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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화

1. 거트루드의 밤(5)


영광의 아우구스투스, 아니 아우디가 솜털을 흩날리며 샬롯의 머리 위에 둥지를 틀듯 앉았다. 그녀는 아우디가 10년 동안 여전히 솜털을 달고 다니며 자라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갓 태어난 새끼를 다루듯 머리 위로 손을 뻗어 아우디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샬롯!”

“포피 이모!”

메이핏 4번 골목에 있는 포피 이모의 집은 사람이 사는 집이라기보다는 고양이들이 사는 집 같았다. 물론 어느 골목이든 번호가 앞 순위일수록 치안과 환경이 좋았기 때문에 현재 샬롯이 있는 코와르 살롱보다는 확실히 사는 데엔 더 나았다.

“저런. 그런 고민은 할 필요가 없단다.”

샬롯이 털어놓은 구구절절한 몸 상태의 고민에 대해 마녀는 자애로운 웃음을 지으며 단칼에 말을 잘랐다. 샬롯은 왼쪽 눈은 금색으로 오른쪽 눈은 은색으로 화장한 포피를 향해 좀 더 설명해 달라는 듯한 눈빛을 보냈다.

“마녀는 저주나, 그런 외부적인 게 아니라면 불임일 수가 없는 몸이거든. 하지만…….”

샬롯의 가슴에 겨우 오는 땅딸막한 포피가 몸을 일으켰다. 주름진 손이 그녀를 붙잡았다. 아니 정확히는 붙잡는 시도를 하려 했다. 그러나 한껏 부풀린 보라색 치마 덕분에 포피가 아무리 손을 뻗어도 샬롯에게 닿지를 않았다.

“저주일지도 모르니 확인은 해 보자꾸나.”

허공에서 휘적거리던 팔을 내리면서 포피는 실망한 기색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가 키우는 수많은 고양이들이 포피의 한숨에 야옹거림을 멈추고 샬롯을 응시했다. 그녀의 머리 위에 있는 아우디가 꺄악거리며 날개를 퍼덕거렸다.

“쭉 마시렴.”

“……마시다 토하면 어떻게 되는 거죠?”

퐁퐁 기포가 올라오는 녹색 액체를 내려다보며 샬롯은 진지하게 물었다. 포피는 삼색 고양이를 품에 안고 쓰다듬으며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처음부터 다시 마시면 된단다.”

아우디와 삼색 고양이의 눈싸움이 진행되는 와중에, 샬롯은 끔찍한 표정을 짓고 잔을 들어올렸다. 그녀는 눈을 질끈 감았다.

욱. 미각이 파업을 선언하는 맛에 샬롯은 최대한 약이 혀에 닿지 않게 주의하며 목구멍으로 약을 흘려 넣었다. 몸이 이딴 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며 격렬하게 반항했다.

“어떠니?”

“……한 번 더 먹느니 죽겠어요. 포피 이모.”

의자에 늘어져 있는 샬롯의 지친 말에 포피는 짧고 뭉툭한 손가락을 좌우로 까딱이며 고개를 저었다.

“그게 아니라, 뭔가 느껴지는 거 없니?”

“아래가 아니라 위로 발사되고 싶어 하는 제 위장의 내용물이요?”

“열이 난다거나, 온몸이 간지럽다거나, 아니면 계속 기침이 난다던가?”

샬롯은 고개를 저었다. 포피는 기쁜 얼굴로 손바닥을 마주쳤다.

“어머. 그럼 저주는 아닌가 보구나.”

“그럼 임신을 못 한 건 남자 쪽 문제겠죠?”

그 말에 포피의 눈이 커다래졌다. 안 그래도 커다란 눈이 더 커지자 샬롯은 흠칫했다. 포피는 벌떡 일어섰다.

“지금 씨 없는 남자를 만나고 있니?”



샬롯은 손에 든 약병을 내려다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튼 그녀는 문제가 없었다. 그러니 이딴 약은 받아 올 필요도 없었다. 레슬리에게 남자가 불임인지 판단하는 약을 쓸 필요가 뭐가 있나. 그냥 레슬리가 아닌 다른 남자랑 자면 되는 것을.

그녀는 화장대 위에 약을 올려놓고, 레슬리 덕분에 푹 꺼진 침대 위에 앉았다.

여길 떠나는 게 나을까?

여기 있다 보면 레슬리가 계속 찾아올 지도 몰랐다. 물론 그녀에게 제법 다정하고, 귀엽게 구는 구석도 있지만…….

“으…….”

샬롯은 솔직히 소름이 돋았다. 그녀는 레슬리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 하지만 가끔 스치듯 멀리서라도 볼 때마다 샬롯에게 향하던 매서운 시선을 기억했다. 부모님을 죽인 원수라도 그런 눈으로 쳐다보지는 않을 것이다.

열 살, 어린 마음에 처음 궁에 들어갔을 때 샬롯은 알리시아와 레슬리에게 멋도 모르고 언니나 오라버니라고 불렀다. 눈처럼 하얗고 예쁜 미소녀는 샬롯의 말에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고, 천사 같이 생긴 소년은 그녀를 죽일 것처럼 노려봤다.

그게 그들과 나눴던 최초이자 최후의 대화였다. 그 이후로는 가끔 끔찍해하는 레슬리의 시선 말고는 그들이 공유했던 기억 같은 것은 없었다.

샬롯은 그녀의 아름다운 아버지의 눈에 애정이 한 톨도 섞여 있지 않는 것을 알고 빠르게 그를 가족이란 범주에서 제외했다. 그녀의 아버지는 예쁜 쓰레기였다.

최소한의 책임감도 없는 쓰레기. 샬롯은 피가 섞인 딸에게 해야 할 최소한의 의무조차 이행하지 않는 그의 아버지가 싫었다.

뭐 그렇다고 인생을 다 바쳐 싫어할 정도는 아니고, 그냥 더 이상 엮이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정도의 감정이었다.

그리고 해 준 것도 없으니 어머니의 유산도 당연히 한 푼도 줄 수가 없지!

샬롯은 갑자기 불타오르는 의지에 화장대에 앉아 전투적으로 화장을 시작했다. 물론 안타깝지만 밀레나가 없는 샬롯의 화장은 늘 그렇듯이 미모를 상승시킨다는 본래의 목적에는 심하게 어긋난 쪽으로 발현되었다.

참고로 오늘 화장의 테마는 태양이었다. 샬롯은 밝은 내일을 기원하는 마음으로 뺨을 노랗게 칠했다.

샬롯은 기필코 임신을 하겠다는 다짐과 함께 푹 꺼진 침대를 보며 전의를 불태웠다.

한 번만 그 놈이 더 오면 여기를 떠야지.



샬롯은 마른침을 삼키며 한 발자국 뒤로 물러났다. 문이 닫히는 소리와 함께 레슬리가 성큼 그녀에게로 다가왔다. 그녀는 왕자가 뭐 이리 한가하냐는 생각과 함께 이 살롱을 기필코 뜨고 말겠다고 생각했다.

물론 그건 이 상황을 벗어난 뒤에 실현 가능하겠지만 말이다.

“로테.”

술 냄새는 거의 나질 않았다. 다만 시체를 태운 것 같은 이상한 냄새가 났다. 노란 눈동자가 정말 짐승들의 것처럼 동공이 벌어져 있었다.

이상한 생각이지만, 정말 물어뜯길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샬롯은 어색하게 웃으며 살살 뒤로 물러났다. 그런 그녀의 모습을 가만히 서서 응시하고 있는 레슬리가 얇은 입술을 끌어 올렸다.

“눈이 이상해요. 손님.”

“레슬리.”

이름을 부르라는 듯 느리게 속삭이는 목소리는 훅 가라앉아 있었다. 목구멍을 긁어내는 그 목소리는 아무래도 위압적이었다. 샬롯은 살짝 고개를 돌리며 이 방에서 탈출할 방법을 고심했지만, 그딴 건 없었다.

“왜 피해?”

위협적으로 성큼 다가온 레슬리가 그녀의 허리를 꽉 잡아챘다. 반사적으로 밀어 내려 한 샬롯의 손마저 낚아챈 레슬리가 웃었다.

“아파요. 손님.”

손목에 피가 통하지 않을 정도로 잡은 레슬리의 악력이 점점 더 강해졌다. 뭔가 태운 냄새가 더 강하게 느껴졌다.

“아파요!”

샬롯은 더는 숨쉬기 어려울 만큼 허리를 꽉 끌어안는 레슬리를 향해 소리쳤다. 두 발이 허공에서 달랑거렸다.

“레슬리.”

“아파, 아프다니까요! 레슬리!”

그녀의 목에서 레슬리의 이름이 불리자마자 샬롯을 옥죄는 힘이 사라졌다. 그녀는 눈 깜짝할 사이에 침대에 앉은 레슬리의 품에 얌전히 앉아 있는 꼴이 되어 있었다.

샬롯이 이해할 수 없다는 눈으로 그를 올려다보자, 레슬리는 만족스럽게 그르렁댔다. 그녀는 잠시 레슬리가 돌았다고 생각했다.

“더 불러 봐.”

기분 좋은 목소리가 부드럽게 그녀의 귓가에 속삭였다. 샬롯은 그의 비쌀 것이 분명한 흰 셔츠에 묻어나는 알록달록한 화장품의 색깔을 응시하다 작게 중얼거렸다.

“레슬리.”

그가 노려볼 때 느꼈던 것처럼 온몸이 오싹했다. 샬롯은 맹수의 아가리에 스스로 머리를 집어넣고 있는 기분이 들었고, 최대한 그의 비위를 거스르지 않기 위해 납작 몸을 엎드렸다. 그는 다정한 주제에 수틀리면 그녀의 목을 분질러 버릴 것 같았다.

“레슬리.”

“착하네. 로테.”

빗기지도 않는 뻣뻣한 샬롯의 금발을 쓰다듬으면서 레슬리가 기분 좋게 속삭였다. 샬롯은 튀어나오는 딸꾹질을 꾹꾹 눌러 삼키면서, 그녀의 어머니, 위대한 마녀 위트니가 왜 그녀에게는 멋진 마력을 거의 남기지 않았는지 원망했다.

샬롯이 위대한 마녀 위트니를 반만이라도 닮았다면, 레슬리는 한 번에 날려 버릴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오늘은 정말 잠만 잘 거야.”

조금 떨리는 샬롯의 몸을 느꼈는지 레슬리가 낮게 중얼거렸다. 방금까지 부드러웠던 목소리가 다시 거칠어지기 시작하자 샬롯은 눈치를 보며 그를 올려다봤다. 비틀어진 입매가 다정함을 흉내 냈다.

“그러니까 떨지 마. 짜증나니까.”



위튼의 여왕은 아름답다. 이본느 여왕은 그녀의 외모조차 정치적으로 이용할 줄 아는 여걸이었다. 그녀는 가장 꽃이 피듯 아름다운 나이에 사쿤델의 왕과 혼인했고, 그 사이에서 두 명의 자식을 낳았다.

물론 사쿤델과 위튼의 합병 또한 그와 동시에 이루어졌다. 위튼은 이본느 여왕의 성세 아래에서 힘을 불렸다. 그녀는 타고난 영웅이었고, 몇 백 년 전에 사내로 태어났다면 제국의 황제가 될 만한 위인이었다.

여왕을 잘 아는 사람들이라면, 그린필 대공의 존재를 납득하지 못했다. 사쿤델 왕이 이른 나이에 병사하자, 사람들은 이본느 여왕이 독신으로 남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제 이본느 여왕은 결혼으로서 얻을 수 있는 이득보다 손실이 컸다. 누군가의 아내라는 호칭을 달게 됨으로서 그녀를 왕이 아닌 여자로 보는 시선을 감내하기보단, 상대가 누구라도 결혼하지 않는 편이 좋았을 것이다.

“보.”

여왕은 커다란 침대 위에 누워 있는 대공을 향해 허리를 굽혀 속삭였다. 눈가의 흐릿한 주름을 제외하고는 도무지 사십이 넘었다고 믿을 수 없을 만큼 잘생긴 남자가 여왕의 부름에 눈을 떴다.

“이브.”

우라 해의 바다를 그대로 옮겨 놓은 것 같은 선명한 푸른 눈동자가 그녀를 담은 채 또렷해졌다. 여왕이 삶을 감사하는 유일한 순간이었다. 흰 시트에 몸을 파묻고 있던 대공이 여왕의 목을 잡아끌어 입을 맞췄다.

자식들도 손대지 못하는 그녀의 몸에 스스럼없이 손을 댈 수 있는 유일한 남자였다. 여왕은 그가 제멋대로 굴어도 상관하지 않았다.

“벌써 오후야. 뭐라도 먹어야지.”

여왕의 타이르는 말에 대공은 그녀의 턱에 입을 맞추던 것을 멈추고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느른한 한숨 끝에 대공은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썼다. 마흔 줄의 남자가 할 짓은 아니었지만 여왕은 귀엽다는 듯 이불을 두어 번 두드리고는 물러났다.

“과일이라도 먹여.”

여왕의 짧은 명령에 시종이 깊게 고개를 숙였다. 그녀가 관대한 것은 대공뿐이었다. 명령이 지켜지지 않는다면 위험해지는 것은 아랫사람들이었다.

새벽부터 하루 일정을 시작하는 여왕의 빡빡한 스케줄 틈마다 대공에게 방문하는 소위 쉬는 시간들이 있었고, 여왕은 잠깐의 휴식이 끝나면 다시 오후 일과로 돌아갔다.

안 그래도 바쁜 시대였다. 요새 한창 의회와 다투고 있는 주조권에 대해 롤프 의장과 만남이 잡혀 있는데다가, 휘링컴 백작을 대신할 재무대신도 임명해야 했다. 또한…….

이 모든 일을 도와야 할 왕자를 잡아 와야지.

여왕은 그녀가 개망나니 하나와 인간 하나를 낳았다고 믿었다. 알리시아 공주의 스케줄 표가 꽉 차 있는 것과, 그보다 더 많은 일정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내키는 대로 잠적을 일삼는 레슬리 왕자는 도무지 한 배에서 나온 것 같지가 않았다.

업보일 수도 있겠지. 알리시아는 사쿤델 왕을 닮았고, 레슬리는 그녀를 닮았으니.

“맥퀸 경은 어디에 있지?”

문득 튀어나온 여왕의 물음에 주위에 몰려 있던 이들의 보고가 멈췄다. 여왕은 젊고 사고를 칠 일이 없으며 야망에 찬 예비 사위를 떠올리고는 고개를 까딱였다. 재무대신으로 삼으면 지나치게 파격적인 처사일까?

하도 개라고 불린 탓인지 레슬리를 찾는데 특화되어 버린 불쌍한 청년을 떠올리면서, 여왕은 한 번 고민해 볼 문제라고 생각했다.

물론 그 전에 레슬리를 잡아 와야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