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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토독토독.

눈이 녹는 소리에 길게 그림자를 드리우던 속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홀리는 무거운 눈꺼풀을 들어 올리고 주변의 사물이 보일 때까지 몇 번이고 눈을 감았다 떴다. 그러나 까맣게 물든 눈앞은 달라지지 않았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으니 다른 감각이 깨어났다.

“추워…….”

홀리는 두 손으로 얇은 천 아래 시린 팔을 문질렀다. 말을 꺼낸 것이 실수였는지 무섭도록 찬기가 밀려들기 시작했다. 온몸이 덜덜 떨리고 어느새 이까지 딱딱 부딪히고 있었다.

그때, 어둠 속에서 무언가 반짝했다. 그리고 이내 허벅지 안쪽에 차가운 것이 느껴졌다.

“읏!”

허벅지에서 시작된 시린 기운이 등줄기를 타고 전해져 정수리까지 찌르르 울렸다. 그러나 홀리는 흠칫 어깨를 움츠릴 뿐, 그것을 떼어 내지 않았다. 얇으면서도 탄력 있는 허벅지를 매만지는 손길은 야릇하고 대담했다. 그녀가 예상했듯 몸이 점점 열기를 띠기 시작했다. 가장 은밀한 곳까지 진입한 손가락이 기어이 안쪽을 찌르며 들어갔다. 홀리는 반항을 하는 대신 앉은 그대로 다리를 더 벌리며 응했다.

“젖었다.”

열기로 갈라진 목소리에 수치심을 느끼고 얼굴을 붉힐 필요는 없었다. 그녀가 젖어 든 만큼 그의 것은 부풀었을 테니까.

홀리는 눈을 내리깐 채로 그에게 몸을 맡기고 달뜬 신음만 내뱉었다. 대신 그녀의 속살이 손가락을 부드럽게 옥죄었다. 시릴 정도로 차갑던 손가락은 금세 내부와 섞여 뜨거워졌다.

“하읏! ……아아!”

하나가 두 개가 되고, 아래를 벌렸다. 깊숙이 찌를 때마다 교성은 높아져 갔다. 동그란 이마 위로 식은땀마저 송골송골 맺히기 시작할 무렵, 허리가 바르르 떨리고 맞닿은 몸이 바짝 굳었다. 홀리가 뜨거운 숨을 몰아쉬자 내내 속을 휘젓던 손가락이 빠져나갔다. 탐욕스러운 여성은 절정마저 느꼈으면서도 아쉬운 듯 뻐끔거렸다. 그러나 다행히 이것은 끝이 아니었다.

곧 커다란 손이 엉덩이를 붙들고 그 사이를 갈랐다. 손가락이 빠져나간 곳을 크고 단단한 것이 빠듯하게 메웠다. 깊이 숨을 삼키자 카힐이 움직임을 잠시 멈췄다. 그동안 홀리는 가쁜 숨을 가다듬었다. 어둠에 모든 것이 잠식당한 채로 얇은 뱃가죽 아래로 팔딱팔딱 뛰고 있는 혈관이 느껴졌다.

그녀의 여유는 오래가지 못했다. 참을성 없는 짐승이 엉덩이를 쥐고 허리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하반신이 찰싹 소리를 내며 맞부딪힐 때마다 홀리는 주체할 수 없이 흔들렸다. 그녀는 헐떡이며 자꾸만 미끄러지는 몸을 지탱하기 위해 마주한 어깨를 붙들었다.

“아아…….”

그녀의 신음에는 아쉬움이 섞여 있었다. 한계치까지 몰아가던 평소와 달리 몽둥이는 얕은 곳만 찌르며 약을 올렸다. 채워지지 않는 쾌감에 홀리의 눈가가 찡그려졌다. 조금 더 깊이 이끌려 해도 다리가 벌어지지 않았다. 카힐도 사정은 여의치 않았다. 등이 천장에 부딪히는지 자꾸 둔탁한 소리가 들렸다. 더불어 그의 어깨에 올려진 홀리의 손도 자꾸만 거친 돌벽에 쓸렸다. 행위를 즐기기에는 장소가 지나치게 좁았다.

“헉헉.”

그러나 녀석은 아프지도 않은지 허리 치대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그래도 깊이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이 싫었는지 그녀의 다리를 접어 무릎을 밀었다. 덕분에 무릎이 벽에 자꾸만 쓸렸다.

“아! 그만…….”

쾌감이 옅어지자 고통이 배가됐다. 홀리가 짜증스레 그만하라고 말하려는 찰나였다.

“빨리 찾아라!”

“발자국이 근처에서 끊겼어.”

밖에서 들려오는 사람들의 목소리에 홀리는 숨을 삼켰다. 그제야 무슨 상황인지 떠올랐다. 그들은 도망치던 중이었다. 산속에서 만난 드워프의 안내로 산짐승이 만든 작은 굴을 발견했는데, 굴에는 다행히 주인이 없었다. 있었더라도 별수 없이 쫓아내야 했겠지만.

둘은 주인이 없는 집을 차지했다. 좁은 굴속에서 무릎을 맞댄 채로 가늠할 수도 없는 오랜 시간 동안 몸을 웅크리고 있어야만 했다. 그러다가 까무룩 잠이 들면서 상황을 잊었던 모양이다. 숨기 위해 그렇게 애썼는데 정사를 벌이다가 걸리다니. 최악이었다. 홀리는 손을 들어 터지려는 숨을 필사적으로 막았다.

“흡! 흡!”

그러나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고. 상대가 멈추지 않는 이상 소용이 없었다. 카힐은 위급한 상황에 흥분이 됐는지 오히려 더 강하게 그녀를 몰아붙였다. 귓가에 헐떡이는 목소리가 천둥보다 크게 들렸다. 홀리는 눈을 질끈 감았다.

“소리, 내.”

그러나 속이 타는 그녀의 마음도 모르는 짐승은 소리를 내라 으르렁거리기까지 했다. 몸이 긴장한 탓인지 멈추라는 말과는 달리 속살은 무섭도록 그의 것을 꽉 조였다.

“가만있어.”

홀리는 조급하게 속삭이며 녀석의 머리카락을 잡아당겼다. 그리고 눈을 들어 녀석을 노려보려던 순간, 움찔했다. 대체 무엇이 자극적이어서 눈동자에 광기까지 도는 걸까. 그는 이 좁은 곳에서 뭉근하게 허리를 돌리기까지 했다. 형형한 눈빛에 겁을 먹고 굳어 있던 홀리는 카힐이 다리를 찢어 제 어깨 위로 올리려는 것을 보고 경악했다.

“하지 말라고, 이 빙신아.”

이 상황에 얼마나 더 본격적으로 하려는지.

그녀가 사납게 일갈하며 눈을 흘기자 카힐은 별수 없이 멈췄다. 그러나 해결되지 않는 본능에 낑낑거렸다. 하지만 어느 때든 살아남는 것이 최우선인 홀리는 잔인했다. 그의 사정은 봐주지도 않고 가슴을 밀어 냈다.

“밖에 사람들 있어. 조용히 해.”

“치사해.”

이미 그의 손에 한번 가 버린 홀리의 얼굴이 붉어졌다. 아쉬운 듯 입맛을 다신 카힐은 결국 반강제로 그녀의 안에서 빠져나왔다. 곤두선 시야에 붉은 속살이 그를 붙들 듯 바로 앞까지 따라 나오는 것이 보였다. 카힐은 침을 꼴깍 삼키며 홀리의 눈치를 살폈다. 홀리는 숨을 멈춘 채로 입구만 힐끔거리고 있었다. 그녀의 얼굴은 긴장으로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그걸 변명 삼아 다시 파고들었다가는 그 끝이 좋지 못할 것이 뻔했다. 아쉬움에 입맛만 다시며 홀리의 다리 사이를 보던 카힐의 눈이 번뜩였다.

“어디 가?”

그대로 끌어안고 온기나 전해 주길 바랐던 홀리는 카힐이 몸을 일으키는 것을 보고 물었다. 고개를 돌려 바라보는 얼굴에 살기가 진하게 묻어났다. 홀리가 움찔하며 몸을 뒤로 물리자 카힐이 그녀를 달래듯 볼을 쓸었다.

“해결하러.”

홀리는 굳은 채로 눈만 깜빡이며 망연히 그를 쳐다봤다. 그의 목소리는 칼날보다도 날카롭고 신경질적이었다.



* * *



“저기 뭔가 있다!”

목표를 쫓아 온 산을 뒤지던 암살자들 중 하나가 소리쳤다. 그의 손가락 끝에 눈보라가 있었다. 그리고 그 안에 거뭇한 무언가가 분명히 보였다. 그들은 날렵하게 눈보라를 둘러쌌다. 그 중심에는 심기가 불편한 카힐이 있었다.

“저, 저거 미친놈 아니야?”

경악에 찬 물음에 나머지도 그를 훑었다. 눈보라 안에 당당히 선 남자는 하의가 없었다. 흥분해 잔뜩 불거진 채로 젖어 있던 것은 같은 사내가 보기에 거북할 정도였다. 몇몇은 당황해 입만 어버버거리고 몇은 구석으로 달려가 속을 게워 냈다.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굴 입구까지 나가 내다보던 홀리의 얼굴이 처참하게 일그러졌다. 그는 잔뜩 발기한 것을 사내들 앞에 덜렁거리며 살기등등하게 서 있었다. 감정 기복이 거의 없는 녀석이 암살자들을 상대로 머리끝까지 화가 난 이유가 뻔해 얼굴이 달아올랐다.

“저 빙신이.”

그와 동행이라는 사실이 뼈가 시리도록 후회스러운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