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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민망해져서 앞에 있던 물을 한 번에 들이켰다. 내가 힘들게 주운 파츠를 맛있게 먹는 적들이 눈에 들어온다. 보기 싫은 마음에 화면을 돌리자 열심히 도망 다니는 그의 시야가 공유되었다. 그는 혼자서도 킬 수를 부지런히 올리고 있었다. 듀오만 잘 만났어도 거뜬히 치킨을 먹었을 사람인데. 미안한 마음에 목소리 크기가 모기처럼 기어들어 갔다.

“죄송해요, 아이제이 님…… 제가 너무 초보라서…….”

―아뇨. 괜찮습니다.

“파이팅! 이길 수 있다! 저쪽 컨테이너 위에 구급상자 드세요!”

―예.

단답도 저런 목소리가 하니 그리 좋을 수가 없었다. 그의 플레이를 중계하다가 숨을 돌릴 겸 잠시 의자에 기대어 앉았다. 그런데 옆에 켜 둔 채팅 창에 불이 붙은 듯 스크롤이 끊임없이 올라가기 시작했다.

“왜 그래요? 왜. 어그로 들어왔어요?”

도저히 눈으로 읽을 수가 없어서 스크롤을 잠시 잡고 있었다. 1킬 했다고 좋아하다가 발소리도 못 듣고 죽은 나를 비웃는 말이 쓰여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전혀 다른 내용이 있었다.



▷ 헐? 좀 비슷한 것 같음

▷ 물타기 ㄴㄴ



“뭐가 비슷하다는 거예요?”

채팅 창을 위로 끌어 올리는데 마침 후원이 들어왔다. 화면 아래로 시선을 돌리고 시청자가 보내 준 말을 그대로 읽었다.

“아구몽 님, 천 원 감사합니다. 저 사람 목소리가 아이돌 서인준이랑 똑같다고요?”

서인준이 누군데? 그 질문이 시작이었다. 내가 아무리 말려도 그들은 계속 ‘서인준’에 대해 얘기를 했다. 그들의 대화에 의하면 어느 보이 그룹의 리더라는데, 아이돌 쪽으로는 문외한이라서 이해를 하지 못했다. 하지만 채팅 창은 여느 때보다 활기찼다.



▷ 엥 그러고 보니 서인준도 약간 사투리 톤 섞여 있는데 저 사람도 그럼

▷ 아이돌이 이 시간에 왜 게임해요?

▷ 아이돌들 스케줄 없을 때 이 겜 많이 함;



랜덤 매칭으로 아는 사람이 걸렸는데, 그 아는 사람이 연예인일 확률은 얼마나 될까.

“아니, 여러분. 싸우지 마시고…… 유명한 사람이에요?”

내 질문에 그들이 전부 이응을 쳤다. 또 누구는 갑자기 프로필을 긁어 와서 친절하게 채팅 창에 올려 주었다. 그중 노래 제목 하나가 익숙하다 했더니 최근 길거리에서 자주 나오는 노래였다. 채팅 창은 진짜 서인준이다, 아니다로 갈라졌다.

시청자들이 궁금해하니 묘한 호기심이 생겼다. 인터넷 창을 켜서 그의 이름을 검색해 보았다. 자로 반듯하게 그린 것같이 생긴 냉미남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러니까 이 잘생긴 사람이 지금 같이 게임하고 있는 목소리 좋은 남자일지도 모른다는 소리였다.

묵묵하게 풀숲을 기고 있는 그의 화면을 바라보았다. 진짜 아이돌이면 대박이긴 한데.



▷ 장마님. 말 더 걸어 봐요

▷ 그냥 서인준이냐고 물어보면 안 됨?

▷ 그럼 누가 본인 맞다고 해요 ㅋㅋㅋㅋ 아니라고 하지



결국 그들의 떠밀기에 이기지 못하고 게임용 마이크를 다시 켰다. 한참 적과 대치하던 것이 끝나고 어느새 그를 포함해 8명만 남아 있었다. 이런 중요한 상황에 말을 걸어도 되나 싶다.

“저, 아이제이 님.”

―네.

“요새 무슨 아이돌 좋아하세요?”

최대한 돌려서 물어본 건데도 질문이 이상했나 보다. 그가 다시 침묵을 지켰다. 채팅 창에선 질문이 그게 뭐냐며 야유를 했다. 내가 생각해도 좀 별로여서 다른 유도 질문을 떠올렸다. 그사이 수류탄으로 또 한 명을 죽인 그가 입을 열었다.

―‘트란’ 좋아합니다.

“트란이요?”

―네.

‘트란(TRAN)’이면 서인준이 리더로 있는 보이 그룹 이름이다. 심지어 시청자 중에 한 명이 그의 아이디를 잘 보라고 했다. ‘IJ970728’. 앞에 두 개가 서인준의 이니셜이라면 뒤에는 생년월일이다. 프로필상의 생일과 정확히 일치했다. 채팅 창이 술렁였다.



▷ 와, 트란? ㄹㅇ트란?

▷ 합방하자고 해요

▷ 물타기 하지 마세요~



고작 목소리와 말투, 아이디뿐이었지만 왠지 느낌상 맞는 것 같았다. 심지어 어디선가 벌써 소문이 났는지 시청자 수가 하나둘 많아지고 있었다. 일이 서서히 커져만 갔다. 당황한 나는 이상한 광고를 하는 시청자를 몇 명 내보내며 상황을 수습했다.

“여러분, 잠시만요. 그냥 목소리 비슷한 일반인일 수도 있잖아요.”

확실히 저런 목소리를 가진 사람은 처음 보지만.

내가 하도 믿지 못하자 또 다른 후원이 들어왔다. 이번엔 영상 링크까지 연결되어 있었다. 제목이 ‘트란 서인준 인터뷰’였다. 망설임 없이 영상을 클릭하자 방송 화면으로 영상 하나가 나갔다. 화면 속에 잘생긴 남자 다섯이 보였다. 그중 가운데 있던 남자가 한 발자국 앞으로 나와서 앨범 소개를 시작했다.

“헐, 잠깐만. 뭐야?”

정말로 목소리가 똑같다. 미묘하게 다르기는 하지만, 그게 음질 차이라고 한다면 충분히 감안할 수 있었다. 말끝에 사투리가 섞인 것까지 비슷했다. 중립을 지키던 나마저도 흔들리기 시작했다. 다른 모니터를 확인하자 그가 마지막 한 명을 두고 엄폐물에 숨어 있었다.

저대로 그가 죽어도 게임은 끝이고, 그가 이겨도 듀오는 끝난다. 방해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아이제이 님.”

대답이 없었다. 집중하고 있는 모양이다.

“혹시 서인준이라고 아세요?”

내 말이 끝나는 타이밍과 동시에 그의 화면이 크게 흔들렸다. 지금껏 조준에 실패한 적이 없는데 총이 빗나갔다. 결국 그는 상대방의 총에 맞고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다.

화면에 2위라고 적힌 글자와 함께 긴 정적이 흘렀다. 반응이 커도 너무 컸다. 설마 하는 마음에 다시 물어보려 했지만 이미 그는 나가고 없었다.

아무도 없는 대기 화면을 보다가 한마디를 툭 내뱉었다.

“……이거 진짜야?”



▷ 대박ㅋㅋㅋㅋ방금 전 에임 흔들린 거 봤음?

▷ 누가 봐도 정곡이라 ㅇㅇ



“그럼 이거 올리면 안 되는 거 아냐?”



▷ 이미 트잇터에 퍼졌어용

▷ 조회수 각임 일단 ㄱ



핸드폰을 켜서 확인하자 정말로 실시간 핫이슈에 그의 이름이 떠오르고 있었다. 그 아래로는 내 이름까지 보였다. 뒤늦게 시청자가 유입되어 끝내 삼천 명을 찍었다. 더 가다간 수습이 되지 않을 것 같아서 대충 상황을 정리하고 일찍 방송을 종료했다.

녹화되어 있는 영상을 켜서 처음부터 다시 그의 목소리를 들었다. 다시 들으니 미묘하게 다르다. 하지만 팬이 준 트란의 서인준 영상과 비교해 보면 또 비슷하다. 애초에 흔히 들을 수 있는 목소리는 절대 아니었다.

“아, 어떡하지.”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이 아이돌일지도 모르는 남자는 그냥 휴식 시간에 게임 한 판 하려고 했는데, 하필 생방을 하고 있는 스트리머를 만나 버렸다. 이 영상에서 그가 실수한 것은 전혀 없었지만 채널에 업로드하면 원치 않게 사생활을 들추는 꼴이 되어 버린다.

하지만 이미 SNS에 팬이 올린 짧은 영상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 아래의 반응은 다행히 긍정적인 말만 가득했다.

몇 시간을 고민하다가 결국 아이디를 모자이크하고 영상을 올리기로 했다. 나중에 지워 달라고 부탁하면 그때 수습하면 될 것이다. 이렇게 걱정한 것과 달리 서인준 본인이 아닐 수도 있다.

“괜찮겠지.”

잠시 핸드폰을 옆으로 치워 두고 영상 편집을 시작했다. 처음부터 돌려 보니 재미있는 부분이 꽤나 많았다. 적절히 자막을 넣고 후반부로 갈수록 혼란스러워지는 채팅 창은 가렸다.

영상을 편집하는 내내 트란의 신곡을 노동요 삼아서 들었다. 예전에는 몰랐지만 인지하고 나서 들으니 서인준의 파트만 선명하게 들린다.

“목소리 진짜 좋다. 실제로 들어도 이런가?”

편집이 다 끝나 갈 즈음엔 노래를 같이 흥얼거리고 있었다. 잘생긴 데다가 목소리도 좋고, 게임도 잘하고 생초보인 내게 배려까지 해 주었다. 이래서 아이돌 팬이 되나 보다. 어느새 서인준에 대해 검색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내일 생방 때 시청자들에게 트란의 정보를 공유해 달라고 부탁해야겠다.

완성된 영상을 한 번 돌려 보고는 채널에 등록했다. 시간이 벌써 자정을 넘어가고 있었다. 좁은 바닥에 이불을 깔고 누워서 핸드폰 알람을 맞췄다. 설마 예전의 ‘게임계 전남친’ 사건처럼 되지는 않겠지. 헛웃음을 흘리며 잠에 들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지겹도록 울리는 진동 소리에 눈이 떠졌다. 새벽 내내 방해 금지 모드를 켜 두면서 쌓여 있던 알림이 오전에 갑자기 터진 모양이다. 누가 이렇게 아침 댓바람부터 내게 연락을 하는지 모르겠다. 잔뜩 부은 눈을 비비며 핸드폰을 주워 들었다.

“뭐야, 뭔데.”

엄청난 수의 알림이 보였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톡이나 문자가 아니라 전부 너튜브에서 온 알림 창이었다. 내 채널을 누르고 멍하니 쳐다보다가 상체를 벌떡 일으켰다.

“일, 십, 백 천…… 오십만?”

자그마치 하루 만에 오십만 조회 수를 달성했다. 정확하지 않은 사실로 어그로를 끌고 싶지 않아서 ‘목소리 좋은 고수랑 듀오’라는 제목으로 올렸다. 해시태그에도 ‘트란’이나 ‘서인준’을 넣는 것은 일부러 피했다. 그런데도 이 영상은 팬들 사이에서 서인준으로 기정사실화되어 있었다.

구독자 수도 말도 안 되게 불어 있었다. 새삼 그의 인기를 실감했다.

“와, 잠 확 깨네.”

관심이 쏠린 만큼 댓글도 만만찮게 많이 달렸다. 서인준이 맞다, 아니다 논쟁부터 시작해서 그의 팬들이 몰려왔다. 게임까지 잘하는 아이돌이라며 칭찬이 가득했다. 가끔씩 트란의 안티가 댓글을 달면 재깍재깍 캡쳐 뜨고 신고해 버렸다.

내 SNS에 놀러 온 트란의 팬들은 서인준의 이런 모습을 보여 줘서 고맙다고 인사까지 했다. 게다가 영상이 퍼질 대로 퍼졌는데 공식에서는 아무 대응이 없다. 채널에 떡하니 메일 주소를 넣어 놨는데 메일함도 비어 있었다.

그저 게임 방송이라 공식에서 관심을 주지 않는 것일지도 모르지만, 자꾸만 서인준이 맞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신이 멍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