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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성, 먼저 가서 객실을 잡아 놓도록 해. 혹 별채가 있으면 별채도 하나 준비하고.”
태산을 온전히 벗어나 태안 입구에 들어서면서 단주의 지시를 받은 군성은 경신술을 최대한으로 펼치며 빠르게 쏘아져 나갔다.
그제야 단주라는 사내가 잠시 멈칫거리고 한숨을 돌리자 일제히 기다렸다는 듯 우르르 모여들며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정확히는 단주의 품에 안긴 채 잠든 소천의 모습을 힐끔거리며 얼굴을 붉게 물들이면서.
“단주, 힘드시면 제가 모실까요?”
“아닙니다. 제가 모시겠습니다.”
“쯧, 됐다.”
여기까지 오는 한 시진 반 동안 저 같은 말만 벌써 다섯 번째다. 겉으로는 단주가 힘들 것을 염려하는 것 같지만, 내심은 왜 혼자만 안고 가느냐를 분명히 내포하고 있는 말이다.
물론 그런 사실을 단주 또한 모를 리도 없고, 작게 혀를 차며 그때마다 깔끔하게 일축시켰다. 무인이 무게도 나가지 않은 여인 한 명을 안고 가는 데 힘들 일이 뭐 있겠는가.
무엇보다 품 안에서 올라오는 따뜻한 숨결과 지나치게 자극적인 향은 설사 내공을 모조리 쥐어짜는 거리를 안고 가라고 해도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저기 그런데 비비 소저 말입니다. 그 음적 놈하고 아는 것 같은데, 어떻게 된 영문인지 모르겠습니다.”
“글쎄. 일단 깨면 물어봐야겠지.”
“우연일 겁니다. 솔직히 비비 소저 같은 분이 그런 음적을 상대할 리 없지 않습니까?”
“으음, 그건 그렇지.”
만약 소천이 깨어 있다면 그 성질을 못 이겨 속으로 오만 욕지거리를 퍼부었을 비비 소저라는 말을 강조하며 여기까지 오는 동안 내내 들었던 의문을 들먹였다.
내심 말은 안 했지만, 마지막에 했던 황서랑의 말이 마음에 걸렸던 것이다. 하지만 그런 고민도 잠든 소천의 얼굴을 보는 순간 이미 저만치 떨쳐 버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나 눈부신 외모로 보나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기품으로 보나 도저히 음적 따위와 어울릴 거라는 생각은 할 수가 없는 것이다.
무언가 자신들이 모르는 사연이 있든지, 아니면 너무도 착하고 여려 음적의 편을 들어준 것이라, 마냥 좋게 생각하고 스스로 납득할 수 있는 결론까지 내린 듯 저마다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저기 오는군.”
“단주! 만청루(滿晴樓)에 별채가 하나 있어 잡긴 했는데 객실은 세 개밖에 못 잡았습니다.”
“음, 할 수 없지. 다른 곳을 알아보든지 대충 끼어서 자든지 하고, 식사 준비는?”
“이 층에 자리를 마련해 놨습니다.”
반 식경이 지나 군성이 돌아오자 일제히 만청루를 향해 움직였다. 만청루에 들어가고도 별채까지 따라오려는 단원들을 보며 단주는 기가 막혔지만, 굳이 이해를 못 할 것도 없었다.
한창 혈기방장한 나이에 죽어라, 무공밖에 안 익힌 데다가 지난 몇 개월간 채화음적을 쫓아 잠시도 쉴 틈 없이 고생만 했으니 그 마음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문제다.
다만 남궁세가의 무사로서 체통이 있는지라, 말없이 노려보는 걸로 온갖 질투와 원망이 담긴 항변을 무시하며 유유히 별채 안으로 들어갔다.
“하아, 정신 차려야지. 이게 무슨 추태인지 모르겠군.”
침대에 소천을 조심스럽게 내려놓으며 단주는 넋이 반은 빠져나간 표정으로 소천의 얼굴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고는 머뭇머뭇 솜털같이 부드러운 얼굴을 쓰다듬어 보고 화들짝 놀라 떨어지기를 몇 차례. 도대체 뭐하는 짓인지.
그런 자신이 도저히 이해가 안 가는지 눈을 질끈 감고 중얼거렸지만, 결코 고개를 돌리지는 못했다.
어떻게 된 일인지 얼굴을 보고 있으면 시선을 뗄 수 없게 만드는 건 고사하고 참을 수 없는 욕정이라니.
그 이유야 타고난 순음지기와 선천요기, 거기다 양기를 들끓게 만드는 체향 때문이었지만, 그런 걸 알 리 만무한 단주는 이만저만 난처한 게 아니었다.
결국, 이대로는 무슨 짓을 할지 모르겠다는 생각에 눈을 질끈 감았다가 뜨고 짚었던 수혈을 다시 풀어 소천을 깨웠다.
“음, 여긴 어디…….”
수려한 미간이 살풋 찌푸려지고, 길게 휘어진 속눈썹이 파르르 떨리며 올라가니 곧 맑고 깨끗한 눈동자가 드러난다.
그런 소천의 모습을 처음부터 지켜보고 있던 단주의 얼굴이 더할 나위 없이 헤벌쭉 풀어지고 있었다.
“저, 저를 기억하십니까?”
“아! 대협이시군요. 제가 어찌 대협을 잊을 수 있겠습니까?”
뻔한 인사치레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었지만, 단주는 소천이 자신을 기억해 줬다는 사실만으로도 행복한 기분에 빠져들었다.
오죽했으면 아름답다 못해 신비함마저 느껴져 몽롱한 눈으로 소천을 바라보며 입에서 침이 흐르는 줄도 모르고 입을 헤― 벌리고 있을까.
본의 아니게 추태를 부리고 있는 이 사내가 이래 봬도 남궁세가에서도 꽤 촉망받는 후기지수로 이백 명으로 이루어진 청궁단의 단주였다.
물론 지금 이 모습을 단원들이 봤다면 망신살이 뻗쳤다고 갈아 치우자고 원성을 높일지도 모를 일이다.
“한데 여긴 어디입니까?”
“아! 여긴 태안에 있는 만청루라는 곳입니다. 산에서 정신을 잃어 제가 이리로 모셨습니다.”
수혈을 짚은 걸 뻔히 아는데 정신을 잃었다니. 순간 소천은 울컥했지만, 그런 걸 겉으로 드러낼 소천이 아니다.
오히려 차분하게 일어나 두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깊숙이 허리를 숙였다. 무림인들의 포권지례가 아닌 일반적인 예를 취한 것이다.
“왜, 왜 이러십니까?!”
“재생지은(再生之恩)에 고작 반배례를 올리는 것을 용서하십시오.”
“이, 이러지 마시오!”
재생지은, 죽을 목숨을 살려 준 은혜를 말함이다. 말이야 바른말로 이들이 아니었으면 소천은 무슨 꼴을 당했을지 모를 일이다.
또한 그 일로 인해 비록 채화음적이라 하나 상대를 죽여 의지와 상관없이 살인자가 되어 죄책감에 시달려야 했을 것이다.
무엇보다 황서랑을 똑 닮은 사내와 그 짓을 안 하고 넘어갔다는 사실에 소천은 십 년 묵은 체증까지 속 시원히 내려가는 것 같았다.
“마땅히 큰절을 올려야 하나 제가 상제의 몸이라 제대로 된 예를 갖추지 못합니다. 부디 너그럽게 이해해 주십시오.”
“아, 아닙니다. 한데 가족 중에 누가 상을 당하신 겁니까?”
“예. 한 분뿐인 조부께서 얼마 전에 타계하셨습니다.”
어느새 깊고 맑은 눈동자에 물기가 어리고 이슬 같은 옥루를 또르르 떨어트리니 보는 이의 처지에서는 억장이 무너지는 것 같은 슬픔이 덮쳐 왔다.
차마 다가가 안아 주지는 못하고 어찌해야 할 바를 몰라 안절부절못하고 있을 때, 문밖에 인기척이 들리며 곧 두 사람을 방해하는 무리가 나타났다. 바로 남궁세가 무사들이다.
“무슨 일이냐?”
“예? 아니, 저기 하도 안 오셔서 모시러 왔습니다.”
“쯧, 어련히 알아서 갈 건데 쓸데없이.”
우르르 몰려든 자신의 단원들을 보며 단주의 입에서 불만 가득한 퉁명스러운 말투가 튀어나왔다. 둘이 있는 시간을 방해받았다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그런 단주의 반응은 아랑곳없이 문을 빼꼼히 열고 고개만 디밀고 있는 무사들은 소천의 눈물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단주를 노려봤다.
도대체 무슨 짓을 했기에 저리도 슬픈 표정으로 울고 있느냐는 뜻이다. 기가 찰 노릇이지만, 변명을 늘어놓는 게 더 우스운 모양새니 어쩌겠는가.
단주는 무시무시한 기세로 쏘아보는 단원들을 보며 졸지에 모함받고도 애꿎은 관자놀이만 꾹꾹 눌러 댈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계시지 말고 들어들 오십시오.”
“예? 아! 예! 그럼,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천상의 옥음이 있다면 바로 이러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단원들은 휘청거리는 다리로 기다렸다는 듯 우르르 방 안으로 들어섰다.
제법 넓은 방 안에 열댓 명의 사내들이 들어서자 일순 꽉 차는 듯한 답답한 느낌이 들었지만, 소천은 어느새 눈물 대신 빙긋 미소를 머금었다.
그 순간 여기저기 터지는 작은 탄성 소리. 실제 소천의 미소 한 번에 지켜보는 사내들은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 듯한 충격을 받아야 했다.
이러다가는 소천이 한 번 웃을 때마다 벌렁거리는 심장 때문에 명이 점점 줄어드는 게 아닌지 걱정이 될 만큼 소천의 미소는 과히 환상적이었다.
“저, 혹시 실례가 안 된다면 채화음적 황서랑을 어찌 알고 있는지.”
여기저기 마른침만 꿀꺽 삼키는 와중에 단주가 어렵사리 질문을 던졌다. 별 관계가 아니라는 걸 믿고 있지만, 그래도 의문을 풀어야 했기 때문이다.
단지 그 물음에 소천은 순간 눈을 동그랗게 떴다. 결코, 놀라서가 아니라 단주가 말했던 황서랑이라는 말 때문이었다.
“예? 지금 채화음적 뭐라고 한 것 같은데.”
“아, 별호 말입니까? 황서랑이라고 했습니다만…….”
‘풉! 안 돼! 웃으면 안 된다. 웃으면 안 돼. 절대 웃지 말자. 여기서 웃으면 말짱 황 된다! 능소천, 참아. 참는 거야!’
소천은 순간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으려고 필사적으로 되뇌었다. 설마하니 황서랑을 닮은 외모가 실제도 별호로 쓰일 줄이야.
정말 평생을 그 외모 때문에 처참한 상황에 처했을 황서랑을 생각하니 기가 막히다 못해 측은지심까지 생겼다.
문제는 측은지심보다 웃음을 참기가 더 어려운 듯 고개를 푹 숙인 소천의 어깨가 파들파들 떨리고 있었다.
“왜 그러십니까? 어디 몸이라도 불편하십니까?”
“아, 아닙……니다. 명복을……빌어 볼까…… 하고…….”
혹여 몸이 불편한 게 아닌지, 일제히 몰리는 걱정스러운 시선에 소천은 고개도 들지 못한 채 띄엄띄엄 간신히 대답했다. 물론 소천이 거짓말을 한 건 아니다.
다만 내세에는 황서랑을 닮은 사람이 아닌, 진짜 말 못하는 황서랑으로 태어나길 빌었다는 게 문제지만, 어쨌든 명복을 빌긴 빌었다.
‘아이고, 씨불! 까딱했으면 큰일 날 뻔했네. 그보다 그놈이 나를 어떻게 아느냐를 묻는 것 같은데 뭐라고 하지? 다른 곳도 아니고, 남궁세가라면 나중을 생각해서라도 조심해야겠고. 쳇, 할 수 없네.’
소천은 겨우 웃음을 갈무리하고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앞으로 세 가지 체질을 찾아 천형을 벗어나야 하고, 만약 찾지 못한다면 아무나 붙잡고 양기를 흡수해야만 한다.
그렇다고 막무가내로 덤벼들 수도 없는 노릇이고, 선조들처럼 무림공적으로 몰리지 않으려면 행동거지 하나도 훗날을 생각해 조심하는 걸로 불미스러운 일을 미연에 방지하는 방법밖에는 없다.
말 그대로 변태 짓을 해도 아무도 그 말을 믿을 수 없게 제대로 인식을 심어 주자는 생각이다. 그런 면에서 채화음적을 편든 건 다소 골치 아픈 문제이기도 했다.
그러나 당사자가 영악한 소천이다. 이미 머릿속으로 모든 상황을 정리해 놓고 지극히 슬픈 표정을 지으며 천천히 고개를 들어 올렸다.
“후우, 아무리 죄를 지었다 하나 그리 불귀의 객이 되다니. 정신도 올바르지 못한 것 같았는데, 참으로 안되었습니다.”
도대체 누가.
“예? 정신이 올바르지 못하다니, 설마 황서랑 말입니까?”
“예. 저를 보더니 갑자기 비비라고 부르더군요.”
졸지에 황서랑을 정신병자로 만들어 놓고 소천은 태연하게 한숨을 내쉬며 심란한 표정을 지었다. 마치 불쌍해 죽겠다는 듯이.
문제는 그런 소천의 말을 이해 못 하는 무리는 순간 쥐죽은 듯 침묵이 맴돌다가 한순간에 웅성거렸다.
“그게 무슨…… 그럼, 소저의 방명이 비비가 아니라는 겁니까?”
“이런, 산에서는 상황이 여의치 않아 말씀을 못 드렸습니다만, 무언가 단단히 오해하신 것 같습니다.”
“예? 오해라니 무슨…….”
“저는 여자가 아닙니다.”
일동 침묵! 도대체 여자가 아니면 뭐란 말인가. 인세에 두 번 보기 어려울 정도로 아름다운 외모와 여린 몸, 옥음에 기가 막힌 향기까지.
여자가 아니면 남자라는 지극히 간단한 해답조차 찾지 못할 만큼 무리는 소천의 말을 이해 못 했다. 남자가 이리 아름다울 수는 없다는 판단에서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수줍게 웃던 소천이 한순간 환하게 미소 짓자 그 모습이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순간 뇌리에 떠오르는 의문까지 던져 버릴 정도로 멍하니 보고 있었다.
“저기, 그러니까 지금 소저…… 아니, 소협이란 말입니까?”
“예. 저는 날 때부터 몸이 약해 한 분뿐인 조부와 지금껏 태산 깊은 곳에서 자랐습니다. 그러다 조부가 돌아가시고 삼우제를 끝내고 조부의 유언에 따라 산에서 내려오던 길이었지요. 그러다 보니 다른 사람을 만나 볼 기회도 없었고 낯선 세상이 두렵기도 했지만, 평소 조부께서 말씀하시길 극기복례(克己復禮)하면 필시 좋은 이를 만나 친교를 쌓을 수 있다 하셨습니다. 비록 세상에 나온 첫날부터 여기 계신 여러 대협을 본의 아니게 방해를 한 결과가 됐지만, 그 황서랑이라는 분도 저를 해하려 했다는 생각은 하지 않습니다. 이런 제가 너무 어리석은지요?”
어쩌면 이렇게 태연자약하게 말도 잘하는지. 과연 이런 소천을 보고 누가 거짓이라 할 수 있을까. 물론 당연하게도 남궁세가 무사들의 반응 또한 한결같았다.
“아, 아닙니다. 어리석다니 그 무슨 당치도 않은 말을.”
소천은 슬픈 음색이 깃든 목소리로 조곤조곤 설명을 늘어놓으며 마지막으로 주위를 슥 훑어보았다.
그런 소천의 맑은 눈동자에 얼핏 물기가 어려 있었고, 그 모습에 무리는 가슴이 욱신거리며 미어지는 경험을 했다.
이미 이들에게는 소천이 여자가 아닌 남자라는 사실은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남자라고 아름다움이 사라지는 게 아니지 않은가.
오직 너무 순수한 소천이 혹여라도 이 험난한 세상에 상처를 입을까, 좌불안석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소협, 세상은 보기보다 험합니다. 나쁜 사람도 많고, 무조건 믿어서는 안 됩니다.”
“그렇습니다. 특히 이 무림은 상종 못 할 인간들도 넘치지요.”
“논어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삼인행필유아사(三人行必有我師)라, 세 사람이 길을 가도 스승을 만날 수 있고, 좋은 것을 본받고 나쁜 것은 경계하게 되므로 그 또한 가르침이 아니겠습니까?”
“그거야 그렇지만, 너무 좋게만 보면 안 되는데…….”
안타까웠다. 그것도 가슴이 타들어 가도록 몹시도. 아름다운 외모만큼이나 마음 또한 어쩌면 이리도 올바를 수 있는지.
무공을 익히고 이권 다툼이나 사소한 싸움으로도 사람을 죽이는 무림에서는 결코 두 번 다시 볼 수 없는 순백색이나 마찬가지인 순수함이었다.
만약 저 마음에 상처라도 입는다면 차마 견딜 수가 없을 것 같았다. 물론 그런 사내들의 얼굴에 떠오르는 감정을 읽은 소천은 속으로 방정맞은 쾌재를 불렀다.
“저기, 소협! 어디까지 가십니까?”
“초행길이라 제대로 찾을지는 모르겠지만, 개봉까지 가야 합니다.”
“아! 하면, 소협만 괜찮다면 동행해도 될는지요? 우리 남궁세가는 안휘성에 있어 얼마든지 시간을 낼 수 있습니다.”
소천은 이 말이 나오기를 기다렸다. 산에서 내려온 첫날부터 꼬인 상황을 보아 앞으로도 다분히 그럴 가능성이 넘쳤고, 호위를 받으며 갈 수만 있다면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더불어 이들과 동행하는 동안 계속 이 상태로 나간다면 남궁세가를 배경으로 소문도 삽시간에 퍼질 것이다. 그것도 좋은 쪽으로만. 그런 계산하에 소천은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그러나 대뜸 염치없이 받아들이기도 뭣해 양쪽으로 찢어지려는 입술을 갈무리하고 얼굴 가득 미안함을 담은 채 말을 이었다.
“하지만 은혜 입은 것만으로도 감당하지 못할진대 어찌 그런 민폐까지 끼칠 수 있겠습니까.”
“민폐라니요! 말도 안 됩니다. 우리도 가는 길이니 너무 부담 갖지 마십시오.”
단주의 말에 일제히 고개를 끄덕이고 소천은 머뭇거리다 어쩔 수 없다는 듯 미소와 함께 대답했다.
“불감청(不敢請)이언정 고소원(固所願)이라 했습니다. 그리 말씀해 주시니 염치불구하고 동행을 부탁드리겠습니다.”
소천의 대답으로 삽시간에 소란스러워졌다. 이 아름다운 얼굴을 한동안은 계속 볼 수 있다니.
동행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들은 마냥 기분이 좋았다. 물론 이들이 아무리 기분 좋아도 소천만큼은 아니었다.
‘우헤헤헤~ 좋았어! 이걸로 든든한 호위도 얻었고, 문제는 한동안, 아니 앞으로도 쭈욱 이런 상태로 가야 한다는 건데. 쳇, 성질이 제대로 죽어 줄는지 모르겠네. 뭐 훗날을 위해서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