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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일단 헬리콥터로 가시죠.”

태우는 양복 상의를 벗어 뒤집어쓰고, 헬리콥터가 있는 연모봉을 향해 뛰었다.

그 뒤를 서준이 따랐다.



도미는 퍼붓는 비를 맞으며 선착장으로 뛰었다. 물질하러 갈 때 놓아둔 스티로폼 박스 세 개가 얌전히 놓여 있었다.

비를 피할 수 있는 선착장 처마 밑으로 들어가 십 분 정도를 기다리니 물살을 가르며 배 한 척이 선착장에 들어왔다.

“아저씨! 선장님! 안녕하세요!”

그녀의 힘차고 맑은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도미야!”

우체부 아저씨가 배에서 내리며 사람 좋은 웃음을 지었다. 선장님도 갑판으로 나와 담배를 꺼내 물고, 그녀에게 손을 흔들어 인사했다.

그녀가 전복, 소라를 가득 담은 아이스박스들을 담은 밀대를 배 쪽으로 끌었다.

“아저씨! 안 깨지게 잘 부탁해요!”

“우리 도미, 오늘도 세 박스야? 이러다 금방 부자 되겠어! 하하! 스티커도 만들었네.”

아저씨가 기특한 듯 그녀가 아이스박스에 붙인 스티커를 보았다.

“발랄 해녀?”

“제 브랜드잖아요.”

해녀복을 입은 귀여운 캐릭터가 윙크를 하고 있었고, 그 아래에는 파란색으로 <발랄 해녀 옥도미>라고 쓰여 있었다.

“너도 대단하다. 대진항에 놀러 온 손님들한테 나이트 삐끼처럼 명함 내밀면서 영업해서 이렇게 파는 해녀는 전국에 너밖에 없을걸?”

“지난번에는 제가 좋아하는 유명 셰프도 만났는걸요? 방송 촬영하러 대진항에 왔더라고요. 차기호 셰프라고 아세요?”

“아, 그 <냉장고를 털어라>에 나오는 잘생긴 셰프?”

“네! 그분도 제 고객이 되셨어요. 조금 전에도 주문 전화 주셨어요. 그거 물량 확보하러 가야 해요.”

“물질하랴, 할머니 병간호하랴, 언제 이런 걸 다 해?”

“저한테는 빅 픽처가 있잖아요. 우리 할머니 호강시켜 드리고, 저는 프랑스 요리 학교로 유학도 가야죠.”

“참, 할머니는 어떠셔?”

그 말에 싱글싱글 웃던 도미의 얼굴이 잠시 어두워졌다.

“장마철 볕 들 때처럼 잠깐 정신 차리세요.”

“그래. 그 뇌졸중 후유증이 무섭다더라. 너 혼자 병 수발이 벌써 몇 년째니.”

“괜찮아요.”

도미가 씩씩하게 웃어 보였다. 아저씨가 측은한 얼굴로 말했다.

“사랑도 올 때마다 내 맘이 좀 그래. 용호리조트 짓는다고 섬사람들 이주 다 끝났는데, 너랑 할머니만 덩그러니 있는 것도 그렇고.”

“아이, 아저씨! 할머니가 자기 죽어야만 사랑도 떠난다고, 절대 못 떠나겠다고 하는데 어떡해요. 할머니 소원 들어드려야죠.”

도미가 태어나기 전부터 집배원 생활을 하느라 섬사람들의 생활을 훤히 아는 아저씨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네 엄마 아빠 무덤도 다 사랑도에 있으니, 떠나시지 못하실 거야.”

침울해진 아저씨와 달린 도미가 씩씩하게 말했다.

“할머니도 할머니지만 저도 사랑도가 좋아요. 하하.”

도미가 밝게 웃었다. 아저씨는 애써 그렇게 생각한다고 여겼는지, 그녀를 안쓰럽게 바라봤다.

담배를 다 태운 선장님이 거칠게 소리를 질렀다.

“얼른 타! 섬에 들를 때마다 아주 반상회를 해. 우리 집배원님 여성 호르몬이 늘었나, 매번 그렇게 아줌마들하고 얘기하면서 울어.”

그 말에 우체부 아저씨가 아이스박스를 싣고 배에 탔다. 선장이 도미에게 말했다.

“도미야. 오늘 바람이 심상치 않아. 기상청이 또 틀린 것 같다. 조금 있다 파도 엄청 셀 것 같으니까 물질하지 말고. 돈 번다고 너무 욕심내지 말고. 우리도 다른 섬은 못 들르겠다.”

“네. 감사해요! 안녕히 가세요.”

곧 배가 수평선 너머로 사라졌다. 도미는 섬에 달랑 할머니와 둘만 있다가 수다스럽고 살가운 우체부 아저씨와 잠깐 만나 이야기하는 시간이 좋았다.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밀대를 끌고 가면서도 콧노래가 나왔다.

‘하하. 그리고 오늘은 이장님이 이자 보내 주는 날이네?’

이장님에게 이자를 받으면, 내일 뭍에 나가 할머니가 좋아하는 음식을 사 올 생각이었다.

사랑도 이장님은 대형 전복 양식장 협동조합을 만들기 위해, 섬사람들에게 돈을 투자받았다.

전복 양식장 기반 시설 비용이 커서 투자금을 모으는 것이라고 했다. 수익이 나면 투자금에 비례하여 나누겠다고 했다.

이장님은 돈을 투자한 사람들에게 매달 은행 이자의 다섯 배는 넘는 돈을 주었다.

반평생을 사랑도에서 성실하게 이장 생활을 한 그를 사람들은 신뢰했다.

거기다 이미 완도 같은 아래 섬에서는 전복 양식장으로 수억대 넘는 연봉을 버는 어부들이 많다는 것도 알았다.

섬사람들 거의 전부가 이주비를 포함한 많은 돈을 이장에게 투자했다.

도미도 그동안 모은 돈 거의 전부를 투자했다.

그 전복 양식장만 잘된다면, 할머니 병을 더 좋은 병원에서 고치고, 프랑스 요리 학교에 유학도 갈 수 있을 것이었다.

도미는 아까 우체부 아저씨가 자신을 불쌍하게 보던 게 생각났다.

하지만 아저씨는 모를 것이다. 할머니가 이 섬을 떠나기 싫어한 것이 이주를 하지 않는 첫 번째 이유이긴 했다.

그러나 돈을 벌려면, 사랑도만 한 곳도 없다. 서산에 할머니를 모시고 가서 살려고 해도, 고졸 출신인 도미가 할 일은 마트 알바나 식당 서빙 정도였다. 시골이라 최저 임금도 안 주는 곳이 수두룩했다.

사랑도에 있으면 앞바다에서 나는 것을 다 팔 수 있었다.

가을비가 더욱 차가워졌고, 빗줄기가 세졌다. 해변 옆 돌담길을 따라 도미가 가꾸는 열무밭이 푸르게 이어졌다. 바람이 세차게 불어 바다의 갯내와 풀 냄새가 코끝으로 훅 들어왔다.

“참 나, 얼마면 되냐고?”

도미는 조금 전 만난 남자가 떠올라 혼자 중얼거렸다.

사람이라고는 이제 할머니와 도미밖에 살지 않는 이 섬에는 왜 그런 양복 차림으로 왔는지, 남자의 정체가 궁금하긴 했다.

거기다 아까 남자가 눈을 떴을 때 그의 짙은 눈동자를 보고 잠시 심장이 고장이라도 난 것처럼 빠르게 뛰던 것도 생각났다.

하지만 기계처럼 차고 냉정한 얼굴로 얼마면 되냐고 물을 때가 생각나서 고개를 흔들었다.

“됐거든? 자기가 뭐 재벌이라도 돼?”

파란 대문을 열고, 부엌으로 들어갔다. 더 세찬 빗줄기가 부엌 창문을 때렸다. 우우웅 하며 돌풍이 부는 소리도 들렸다.

“조금 늦었으면 비에 쫄딱 젖었겠네. 아우, 배고파.”

오늘은 날씨도 도와주지 않았고, 그 싸가지 남자를 구해 주느라 전복 세 개와 소라 두 개 딴 것이 전부였다.

“어후, 열받아. 자기 때문에 오늘 일도 공쳤는데, 싸가지 없이 그딴 식으로 말한다고?”

그때 배 속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다. 오늘은 밥값을 하지 못한 날인데도, 야속하게 배꼽시계는 매번 정확했다.

“할머니, 나 왔어.”

방 안을 향해 싹싹하게 소리치고는 아궁이에 불부터 지폈다.

마른 나뭇가지 몇 개를 넣으니 타닥타닥 불이 붙었다. 추운 몸에 기분 좋은 노곤함이 밀려왔다.

가스레인지며 밥솥이며 다 있었지만, 할머니는 원래 아궁이에 하는 음식을 좋아했다.

할머니가 좋아하는 청국장에 오늘 딴 전복을 넣을 생각이었다.

할머니는 거동을 못 하셨고, 그나마 식사 때는 정신을 차리셨다. 그때만이라도 할머니가 좋아하는 음식을 해 드리며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몸에 착 달라붙는 잠수복을 벗어 놓고서 샤워를 했다.

‘아, 빨리 셰프님 주문하신 거 물량 맞춰야 하는데.’

그 정도 고생하는 것은 아무렇지도 않았다.

도미는 조금이라도 날씨가 좋아지면 다시 나갈 생각을 하며 옷을 입었다.

욕실에서 나와 막 가마솥에 다시마, 멸치를 넣고 육수를 내려는데, 전화가 걸려 왔다.

지이이잉. 지이이잉.

어쩐지 전화벨 소리가 다급하게 느껴졌다. 발신자는 사람들이 이주하기 전, 옆집에 살던 아줌마였다.

“아줌마! 안녕하세요.”

도미는 반가운 마음에 전화를 받았다.

― 도미야! 아이구, 어떡하냐!

아줌마는 거의 울부짖으며 말했다. 도미는 당황스러운 마음에 얼른 안부를 물어보았다.

“무슨 일이세요?”

― 도미 너도 이장한테 돈 투자했지?

순간 불길한 예감이 싸하게 가슴을 스치고 지나갔다.

“네.”

― 얼마?

“그간 번 돈 전부요. 2천쯤 돼요.”

― 아이고! 얘야! 그 인간이 세상에 우리 마을 사람들 돈을 도박으로 몽땅 날려 버렸단다! 자기는 감옥 가면 된다고, 줄 돈이 없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네? 뭐라고요? 이장님이요? 그분은 그러실 분이 아니잖아요.”

― 알지, 알지. 우리랑 삼십 년을 한 동네 살았는데 그럴 사람이 아니라고 다들 생각했지. 그래서 다들 돈 투자한 거고.

믿기지 않았다. 태어날 때부터 마을에서 궂은일을 도맡아 하던 이장님이 아닌가?

― 도미야. 너희 부모님 돌아가셨을 때도 그분이 발 벗고 나서서 장례도 다 치러 주지 않았니. 근데, 이장이 부인이 죽고, 애도 없고 그러니까 마음이 그랬나 봐. 도박에 손을 대서 우리 마을 사람들 돈을 빌려 가기 시작했어.”

“아줌마. 전복 양식장 다 만들었다고 사진도 보내 주시고, 저희도 다 가서 견학했잖아요.”

― 그게 다 원래 주인이 있는 건데, 짜고 친 고스톱이었대.

“네? 뭐라고요?”

이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누군가 거짓말이라고, 꿈이라고 말해 주길 바랐다.

“매달 이자라고 20만 원씩도 보내 주셨잖아요. 벌써 다섯 달을 그렇게 하셨고요. 다음 달에는 본격적으로 투자 원금 회수한다고 하셨잖아요.”

― 아이고, 우리 도미 어떡하냐! 그 이자도 다 다른 사람들 돈 빌려서 돌려 막기 했던 거야.

손이 덜덜 떨렸다. 그 돈이 어떤 돈인데!

해녀 물질 악착같이 하고, ‘발랄 해녀’라고 명함까지 만들어, 외지에서 온 손님들에게 호객 행위까지 하며 개인 택배를 보내는 정성도 마다하지 않으며 모은 돈이었다.

어쩌다 물량이 남아돌면 항구에서 하는 경매에서 한 푼이라도 더 받으려고 나이 많은 장사치들하고 씨름하며 돈을 모았다.

그렇게 3년 정도 악착같이 해서, 이제는 개인 식당이며 레스토랑 같은 거래처도 뚫은 그녀였다.

그 돈은 희망이었고 꿈이었다.

그런데 그렇게 모은 그 돈을 이장이 날렸다고?

퍼뜩 정신이 들었다.

“아줌마, 지금 어디세요? 제가 당장 갈게요.”

곧 뛰어나갈 듯 부엌으로 내려가 문을 열었다. 어느새 바람이 사람이 날아갈 정도로 불어치고 있었지만, 그런 건 문제가 되지 않았다.

― 도미야, 아서라. 지금 서산 경찰서야. 이미 이장한테 돈 빌려 간 사람들이 다녀가서 한바탕했어. 이장이 자식이 있냐, 친척이 있냐. 부인 죽고는 딱 혼자잖아. 정말로 그 돈을 다 도박에 썼다더라.

“아닐 거예요. 아줌마, 제가 갈게요. 그럴 리 없어요.”

아줌마의 목소리에 한탄과 눈물이 어려 있었다.

― 아이고, 우리 도미 불쌍해서 어쩌니. 오늘 같은 날씨는 배도 못 떠. 알잖아. 그리고 이미 다 끝났어. 조사 다 했는데, 정말 한 푼도 없대. 육십 다 먹은 양반이 자기 죽여 달라고 무릎 꿇고 비는데, 그것도 참 억장이 무너지더라. 아흑흑흑…….

결국 아줌마는 서럽게 울음을 토해 냈다.

― 그 돈이 어떤 돈인데. 나야 돈 오백 없어도 살지만, 우리 도미는 그 돈으로 할머니도 모시고, 시집도 가야 하는데…….

그 말에 도미는 눈물이 터져 버렸다. 아줌마의 울음소리가 꼭 이제 그 돈은 영원히 못 받을 돈이라는 말로 들렸다.

그녀는 눈물을 삼키며, 우산을 쓰고 그대로 선착장으로 뛰었다. 그리고 배가 있는 사랑도 주민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당장이라도 찾아가서 사실을 알고 싶었다. 나룻배라도 띄워서 이장님 얼굴을 보고, 경찰서에 가서 물어보고 싶었다.

하지만 주민들은 오늘은 배를 못 띄우는 날씨라며, 도미 너도 당했냐고 한탄했다.

당장 경찰서로 뛰어갈 수 없는 섬에 사는 게 처음으로 후회되었다.

그녀는 온몸에 비를 맞는 것도 잊은 채, 서산 경찰서에 전화를 해서 사실을 확인해 보았다.

담당 형사는 피해자라는 말을 듣곤 무미건조하게 말했다.

― 오늘은 날씨가 그렇고, 내일 서에 한번 나오십시오. 이분 집도 저당 잡히고, 피해 금액도 워낙 커서 돈을 받기는 힘들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