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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00.





인어에게는 왕자를 살릴 수 있다 믿던 날이 있다.





01.





그 방에서는 짠물 비린내가 났다.

인어는 쌕쌕거리며 숨을 쉬고 있었고, 어두운 방에 홀로 앉은 남자는 그런 인어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검게 젖은 머리카락이 달라붙어 숨 쉴 때마다 함께 오르내리는 인어의 가슴팍에는 말라붙은 소금이 희게 반짝인다.

방 한편에 놓인, 어린아이가 드러누우면 꽉 찰 크기의 욕조에서 간헐적으로 인어의 검푸른 꼬리가 움직인다. 그럴 때마다 바닥을 이룬 낡아 비틀린 나무판자와 금 간 욕조는 삐걱거리고, 물은 넘쳐흘러 바닥에 자국을 남긴다.

낡은 나무 창틀에 고정된 암막 커튼의 미세한 틈으로 들어온 빛이 바닥에 금을 그리고, 방 한쪽에는 가장자리가 조금씩 깨지고 살짝 금이 간 상태의 낡고 더러운 욕조가 있다.

바닥에 그려지던 금이 황금색에서 적금색을 지나 완연한 붉은색으로 바뀔 무렵, 그 욕조에 죽은 듯 걸쳐져 있던 인어는 눈을 떴다. 인어가 눈을 뜨자 속눈썹도 따라 올라간다. 인어가 뻐근한 상체를 움직여 자세를 바꾸자 무게가 실린 바닥은 삐걱거린다.

그 소리에 정신을 차린 남자는 자리에서 일어나 약병과 주사기를 집어 든다. 이윽고 욕조의 왼편, 욕조에서 넘친 물로 젖은 바닥에 머뭇거리지 않고 털썩 주저앉는다. 인어는 남자의 옷을 빨래하던 이들이 그의 저런 습관을 싫어했으리라고 확신했다.

인어는 날카로운 바늘을 바라본다. 그리고 주위를 둘러본다. 낡아 썩어 가는 바닥, 곰팡이가 핀 벽, 여러 번 사용한 것이 뻔한 주사기. 썩 위생적인 환경은 아니었으나 이제 와서 뭘 바랄까. 꼬리 짓 하며 수면 위로 향할 때부터 예상한 일이다.

둘의 눈이 마주쳤다. 남자는 그 눈을 바라보다가 슬그머니 시선을 내린다. 그 눈을 따라 시선을 옮긴 인어가 입을 벌리지만 나오는 것은 헛숨뿐이다.

인어는 혀를 내밀어 제 마른 입술을 축였다. 침이 묻은 입술을 붙였다가 떼자 윗입술과 아랫입술이 풀을 바른 듯 붙었다가 떨어진다. 그 사이로 갈라진 목소리가 나온다.

“다른 인어들은 어디로 갔어?”

남자는 무심하게도 대답한다.

“팔렸어.”

“그리고?”

남자는 대답하지 않는다. 바늘과 유리병이 부딪쳐 맑은 소리가 났다. 인어가 본 남자의 눈동자에 미세한 죄책감이 떠올랐다가 눈 깜박임 한 번에 사라진다. 얄팍한 감정이다. 존재하지만 어디에도 영향을 끼치지 못하는 얄팍함이다. 그 감정이 제 주인을 닮아 있다.

인어는 긴 숨을 들이쉰다. 짠 내가 났다. 바다와 같이 조금 텁텁하면서도, 바다와 달리 조금 매캐한 냄새다. 인어는 바로 제 목적을 그에게 들이미는 바보짓을 하는 멍청이가 아니다.

“보통 여기에 얼마나 있어?”

“길면 나흘.”

“생각보다…….”

인어는 말을 줄인다. 남자는 말없이 주사기를 들어 약을 담는다. 주사기의 빈 곳을 누런빛이 도는 액체가 채운다. 성의 없이 약병을 밀어 낸 그가 인어의 왼팔을 들어 올렸다. 흰 팔이 남자의 손에 잡혀 힘없이 들린다.

인어가 기이하게도 맑은 눈으로 남자를 바라볼 때, 그는 훅, 하고 조급하게 숨을 들이쉬었다. 이윽고 시선을 돌려 출렁이는 욕조 물을 보며 잃어버린 파도를 떠올리던 인어는 표피를 뚫고 들어오는 바늘에 눈을 감았다.

남자는 눈꺼풀에 서서히 가려지는 그 눈이 선명한 청록색인 것을 보았다. 결코 인간의 것은 아닌, 아름다운 색이다.







02.





잠든 인어가 있는 방은 고요하다. 듣기 괴롭던 물소리에도 이제는 조금 적응이 된 것 같다. 남자는 늘 창밖만 향했던 시야에 인어를 담았다. 좁은 방 안에서 들리는 숨소리가 두 명분이라는 사실은 늘 그에게 생경한 감상을 가져다준다.

사실 그는 한방에 남자와 여자, 그리고 욕조가 있는 상황을 썩 좋아하지 않는다. 상황을 부력 삼아 떠오르는 기억들을 외면하려 위층에서 들리는 침대 삐걱거리는 소리에 집중한다.

애석하게도 소리가 멎었다. 그 소리도 썩 좋은 기억과 연관되어 있지는 않았기에 기껍지 않아도 어찌할 거냐는 생각이 들어 다시 암울해진다.

뒷골목은 떳떳하지 못한 사람들이 몰려드는 곳이다. 그 또한 떳떳하지 못했기에 쫓겨나자마자 뒷골목으로 향했다. 그리고 값이 매겨진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을 팔아넘기며 살아남았다.

이 방에 들어온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은 그를 원망하며 다시 방 밖으로 나갔다.

그는 이 방을 스쳐 간 수많은 ‘상품’들을 봐 왔다. 그는 방관자조차 아닌 공범이다. 그를 원망하는 모든 것들을 마주하며, 결국 그의 존재 의의는 누군가의 원망을 맞이하기 위함이라는 생각을 저버리지 못했다. 그가 만나 온 모두는 결국 그를 원망한다.

인어는 이번이 처음이다. 늘 방 한쪽에 놓여 있던 욕조를 사용한 것도, 원망하고 저주하지 않는 눈으로 그를 바라보는 생물을 마주한 것도 이번이 처음이었다. 인어의 질문을 떠올린다.

― 다른 인어들은 어디로 갔어?

그들은 모두 팔려 갔다. 그는 뒷골목으로 내밀린 그때부터 모든 일들을 묵과해 왔다. 어차피 죽을 목숨이건만 조금이나마 연명하기 위해서였다.

때로는 마음이 반발하기도 했다. 모두가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온갖 일들을 하는데 그가 그러지 못할 이유가 어디 있냐고, 그렇게 발악했다. 하지만 그 둘의 경우가 조금 다름을 안다.

유난히 방이 어둡던 어제 아침, 그는 인어와 처음 마주했다.

홀로 방에 앉아 커튼에 가려져 보이지 않는 창밖을 바라보고 있을 때, 문이 열렸었다. 마른 체구의 사람 하나 간신히 지나갈 수 있을 정도로만 열린 문틈으로 당부하는 말과 함께 들어온 것은 검푸른 인어였다.

“잘 간수해.”

던져져서 철퍽하고 바닥에 달라붙듯 쓰러진 인어의 모습에 그는 행동을 잊고, 어둠 속에서도 광택을 띄는 검푸른 비늘이나 물에 젖었음에도 부드러워 보이는 검은 머리카락 따위를 바라보다가 뒤늦게 정신을 차려 욕조에 물을 받았다.

욕조에 넣기 위해 안아 올린 인어는 차갑고 축축했다. 인어를 욕조에 넣은 뒤에 그는 방 밖으로 나가 소금을 구해 와 물에 녹여 부었다. 바다에 사는 인어이니 소금물이 필요하리라는 생각이었다. 소금에서는 매캐한 냄새가 났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이상하리만큼 필사적이었다. 물에 젖어 달라붙은 옷을 입고 미친놈처럼 온 건물을 헤집고 다니던 그를 한심하게 바라보던 이가 얼마나 많았던가.

물론 인어는 누구나 그 값어치를 인정할 정도로 아름답고 희귀한 생물이다. 인어가 비싸게 팔릴 상품이란 사실은 온전한 머리가 달려 있다면 모두 알 수 있고, 만약 인어가 죽는다면 상품으로서 가치를 상실하게 된다는 걸 알았다.

하지만 이 정도로 필사적이어야 할 이유가 있던가? 굳이 소금까지 구해 물에 풀어 넣어야 할 이유 말이다.

분주히 움직이다가 그런 생각이 든 탓에 석상처럼 굳어 인어를 내려다보았다. 젖어서 몸에 차갑게 달라붙은 섬유가 체온을 입어 미지근하게 물들었다. 그 온도가 오히려 섬뜩했다. 그런 온도를 품고 어둑한 방 한쪽에서도 반짝이는 인어를 말없이 바라보았다.

눈을 뜬 인어를 보았다. 아름다운 청록색. 언젠가 맞이했던 더운 여름의 맑은 바다를 눈에 담고, 기이할 정도로 맑은 눈으로 남자를 바라보던 인어는 다시 눈을 감았었다.

떠올린다. 폭풍우를 만나 가라앉은 왕자를 살려 낸 인어, 왕자를 사랑한 인어, 물거품이 된 인어. 어린 시절, 동화에서나 보던 생물체를 새로 마주한 이라면 모두 이런 반응을 보일 것이라고, 그러니 이는 정상적인 반응이라고 스스로를 설득하기 위해 다분히 노력했다.

동시에 자조했다. 동화 같은 허무맹랑한 이야기를 뗄 나이는 훌쩍 지나 버렸는데.

인어는 갈라진 목소리조차 신비로웠다. 그런 목소리로 인어가 그에게 했던 질문을 되새긴다.

보통 여기에 얼마나 있어?

그것이 상품이든, 사람이든 상관없이 그저 죽을 때까지. 그는 그러는 이유도 모른 채 죽을 때까지 여기에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이 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결국 죽고 말리란 사실을 잊지 않으려 노력했다.



인어는 새벽을 지나는 시간에 다시 눈을 떴다. 약에 내성이 생긴 모양인지 점점 정신을 차리는 데 걸리는 시간이 짧아지고 있었다. 몽롱하게 물 위를 떠다니던 정신이 점점 맑아지는지 인어의 눈에 빛이 돌아온다.

그것을 확인하고 고개를 돌린 그는 멍하니 닫힌 커튼 너머를 바라봤다. 인어는 말없이 그를 바라본다. 자연스러운 태도다. 그 시선이 그에게서 떠나는 일이 없다.

인어가 천천히 방 안을 둘러본다. 겨우 떨어져 나간 시선을 느낀 그가 인어의 눈길이 닿는 곳을 좇는다. 이 끝부터 저 끝까지 다섯 발자국이나 겨우 옮길까 싶은 방 안은 엉망이다. 선반은 다 무너져 내리고, 의자는 부러진 채 구석에 방치되어 있다.

인어가 아무것도 묻지 않아 다행이었다.

방 구석구석을 훑어보는 인어의 시선이 꼭 무너져 내린 그를 보는 것 같아서 부담스러웠다. 인어가 깨어 있어서 좋을 일은 없을 것 같으니 차라리 다시 재우자는 생각에 창틀에 놓아둔 약병을 다시 집어 든다.

인어가 천천히 숨을 내쉬며 욕조에 몸을 담그자 긴 숨소리와 물소리가 울렸다. 곁눈질로 그를 바라본 인어와 눈이 마주쳤다. 움찔한 손에서 힘이 빠지며 쥐고 있던 유리병이 떨어져 바닥을 굴렀다. 얼마 남지 않았던 내용물이 쏟아져 바닥을 적신다.

한숨을 쉰 그는 앉으려다가 의자가 부서졌음을 깨닫고 방 한쪽에 놓인 침대로 걸음을 옮긴다. 그 위에 앉자 낡은 매트리스에서는 삐걱거리는 소리가 났다.

위층에서는 침대가 쉬지 않고 삐걱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그 소리가 마음을 쿡쿡 찌른다. 저 인어도 결국 그를 원망할 것이다. 그는 인간이 인간이 아닌 존재들을 얼마나 하찮게 여기는지 무수하게 봐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