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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시간과 세상의 의미에 대해 생각하지 않고 살던 시절이 있었어. 그를 만나기 전이었지.

나는 시간을 건너서 그에게 왔어.

내 세상을 접고 또 열어서 그를 찾아왔어.

거센 태풍에도 우린 서로를 잡은 손을 놓지 않았어. 그는 나의 세상을 바꿨고, 나는 그의 시간을 구했으니까.

있잖아, 사람의 인생에는 무수한 선택지가 주어지고, 그 선택에 따라 인생이 쓰인다는 얘기가 있더라.

사람 인생이 마치 소설책이라도 되는 양 말이야.

모든 것에는 이유가 있다는 법칙, 우연이 아닌 선택에 의한 결말, 주인공에게 주어지는 선택지가 바로 복선.

그런데 말이야.

이야기의 결말을 이미 알고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정답은 모르지만 결말을 알 때, 너는 어떻게 할래?

그리고 그게 소설이 아니라 정말 누군가의 인생이라면.

난, 선택지를 불태우기로 결정했어.

내 길을 내가 만들었듯 모두의 길을 고쳐 그렸지.

확신이 있었던 적은 없어. 나도 어른이었던 적이 없었으니까. 나도 어렸고, 어설펐지.

매 발걸음이 불확실하고 눈앞이 캄캄했지만 나는 한 가지만 좇으며 걸음을 이어 갔어.

내가 있는 그들의 인생이 조금이라도 더 나은 세상이 되길.

하지만 내가 사랑한 건 그들뿐이 아니란다.

내가 시간을 거스르고 처음으로 손을 뻗은 사람은 그들이 아니라 너였어.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

사랑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

바로 너 말이야.

너.

지금 한강 다리 위에 서 있는 너.

이민아.



* * *



시간이란 뭔가. 세상이란 뭔가.

모르겠고 그냥 다 망해라.

세상은 시끄럽다. 시간은 야속하다.

어감만 시적이지 본질은 비극이다. 또 뭐가 있을까.

아, 그리고 꿈. 꿈은 도둑놈이다.

내가 그 망할 꿈이란 걸 좇다가 지금 한강 다리 위에 앉아서 바람에 목숨을 맡긴 신세가 된 거니까.

그것도 이렇게 벌건 대낮에. 해도 겨울답지 않게 쨍쨍한 오늘.

추울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볼이 시리지 않았다. 지금 내 볼이 붉은 이유는 긴장감 때문이지, 찬 바람 때문이 아니다.

이 매서운 칼바람이 내가 느낄 마지막 감각이 될 거라고 생각하니 아프기는커녕, 오히려 온종일 맞을 수 있을 만큼 달가웠다.

‘그러니까, 하루 종일 여기 있어 볼까. 바람이나 맞으며 그냥…….’

터져 나오는 조소를 떨리는 손으로 틀어막았다. 이미 오늘 하루는 반 정도가 지났고 난 나머지 반을 버리고 싶었다. 그게 내가 한강으로 온 이유였다.

그런데 하루 종일 뭘 하겠다고? 살고 싶은 마음이 독처럼 몸을 잠식하기 시작하는구나.

난간 아래로 축 늘어진 다리가 후들거리고 있다. 아슬아슬하게 걸터앉은 엉덩이에 저절로 온 신경이 집중됐다.

실수로 미끄러지기라도 할까 봐. 바람에 떠밀려 떨어질까 봐. 그렇게 죽어 버릴까 봐.

“그래.”

등 뒤를 무심히 쌩 지나치는 자동차 소리에 묻힐 정도로 작은 목소리였지만 나는 힘을 쥐어짜며 입을 열었다.

내가 마지막으로 들을 내 목소리니까, 떨리지 않도록 가다듬으며 중얼거렸다.

“두려운 거, 인정.”

무서운 것도, 아래를 쳐다보면 머릿속이 하얘져서 하늘만 보고 있다는 것도 인정.

“그래도, 오늘이 아니면 안 돼.”

몸속의 암 덩어리 때문이든, 극심한 노동으로 인한 과로 때문이든, 빚쟁이들에게 쫒기다가든, 이유야 어찌 됐든 난 어떻게든 죽는다.

아니면 부모님 기일인 내일, 죄책감에 찌들어 죽어 버릴지도 모르고.

꼭 오늘이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내일로 미룰 수 없는 것이다.

엄마, 아빠. 그들이 주신, 그들이 16년 동안 만들고 빚은 내 아름답던 인생을 10년 만에 망쳐 놓은 내가 무슨 낯짝으로 내일 부모님을 뵈러 갈 수 있겠는가.

그들의 얼굴을 떠올리면 마음만 더 약해질 것이다. 되지도 않는 희망을 가지려고 할 것이다. 따라서 오늘 나는 사라져야 한다. 내일의 내가 있을 수 없도록.

난 난간을 쥐고 있던 손을 떼어 냈다.

그렇게 내일의 나는 물거품이 되어 사라졌다.

그런 줄 알았다.



* * *



영원 같던 찰나, 깊은 물속으로 끝없이 가라앉게 되리라 생각했다. 발끝이 땅에 닿는 순간이 영영 오지 않을 것만 같았다.

서서히 정신이 흐려지면서 육체와도 멀어졌다.

그래서 죽었다고 생각했다. 눈앞이 온통 캄캄했으니까.

그것이 스물여섯 살 나의 마지막 기억이다.

온몸의 감각이 사라졌음을 깨달은 직후 문득 눈꺼풀 사이로 한 줄기 빛이 스며들었다.

다시 두 눈을 떴을 때, 세상은 온통 빛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리고 두 허파로 숨이 들어왔다. 두 다리가 땅을 딛고 있었다.

햇살이 새하얀 땅에 내려앉아 사방을 눈부시게 빛냈다. 시야가 밝아지자마자 알 수 있었다. 내 인생이 뒤바뀌던 10년 전 그날, 그 정오의 공원이라는 것을.

모든 것이 그때와 똑같았다. 높게 뜬 태양, 하얗게 눈이 쌓인 커다란 소나무들, 서늘한 겨울바람, 조용한 공원.

눈밭에 잠긴 얇은 신발 가죽, 그 사이로 스며든 축축한 물기에 젖어 드는 양말의 감촉까지.

한 가지 다른 게 있다면 온몸을 휘감고 있는 이 기분이었다. 마치 오랜 잠에서 깨어난 것만 같은 기분.

꿈을 꾸다가 깬 것 같았다. 마치 원래 있어야 하는 곳으로 다시 돌아온 것처럼.

어쩌면 불행하던 시간들이 모두 꿈이었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지금 내가 환시를 보는 것이거나, 혹은 드디어 저승에 온 걸지도.

하지만 꿈이라기엔 한강의 물은 너무 아팠고, 환시라기엔 코로 들어오는 공기가 너무 찼다.

무엇보다도 내가 밟고 있는 땅은 저승이 아니라 10년 전 내가 가족들과 살았던 아파트 단지 앞 공원이다.

그리고 분명히, 그날의 그곳이다.

혹시, 설마,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을 때 나는 이미 집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현실인지 꿈인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내 느낌이 맞는다면, 지금이 그날이 맞는다면, 나는 부모님을 만날 수 있어야 한다.

설마 엄마와 아빠가 그 집에 있을까? 그들이 있는 곳으로 내가 온 것이 과연 맞을까. 그들은 지금 이곳에, 살아 있을까.

터져 나오는 잡생각들을 억지로 떨쳐 내며 눈물샘을 꾹 눌러 막았다.

아파트 공동 현관문 비밀번호를 기억나는 대로 두드렸다. 유리로 된 자동문이 매끄럽게 움직여 길을 터 줬다.

느리게 열리는 유리문을 손으로 밀고 들어간 나는 게시판의 전단지를 빠르게 눈으로 훑었다. 10년 전 연도가 활자로 찍혀 있었다.

위를 가리키는 화살표 버튼을 꾹 누르자 버튼에 빨간색 불이 들어온다. 마침 1층에 서 있던 엘리베이터의 문이 천천히 삐거덕거리며 열렸다.

서둘러 안으로 뛰어 들어가 무작정 닫힘 버튼을 눌러 댄 나는 10층 버튼을 누르고, 초조하게 손가락을 떨며 고개를 들었다. 한 층 한 층 올라갈 때마다 바뀌는 숫자를 하나하나 곱씹어야 했다. 10년 전의 승강기는 지금의 내게 익숙한 속도보다 한참 느렸으니까.

이윽고 도착을 알리는 기계음이 울렸다.

― 문이 열립니다.

끼이익 소리를 내며 천천히 열리는 문을 기다려 줄 시간 따위 없었다. 나는 손으로 양쪽 문을 잡고 그 사이를 비집고 나갔다.

현관 비밀번호는 오늘 낮까지 사용하던 내 집 비밀번호와 같았다. 엄마 아빠의 결혼기념일.

여섯 자리 숫자를 엄지로 꾹꾹 누른 나는 잠금장치가 해제되는 소리를 듣고 잠시 숨을 멈췄다.

그리고 천천히 문손잡이를 움켜쥐고 돌렸다. 문을 당기자 따뜻한 집안의 온기가 새어 나와 내 온몸을 감쌌다.

“민아 왔어?”

10년을, 그 긴 10년을 그리워한 엄마의 목소리가 멀리서 들렸다.

“……엄마?”

나는 조심스럽게 엄마를 불러 봤다. 다리가 후들거렸지만 용기를 내 문턱을 넘고 묵직한 현관문을 천천히 닫았다.

철컹, 하고 문이 닫혔다.

나는 운동화를 벗어 던지고 빠른 걸음으로 안방을 향했다.

“딸! 문자 봤어? 너 서연고등학교 합격이래!”

내가 들어서기 전 먼저 안방에서 뛰어나온 엄마가 내 앞에 섰다. 엄마는 하얀 이를 드러내고 웃으며 발꿈치를 들썩이고 있었다.

내가 기억하는 엄마였다. 눈물이 고일 새도 없이 바로 왈칵하고 쏟아져 내렸다.

“딸, 그렇게 좋아?”

엄마가 내 어깨를 꼭 끌어안아 줬다.

“축하해, 민아야.”

나는 진짜 열여섯 살의 나처럼 엉엉 울었다. 엄마의 어깨에 얼굴을 묻은 채, 엄마를 놓칠세라 허리를 꽉 끌어안고 흐느껴 울었다.

“민아야 괜찮아?”

엄마는 내가 합격에 기쁨의 눈물이라도 흘리는 줄 알았는지 웃으면서 나를 달랬다.

“엄마…… 너무 좋아. 진짜 너무 좋아.”

너무 좋았다. 엄마를 다시 봐서. 엄마 목소리를 들어서. 엄마에게 안겨서.

엄마가 집에서 입는 원피스에 배어 있는 달콤한 향기, 엄마의 따뜻한 체온, 토닥토닥 내 등을 쓰다듬는 엄마의 손.

엄마가 움직일 때마다 흔들리는 검은 머리카락이 내 볼에 닿는 감촉까지. 모든 것이 그리웠다.

나는 돌아왔다. 10년 전 그날로 돌아왔다.



* * *



10년 전 이날을 기억한다. 평생 잊지 못한 날이었으니까. 그리고 10년 뒤의 내가 마주하기 두려워서 포기한, ‘내일’의 날이기도 하다.

어째서 오늘로 돌아왔는지는 모르겠다. 내가 한강 다리에서 떨어진 날짜는 분명 어제였는데.

오늘은 그토록 가고 싶었던 서연고등학교로부터 합격 통보를 받은 날이자, 역주행을 한 음주 운전 차량에 치인 부모님이 돌아가신 날이기도 했다.

그러니 어제가 나의 마지막 행복이었을 만도 하지.

평생을 매사에 조심하며 안전을 무엇보다 우선시하던 두 분이 그렇게 돌아가셨으니, 나는 세상에 불만을 품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어제는 내가 마지막으로 행복했던 날이 되었고, 오늘은 내가 가장 싫어하는 날이 되었다.

오늘 이날, 내 인생은 시궁창으로 던져졌으니까.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얼마 후 난 길바닥으로 나앉았다. 두 분께서 모아 두신 돈은 많지 않았다. 나는 바로 일을 시작해야 했다.

서연고등학교의 비싼 학비를 감당할 수 없어 진학은 당연히 포기했다.

그 대신 새집 근처 일반계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명문대에 진학해 기자가 되겠다는 꿈은 접은 지 오래였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처음 담배를 접했고, 처음 경찰서에 발을 들였다. 그리고 그건 마지막이 아니었다. 일탈이 내 일상이 되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자퇴를 했다. 1년간 여기저기에서 알바를 하며 하루 벌어 하루를 먹고 살았다.

힘든 생활을 하다 보니 뒤늦게라도 철이 들었던 모양이다.

언젠가부터 부모님에 대한 죄송함 때문에 매일 밤을 울며 보내기 시작했다.

그들이 내 곁을 떠난 지 고작 2년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2년 만에 인생을 망가뜨린 내가 어찌나 창피하고 죄스럽던지.

그래서 그 뒤로는 기자가 되는 것, 그거 하나만 보며 살았다. 한때 부모님과 내가 함께 걸어갔던 길이었으니까.

나는 우리의 꿈을 혼자서 다시 꾸기 시작했다.

검정고시를 치고, 수능을 보고, 그렇게 뒤늦게 서울 변두리의 작은 대학교에 입학했다. 하지만 졸업은 꿈도 꿀 수 없었다. 등록금 때문에 빚만 점점 늘어났다.

때문에 알바만 죽어라 하는 생활을 해야 했다. 그래도 악착같이 일했다. 편의점 야간, 공장, 가리지 않고 일했다.

그 결과 내가 얻은 것은 망가진 몸과, 무너진 건강과, 암이었다.

암 말기 판정을 받은 날, 나는 알바를 늘렸다.

그나마 은인에게 빌린 돈이라도 갚고 죽기 위해서.

10년 동안 홀로 발버둥 쳤지만, 세상은 결국 나를 한강 다리의 아슬아슬한 난간 위로 떠밀었다.

나는 파도를 이기지 못한 모래성처럼 무너졌다. 떠밀려서 쓰러지고 부서졌다.

다시 얻은 인생. 정말 내게 또 한 번의 기회가 주어진 거라면 난 잡겠다.

붙잡아서 일어서겠다. 그리고 살아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