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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화 본격적인 수련 (3)



저 나이 때의 아이들이라면 스트레칭의 중요성을 알 수가 없을 텐데.

당장 공부터 던지며 놀고 싶지, 귀찮고 필요 없어 보이는 스트레칭부터 할 생각을 한다는 것에 털보 감독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사실 한창때는 스트레칭의 필요성을 몸이 느끼지 못할 수 있다.

꾸준한 스트레칭은 좀 더 나이가 들었을 때, 저금해 놓은 돈을 찾아 쓰듯 효과를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털보 감독이 보기에 녀석은 이제 막 중학생이 됐을 뿐이었다.

“감독님, 저 매트 좀 빌릴게요.”

그의 상념을 깨트리며 준혁은 한쪽에 놓여 있는 스트레칭용 매트로 걸어가 조용히 스트레칭을 하기 시작했다.

‘별거 아닐 수도 있지만, 자기 말대로 기본이 잘되어 있군.’

묘하게 자세가 정확하다.

별것 아닌 사소한 동작 하나에도 온 신경을 쓰는 것이 느껴졌고, 그 과정에서 느껴지는 유연함과 숙련도가 오랜 시간 노력해 왔음을 알게 해 주었다.

‘아까 정석으로 배웠다고 했던가?’

털보 감독은 준혁의 동작을 보며 다시 한 번 감탄했다.

“스트레칭이 끝났어요. 이제 캐치볼해도 됩니다.”

잠시 후, 매트에서 몸을 일으킨 준혁은 옆에 놓아 둔 글러브와 공을 집어 들었다.

‘그래, 기본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녀석의 글러브는 어떻게 되어 있나 한번 볼까?’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고, 잔뜩 기대감을 품고 바라보았는데…….

‘허, 저 글러브…….’

예상과 달리 전혀 길들여지지 않은 신상이었다.

나름 고가의 메이커에 좋은 제품이지만, 실제 사용한 흔적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보통 글러브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길들이기의 단계를 거쳐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공을 정확히 잡기가 어려울 뿐만 아니라 손의 부상도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학생이나 아마추어뿐만 아니라 프로 선수들도 새 글러브를 그대로 사용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너, 그 글러브…….”

“예?”

준혁이 의아해하며 털보 감독을 바라봤다.

아무것도 모른다는 순진한 눈빛에 털보 감독은 차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아니다. 준비됐으면 바로 시작하자.”

“네. 그런데 누구랑 하죠?”

“당연히 나지. 잠시 기다려라.”

가방에서 글러브와 공을 꺼내 든 털보 감독은 준혁에게 가볍게 공을 던져 주고는 거리를 벌렸다.

“어디, 너의 캐치볼 실력이 어떤지 한번 보자.”

“네!”

준혁은 차분하게 공을 가슴 위로 올리며 자세를 잡았다.

그러고는 털보 감독의 글러브를 바라보며 위치를 확인한 뒤, 정확하게 시선을 고정하며 송구했다.

한 점의 군더더기도 없는 자세와 공을 던진 후의 마무리까지 완벽했다.

퍼억!

꽤 강하게 날아와 글러브에 박히자, 털보 감독은 잠시 준혁을 바라봤다.

‘호오, 꽤 하는데?’

내심 감탄한 그는 글러브에서 공을 빼내 다시 준혁에게 던졌다.

역시나 어렵지 않게 잡아내는 준혁.

그런데 글러브에서 공을 빼려다가 멈칫하더니, 고개를 갸웃했다.

“왜 그래?”

털보 감독의 물음에 준혁이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아닙니다. 계속할게요.”

잠시 멈칫했지만, 글러브에서 빼는 동작부터 송구 동작까지 물 흐르듯 이어졌다.

휙, 퍽!

휙, 퍽!

휙, 퍽!

하얀 야구공이 직선을 그리며 두 사람 사이를 왕복했다.

깔끔하게 오고 가는 가운데 리듬감마저 느껴진다.

다른 아이들도 하던 것을 멈추고 어느새 둘의 캐치볼을 바라보았다.

“엇!”

그때, 자신도 모르게 흥에 취한 털보 감독의 손에 필요 이상의 힘이 들어가 버렸다.

강한 속도로 궤도를 이탈해 날아가는 공.

조심하라고 소리를 치려는 순간, 준혁의 몸이 빠르게 이동했다.

그러더니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가슴 앞에서 손쉽게 잡아냈다.

하지만 웬일인지 글러브에서 공이 튀어 나오고, 준혁은 빠르게 오른손을 움직여 맨손으로 잡았다.

“감독님, 글러브가 잘 안 잡혀요. 이거, 아빠가 비싼 거라고 했는데.”

그런 준혁에게 털보 감독이 다가갔다.

“길들이기를 안 하고 그대로 쓰니까 당연하지.”

“네? 그게 뭔데요?”

글러브 길들이기는 교본에 나오지 않아 알 수가 없었다.

게다가 현실에서 실제 글러브를 사용한 것이 처음이기도 했고.

“원래 새 글러브는 길들이기를 안 하면 공을 잡기가 힘들거든. 캐치볼은 곧잘 하면서 의외로 그런 건 모르는구나.”

“비급에, 아니, 교본에 안 나와서요.”

“허허, 교본이라니. 야구를 책으로 배웠어요… 뭐, 그런 거냐?”

뜨끔.

준혁은 순간 당황했지만, 대답을 원한 것은 아닌지 털보 감독이 다시 말을 이어 갔다.

“그래도 그런 것치고는 잘 잡던데?”

“자꾸 공이 빠지려고 해서 엄청 신경 써서 잡았어요. 손아귀 힘도 더 들고요.”

“어쨌든 글러브 길들이기란 건 기초 중의 기초란다.”

“그렇군요.”

‘이건 나중에 싸부에게 알려 줘야겠다.’

가만히 글러브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거리는 준혁.

“아, 너희들도 워밍업 끝났으면 이제 각자 포지션에 맞춰서 훈련 시작하고 있어라!”

감독은 잠시 방치해 둔 아이들에게 지시를 내리고는 다시 준혁을 바라봤다.

“너 정도 캐치볼 실력이면 애들 하는 걸 보고 답답해할 수도 있겠네.”

준혁과 캐치볼을 해 본 털보 감독은 더욱 자신의 팀으로 영입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고수들은 자세만 봐도 그 경지를 알 수 있다고 하지 않던가.

지금 준혁이 딱 그랬다.

기초적인 스트레칭과 캐치볼의 모습만 봐도 그 재능이 느껴졌다.

“너, 야구할래?”

“네? 야구요?”

“그래. 삼촌한테 대충 배우는 거 말고, 우리 팀에 들어와서 제대로 한번 배워 보는 거 어떠냐?”

“어, 대충 배우는 거 아닌데요.”

준혁의 반박에 털보 감독이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삼촌은 뭐 하시는 분인데? 혹시, 어디 선수 출신이냐?”

“어, 음…….”

갑자기 말문이 막히는 준혁.

‘이걸 뭐라고 설명을 해야 하지?’

사실대로 말할 수도 없고, 따지고 보면 정확히 뭐 하는 사람인지도 몰랐다.

그래도 무림인이긴 한데, 비급에 미친 사람?

준혁은 일단 생각나는 대로 둘러대기로 했다.

“그냥 격투기 선수 출신인 것 같아요.”

뭔가 황당한 소리를 들었다는 듯 털보 감독의 눈가가 찌푸려졌다.

“그래? 그럼 야구는 어떻게 알고 가르쳐 주는 건데?”

“음, 책 보고요.”

“허허…….”

무슨 야구를 책으로 배우나.

삼촌이나 조카나 똑같다는 생각에 헛웃음이 나왔다.

뭐, 이론이나 룰 같은 것이야 책으로도 가능하겠지만, 선수 출신도 아닌 사람이 그렇게 한다는 데 웃음밖에 나지 않았다.

“그럼 아무래도 제대로 배우기는 힘들 것 같은데…….”

“그런가요?”

준혁이 듣고 보니 맞는 말 같기는 한데, 어딘가 무시당한 것 같은 기분이었다.

‘나름 제대로 하고 있는데…….’

그런 기분을 모르는 감독이 말했다.

“그래. 그래도 넌 소질이 있어 보이니까 제대로 배우면 훌륭한 선수가 될 수도 있을 것 같아. 내가 아는 후배들도 많으니, 나중에 중학교나 고등학교 야구부를 소개시켜 줄 수도 있고.”

그 말에 조금 고민을 하던 준혁이 고개를 저었다.

“에이, 됐어요. 그냥 삼촌한테 배워도 충분해요. 이제 집에 갈래요.”

미련 없다는 듯 자신이 가져온 글러브와 공을 챙기는 준혁을 보니, 털보 감독의 마음이 다급해졌다.

사실 지금 보여 준 재능 정도면 자신의 팀에서도 손에 꼽히는 수준이다.

더군다나 제대로 야구를 배운 것도 아니니, 앞으로 얼마나 성장할지 짐작조차 되지 않았다.

“아니, 왜 이렇게 급해? 생각하는 척이라도 좀 해 보고 그래야지!”

자연스레 올라가는 목소리에 준혁은 확실히 선을 그었다.

“그냥 생각이 없어요. 삼촌도 잘 가르쳐 주거든요. 아무튼 전 가 볼게요.”

애당초 무시나 하지 말든가.

그제야 다급해진 털보 감독이 그럴듯한 절충안을 내놓았다.

“자, 잠깐! 삼촌은 글러브 길들이는 법 같은 것도 모르잖아!”

“뭐, 그건 그래요.”

사실 그런 부분은 책으로 배우기 힘들긴 했다.

“그럼 부모님한테 한번 물어볼게요. 제가 바로 결정하기는 좀 그래요.”

“그래. 잘 생각해 보고, 같이 야구 한번 해 보자.”

“네, 네. 그럼 가 볼게요.”

“잠깐. 근데 넌 이름이 뭐냐?”

“준혁이에요, 남준혁.”

“그래, 멋진 이름이구나. 잠시만 기다려라.”

털보 감독은 급히 가방에서 명함 한 장을 꺼내 내밀었다.

“자, 내 명함이니까 혹시 결정되면 연락 주고, 아니면 여기로 와도 된다.”

준혁은 시큰둥하게 명함을 받아 트레이닝복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이제 진짜 갈 시간이다.

“그럼 안녕히 계세요.”

준혁은 인사를 한 후, 뒤도 안 돌아보고 야구장을 나섰다.

“저놈, 냉정하네.”

아쉬운 듯 그 뒷모습을 바라보던 털보 감독이 문득 자신의 팀 아이들을 바라봤다.

그러고는 마음에 안 든다는 듯 절레절레 고개를 내저었다.

“이 녀석들아, 자세가 그게 뭐야! 기본이 중요하다고, 기본이!”

괜히 아이들에게 뭐라 하는 털보 감독이었다.



***



“길들이기라고? 그래. 이것도 하나의 무구라 생각한다면, 틀린 말은 아니구나.”

이공자의 말에 준혁이 물었다.

“무구라니요?”

“넌 그런 말도 모르는 것이냐? 무기 말이다, 무기.”

“아~ 요즘은 그런 말 잘 안 쓴다고요.”

준혁이 억울하다는 듯이 말했지만, 이공자는 신경 쓰지 않았다.

“알겠다, 알겠어. 중요한 것은 무기든 뭐든 실제로 사용하면서 손에 익어야 한다는 것이지.”

“그런데 우리 글러브는 왜 잘 잡히죠?”

준혁이 이상하다는 듯 자신의 글러브를 들어 살펴보았다.

공을 잡는 흔적과 손이 움직여지는 모양에 따라 길이 잡혀 있었다.

“아마 캐치볼이란 것을 계속하면서 자연스럽게 잡힌 거겠지.”

“처음엔 그걸 몰랐잖아요.”

“그렇지. 그땐 우리도 잘 못 하던 때라서 이게 좋은 상태인지 나쁜 상태인지도 몰랐던 거다.”

“흠, 모르는 게 약이었군요.”

준혁이 이공자의 말에 동의를 하며 대답했다.

그런데 이공자는 뭔가가 떠올랐는지 깊은 생각에 잠긴 듯했다.

그 모습에 준혁도 가만히 기다려 주었다.

이윽고 결론을 내렸는지, 이공자의 입을 열렸다.

“제자야, 아무래도 그 야구팀이라는 것을 해 보는 게 어떻겠느냐?”

“네? 왜요? 거기 애들도 잘 못 하는 것 같던데… 그다지 배울 것이 없어 보였어요. 여기서도 충분히 다 배울 수 있을 것 같아요.”

“어허, 어디서 그런 망발을!”

준혁의 철없는 소리에 이공자가 꾸짖듯 말했다.

“제자야, 뭐든 실전이 중요한 법이다. 고여 있는 지식만큼 위험한 것은 없어. 우리 둘이서 아무리 비급을 연마한들 실전이 없다면 속 빈 강정에 불과할 수도 있다.”

순간, 준혁의 눈이 동그래졌다.

왠지 싸부가 똑똑해진 것 같았다.

첫인상이나 성격을 보면 전혀 두뇌파나 감성파 같지는 않았는데…….

준혁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전혀 모르는 이공자는 계속 말을 이어 나갔다.

“당장 글러브 길들이기 같은 것도 모르지 않았느냐. 그래서 무림에서도 어느 정도 무공을 연마하면 강호출도라 하여 세상으로 나가 경험을 쌓곤 했단다.”

“와? 그럼 모험도 하고, 나쁜 놈들도 때려잡고… 뭐, 그런 겁니까?”

“그래, 그런 거지.”

괜히 그 모습을 상상해 보던 준혁의 입에 웃음기가 맴돌았다.

“멋지다. 그럼 사부님도 강호를 경험해 보셨겠네요?”

“나에게는… 아무런 기회도 주어지지 않았다.”

안 좋은 기억이 떠올랐는지, 씁쓸한 표정으로 내뱉듯 말하며 먼 하늘을 바라보는 이공자.

저 무심한 눈동자는 대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준혁은 낯선 이공자의 모습에 선뜻 이유를 물어보기가 두려웠다.

그래서 애써 화제를 돌렸다.

“그런데 싸부, 처음과 너무 달라지신 것 같습니다.”

뜬금없는 말에 하늘을 바라보던 이공자의 눈동자가 다시 준혁을 향했다.

“그게 무슨 말이냐?”

“이제 소리도 지르시지 않고, 생각도 깊어지신 것 같습니다.”

“뭐? 이놈이, 내가 언제 그랬느냐?”

“처음에 저에게 검을 뽑으려고 하신 것, 기억 안 나십니까?”

“그건 네놈이 너무 건방져서… 하아~ 됐다.”

이공자는 말을 하다 말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 모습에 빙긋 웃은 준혁이 슬며시 당근을 내밀었다.

“그래도 오늘은 뭔가 무술과 야구 외의 가르침을 잔뜩 받은 것 같습니다.”

“…이놈이 정말 못 하는 소리가 없네.”

그렇게 말을 하면서도 어딘가 쑥스러워하는 것이, 그리 기분 나빠 보이지는 않았다.

“사부님도 저랑 같은 팀에서 야구를 하면 좋을 텐데…….”

“응? 그게 무슨 말이냐?”

“아닙니다. 사부님은 나이가 많아서 아마 안 될 거예요.”

“…….”

이제 겨우 약관을 넘겼을 뿐인데…….

이공자는 처음 준혁을 만났을 때 검을 뽑았어야 했다는 후회가 뒤늦게 밀려왔다.

이미 사제 관계가 되어 버린 지금은… 늦어 버렸다.

“닥치고!”

“네.”

움찔거리며 대답하는 준혁에게 이공자가 명했다.

“그 야구라는 것, 제대로 한 번 해 보아라, 제자야.”

강호출도의 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