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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프롤로그





한강 어딘가에는, ‘생명의 다리’라는 별명을 가진 다리가 있다고 한다.

여의도와 마포를 잇는 마포 대교, 그 다리의 난간에는 자살하려는 사람들을 막기 위한 따뜻한 문장들이 가득 적혀 있다고 한다. 그래서 생명의 다리라는 별명을 갖게 되었다 한다.

하지만 그곳에서 자살 시도자가 폭증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읽었을 때, 나는 그것이 생명의 다리에 예정된 운명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N극은 S극을 끌어들이고, 좋은 일에는 마가 끼며, 사람을 믿는 사람에게 사기꾼이 꼬이듯, 희망의 글귀는 절망에 빠진 자들을 끌어당기게 되어 있으니까.

나는 생명의 다리를 만든 사람들의 마음에 사랑이라는 감정이 존재했음을 안다. 다만, 그 선하고 아름다운 감정은 자연의 법칙대로 부패했을 뿐이다. 그것은 쇠못이 산소를 끌어들여 녹이 슬고, 맛있는 음식이 균을 끌어들여 썩는 것과 마찬가지로 자연적인 현상에 불과하다.

남녀 간의 사랑도 마찬가지다. 사랑이 아름답고 열렬할수록 실망과 권태, 증오를 끌어당기며 맹렬히 부패한다. 시간은 기어이 그것을 증명해 내고야 만다.

사람들은 사랑을 오래 간직하기 위해 결혼을 한다. 그것은 맛있는 음식을 냉동실에 넣어 두는 행위와 비슷하다. 사람에게는 뭔가 오래 보존하고 싶은 게 있으면 냉동실에 처박아 두는 본능이 있으니까.

하지만 그들이 모르는 게 있다. 냉동실에 오래 놔둔 음식은 온갖 더러운 냄새를 스펀지처럼 흡수해서 결국 썩은 것과 다름없는 상태가 되어 버린다. 내가 열 살 때 엄마 아빠는 서로를 향해 10년 된 냉동 돈가스를 먹는 듯한 표정을 짓곤 했고, 내가 스무 살이 된 지금은 토하기 직전의 표정을 거리낌 없이 보여 준다.

하지만 두 사람은 이제 그런 표정엔 상처조차 받지 않는다. 말과 주먹에 의한 상처만으로도 충분히 아파서 표정만으로 상처를 받을 겨를이 없다. 두 사람은 운명적으로 열렬히 사랑해서 결혼했고, 사랑을 이루기 위해 나를 낳았지만, 지금은 아무도 서로를 사랑하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운명적인 사랑이라는 말을 믿지 않는다. 그 개같은 최후만 믿는다. 엄마 아빠의 삶이, 그리고 주변에 널린 수많은 아줌마 아저씨들의 삶이 그 개같은 최후를 증명한다. 혼례식 날 처음 만나 백년가약을 맺든, 불같은 사랑에 빠져 결혼식을 올리든, 참담하거나 시시한 결말은 비슷하지 않은가. 로미오와 줄리엣도 그렇게 일찍 죽지만 않았다면, 서로의 눈만 마주쳐도 지긋지긋 몸서리치는 날과 반드시 맞닥뜨리게 됐을 것이다.

그래서 가끔 궁금했다. 어느 날 문득 내 곁으로 그따위 것이 찾아오면,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하고, 가장 달콤한 향을 풍기며, 도저히 거부할 수 없는 강력한 힘으로 찾아와서 내 목줄을 틀어쥔다면…….

……나는 어떻게 할까?

속지 않을 것이다. 나는 그 사기꾼 같은 감정이 결혼이라는 종착점까지 다다르지 못하도록 필사적으로 막을 것이다. 조금씩 썩고 썩어 가다가 결국에는 온몸을 문드러지게 하는 나병과 같은 그 감정이, 우리 엄마나 아빠 혹은 수많은 연인을 농락했던 것처럼 나를 농락하지 못하게 할 것이다. 내가 온 힘을 다해 그것을 걷어차고 짓밟고 밀어낼 것이다.



한강 어딘가에는, ‘생명의 다리’라는 별명을 가진 다리가 있다고 한다.

나는 아름다운 별명을 가진 그 다리에 가고 싶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그를 만났다.







#1. 생명의 다리





그날은 우연이 고등학생으로서 맞이하는 마지막 날이었다.

살다 보면 ‘반드시 지켜야 할 일’인 줄 알았는데, 실제로는 ‘지키지 않아도 되는 일’들이 있다. 가령, 스테이크 대신 수프를 먼저 먹어야 한다든가, 학생은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든가, 사랑 행위는 사랑하는 사람하고만 해야 한다든가, 졸업식 때는 꼭 학교에 가서 꽃다발을 들고 사진을 찍어야 한다든가 하는 것이 그렇다.

그래서 우연은 졸업식 날 아침, 학교에 가서 꽃다발을 들고 엄마 아빠와 사진을 찍는 대신 마포 대교에 가서 멋지게 번지 점프를 하기로 결심했다. 그런 나쁜 짓을 하면 절대 안 된다고 믿고 살아왔는데, 생각해 보니 안 될 이유가 전혀 없었다. 결심하기까지만 어려웠지, 정작 집에서 마포 대교까지 오는 것은 코를 풀듯 쉬웠다.

물론 원하던 미대에 무사히 합격하고, 한껏 자유로운 시간을 만끽할 예비 대학생의 행선지로 마포 대교가 썩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진 않았다. 그것도 새파랗게 멍들고 새빨갛게 얼어 터진 얼굴로, 영하 12도의 칼바람 속에, 코트도 걸치지 않은 홑교복 차림으로는 더더욱.

우연은 어깨를 움츠리고 힘없이 웃었다. 이 마당에 얼굴이 예쁜지 안 예쁜지, 옷이 어울리는지 안 어울리는지 생각하다니. 엄마 말마따나, 정신이 나간 것 같긴 하다.

……이젠 아무래도 상관없지만.

포기하면 편하다는 말은 사실이다. 이제는 무슨 일이 터질지 걱정 안 해도 되니까.

물론 마음 한구석이 분한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미안하다 우연아, 내가 잘못했다, 몸부림치며 통곡하는 엄마 아빠를 보고 싶긴 했다. 그 꼴을 딱 5분만 볼 수 있다면 악마에게 영혼을 팔 수도 있을 것 같다.

바보야. 바랄 걸 바라야지.

그들의 뇌 속에는 후회나 반성의 기능이 없다. 엄마는 ‘부모 가슴에 대못을 박은 년’이라 원망하며 울 것이고, 아빠는 학교로 달려가 ‘어떤 개같은 연놈들이 우리 애를 괴롭혔느냐.’ 하며 길길이 날뛸 것이다. 그 꼴을 보느니 아무것도 못 보는 게 낫다.

우연은 난간에 손을 짚고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설을 앞두고 갑자기 날이 추워져서 한강은 가장자리부터 허옇게 얼어들고 있었다.

이제 남은 희망은 단 하나였다. 되도록 빨리, 되도록 안 아프게.

찬물에 심장이 멎는 게 빠를까, 머리가 깨져서 죽는 게 빠를까.

……어느 쪽이든 좋아. 익사만 아니면 돼.

우연은 의식이 있는 채로 겪어야 할 일이 분의 고통이 너무 무서웠고, 이런 생각이나 해야 하는 자신이 너무 처량했다.

“별거 아니야. 겁먹을 거 없어. 번지 점프랑 다를 게 뭐야?”

……발에 줄이 안 묶인 거 빼고.

“그냥, 하나 둘 셋! 점프! 하고 뛰면 되는 거야. 실제로 해 보면 하나도 안 무서울 거야.”

번지 점프 안 해 봤잖아.

“멍청아, 그래도 자이로드롭은 타 봤잖아.”

아, 맞다. 작년에 롯데월드 갔을 때 타 봤었지.

비명도 지를 수 없을 만큼 짧은 시간에 모든 것이 끝났다. 그런 경험은 난생처음이었다. 놀랍도록 깔끔한 결말이었고, 내려오고 나니 너무 허망해서 주변을 한참 두리번거렸다.

이번에도 그럴 것이다. 비명은커녕 찍소리가 나오기도 전에 모든 것이 끝날 것이다. 그러니 촌스럽게 질질 울거나, 듣지도 못할 누군가의 이름을 부르는 대신 팔을 활짝 벌려 만세를 부르며 뛰어내리면 되는 것이다.

죽음이 반드시 슬픈 것만은 아닌데 사람들은 그걸 잘 모른다. 평생 죽도록 고생하고 죽을 만큼 아파하다 돌아가신 할아버지 할머니의 장례식에서 왜들 그렇게 야단스레 울어 댔는지 모르겠다. 물론 보고 싶을 때 못 보게 되면 섭섭하긴 하겠지. 하지만 당사자가 고통에서 벗어날 권리는 남들이 보고 싶어 하는 권리보다 우선해야 옳다. 그러니까 존엄사라는 말이 나오는 것이겠다.

우연은 자신의 죽음이 존엄사인지 아닌지 잠시 생각해 보다가 눈물이 핑 도는 바람에 얼른 포기했다. 아무리 허세를 부리고 쿨한 척해도 입에서는 자꾸 울음이 터져 나오려 한다.

추위는 더 이상 느껴지지 않는다. 벌겋게 언 손이나 스타킹조차 신지 않은 맨다리, 얇은 교복으로 감싸인 피부에서 느껴지는 것은 온통 아프다는 감각뿐이었다. 생각해 보면 오래전부터 통각만 존재했던 것 같다. 미각이든, 후각이든, 촉각이든, 청각이든, 우연의 모든 감각은 아파, 더 아파, 죽을 만큼 아파, 라고만 말했다. 이제 간신히 스무 살이 되었는데, 느낌으로는 이백 살쯤 처먹은 것 같았다.

자꾸 이렇게 우울하고 나쁜 생각만 하는 자신이 너무 싫었다. 힘들어도 건강하게 생각하고 밝게 웃어야 좋은 일이 생긴다고 하는데, 아무리 애를 써도 나쁜 생각만 든다. 알코올 중독, 담배 중독처럼 나쁜 생각만 하는 것도 중독이 아닐까 싶다.

……그래. 어차피 난 정상이 아니라니까, 뭐.

병신, 정신병자, 미친년, 사이코패스. 엄마와 아빠는 우연을 그렇게 불렀다. 친구들도 우연을 ‘4차원 또라이’, ‘우와 저 미친!’, ‘헐, 대박!’이라는 말로 표현했다. 우연은 그 말이 욕인지 칭찬인지, 좋다는 건지 싫다는 건지, 따돌림인지 피해망상인지 늘 헷갈렸다.

자신의 행동이나 말이 옳은지 그른지, 상황에 맞는지 안 맞는지도 늘 헷갈렸다. 말을 하고도 후회하고 삼키고도 후회했다. 일을 저질러 놓고도 후회하고, 포기하고도 후회했다. 후회는 쉴 틈 없이 반복되었다. 그래서 우연은 늘 겁에 질려 있거나, 분노가 끓어오르거나, 짜증이 나거나, 어디론가 도망치고 싶었다.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하고 싶었다. 모르는 몸에 들어가 새로운 삶을 살게 된 운 좋은 영혼처럼, 리셋 버튼을 딱 누르자마자 되살아나는 게임 캐릭터처럼. 자신의 삶은 난도가 너무 높은 극악 코스로만 이루어져 있으니, 이런 코스에는 리셋 버튼이나 비상 탈출 버튼이 어딘가 숨겨져 있어야 할 것 같았다.

그리고 얼마 전, 우연은 드디어 숨겨진 버튼을 찾아냈다. 비상 탈출 버튼이었다. 이제 버튼을 눌러서 잠긴 문을 열고 안전하게 탈출할 일만 남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버튼은 오늘 아침 폭발했다.



“됐어, 괜찮아. 진짜 최후의 탈출 버튼은 남아 있으니까.”

생각해 보면 희망을 품고 버틴 기간만큼 더 손해였다. 판도라의 상자에 남은 희망이야말로 인간에게 남겨진 가장 끔찍한 저주 아니었을까?

눈앞을 가로막고 있는 하얀 난간으로 시선을 옮겼다. 두 손 사이로 단정한 명조체의 글자가 붙잡혔다. 자신의 절망을 끌어들인 희망, 마포 대교에 생명의 다리라는 별명을 선사해 준 아름다운 문장 조각들이 하나씩 하나씩 앞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잘 지내지?」

아, 씨…….

눈이 송곳에 콱 찔린 것 같다. 바보예요? 잘 지내는 사람이 여기 왜 오겠어요. 억지로 눌러둔 눈물이 그 한마디에 꾸역꾸역 기어 나온다. 어떡해. 어떡해. 우연은 발을 동동대며 눈을 꽉 감았다. 이제 송곳이 목구멍을 쑤셔 댄다. 도망치듯 걸음을 옮기자 난간에 적힌 글자들이 꼬리 치며 졸졸 따라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