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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콰쾅!

세상을 쪼갤 듯한 벼락과 함께 장대 같은 비가 쏟아지는 밤, 한 남자가 거친 숨을 토해 내며 산길을 달리고 있었다.

“하아, 하아…….”

남자는 큰 상처를 입었는지, 옆구리에서 검붉은 피가 끊임없이 흘러나왔다.

또한 진기가 중간 중간 끊어져 경공조차 제대로 펼칠 수 없었다.

하지만 젖 먹던 힘까지 짜내 달릴 수밖에 없었다.

“저쪽이다! 잡아라!”

“놓치지 마라!”

그를 쫓아 달려오는 한 무리들.

푸른 장포를 입은 무리들이 검으로 무장을 한 채 남자의 뒤를 쫓고 있었다.

“좀 더 힘을 내라! 놈은 상처를 입어 멀리 도망칠 수 없을 것이다!”

“네!”

선두에서 독려하는 목소리에 무리는 우렁차게 대답하며 걸음을 재촉했다.

지금 당장은 칠흑 같은 어둠과 쏟아져 내리는 비 덕분에 꼬리를 잡히지 않고 있지만, 상황은 남자에게 불리해져 갔다.

시간이 지날수록 체력과 기운이 소진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으헉!”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남자의 앞에 천 길 낭떠러지가 나타났다.

급하게 멈춰 서며 발에 채인 돌멩이가 끝없는 절벽 아래로 떨어졌다.

절망감에 빠진 남자의 귀로 추격자들의 발소리가 들려왔다.

우르릉, 콰쾅!

마침 떨어져 내린 벼락이 주변을 환하게 비추자, 남자의 등 뒤로 한 무리의 사람들이 나타났다.

“이제 그만하고 비급을 돌려주는 것이 어떤가?”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낭떠러지 밑을 바라보던 남자를 향해 차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꽤나 오랜 시간을 달려왔음에도 한 점 흐트러짐 없이 안정된 음성은 그의 내공이 심후함을 보여 주는 듯했다.

그와 동시에 다른 무리들이 남자의 주변을 둘러쌌다.

“하아, 하아… 애초에 이 비급은 우리 가문의 것이었다!”

남자가 처절하게 소리를 질렀다.

억울한 마음을 대변하듯 잔뜩 찌푸린 얼굴 위로 흐르는 것이 눈물인지 빗물인지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의 심경 따윈 아랑곳 않으며 한 남자가 앞으로 나섰다.

“닥쳐라! 헛소리는 집어 치우고, 어서 비급을 내놓아라!”

“이공자…….”

이공자라 불린 남자는 더는 들을 것도 없다는 듯이 무리의 수장 격인 노인을 돌아보며 말했다.

“석 장로님, 저놈의 변명은 더 이상 듣지 말고, 얼른 비급부터 회수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그저 비급에만 정신이 팔려 천둥벌거숭이처럼 나대는 이공자의 모습에 석 장로는 쓴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지금은 이공자의 말이 맞았다.

마음을 다잡은 석 장로가 남자에게 말을 건넸다.

“이보게. 일단 비급을 내놓기만 하면 내 모든 것을 없던 일로 해 주겠네. 그러고 나서 몸도 치료해 줄 터이니, 일단 비급을 다시 가져오는 것이 어떻겠나?”

너무나 많은 피를 흘린 탓에 남자의 얼굴은 창백하기 짝이 없었다.

급기야 덜덜 떨리는 몸을 억지로 제어하며 씹어뱉듯 거친 목소리로 힘겹게 한 자, 한 자 쏟아 냈다.

“장로님, 제가 이 비급을 다시 돌려 드리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어허, 어차피 비밀을 풀지도 못할 터. 네 부모도 그래서 우리에게 위탁한 것이 아니겠느냐.”

“그래서 알아 낸 것이 무엇입니까?!”

절규하듯 소리친 남자는 떨리는 손을 품 안으로 집어넣었다.

그러고는 힘겹게 하나의 비급을 꺼내 들었다.

때마침 내리친 벼락의 불빛에 비급의 모습이 훤히 드러났다.

얼핏 보이는 태극 문양과 알 수 없는 글자들.

“오오!”

“저것이!”

“비급이다!”

남자를 둘러싼 무리들에게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그들 또한 무림인이기에 비급에 대한 욕망이 눈빛에서 흘러나올 수밖에 없었다.

“지금껏 글자조차 해독하지 못했다는 것이 말이 되는 소리입니까? 비급을 다시 내놓기 싫어서 거짓으로 속이는 것인지 제가 어떻게 압니까?”

격정을 이기지 못한 남자에게서 뜨거운 눈물이 흘러나왔다.

그로서는 누구도 믿을 수 없기에 새삼 자신의 처지가 처량하게 느껴진 것이다.

“자네의 오해일세.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그 비급의 그림조차 이해하기 어려웠다네. 이건 진실이라네.”

“흥, 세 살 먹은 어린아이도 속지 않을 말을…….”

남자가 서서히 뒷걸음질 치기 시작하자, 석 장로는 다급하게 말을 꺼냈다.

“무, 무엇을 하려는 게냐? 어서 이쪽으로 오너라. 위험하다.”

그래도 한때는 한솥밥을 먹던 사이가 아닌가.

비급의 회수도 중요하지만, 허무하게 목숨을 잃게 할 수는 없었다.

“흑흑, 이따위 비급에 모든 것을 걸었다니. 아아, 아버님, 어머님…….”

석 장로의 말에도 아랑곳 않고 남자는 계속 뒤로 물러났다.

이미 몸 상태도 한계를 넘어선 것 같았다.

“죄송합니다, 장로님. 이것은 아무도 가질 수 없습니다.”

그 순간, 석 장로는 남자가 무슨 짓을 하려는지 깨달았다.

남자가 낭떠러지를 향해 마지막 한 걸음을 떼는 순간.

“안 된다! 그 비급은!”

옆에 있던 이공자의 몸이 빠르게 쏘아져 나갔다.

“이, 이공자!”

전혀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 석 장로가 다급히 소리쳤다.

하지만 이공자의 신형은 전혀 멈추지 않고 빠르게 남자에게 다가갔다.

그 순간, 또다시 내리친 벼락.

그로 인해 이공자가 잠시 멈칫하는 사이, 남자의 손에서 벗어나 공중으로 둥실 떠올랐다.

“안 돼!”

이공자는 눈을 부릅뜨며 비급을 바라봤다.

손만 뻗으면 닿을 것 같은 거리.

자신도 모르게 절벽을 향해 뛰어든 이공자가 기어이 비급을 움켜쥐자, 재차 내리친 벼락이 그를 강타했다.

콰콰쾅!

세상을 가득 채울 듯 울리던 천둥소리가 그치자, 절벽 위에는 고요한 정적만이 흘렀다.



***



콰쾅!

“아! 깜짝이야!”

창문 밖으로 번쩍이는 번개와 함께 귀를 찢는 천둥소리가 들려왔다.

소파에 드러누워 영화를 보고 있던 준혁은 자신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영화와 동시에 현실에서도 번개가 내리치는 바람에 소스라치게 놀랄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하필이면 그 순간 아파트도 정전이 됐다.

“아씨, 무섭게 왜 이래?”

초등학생인 준혁은 갑작스러운 사태에 덜컥 겁이 났다.

더군다나 부모님이 아직 집에 오시지 않아 더욱 무서웠다.

놀란 마음에 두리번거렸지만, 주변에 보이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아니, 보이지 않아야 했다.

그런데…….

“저게 뭐지?”

텔레비전 화면에서 보이는 작은 빛 하나.

그것이 점점 커지며 형태가 뚜렷해지기 시작했다.

준혁이 신기하게 바라보던 중 문득 어디선가 본 물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어, 저건!”

얼핏 본 그림과 알 수 없는 글자들.

그건 다름 아닌, 조금 전 영화에 나온 비급이었다.

“뭐야? 왜 여기에 비급이 나타났지?”

궁금하게 바라보는데, 왠지 비급이 자신을 부르는 느낌이 들었다.

무언가에 홀린 듯 준혁은 서서히 텔레비전 앞으로 다가갔다.

살짝 빛나는 것 같은 느낌의 태극 문양!

그 안으로 보이는 것은… 실밥?

“엥? 실밥? 야구공?”

그것은 태극 문양이 아니라 야구공 그림이었다.

그리고 그 위에 쓰여 있는 글자들을 준혁은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었다.



『야구의 정석 (한정판)』

YOU CAN BE A MASTER!



툭!

황당해하는 준혁의 발아래 비급이, 아니, 야구 교본이 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