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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서전 1권(20화)
第八章 고서의 주인이란(3)


정신이 없었다는 표현이 적당할 정도로 공황 상태였다. 그래서 내가 집에 도착해 방에 들어가 가지런히 앉아 있다는 사실을 자각한 것은, 전적으로 귓가에 꽂히는 날카로운 음성 때문이었다.
“……듣고 있어, 일원!”
“어? 어. 말해.”
너무 놀라서 란이 날 이름으로 불렀다는 것은 조금 후에 깨달았다.
내 방 안에는 사부와 란이 앉아 있었는데 분위기가 자못 심상치 않았다. 대체 무슨 일인지 들어 보기로 했다.
무엇보다 감정 표현이란 게 거의 없던 란이 꽤 격정적이었다.
“저 늙은 인간이 날 죽이려고 한다!”
“아 그래?…… 뭐! 사부가?”
“그렇다! 저 땡중은 못된 인간이다!”
씩씩거릴 줄도 아는지 숨을 거칠게 몰아쉬며 잘 움직이지 않는 팔로 란은 사부를 가리켰다. 사부 역시 황소처럼 거칠게 콧김을 내뿜고 있었다.
나는 어안이 벙벙했다. 사부는 물이 가득 든 바가지를 들고 펄펄 뛰고 있었다. 신기하게도 바가지 안에 든 물은 한 방울도 밖으로 새지 않았다.
“저 망할 고서가 누굴 살인자 취급해! 죽이는 게 아니라 살리려는 게다!”
“사부 진짜 아니에요? 전에도 란을 죽이자고 했잖아요?”
“제자야 날 믿어라. 절대 해치려는 의도가 아니로다. 물 좀 마시라고 한 것뿐이라고!”
억울하기 짝이 없다는 태도로 사부는 말했다. 확실히 물이 든 바가지로 내려쳐 죽이려는 태도로 보이지는 않았다. 아니, 좀 화를 내니 그럴 것도 같다. 어쨌거나 내 사부가 선뜻 선의를 베풀 사람으로 보이지는 않기에 의심은 사라지지 않는 것이다.
“정말이야?”
란을 보며 물으니 란은 물이 든 바가지를 증오의 시선으로 노려보았다.
“물이 닿으면 나는 죽는다. 그런데 물을 몸 속으로…… 그러니까 저 못된 늙은 인간은 날 죽이려 한 거다!”
잠시, 생각해 보았다. 그녀는 달마역근경, 고서다. 보통 사람의 개념으로 생각하면 아니 되는 어딘가 특별한 구석이 있을지도 모른다.
“물이 닿으면 죽는다고?”
“그것도 모르는가. 책은 물에 젖으면 죽어.”
설혹 죽진 않더라도 치명상이다, 라는 말은 이미 귓등으로 넘겼다.
“너…… 여태 물 한 모금 안 마신 거냐? 내 여동생의 몸을 멋대로 망가뜨리지 마!”
살인을 저지를 뻔한 사람은 란이었던 것이다.
고개만 젓는 것으로 완강하게 거부 의사를 표시하는 란의 손목을 부여잡았다.
“일원. 나는 죽기 싫다.”
“진지하게 말해도 소용없어. 마셔!”
그 뒤로 나는 꽥꽥대는 미령이의 몸을 차지한 란을 붙잡고 물을 마시게 한 것이다.
사실 란은 원래 달마역근경이라는 책이었으므로 물을 기피하는 것은 이해가 간다. 하지만 현재 란이 차지하고 있는 몸은 인간. 수분을 섭취하지 않으면 곤란하다고.
나는 고통에 몸부림치며 물을 다 마시고 켁켁대는 란을 바라보다 이런 생각이 들었다.
“너 설마, 세안도 하지 않은 거야?”
“그, 그건 또 뭔가?”
“더럽혀진 피부에 물을 끼얹어 청결히 하는 거다.”
녀석은 나를 뚫어지게 바라보며 무거운 음성으로 말했다.
“일원. 물은 싫다.”
네 의사 따위, 필요치 않아.
그 뒤로 사부와 내가 란의 몸을 붙잡고 냇가로 가 집어던졌음은 두말 할 것도 없다.

물론 나는 충분히 반성하고 있었다. 란이 차지한 몸은 내 여동생인 미령이의 육신. 관리를 소흘이 한 내 탓이란 건 충분히 알겠다. 하지만 내 여동생의 몸이면서도 고서라는 특별한 존재였기에, 또 여러 가지 복합적인 상황들 때문에 미처 신경을 못 썼다.
변명이란 건 알지만 정말 머리가 터져 버릴 것 같은 기분이었다.
특히나 류진룡에게 들었던 그 말은, 나로 하여금 더욱 머리에 고통을 주게 만든 것이었다.
“망설이는 이유를 모르겠다.”
물이 닿자마자 경직을 일으킨 듯이 빳빳하게 굳어 고통스러움을 몸소 표현하던 란이었는데, 그래도 개운함을 느꼈는지 지금은 평상시대로 돌아와 있었다. 역시 내 여동생이지만 씻기고 나니 정말 예쁘다.
“무슨 말이야?”
란은 내가 준 빗으로 덜 마른 머리카락을 엉성하게 빗고 있었다. 머리를 감고 빗질을 안 하면 죽을지도 모른다고 농담 삼아 말했는데 란은 진심으로 받아들여 저렇게 열심이었다.
“고서와의 계약. 일원은 망설이고 있어. 어째서지?”
대답 없이 가만히 란을 바라보았다. 정말 귀신 같이 남의 생각을 읽어버린다.
“읽히니까. 정확히는 의지를 보는 것이다. 듣는다고 하는 쪽이 맞겠군.”
“으에엑!”
나는 얼간이 같은 소리를 내지르며 앉은 채로 뒷걸음질치다 벽에 뒤통수를 부딪쳤다.
나는 그야말로 깜짝 놀라 버렸다. 생각해 봐 마음을, 생각을 읽히는 거라고. 절대로 아 그래, 하고 넘어갈 수준의 진실이 아닌 것이다.
물론 사람의 생각을 읽는 독심술이란 게 있지만, 내가 본 독심술은 정말 생각을 읽는 것은 아니었다. 거지 생활을 하며 엿보았던 것인데, 약을 파는 약장수가 이 약을 먹으면 독심술을 사용할 수 있다며 약을 파는 것을 본 적이 있었다.
그때 그 약장수는 사람의 표정과 몸짓 옷차림 등으로 현재를 추측하며 약의 효과라 말했다. 조금만 생각해 보면 마음을 읽는 게 아니라 점쟁이처럼 잘 찍었다 할 수 있겠지만, 장사에는 꽤 많은 도움이 되었다고 기억한다.
하지만 그것과 정말 남의 마음, 의지와 생각을 읽는 것은 천지 차이다. 나를 보지도 않고 하는 말이니 분명 란은 내 상태를 보고 대충 찍은 것은 아닐 것이다.
무엇보다 인간의 상식을 초월하는 고서의 말이니까.
나는 잠시 침묵하다 입을 열었다.
“란. 너는 어떻게 생각해?”
사부는 갑갑하다며 산보 좀 다녀오겠다고 나가 집에 없었다. 집은 조용했고 바람에 문이 흔들리는 소리와 풀 벌레들의 울음소리. 그리고 란의 음성이 들렸다.
“너는 네 여동생을 구해야 하지 않는가. 비록 내 상태가 완전하지 않아 전력을 발휘할 수 없겠으나, 너와 영혼의 계약을 한다면 늙은 인간이 지닌 고서의 힘과 비등하게 낼지도 모른다.”
아무렇지도 않게 현존하는 최고의 고서의 힘 정도는 완전하지 않은 상태로도 충분하다고 말하고 있다. 몹시 놀라운 말이었으나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현 상태를 유지하는 걸로 벅차다고 했던 란의 말이 떠올랐다.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 잘은 모르겠지만 이 육체에 적응하면서 힘이 돌아오는 것 같다. 또 내 본체도 가까이 있고.”
란은 날 돌아보았다.
“네 목적을 달성하는 데에는 문제가 없다. 망설일 이유는 없어.”
“하지만…….”
“왜지? 이해가 되지 않아. 죽음도 불사하고 구하겠다 하지 않았는가. 아니면 네게 있어 미령이라는 인간은 그 정도의 가치가 있지 않은 건가.”
“그렇지 않아! 다만…….”
이가 악물렸다. 란의 말만 듣는다면 내가 고민할 이유는 없어 보인다.
분명 나는 ‘내 목숨을 바쳐서라도’ 라는 결심을 했고 그 결심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무엇보다 미령이가 최우선이니까. 그러나 그렇기에 더더욱 망설여지는 것이었다.
류진룡에게 들었던, 고서의 진실이 나를 괴롭히고 있었다.

“고서의 힘은 대단해. 내공을 증진시키는 것도 아니며, 상단전을 열어 선기를 받아들이는 것도 아니다. 우리쪽에서는 멋대로 영혼의 힘. 즉, 영력을 사용한다고 추측하지만 정확한 것은 모른다. 편하게 생각하면 기적이라 할 수 있지. 그 어떤 상식이라도 쉬이 뛰어넘는 것이 고서의 힘이니까. 하지만…… 애석하게도 한 가지 통용되는 상식은 있다네.”
그리고 류진룡의 말은 이렇게 끝을 맺는다.

“‘고서의 힘을 사용할수록 이성을 잃어 마침내 마인이 된다.’”
나는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는 란을 바라보았다. 놀라지는 않아, 란도 고서니까. 알고 있는 것이 당연할 테다.
“인간들이 영기의 소실로 인한 상태를 마인이라고 한다면, 맞는 말이다.”
딱딱한 움직임으로 요령 없이 하는 빗질에 머리카락이 마구 엉키고 있었다.
류진룡의 조부의 인생도 그렇게 엉켰다. 여리고 조금 소심하기도 한, 그러나 한없이 착하기만 했던 그는 고서 ‘천룡신검’의 사용으로 인해 영혼이 갉아먹혔다. 이성을 잃고 사랑하는 아내를 해치고 가족을 죽이고, 종내에는 만 명도 넘는 인명을 무차별로 학살하는 대참사를 불러일으켰다.
힘에는 대가가 필요하다.
그것이 고서에도 통용되는 한 가지 상식이며 내가 고민하는 이유였다. 그리고 고서의 주인들이 내 사부와의 정면승부를 피한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알면서도 말해 주지 않았다. 또한 그러면서도 계약을 진행하자는 듯 말하는 것은 화가 날 만한 일이었다.
“그걸 알면서도 계약을 하자는 거야? 내가 미령이마저 해칠지도 모르는데!”
“일원.”
차가운 음성으로 란은 날 불렀다. 헝크러진 머리카락 사이로 내 여동생의 몸을 빌린 란의 날카로운 눈빛이 날 관통하듯 바라보고 있었다.
“착각하지 마라. 나는 네가 나와 계약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지만 강요는 하지 않아.”
란은 단호하게 말했다.
오랜 세월을 살아온 고서답게 침착하고 고서답게 달관한 저 무료한 태도가 오히려 열 받는다.
그러나 란이 하는 말에는 아무런 대꾸도 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 말대로 란은 나에게 강요도 부탁도 않고 있다. 하지만 오히려 궁지에 몰린 날 유린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 것은, 내가 이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기 때문일까.
란은 말했다.
“선택은 네가 하는 것이다.”
여전히 란은 빗질을 계속하고 있었다.
단정하기 위한 빗질 행위의 결과가 이리저리 엉켜 풀리지도 않을 정도로 꼬이는 것을 나는 가만히 바라보았다.
마치 현재의 내 상황 같다는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문득 란의 빗질이 멈추었다. 정확히는 엉킨 머리카락에 묶여 버린 빗을 움직일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던 것이다.
“참, 이제 여덟 날이 남았겠군.”
굳이 상기시켜 주며 빗을 머리에 꽂은 채로 란의 움직임은 멈추었다. 나 역시도 더 이상 말을 하지 않고 침묵했다.
얄팍하지만 란과 계약하여 고서의 주인들로부터 미령이를 지키고 그 후부터 고서의 힘을 쓰지 않으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 보았으나 포기했다.
그들과 싸우려면 고서의 힘을 많이 사용해야 할 테고, 그 말은 내 영기가 많이 소실된다는 소리다. 무엇보다 애초에 어느 정도 사용해야 이성을 잃는지도 모른다. 위험 부담이 너무 큰 것이다.
목숨을 걸고 미령이를 지킬 생각이었다. 그것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그러나 그 선택이 과연 미령이를 제대로 지켜 낼지 장담할 수가 없는 것이었다.
머리가 아프다.
나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 걸까.
그렇게 고민 속에서 남은 팔 일이란 시간은 흘러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