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아래로 스크롤 하세요.
꽃눈개비 20화
#3 (2)
대본이 마지막 화까지 완성되어 회사로 보내졌다는 말을 듣고 오랜만에 방문했더니 도하를 바라보는 시선들이 예사롭지가 않았다.
매번 인사를 나누던 사람들이었지만 오늘은 꼭 한마디씩 덧붙였다. 기대하고 있다는 둥 드라마 촬영 잘 되고 있냐는 둥 얼핏 들으면 평범한 안부였다. 하지만 마지막에는 강세진의 화제가 따라붙었다. 역시 다들 도하보단 세진이 궁금한 것이었다.
네, 세진 씨 잘생겼죠. 연기도 좋던데요? 왜 찍게 된 건지는 모르겠네요. 비슷한 질문에 기계적인 대답과 어색한 눈짓을 보내며 승강기를 타는데 누군가 급하게 따라 탔다.
“잠시만……!”
“어, 호영아.”
“아. 서, 선배……. 먼저 가세요.”
박호영이었다. 급하게 올라탈 때는 언제고 호영은 도하의 얼굴을 보자마자 승강기에서 내리려고 했다.
“호영아, 사람을 피하려면 당당하게 무시를 해.”
“그, 그런 거 아니에요.”
“응, 아니야? 그럼 그냥 타.”
“네…….”
도하의 말에 어쩔 수 없이 승강기에 탄 호영은 층수를 누르고는 조용히 바닥만 내려다보았다.
어색한 정적만이 흐르는 승강기 안에서 도하는 멋쩍은 표정으로 콧등만 긁었다. 호영이 자신을 대놓고 어려워하니 차마 할 말도 없었다. 싫어하거나 귀찮아하면 툭툭 건드려 보겠지만, 호영은 무슨 사자 앞의 가녀린 사슴처럼 겁에 질려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한 가지 어이없는 점은 도하는 한 번도 호영에게 무어라 호통친 적이 없다는 거다. 아니, 아예 긴 대화를 나눠 본 적이 없었다. 도대체 자신의 어디가 그렇게 무서운지 그는 이해가 안 갔다.
도하와 호영의 관계라곤 큰 CF 하나가 넘어가고, 대본 몇 개가 넘어가고, 역할 한 개가 넘어간 정도가 다였다.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닐 만큼 친분을 만든 적이 없었다.
얼굴, 얼굴이 무서운가? 고개를 갸우뚱하며 엘리베이터 벽에 있는 거울을 바라보았다. 오늘도 잘생긴 얼굴이다.
“아, 도하 선배. CVM 주연 따신 거 축하드려요. 말씀드리고 싶었는데 연락처를 몰라서…….”
호영이 쭈뼛쭈뼛 조그마한 목소리로 말했다. 먼저 말을 건 것은 꽤 용기가 필요했던 모양이다. 첫소리에 살짝 삑사리가 났다. 도하는 그 말에 고개를 가볍게 주억이며 시선을 돌렸다. 그보다 작은 몸집의 호영은 여전히 바닥을 보고 있었다. 뭐라도 한마디 해 줄까 싶어 입을 열었다.
“아, 고마워. 너도 그…….”
어색함에 말을 내뱉기 전 잠시 숨을 골랐다.
“윤정 감독님 작품 붙었다며. 지금 촬영 중이지?”
“네.”
망설임 없이 나오는 대답에 괜히 속이 답답해졌다. 도하는 양손의 엄지를 만지작거리며 웃었다.
“너도 나도 장르물이네. 언제 하는 거였지? OCV인 건 아는데.”
“다다음 달에 수목으로 방영해요. 저는 조금 나중에 나오겠지만.”
“그렇구나. 나 윤 감독님 작품 좋아하니까 꼭 챙겨 볼게.”
무엇 하나 걸릴 게 없는 일상적인 대화였다. 승강기는 금방 다음 층으로 도착했다. 먼저 내린 도하가 잘 가라고 손을 흔들어 주자 호영이 꾸벅 인사했다. 승강기가 다음 층으로 올라가는 것을 보고 숨을 크게 뱉었다.
호영과 있으면 이상했다. 그 어색함을 어떻게 중화할 수가 없었다.
아무래도 이전에 단비가 말했던 견디기 힘든 허탈감의 대상은 단지 세진이나 근태가 아니었을 뿐이었던 것 같다. 의식하기 않으려 했을 뿐 도하에게도 그런 감정을 느끼게 만드는 사람은 있었다. 같은 소속사 후배 박호영.
도하는 고작 일 몇 개 빼앗겼다고 아니, 빼앗긴 게 아니라 정말로 호영이 마음에 들어서 넘어갔을 수 있는 것 가지고 응어리져서 이러는 거냐며 속 좁은 자신을 질타했다. 그리고 서둘러 매니저가 있는 곳으로 발을 돌렸다.
“자, 16화까지 대본. 원작이 있어서 빨리 나오긴 했네.”
“그러게요. 나중에 생방으로 진행돼서 쪽대본 나오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CG 작업도 해야 할 텐데 그런 지옥 같은 스케줄을 짤 수는 없지.”
매니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받은 대본을 휘리릭 넘겼다. 13화까지 봤을 때도 평범한 퇴마 장르물로써 재미를 느꼈기에 뒷이야기가 어떻게 나올지 궁금했었다.
대본은 굉장히 잘 짜여 있었다. 최근 읽은 드라마 대본 중에서는 제일 재밌었다. 특히 후반 형우와 재영의 관계를 소년 만화의 뜨거운 사제지간같이 표현한 점이 재미있었다. 이렇게만 보면 정말 원작에서의 둘이 어떤 느낌이었는지 감도 안 잡힌다.
하지만 대본이 이렇게 적혀 있다 하더라도 감독이 노리는 브로맨스는 좀 더 원작에 가까운 느낌이라는 것을 촬영을 하면서 느꼈다. 은근하게! 애틋하게! 은밀하게! 그 말을 몇 번 들었는지 셀 수도 없다. 나중에는 도하와 세진 두 사람 다 대사보다 저 말이 더 머릿속에 박혀 있을 지경이었다.
“나 원작을 읽어 봐야 할까 봐요.”
“뭐? 갑자기 왜.”
툭 튀어나온 말에 매니저가 질겁했다.
“감독님께서 원하는 분위기가 있는데, 대본만 봐서는 그게 잘 안 잡히잖아요. 내가 본 대본은 분명 소년 만화인데 감독님은 순정 만화를 원하시니.”
감독님 머릿속에 들어 있는 원작의 이미지를 알아야 그 마음을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사실 도하는 처음 원작이 있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도 도전을 하려고 했었다. 이북 사이트에 들어가서 검색을 했더니 표지에 19세 미만 구독 불가라고 적혀 있어 어색함을 느끼고 뒤로 가기를 눌렀지만 말이다.
또 그때는 조연 신민기를 준비하던 시기여서 원작을 안 읽어도 된다 생각했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읽는 게 나을 것 같았다.
“괜찮아요. 나 퀴어물 찍은 사람이야.”
“안 물었다.”
호승심에 괜히 한마디 했더니 싸늘한 대답이 돌아왔다. 매니저는 굳이 말리는 일 없이 알아서 하라고 말했다.
회의실에 앉아서 재밌는 만화책을 읽는 기분으로 대본을 읽고 있는데 곧 문이 열렸다.
“도하 씨 왔어요?”
“아. 실장님, 안녕하세요!”
“요즘에 인터넷 봐요?”
“안 봐요!”
오랜만에 보는 것 같은 홍보 팀 실장과 반가운 인사를 나눴다. 도하의 대답에 그는 잘하고 있다고 웃었다. 그 반응을 보아 여전히 도하는 안 좋은 쪽으로 화제가 되는 모양이었다.
홍보 팀 실장은 가지고 온 서류를 도하와 매니저에게 하나씩 보여 주었다. 대부분은 기사였다. 아직 드라마 자체에서 나올 홍보물은 없었기 때문에 드라마가 언급되는 부분은 세진의 팬이 보낸 커피 차의 기사나 마슈크 멤버들이 보낸 밥 차 기사가 전부였다. 아니면 드라마가 만들어진다는 소식에 갑작스럽게 이북 사이트 실시간 순위에 오른 원작 정도의 얘기였다.
이런 것도 기사가 나오는 모양이네, 하고 내용을 보자 강세진의 이름이 들어가 있었다. 세진의 소속사 G.I에서 푼 기사인 것 같았다.
“지금 세진 씨 측에서 홍보를 열심히 하고 있어서 조금 밀리는 감이 있어요. 이만큼 나오면 누가 주인공이냐는 소리까지 나오게 되니까요.”
“홍보에 있어서는 세진이가 주가 되는 게 맞는 거 같아요. 지금 저보다 드라마의 얼굴이니까요.”
“응, 그건 아는데 우리 쪽에서도 도하 씨를 띄워 줘야 하니까. 포스터나 티저 영상이 뜨면 그때부터 과하다 싶을 정도로 쏟아 낼게요.”
홍보 팀 실장의 말에 도하가 어색하게 웃었다. 과한 건 좀…….
“지금 회사 내에서 도하 씨한테 거는 기대가 커요. 예상치도 못하게 주연 잡아 온 것도 그렇고 같이 나오는 상대가 강세진 씨인 것도 크고요. 처음엔 어떻게 될까 걱정도 많이 했는데 어떻게든 되긴 하네요.”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은 홍보 팀 실장이 펼쳐 놓았던 기사들을 다시 모았다. 처음 드라마의 주연을 맞게 되었을 때 매니저만큼은 아니더라도 걱정을 했던 터라 잘 풀려 나가는 것을 보고 안심한 것 같았다.
“도하 씨가 출연한 웹 드라마는 계속 급상승에 오르내리고 있고요. 지금 인터넷 검색량은 호영 씨보다 도하 씨가 더 많아요. 회사로 오는 문의도 도하 씨에 대한 게 가장 많아졌어요. 그러니까 앞으로도 힘냅시다. 이번 기회 확실하게 써먹자고요.”
많은 배우가 속해 있는 회사였지만 조연과 단역 위주로 굴러가는 작은 회사였다. 이름 있는 배우는 없어도 얼굴은 익숙한 배우는 꽤 있는 회사에서 이름을 대면 ‘아, 그 친구?’ 하고 알아주는 대표 배우가 생겨났던 순간이 2년 전 호영의 CF였다.
그 후로 호영은 회사 내에서 밀어주는 간판이 되었고, 그 뒤의 후배들에게도 간간이 좋은 조연 자리가 들어가게 되었다. 호영의 뒤를 잇는 젊은 배우들이었다.
도하야 떨어지는 대본도 없으니 자신이 속한 분야에서 열심히 활동하고 팬층을 쌓았지만 회사가 원하는 방향이 아니었기에 언제나 뒷전이었다. 그러다 이번에 드디어 호영보다 더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순간이 온 것이다.
그래 봤자 이 작은 회사의 간판일 뿐이지 연예계에서는 여전히 발에 채는 돌멩이만 한 인지도인 호영이지만, 도하에게는 굉장히 중대한 일이었다.
홍보 팀 실장이 서류를 정리하고 다시 일어났다. 나가려고 회의실 문에 손을 걸던 그가 ‘아, 참.’ 하며 다시 말을 이었다.
“호영 씨 영화 하나 찍기로 했더라고요. 주연으로.”
“우와.”
#3 (2)
대본이 마지막 화까지 완성되어 회사로 보내졌다는 말을 듣고 오랜만에 방문했더니 도하를 바라보는 시선들이 예사롭지가 않았다.
매번 인사를 나누던 사람들이었지만 오늘은 꼭 한마디씩 덧붙였다. 기대하고 있다는 둥 드라마 촬영 잘 되고 있냐는 둥 얼핏 들으면 평범한 안부였다. 하지만 마지막에는 강세진의 화제가 따라붙었다. 역시 다들 도하보단 세진이 궁금한 것이었다.
네, 세진 씨 잘생겼죠. 연기도 좋던데요? 왜 찍게 된 건지는 모르겠네요. 비슷한 질문에 기계적인 대답과 어색한 눈짓을 보내며 승강기를 타는데 누군가 급하게 따라 탔다.
“잠시만……!”
“어, 호영아.”
“아. 서, 선배……. 먼저 가세요.”
박호영이었다. 급하게 올라탈 때는 언제고 호영은 도하의 얼굴을 보자마자 승강기에서 내리려고 했다.
“호영아, 사람을 피하려면 당당하게 무시를 해.”
“그, 그런 거 아니에요.”
“응, 아니야? 그럼 그냥 타.”
“네…….”
도하의 말에 어쩔 수 없이 승강기에 탄 호영은 층수를 누르고는 조용히 바닥만 내려다보았다.
어색한 정적만이 흐르는 승강기 안에서 도하는 멋쩍은 표정으로 콧등만 긁었다. 호영이 자신을 대놓고 어려워하니 차마 할 말도 없었다. 싫어하거나 귀찮아하면 툭툭 건드려 보겠지만, 호영은 무슨 사자 앞의 가녀린 사슴처럼 겁에 질려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한 가지 어이없는 점은 도하는 한 번도 호영에게 무어라 호통친 적이 없다는 거다. 아니, 아예 긴 대화를 나눠 본 적이 없었다. 도대체 자신의 어디가 그렇게 무서운지 그는 이해가 안 갔다.
도하와 호영의 관계라곤 큰 CF 하나가 넘어가고, 대본 몇 개가 넘어가고, 역할 한 개가 넘어간 정도가 다였다.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닐 만큼 친분을 만든 적이 없었다.
얼굴, 얼굴이 무서운가? 고개를 갸우뚱하며 엘리베이터 벽에 있는 거울을 바라보았다. 오늘도 잘생긴 얼굴이다.
“아, 도하 선배. CVM 주연 따신 거 축하드려요. 말씀드리고 싶었는데 연락처를 몰라서…….”
호영이 쭈뼛쭈뼛 조그마한 목소리로 말했다. 먼저 말을 건 것은 꽤 용기가 필요했던 모양이다. 첫소리에 살짝 삑사리가 났다. 도하는 그 말에 고개를 가볍게 주억이며 시선을 돌렸다. 그보다 작은 몸집의 호영은 여전히 바닥을 보고 있었다. 뭐라도 한마디 해 줄까 싶어 입을 열었다.
“아, 고마워. 너도 그…….”
어색함에 말을 내뱉기 전 잠시 숨을 골랐다.
“윤정 감독님 작품 붙었다며. 지금 촬영 중이지?”
“네.”
망설임 없이 나오는 대답에 괜히 속이 답답해졌다. 도하는 양손의 엄지를 만지작거리며 웃었다.
“너도 나도 장르물이네. 언제 하는 거였지? OCV인 건 아는데.”
“다다음 달에 수목으로 방영해요. 저는 조금 나중에 나오겠지만.”
“그렇구나. 나 윤 감독님 작품 좋아하니까 꼭 챙겨 볼게.”
무엇 하나 걸릴 게 없는 일상적인 대화였다. 승강기는 금방 다음 층으로 도착했다. 먼저 내린 도하가 잘 가라고 손을 흔들어 주자 호영이 꾸벅 인사했다. 승강기가 다음 층으로 올라가는 것을 보고 숨을 크게 뱉었다.
호영과 있으면 이상했다. 그 어색함을 어떻게 중화할 수가 없었다.
아무래도 이전에 단비가 말했던 견디기 힘든 허탈감의 대상은 단지 세진이나 근태가 아니었을 뿐이었던 것 같다. 의식하기 않으려 했을 뿐 도하에게도 그런 감정을 느끼게 만드는 사람은 있었다. 같은 소속사 후배 박호영.
도하는 고작 일 몇 개 빼앗겼다고 아니, 빼앗긴 게 아니라 정말로 호영이 마음에 들어서 넘어갔을 수 있는 것 가지고 응어리져서 이러는 거냐며 속 좁은 자신을 질타했다. 그리고 서둘러 매니저가 있는 곳으로 발을 돌렸다.
“자, 16화까지 대본. 원작이 있어서 빨리 나오긴 했네.”
“그러게요. 나중에 생방으로 진행돼서 쪽대본 나오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CG 작업도 해야 할 텐데 그런 지옥 같은 스케줄을 짤 수는 없지.”
매니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받은 대본을 휘리릭 넘겼다. 13화까지 봤을 때도 평범한 퇴마 장르물로써 재미를 느꼈기에 뒷이야기가 어떻게 나올지 궁금했었다.
대본은 굉장히 잘 짜여 있었다. 최근 읽은 드라마 대본 중에서는 제일 재밌었다. 특히 후반 형우와 재영의 관계를 소년 만화의 뜨거운 사제지간같이 표현한 점이 재미있었다. 이렇게만 보면 정말 원작에서의 둘이 어떤 느낌이었는지 감도 안 잡힌다.
하지만 대본이 이렇게 적혀 있다 하더라도 감독이 노리는 브로맨스는 좀 더 원작에 가까운 느낌이라는 것을 촬영을 하면서 느꼈다. 은근하게! 애틋하게! 은밀하게! 그 말을 몇 번 들었는지 셀 수도 없다. 나중에는 도하와 세진 두 사람 다 대사보다 저 말이 더 머릿속에 박혀 있을 지경이었다.
“나 원작을 읽어 봐야 할까 봐요.”
“뭐? 갑자기 왜.”
툭 튀어나온 말에 매니저가 질겁했다.
“감독님께서 원하는 분위기가 있는데, 대본만 봐서는 그게 잘 안 잡히잖아요. 내가 본 대본은 분명 소년 만화인데 감독님은 순정 만화를 원하시니.”
감독님 머릿속에 들어 있는 원작의 이미지를 알아야 그 마음을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사실 도하는 처음 원작이 있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도 도전을 하려고 했었다. 이북 사이트에 들어가서 검색을 했더니 표지에 19세 미만 구독 불가라고 적혀 있어 어색함을 느끼고 뒤로 가기를 눌렀지만 말이다.
또 그때는 조연 신민기를 준비하던 시기여서 원작을 안 읽어도 된다 생각했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읽는 게 나을 것 같았다.
“괜찮아요. 나 퀴어물 찍은 사람이야.”
“안 물었다.”
호승심에 괜히 한마디 했더니 싸늘한 대답이 돌아왔다. 매니저는 굳이 말리는 일 없이 알아서 하라고 말했다.
회의실에 앉아서 재밌는 만화책을 읽는 기분으로 대본을 읽고 있는데 곧 문이 열렸다.
“도하 씨 왔어요?”
“아. 실장님, 안녕하세요!”
“요즘에 인터넷 봐요?”
“안 봐요!”
오랜만에 보는 것 같은 홍보 팀 실장과 반가운 인사를 나눴다. 도하의 대답에 그는 잘하고 있다고 웃었다. 그 반응을 보아 여전히 도하는 안 좋은 쪽으로 화제가 되는 모양이었다.
홍보 팀 실장은 가지고 온 서류를 도하와 매니저에게 하나씩 보여 주었다. 대부분은 기사였다. 아직 드라마 자체에서 나올 홍보물은 없었기 때문에 드라마가 언급되는 부분은 세진의 팬이 보낸 커피 차의 기사나 마슈크 멤버들이 보낸 밥 차 기사가 전부였다. 아니면 드라마가 만들어진다는 소식에 갑작스럽게 이북 사이트 실시간 순위에 오른 원작 정도의 얘기였다.
이런 것도 기사가 나오는 모양이네, 하고 내용을 보자 강세진의 이름이 들어가 있었다. 세진의 소속사 G.I에서 푼 기사인 것 같았다.
“지금 세진 씨 측에서 홍보를 열심히 하고 있어서 조금 밀리는 감이 있어요. 이만큼 나오면 누가 주인공이냐는 소리까지 나오게 되니까요.”
“홍보에 있어서는 세진이가 주가 되는 게 맞는 거 같아요. 지금 저보다 드라마의 얼굴이니까요.”
“응, 그건 아는데 우리 쪽에서도 도하 씨를 띄워 줘야 하니까. 포스터나 티저 영상이 뜨면 그때부터 과하다 싶을 정도로 쏟아 낼게요.”
홍보 팀 실장의 말에 도하가 어색하게 웃었다. 과한 건 좀…….
“지금 회사 내에서 도하 씨한테 거는 기대가 커요. 예상치도 못하게 주연 잡아 온 것도 그렇고 같이 나오는 상대가 강세진 씨인 것도 크고요. 처음엔 어떻게 될까 걱정도 많이 했는데 어떻게든 되긴 하네요.”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은 홍보 팀 실장이 펼쳐 놓았던 기사들을 다시 모았다. 처음 드라마의 주연을 맞게 되었을 때 매니저만큼은 아니더라도 걱정을 했던 터라 잘 풀려 나가는 것을 보고 안심한 것 같았다.
“도하 씨가 출연한 웹 드라마는 계속 급상승에 오르내리고 있고요. 지금 인터넷 검색량은 호영 씨보다 도하 씨가 더 많아요. 회사로 오는 문의도 도하 씨에 대한 게 가장 많아졌어요. 그러니까 앞으로도 힘냅시다. 이번 기회 확실하게 써먹자고요.”
많은 배우가 속해 있는 회사였지만 조연과 단역 위주로 굴러가는 작은 회사였다. 이름 있는 배우는 없어도 얼굴은 익숙한 배우는 꽤 있는 회사에서 이름을 대면 ‘아, 그 친구?’ 하고 알아주는 대표 배우가 생겨났던 순간이 2년 전 호영의 CF였다.
그 후로 호영은 회사 내에서 밀어주는 간판이 되었고, 그 뒤의 후배들에게도 간간이 좋은 조연 자리가 들어가게 되었다. 호영의 뒤를 잇는 젊은 배우들이었다.
도하야 떨어지는 대본도 없으니 자신이 속한 분야에서 열심히 활동하고 팬층을 쌓았지만 회사가 원하는 방향이 아니었기에 언제나 뒷전이었다. 그러다 이번에 드디어 호영보다 더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순간이 온 것이다.
그래 봤자 이 작은 회사의 간판일 뿐이지 연예계에서는 여전히 발에 채는 돌멩이만 한 인지도인 호영이지만, 도하에게는 굉장히 중대한 일이었다.
홍보 팀 실장이 서류를 정리하고 다시 일어났다. 나가려고 회의실 문에 손을 걸던 그가 ‘아, 참.’ 하며 다시 말을 이었다.
“호영 씨 영화 하나 찍기로 했더라고요. 주연으로.”
“우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