지지 않은 알파는 입가에 감출 수 없는 미소를 매단 채로 라이프에게 접근해 갔다.
잭스의 스킬이 해제된 덕분에 언데드 몬스터들이 모두 그쪽으로 몰려가서 여긴 허허벌판이었다.
게다가 경쟁자의 발이 묶여 있으니, 이것이야말로 겹경사가 아니던가.
알파는 그렇게 조심스럽게 접근해서 어느덧 라이프의 지척까지 도착했다.
그러고는 조심스럽게 ‘미르돈의 단검’을 머리 위로 들어 올렸다.
일단 찔리고 나면 초당 30의 대미지를 주는 극독(劇毒)의 효과를 내포하고 있는 단검이었다.
PK에 탁월한 효과가 있는 무기로, 이번 임무를 위해 모처럼 들고 나온 알파의 애병(愛兵)이었다.
‘일단은 제압을 하라고 했으니, 팔 정도는 잘라 버리고 힐링 포션으로 목숨만 살려두면 되겠지.’
그런 결심을 하고 조심스럽게 공격을 하려는 순간, 알파는 본인의 귀를 의심할 만한 내용이 담긴 저음의 목소리를 듣게 되었다.
“쥐새끼가 뒤쪽에 하나 더 있었네.”
‘뭐?’
퍼억―!
“큭!”
라이프의 돌려차기에 복부를 얻어맞은 알파는 멍한 표정으로 은신 스킬이 깨져서 모습을 드러낼 수밖에 없었다.
“도, 도대체 어떻게?”
탐지 스킬은 시프 클래스에서 탐험가로 2차 전직을 하여 관련 스킬을 얻거나 마법사의 속성 중 ‘대지’를 선택하여 해당 스킬을 얻는 방법밖에 없었다.
죽음의 그림자 길드에서 이번에 정예를 파견하며 라이프에 대한 정보를 철저하게 조사하여 알려줬는데, 분명 조사한 내용 어디에도 탐지 스킬에 관한 것은 없었다.
‘그런데 어떻게…….’
알파는 의구심으로 가득한 시선을 라이프에게 던졌다.
반면 라이프는 ‘쯧쯧’거리면서 혀를 찼고, 이내 한심하다는 듯 내리깐 시선으로 말했다.
“어차피 들킨 것을 뭐가 그렇게 중요하다고. 어차피 네놈들 목적은 PK 아닌가?”
뿌득―!
자존심을 짓밟은 라이프의 발언에 이마에 힘줄이 돋은 알파는 기습적으로 단검을 휘둘러 목덜미를 베어갔다.
퍼억―!
“컥!”
하지만 이미 은신 상태가 풀린 이상 라이프의 직관(直觀) 능력에서 벗어날 순 없었다.
교모하게 알파의 공격을 피한 라이프는 영혼 살해자의 손잡이를 역으로 찔러 넣어 복부를 다시 한 번 타격했다.
“크으…….”
“아래를 보니까 이제 좀 알 것 같아?”
“……?”
발이 잠겨 있는 늪지를 가리키는 라이프의 손가락.
분한 표정으로 그것을 바라보고 있던 알파는 잠시 뒤, 눈을 부릅뜰 수밖에 없었다.
살짝 라이프를 향해 걸음을 떼어놓으려는 순간, 퍼져 나가는 동심원(同心圓).
라이프가 괜히 이들을 이곳으로 유인한 것이 아니었다.
아무리 은신 스킬이 냄새와 소리까지 지워준다고 하지만 땅을 깊게 밟으면 발자국이 남기 마련이고, 물가에서 걸으면 잔물결이 일어날 수밖에 없던 것이다.
‘완전히 당했군.’
이건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보스 몬스터 레이드에 홀로 도전할 것 같은 모양새를 보여 알파와 잭스에게 깊이 생각할 만한 시간을 주지 않았고, 은신 스킬에 대한 이들의 자신감을 역으로 이용했다.
별다른 대책도 없이 은신 스킬을 사용하여 무작정 돌진했던 두 머더러는 결국 이런 위기의 상황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빌어먹을.”
“할 말은 그게 끝?”
“죽엇!”
알파는 쿨타임이 돌아오자 재차 은신 스킬을 사용하려고 했지만, 라이프가 영혼 살해자를 매섭게 휘둘러서 집중을 방해했다.
어쩔 수 없이 접근해서 단검을 휘둘러 오는 알파의 몸짓.
라이프는 침착하게 그것을 걷어낸 다음, 다솜의 도움으로 무빙 캐스팅을 완성하여 슬로우 마법을 걸었다.
“이.이. 개.애. 자.식…….”
스피릿 속성이 5% 강화되면서 슬로우 스킬의 위력도 한층 늘어났다.
얼핏 봐도 상당히 느려진 본인의 스피드에 적응이 되질 않는지, 단검으로 라이프를 견제하며 뒷걸음질 치는 알파지만, 그렇게 겁을 집어먹는 순간 눈곱만큼의 승산도 남아 있지 않게 되었다.
“헙!”
[어차피 썩어 문드러질 몸뚱이…… 내게 내놔라!]
주위에서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던 레이스가 알파의 몸에 파고들었다.
그때부터 지끈거리는 두통이 시작되고, 몸은 슬로우에 걸려 뜻대로 움직이질 않았다.
필사적으로 접근해서 공격하려고 했지만, 장난치듯 공격을 회피하며 커즈 마법까지 걸어버리는 라이프였다.
“크억!”
그러는 동안 언데드 몬스터들에게 포위당했던 잭스가 게임 오버를 당해 버렸다.
필사적으로 버티면서 다시 은신 스킬을 사용하려고 했지만 언데드 몬스터들은 틈을 주지 않았고, 결국 정면 승부에 약한 어새씬의 특성을 극복하지 못한 채 처참한 최후를 맞이한 것이다.
“우릴 가지고 놀다니…….”
“어차피 네놈들은 날 상대로 그보다 더한 짓거리를 할 계획이었을 텐데? 내 말이 틀렸나?”
“…….”
머더러가 하는 짓거리야 빤했다.
게다가 라이프처럼 원한을 품은 목표를 상대로 한다면 더욱더…….
그렇기에 라이프는 망설이지 않고 검지로 알파를 가리켰다.
달그락, 달그락―!
기다렸다는 듯 달려드는 스켈레톤 나이트들.
알파는 쉽게 당하지 않겠다는 듯 필사적으로 저항했지만, 라이프가 건 디버프까지 감당하며 오래 버틸 수 있을 만큼 대단한 플레이어는 아니었다.
띠리리링―!
여유롭게 늪지의 물살을 헤치며 전리품을 수거한 라이프는 삐죽 아랫입술을 내민 다솜을 보며 말했다.
‘왜? 나 혼자 끝내 버려서 그래?’
[알면서 그걸 왜 물어보니? 혼자만 신나 가지고.]
‘처음부터 네 몫은 남겨둘 생각이었어. 저번에 봤던 검둥이 알지?
[검둥이? 아, 그 검은색으로 도배한 플레이어?]
‘어. 그 녀석은 너한테 맡길게.’
[정말? 정말이지? 나중에 가서 말 바꾸면 안 된다?]
얼른 새롭게 얻은 몸의 성능을 시험해 보고 싶은 다솜에게 체험살해현장을 넘겨주는 건 정말 탁월한 선택이었다.
저번 습격 때 제대로 승부를 가리지 못했으니 마무리를 짓고 싶은 마음도 있을 테고, 이곳에 온 적들 중 리더로 보이니 그만큼 다솜도 체면이 서는 일이었다.
[그런데, 그때처럼 은신하고 도망치면 어떻게 해?]
‘아아…… 그건 방법이 있으니 너무 걱정하지 마. 그것보다 놈이 은신하기 전에 타이밍을 잡아야 하니까 확실하게 감시하라고. 절대 놓치지 말고.’
[알았어. 내가 눈 크게 뜨고 지켜볼게.]
다솜이 개구리처럼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자기만 믿으라는 듯, 가슴을 주먹으로 몇 번 두드렸다.
확실히 다솜의 정찰 능력이 대단하다는 건 이미 검증이 된 상태였기에 라이프는 고개를 끄덕여 주며 새롭게 얻은 전리품의 내역을 확인했다.
생각보다 제법 두둑한 골드와 레어 등급의 단검을 필두로, 매직 등급의 아이템도 세 개나 얻었다.
‘역시 머더러 플레이어를 사냥하는 게 가장 수익이 좋단 말이지.’
머더러들이 저지른 범죄행위에 대한 페널티로 그들은 노멀 플레이어보다 게임 오버의 페널티를 두 배로 받게 된다.
소지금도…… 그리고 드랍하는 아이템도.
덕분에 라이프만 기분이 좋아졌다.
애초의 목적이었던 늘어난 실력의 검증도 충분히 해냈고, 생각지도 못한 아이템들까지 얻었으니.
‘그리고 지겨운 악연도 이제 끊어낼 수 있을 테니까.’
저번 습격 때는 비등비등했지만, 이번에 압도적인 힘으로 상대를 처리한다면 더 이상 덤빌 엄두를 내지 못할 것이다.
머더러에게는 한 번의 게임 오버가 정말 치명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을 정리하며 라이프는 느긋하게 늪지 너머를 응시했다.
잠시나마 두려움이라는 감정을 느끼게 했던 상대의 출현을 기대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