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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본능 7화

2. 진강우(7)





작디작은 동생과 단둘이서 부모님을 기다리던 것이 일과였다. 그날은 동생에게 특별한 하루였고 나에게는 별반 다를 바 없는 똑같은 일상이었다.

부모님은 회사에서 퇴근하시자마자 동생의 손목을 잡아끌며 잔뜩 미소를 짓고 상냥하게 물으셨다.

‘차민아, 가서 맛있는 거 먹을까?’

동생은 그 이야기가 마음에 들었는지 즐거운 듯 방방 뛰어 대면서도 연신 내 눈치를 보았다.

‘엄마…… 근데 형은요?’

동생이 내 쪽으로 삿대질을 했다. 그러자 조금 전까지만 해도 천사 같던 부모님의 얼굴에서 잔혹함을 머금고 나와 눈을 마주쳤다. 공포감에 살이 떨리고 목소리는 나오지 않아서 두 눈만 깜빡거리며 벌벌 몸을 떨었다. 어김없이 세찬 비난과 멸시와 고통이 저주가 되어 내 머리 위로 쏟아졌다.

‘혼자서 굶든지 말든지 우리가 알 바 아니야.’

‘그치? 심차연.’



***



“허억!”

시원한 바람 소리에 눈이 뜨였다. 주변은 온통 까맣게 보였고, 고개를 돌려 보니 커다랗게 나 있는 창가 위로 부드러운 흰색 커튼이 휘날렸다. 두 눈을 깜빡이며 천장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하얀색의 천장과 더불어 불빛이 들어오지 않는 전등 하나가 어둡게 들어찼다.

어렸을 적 꿈을 꿔서 그런지 등은 식은땀에 축축하게 젖어 버렸다. 찜찜함과 답답함에 몸 구석구석 힘을 주어 보려고 힘을 써 봤다. 다행스럽게도 예상보다 몸 상태는 괜찮았다. 다리와 팔이 조금씩 저렸지만, 못 움직이거나 할 정도는 아니었다.

나는 상체를 들썩이며 간간이 숨을 골랐다. 가슴 언저리 쪽에 찌릿거리는 통증이 느껴졌지만, 이 또한 천천히 쪼개 가며 숨을 뱉어 내니 참을 만은 했다.

주위 환경을 보면 누가 봐도 병실이었다. 왜 이렇게 되었더라 싶었던 순간에 문뜩 무엇을 놓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대체 뭘까…… 도대체…….

“아! 윽.”

떠오르는 생각에 순간적으로 몸을 일으키자 가슴 통증이 심해져서 나도 모르게 비명이 터져 나왔다.

“심차연 씨?”

“허억, 헉.”

“…….”

아픈 가슴을 움켜쥐고 최대한 숨을 들이마셨다. 눈앞에 하얀색 빛들이 어른거리고 귀 뒤쪽으로 화한 열이 오르는 듯 두 눈이 핑 돌았다. 평소보다 몸이 이상해서 그런지 왠지 모르게 두려웠지만, 나는 이 감각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절대로 내가 이걸 모를 리가 없어. 회귀 전 이미 겪어 봤던 느낌을 잃어버릴 리는 없으니까.

조금 전 내 이름을 부른 쪽으로 힘겹게 고개를 돌려 보았다. 아…… 그는 존재만으로 나를 고통스럽게 하고 두근거리게 하는 진강우였다.

“아직 일어나지 말아요. 가슴 통증이 아직도 심해요? 여기는?”

“괘, 괜찮…… 아 윽!”

전혀 괜찮지 않아. 이게 어딜 봐서 괜찮아. 열심히 회귀 전 겪었던 일을 떠올렸고, 이 감각은 내가 가이드로 발현되었을 때 감각과 동일했다. 하지만 뭔가 찜찜한 기분은 감출 수 없었다. 동생이…… 내 동생이.

“강우 씨. 저 여기서 이럴 시간이 없어요. 저 동생 만나러 가야 하는데. 그러니까 저 좀 부축…….”

내 부탁에도 진강우는 무서울 정도로 진지한 표정이었다. 그저 씁쓸한 듯 입매를 다물 뿐이었다. 파트너였을 때는 서로의 감정이 공유되곤 했지만, 희한하게도 그와 내가 파트너가 아닌 시점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감정을 똑똑히 알아차릴 수 있었다. 안 돼. 말하지 마. 더는 듣고 싶지 않…….

“심차연 씨. 놀라지 말고 잘 들어요. 동생분 장례는 이미 끝마쳤습니다.”

“……네?”

내가 도대체 무슨 말을 들은 건가 싶었다. 장례라니? 정말…… 아냐. 이건 결코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그가 거짓말을 하는 것임이 틀림없어.

“거, 거짓말이죠? 강우 씨 저 놀리시는 거…….”

진강우는 고개를 내저었다. 거짓말이 아니다. 나는 머리를 무엇인가로 퉁 얻어맞은 느낌에 숨을 죽이고 말을 아꼈다. 머뭇거리는 그의 얼굴이 침통하게 변하더니 이내 내 손을 어색하게 맞잡았다. 파르르 떨리는 손끝이 확연히 느껴져서 비통스러움만 남겼다.

“심차연 씨가 깨어나기를 기다렸습니다. 근데 너무 오랫동안 혼수상태여서, 어쩔 수 없이 다른 가족분들을 찾아봤지만…….”

끝내 진강우가 말끝을 흐렸다. 더 무언가를 말할 듯해서 여전히 숨을 죽이고 그의 얼굴만 살폈다. 위로하듯 내 손을 어루만지던 진강우의 손길이 이내 멀어졌다. 푹 쉬어지는 한숨 소리와 어깨를 들썩이며 풀이 죽은 그의 모습이 침통하게 드러났다.

“결국, 다른 가족분들은 찾기가 어려워서 부득이하게 제가 발인까지 맡게 되었습니다. 다행히도 별로 힘든 점은 없어서 가능했네요. 힘든 상황이라 꼭 도와주고 싶었습니다. 심차연 씨도 제가 힘들 때 도와주셨으니까요. 장례 절차는 다행히도 심차연 씨가 준비해 두신 게 있어서 그것으로 해결했고 따로 크게 걱정할 건 없을 거니까, 안심하세요.”

눈을 동그랗게 뜬 채로 그의 말을 곱씹었다. 그러고 보니, 부모님이 사고로 돌아가신 후 만약을 대비해서 동생 앞으로 혹시 모를 보험금을 들어 놨었다. 이걸 이렇게 사용하게 될 줄이야……. 먹먹함이 가슴 한편에 걸렸다. 그나마 진강우와 다시 친해지려고 부단히 노력한 덕택인지 나 대신 큰일을 치러 준 그에게 고마움과 미안함이 앞섰다. 아무리 그래도 선뜻 해 주기 어려웠을 텐데. 정말, 그에게 할 말이 없었다.

사이가 너무 안 좋았던 탓일까. 잔인하고 비인간적이게도 동생이 죽었다는 말에 슬픈 감정은 일절 들지 않았고, 오히려 싸늘하고 침착한 나와 마주할 뿐이었다.

부들거리는 손으로 진강우의 옷자락을 움켜쥐었다. 바짝 잡고 있던 손 위로 차가운 그의 손이 다시 얹어졌다. 솔직히 말해서 아직도 믿지 못하겠어. 동생이 죽었다는 걸 인지하고자 하는 마음과 혹시나 살아 있을 것이라 희망을 품은 마음이 한데 뒤엉켰다. 그러나 이를 이미 인지한 듯, 묵직하게 나를 짓누르는 힘이 흥분한 내게 경고하고 있었다. 현실을 깨우치라고. 겁쟁이처럼 도피하지 말고 제대로 새겨들으라고.

“저도 거짓말이었으면 하는데, 사실입니다. 그래도 동생분은 가시는 길 외롭지 않도록 제가 곁을 지켰어요.”

그의 말 한마디에 나는 한층 더 미안함에 얼룩졌다. 당황스러운 마음에 계속 입술 표면이 바짝바짝 말랐다. 어쩔 줄 몰라서 입안 부드러운 살을 잘근 씹어 대며 그에게 되물었다.

“저…… 제가 얼마나 잠들어 있었어요? 이틀? 아니면 더…….”

“일주일입니다.”

“아.”

묵직한 말 한마디에 심장이 철렁 내려앉아 곤두박질쳐졌다. 바보같이 왜 이렇게 오래 기절해 있었던 거지? 회귀 전 동생이 사고를 당했을 때, 나는 때마침 가이드로 발현되었다. 그것도 A급도 아닌 어정쩡한 반편이였던 B급으로. 심지어는 내가 가이드가 되면서 충격에 몸져누웠던 기간도 고작 하루 정도였는데, 대체 왜 이번엔 일주일이나 기절해 있었던 거야. 대체, 왜? 그러면 동생은 지금 어디에……. 곰곰이 생각해 보니 역시, 이건 분명히 잘못된 거다. 그가 잘 설명해 줬지만, 흐름대로라면 절대로 이럴 수가 없어.

“혹시 착오가 있던 건 아니죠? 아니, 강우 씨 이거 아무리 생각해 봐도 뭔가 잘못됐어요. 시간대로라면 제 동생 아마 죽지 않고 지금 식물인간 상태일 건데. 아, 그러니까 저는…… 이게 무슨 말이냐면요……. 그, 그냥, 저 동생 좀 보게 해 주세요. 지금 제 동생 어디에 있어요? 네?”

쉬어서 제대로 나오지도 않는 목소리를 쥐어 짜내었다. 괜히 짜증이 나서 내 앞에서 동생의 부고를 알리는 그의 팔을 잡아 비틀고 꼬집었다. 분명히 아팠을 텐데, 그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묵묵히 이런 나를 받아 주기만 한다.

세상이 회귀 전과는 다르게 다 바뀌어 가는데, 왜 진강우 너는 그대로일까. 도대체, 왜. 이런 당신의 모습이 나를 이리도 비참하게 만드는 걸, 당신은 죽었다 깨어나도 모를 거야.

그가 날 바라보며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마음이 무겁고 힘들어서 힘겹게 그의 시선을 피할 수밖에 없었다. 이 모든 걸 조용히 지켜만 보던 진강우는 내게 말을 걸어왔다. 달콤쌉쌀한 그의 목소리가 마음에다 대고 대못을 박는다.

“동생분은…… 용미리 납골당에 안치된 상태입니다. 이게 납골당 호실 위치고요. 그게…… 안타깝습니다. 정말 진심으로요. 힘드실 걸 알아요. 그러니까 제가 퇴원할 때까지는 심차연 씨 곁에 있겠습니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함께 있을 테니까, 그냥 오늘은 이만 쉬는 게 좋겠네요.”

“…….”

그는 동정 어린 얼굴로, 나를 고운 인형 다루듯이 조심스럽게 잡아 침대에 도로 뉘었다. 더는 말할 기력이 없어서 그냥 그의 손길에 몸을 맡기며 하얀색 시트 위로 쓰러졌다. 내 손에는 그가 준 동생의 묻힌 납골당 쪽지가 들렸다. 나는 그 종이를 잃어버릴세라 손바닥에 꼭 쥐었다.

정말로 동생이 죽었구나, 싶었다. 이상하게도 슬프지 않았다. 동생과의 사이는 남보다도 못한 쪽에 가까웠으니 오히려 담담함만 들어서 기분이 오묘했다. 내가 이 정도로 가족이라는 존재가 싫었던 건가. 사락거리는 이불에 등이 닿자, 차가운 감각이 온몸을 훑고 지나갔다. 버겁고 뼈아픈 감각에 최대한 상체를 웅크려 동생의 죽음 앞에 추악해진 나를 가렸다.

차갑게 식어 버린 내 몸 위로 바스락거리는 하얀색 이불이 덮어졌다. 잔잔히 그의 숨소리와 나의 숨소리가 동시에 맞물려 들려왔다. 그래도 혼자라는 사실이 아님에 안도감이 밀려왔다.

틀어져 버린 과거 때문에 뒤늦은 죄책감만 들었다. 이게 다 내가 회귀한 후에 했던 행동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이 두려웠다. 그냥 나를 회귀 시켰던 진강우의 말대로 조용히 살았어야만 했을까. 그랬다면 동생은 적어도 목숨만은 부지했을 수도 있었을 텐데. 가족 같지도 않던 동생이었지만 그래도. 동생의 죽음은 못내 마음이 쓰였다. 그저 얌전히 있었더라면 내가 이렇게 더 심한 죄책감에 무참히 살아가는 일은 없었을 거야.

동생은 솔직히 어찌 되든 간에 상관없었다. 내가 이곳에 와서 다시 진강우를 찾은 목적은 달성한 것이니까. 그런데 왜…… 마음이 짓눌리는 것처럼 아픈 거지. 아마도 동생의 죽음으로 내가 그나마 덜한 쓰레기에서 완벽한 쓰레기가 되었다는 사실 때문일지도 몰랐다. 실제로 은연중에 동생이 죽길 바랐으니까. 어쩌면 이러한 삐뚤어진 본심이 밖으로 표출된 것일지도 모른다.

아아. 이 모든 것이 다 내가 직접 저지른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