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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치 유어 스텝!

(WATCH YOUR STEP!) 2화


머리가 지끈지끈하다. 회사로 향하는 발걸음을 재촉하며 은제는 머리를 문질렀다. 머리뿐이냐. 온몸이 작살날 것처럼 아팠다. 하도 시달렸더니 다크서클도 좀 생긴 것 같았다. 은제는 괜히 눈 밑을 쓰다듬었다.

그래도 기분은 좋았다. 어제 아주 끝내주는 밤을 보냈으니까. 은제는 괜히 입꼬리가 올라가려는 걸 겨우 참았다. 자신은 불감증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걸 확인한 것만으로도 정말 기뻤다. 술 취한 남자가 러트 온 알파를 넘길 적만 해도 이게 웬 골칫덩이냐, 싶었는데. 그 골칫덩이가 자신이 불감증이 아니라는 걸 알려 주었다. 어제는 너무 느껴 대서 죽는 줄 알았다. 의외의 수확이 아닐 수 없었다.

“좋은 아침입니다.”

회사 안으로 들어서며 은제가 인사했다.

“오늘 되게 빨리 오셨네요?”

아직 이른 시간인데도 자리가 꽤 차 있었다. 서서 커피를 마시고 있던 대리 한 명이 튀어나와 물었다.

“집에서 좀 빨리 나왔어요.”

은제가 웃으며 자기 자리에 앉았다. 집에서 빨리 나오긴 개뿔. 지각하지 않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했다. 집에 들러 옷을 갈아입어서 어제와 같은 옷을 입는 건 간신히 피했다.

“안녕하세요, 과장님.”

“어, 그래. 좋은 아침이야.”

과장이 들어오며 은제를 흘끔 쳐다봤다. 뭐지? 은제는 괜히 긴장했다.

“서 대리.”

“네? 과장님?”

아침부터 호출인가? 은제는 불안함을 느끼며 재빨리 과장 자리로 다가갔다.

“오늘 프로젝트 발표 있는 거 알고 있지?”

“아, 네. 그럼요.”

잊고 있었다. 어제가 너무 강렬해서 그만. 그러나 은제는 표정 변화 없이 재빠르게 대답했다. 어차피 보고서며 PPT 마무리는 미리 다 해 놓았다.

“차질 없이 준비 다 해 놓은 거 맞지? 우리 팀이 다 달려들어서 준비한 거 아냐. 그쪽 프로젝트 맡으려고 다 덤벼들 텐데. 이번엔 우리가 따 와야지. 안 그래? 부장님도 은근 기대하고 계시는 눈치야.”

“저희 팀이 얼마나 열심히 했는데요. 당연히 저희가 따 올 겁니다.”

이번에 대기업의 프로젝트를 따 오기 위해 여러 중소기업이 경쟁하게 되었다. 원래라면 대기업 측에서 바로 하청을 넣어 버릴 테지만, 이번에는 서로 손을 잡고 함께하는 취지로써 파트너를 찾는 명목으로 이런 방식을 내세운 것이었다.

때문에 은제의 회사도 이번 대기업 프로젝트를 따내기 위해 열심이었다. 그리고 오늘이 바로 그 프로젝트를 누가 맡느냐를 결정하는 아주 중요한 날이었다.

과장은 시계를 연신 보며 시간을 기다렸다. 그 아래 사원들도 다른 이유로 그 시간을 기다렸다.

“흠흠. 지금 출발하지.”

부장실에서 부장이 나오며 말하자 과장 역시 얼른 짐을 챙겨 따라나섰다. 부장과 과장이 나가자마자 그 아래 사원들도 속으로 기쁨의 환호성을 질러 댔다. 부장도, 과장도 없다. 팀끼리 나뉘어져 있으니 윗사람이 아예 없는 것이다! 꿀 같은 휴식 시간이었다.

“와, 나갈 때 소리 지르고 싶어서 죽는 줄 알았네.”

“그러니까요. 이제 세 시간 정도는 안전한 거죠?”

“무슨 소리야. 퇴근 시간까지 안 오셔야지.”

사원들이 소곤소곤 잡담을 나누며 킥킥거렸다. 대리들도 탕비실에 모여 휴식을 즐겼다.

“드디어 끝나는구나… 난 장들 나간 것보다 이제 그 준비 안 한다는 게 더 기쁘다….”

“저도요. 이제 일 하나 끝났구나 싶고 후련하네요.”

“솔직히 전 그 프로젝트 안 따 오면 좋겠어요. 따 오면 그날부터… 지옥의 야근 릴레이 확정이니까….”

으, 탕비실에 옹기종기 모여 커피를 하나씩 들고 있던 대리들이 똑같이 질색하는 표정을 지었다. 은제도 마찬가지였다.

“서 대리님. 대리님이 마지막 마무리하셨죠? 못 따 오게 확 보노보노 같은 거라도 넣어 버리지 그랬어요.”

“뭐예요. 그랬다가 저 잘리면 책임지실 거예요?”

은제가 억울한 표정으로 장난스레 얘기하자 대리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사실 파트너니 뭐니 해도 사실 하청업체 찾는 거잖아요. 그걸 뭘 그렇게 어렵게 한담?”

“서로 함께하는 상생, 뭐 이런 이미지를 주고 싶은가 보죠.”

“그래도 정작 맡으면 일 다 하는 건 중소 쪽이겠죠?”

“거기다 프로젝트 따 오면 그거 부장이 하겠어, 과장이 하겠어? 죽어나는 건 우리 같은 사람이겠지….”

은제는 그들의 말을 들으며 커피를 홀짝였다. 어제 하도 울어서 얼음찜질을 했는데도 눈이 빡빡했다. 여기저기 안 아픈 데가 없다.

“서 대리님. 어디 안 좋으세요? 안색이 별로 안 좋아 보이는데….”

“아, 괜찮아요. 어제 잠을 좀 설쳐서. 푹 자면 괜찮을 거예요.”

은제가 얼굴을 매만지며 멋쩍게 웃었다. 어제 하루 종일 시달렸으니 얼굴에도 표가 나나 보다.

“근데 이러다가 정말 따 오면 어떡하죠?”

대리 한 명이 갑자기 걱정스러운 얼굴로 묻자 다른 대리들이 설마, 하면서 웃었다.

“다른 좋은 기업들도 다 뛰어들었을걸요? 부장님의 발표 실력이 신급이라도 되지 않는 이상은….”

“저희가 열심히 하긴 했지만 그래도 완전 잘했다고 하긴 좀 그렇잖아요? 부장님 때문에 바꿔 버린 것도 좀 있고….”

모순적이게도 자신들이 했던 작업물을 부인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그만큼 야근은 싫었고 일이 더 느는 것은 더더욱 싫었다.

하지만 그들의 바람이 무색하게도 부장의 발표 실력은 신급이었던 모양이다. 퇴근 시간이 되기 전, 부장과 과장은 밝은 얼굴로 당당히 프로젝트를 따 왔다는 소식을 전했다. 기쁜 척하면서도 대리들이 속으로 비명을 질렀음은 말할 나위가 없었다.

그리고 당연히 그날부터 지옥의 야근 릴레이가 시작되었다.

“저기… 핫세븐 있는 분….”

“…커피 드세요. 아마 다 먹었을 거예요.”

대리 한 명이 손을 들며 도움을 청하자 다른 대리 한 명이 무심히 대꾸해 주었다. 질문한 대리가 우는 시늉을 하며 커피를 타기 위해 탕비실로 향했다.

“진짜 따 올 줄이야… 그것도 자기들은 가 버리고 우리만 남길 줄이야….”

“너무해도 정도가 있지….”

대리들이 한마디씩을 하며 중얼거렸다. 1차 보고서를 만드는 데 기한이 딱 다음 주까지였다. 아주 피 튀기는 전쟁이 아닐 수 없었다.

“미친 대기업 놈들… 진짜 죽여 버릴 거야….”

대리 하나가 남은 핫세븐을 빨며 분노에 차 웅얼거렸다.

“부장이 더 미친 거 아니에요? 거긴 기한을 2주 줬는데 부장은 그걸 지 혼자 줄였잖아요….”

미친 부장… 대리들이 중얼거렸다. 무슨 검수를 해서 기한까지 수정을 해야 최고의 보고서가 나온다나 뭐라나? 아주 기적의 논리가 아닐 수 없었다.

“왜 부장에게 프로젝트를 맡길 생각을 한 걸까요? 머리가 어떻게 된 걸까?”

“나야 모르지… 난 그저 빨리 이 일이 끝났으면 좋겠다….”

은제도 그 말을 들으며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냥 이 일이 빨리 끝났으면 좋겠다. 욱신대는 허리를 붙잡고 은제는 기계처럼 키보드를 두드렸다.



대리들이 혼신의 힘을 다해 쓴 보고서는 과장을 거쳐 부장에게까지 올라갔다. 결국 최종 승인까지 받아 내자 대리들이 속으로 기쁨의 환호성을 질렀다. 하지만 제일 중요한 건 따로 있었다. 바로 미팅이었다.

“예?”

은제는 과장의 말에 나사 빠진 앵무새처럼 고개를 갸웃거렸다.

“미팅 같이 가자고.”

“저, 제가 왜… 전 대리가 된 지 얼마 되지도 않았고….”

부장도, 차장도 있는데 왜 하필 대리를? 그것도 많고 많은 대리 중에서 왜 하필 저를? 이렇게 묻고 싶은 걸 은제는 간신히 참았다.

“대리 달았는데 미팅 한번은 가 봐야 할 거 아냐.”

“그치만… 이런 자리에는 저 말고 다른 분이 가는 게 낫지 않을까요….”

왜 하필 첫 미팅 자리가… 은제는 약간 울고 싶어졌다.

“보고하면서 눈도장도 한번 찍고 그래. 응? 좋은 데 데려가 주겠다는데 참 말도 많네.”

과장의 말에 은제가 결국 꼬리를 내렸다. 대리들이 은제를 측은한 눈으로 바라보는 게 느껴졌다.

과장이 자리를 비우자 대리들이 쪼르르 다가와 은제를 위로해 주었다.

“액땜한다고 쳐요. 이번 한번 가면 다음번엔 저희 중 한 명이 가지 않을까요?”

“그래요, 서 대리님. 오늘 미팅 가면 거기서 점심 먹고 오겠다! 가서 맛있는 거 먹어요.”

위로해 준다고 하는 말이 오히려 스트라이크를 때리고 말았다. 다른 이들이 그 말을 한 사람에게 눈치를 주거나 팔꿈치로 그를 쿡쿡 쳤다. 그제야 상황을 파악한 대리가 어쩔 줄 모르는 얼굴을 했다. 은제가 힘없이 말했다.

“지금 놀리는 거죠?”

“미안해요….”

점심을 과장이랑 같이 먹어야 한다는 걸 깨닫자 은제는 그게 더 서러워졌다.



은제가 바라지 않던 미팅 날이 되었다. 과장과 은제. 단둘이서 회사 차를 타고 길을 떠나야 했다. 가까운 곳이라서 천만다행이었다. 멀리 가야 했다면 숨이 막혀서 죽을지도 몰랐다.

회사 차를 타고 과장과 함께 내리자 삐까번쩍한 외관의 건물이 은제를 반겼다. 과장이 데스크에 용건을 전하자 데스크 직원이 위에 전화를 한 후에 말했다.

“이사실로 모시라고 하시는데요.”

“이사실이요?”

과장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웬 이사실? 프로젝트 보고하는 정도에 이사가 나설 필요가 있나? 설마 무슨 일이 생겼나?

“무슨 일이 있나요?”

“자세한 건 이사실로 가시면 이사님께서 말씀해 주실 겁니다. 저는 그저 이사실로 모시라는 전화만 받아서요.”

왠지 불길한 기분이 든다. 과장의 반응을 보니 과장도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인 게 분명했다. 은제는 과장을 따라 엘리베이터에 탔다. 한 층, 한 층 올라갈 때마다 숨이 턱턱 막히는 기분이었다. 미팅에 따라오다 못해 이사실까지 진출하다니. 이게 무슨 일이야.

이사실이 있는 층에 도착하자 엘리베이터 앞에 있던 직원이 안내를 해 주었다. 직원이 노크를 하자 이사실 안에서 들어오라는 소리가 들렸다.

“안녕하십니까, 이사님.”

과장이 먼저 멋쩍게 인사를 했다. 높은 직급을 만나 봤자 차장이나 부장 정도를 생각했던 과장은 갑자기 이사를 만나게 되자 조금 당황한 듯 보였다.

은제도 인사를 하기 위해 고개를 들었다. 그러다 이사의 얼굴을 보고 은제는 소리를 지르려던 걸 손을 이용해 입을 막았다. 거의 졸도하기 직전이었다.

그 사람이었다. 은제와 몸을 맞추고 종일 뒹굴었던 그 알파. 러트가 와서 눈이 돌아가 있을 때와는 느낌이 전혀 달랐지만 하여튼 그 사람이었다. 남자는 이사실 의자에 앉아 있다가 곧 웃으며 일어섰다.

남자는 키가 컸다. 지난번 느꼈던 바로는 몸도 탄탄하고 무거웠었다. 새까만 머리카락과 까만 눈이 시선을 끌었다가 곧 둥글게 휘어지는 눈매가 눈에 들어왔다. 잘생기긴 했다. 저렇게 웃으니 빛이 나는 것도 같았다.

하지만 은제는 알고 있었다. 저 얼굴이 침대 위에서는 얼마나 위험하게 변하는지.

지금은 그런 생각을 할 때가 아니다. 은제는 얼른 고개를 숙이고 제발 저 남자가 자신을 보지 않기만을 원했다. 손에 저절로 땀이 차올랐다. 어쩌지. 어떡하지? 이대로 들키면 어떻게 되는 거지? 이대로 회사에서 잘리는 건가? 아니지. 이건 사생활이잖아. 아니, 사생활이고 뭐고 왜 이사씩이나 되는 사람이 그런 길거리에서 술에 취해 돌아다니고 있었던 건데!

남자가 과장에게 먼저 악수를 청했다.

“최주원이라고 합니다. 갑자기 불러서 좀 놀라신 듯싶네요.”

“아이고, 아닙니다. 하하하.”

과장은 사람 좋은 웃음을 흉내 내며 웃었다. 주원은 곧 옆에 서 있는 은제에게도 손을 내밀었다.

“최주원입니다.”

은제는 눈을 꽉 감았다. 그러고는 옷에 손을 쓱쓱 문질러 닦고 조심스레 손을 잡으며 고개를 깊게 숙였다. 인사를 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실제로는 얼굴을 보여 주지 않기 위함이었다.

“서…은제라고 합니다. 대리입니다.”

“앞으로 잘 부탁합니다.”

주원이 설명한 바로는 원래 이 프로젝트의 총 책임자가 급하게 퇴사하게 되었고 그 바통을 자신이 넘겨받았다는 것이었다.

“그, 실례되는 말씀이지만 보고 정도는 아랫사람에게 맡겨도 될 텐데….”

“아뇨. 저에게 바로 보고해 주시면 됩니다.”

은제는 과장 옆에서 최대한 몸을 숨기며 이야기를 들었다. 청천벽력 같은 소리였다. 그럼 앞으로 저 사람을 계속 봐야 한다고?

아닐 거다. 자신은 이번 한 번만 따라나온 것뿐이니까. 다시는 저 사람을 볼 일 없을 거다. 그럼, 그렇고말고. 은제는 속으로 끝없이 합리화를 했다. 그렇지 않으면 지금 이 상황을 믿을 수가 없을 것 같았다.

과장의 대략적인 설명과 함께 과장이 들고 온 보고서를 살펴보던 주원이 손가락으로 한 곳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쪽은 축약을 아주 잘해 놨네요.”

“아, 이건 여기 있는 서 대리가 한 겁니다. 서 대리.”

“네, 네?”

“이사님이 칭찬하시잖아.”

“가, 감사합니다….”

감사하긴 하지만 은제는 어서 이 자리를 벗어나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은제는 과장 옆에 붙어서 숨까지 조절해 가며 존재감을 죽이려 애썼다.

주원은 가운데 소파에 앉아 있고 과장은 왼쪽 소파에, 은제는 과장 바로 옆에 앉아 있었으니 잘만 하면 이대로 얼굴을 안 보인 채 끝날 수도 있었다.

몇 번의 질문과 답이 오가는 동안 은제는 망부석처럼 긴장한 채 앉아 있었다. 오늘따라 유난히 느린 시계를 탓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이 정도면 될 것 같네요. 수고하셨습니다.”

“이사님도 수고하셨습니다.”

드디어! 은제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지금 같은 기분이라면 길거리 한복판에서 춤을 추라고 해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럼 다음에 뵙겠습니다.”

“네. 들어가십시오.”

은제 역시 얼굴이 안 보이도록 깊이 고개를 숙인 뒤 후다닥 이사실을 나섰다. 한 시간이 열 시간 같았다.

“서 대리. 긴장했어? 하도 떨어서 나까지 떨릴 지경이었다고.”

“하, 하하. 네. 너무 긴장이 되서… 죄송합니다.”

미팅 한번 갔다 오는데 진이 다 빠졌다. 은제는 흐물흐물해진 몸을 추슬렀다.

은제는 남자를 보며 들었던 의문을 떠올렸다. 근데 이사라고 하지 않았나? 이사가 그렇게 젊을 수도 있나? 유학파라서 빨리 승진했나?

“과장님. 그 사람은 누구길래 그리 젊은데 이사예요?”

“너 몰라? 최 이사 회장 아들이잖아.”

“예?!”

금수저. 아니 다이아몬드 수저였어? 은제는 입을 딱 벌리다가 덜덜 떨었다. 안 걸린 게 천만다행이었다. 그런 고위층은 러트를 위해 따로 오메가를 고용하기도 한다던데 자신 같은 사람이랑 했다는 걸 알면 어떻게 나올지 모르는 일이다. 은제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이제 다신 볼 일 없겠지….”

그나마 불행 중의 다행이었다. 이제 다시는 보지 않길. 은제는 그렇게 되기를 두 손 모아 빌었다.



주원은 은제가 떠나고 난 뒤 바로 비서를 불렀다. 원하던 사람을 찾았는지 물어봤지만 비서는 고개를 저었다.

“단서가 나온 게 없습니까?”

“예. 도욱 님이 말씀하신 오메가 클럽을 샅샅이 조사했지만 그런 사람은 없었습니다.”

술에 취했어도 나름 그때를 기억해 내는 도욱의 말에 따라 그 오메가의 인상착의를 확인해 수소문했지만 불행인지 다행인지 그런 사람은 나타나지 않았다.

그를 찾는 데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지만 일단 도의적 책임에 의한 것이 가장 컸다. 하지만 아무리 책임을 지고 싶어도 당사자가 나타나지 않으면 뭘 해 줄 수가 없었다.

“도대체 어디 있는 거야….”

주원은 머리를 짚었다. 금방 찾아낼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감쪽같이 사라져 버린 오메가는 아무리 찾아도 머리카락 하나 비춰 주지 않았다.

“호텔 CCTV를 확인하는 건 안됩니까?”

“호텔에도 문의해 봤지만 개인 정보를 함부로 알려 주기는 어렵다고 합니다. CCTV도 그런 이유로 거절당했고요.”

“…계속 찾아보도록 하세요. 뭐라도 단서가 나오면 바로 저한테 알려 주시고요.”

“알겠습니다.”

비서가 인사를 한 뒤 이사실을 나갔다. 주원은 거의 눕듯이 의자를 뒤로 쭉 밀었다. 정 찾아도 나오지 않는다면 그냥 포기하면 될 일이었다. 그저 러트로 인해 사고처럼 자게 된 오메가일 뿐이니까. 그런데 막상 정말로 찾지 못했다고 하니 왠지 기분이 이상해졌다. 그 이상한 기분이 왠지 마음에 들지 않아서, 주원은 저도 모르게 인상을 찌푸렸다.



다시는 주원을 만나지 않기를 바랐던 은제의 바람은 불행히도 이뤄지지 않았다. 과장은 이사가 은제를 꽤 마음에 들어 한다고 생각했는지 적극적으로 은제를 미팅에 데려가려 애썼다. 은제는 미치고 팔짝 뛸 지경이었다. 고작 의례상 칭찬 한마디 한 것 가지고 왜 자기를 데려가는지 모를 일이었다.

어지간히 중요한 일이 아니면 부장도 과장이 하는 말을 다 들어줬으므로 은제는 어느새 자신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미팅 전담 멤버가 되어 있었다.

“이러면서 실무도 배워 가고 하는 거야. 어차피 그 보고서 정리며 뭐며 자네가 다 하잖아. 미팅할 때 내 옆에서 좀 도와주기도 하고. 응?”

“하, 하하….”

과장이 은제의 어깨를 아프게 내려치며 껄껄 웃었다. 은제는 웃음이 나오지 않아 형식적으로 웃는 소리만 냈다.

“주그브른다 가장….”

과장이 떠나자 은제는 이를 악물었다. 주먹을 꽉 쥐고 부들부들 떨던 은제는 그날로 안경점에 달려가 안경을 샀다. 가장 두껍고 얼굴을 가릴 수 있는 커다란 안경으로. 얼굴을 최대한 가려야 한다며 안경점 직원을 붙잡고 애원한 결과물이었다.

보기에도 요상하고 커다란 안경을 쓰고 은제는 다시 한번 제 발로 주원을 만나러 갔다. 첫 번째는 요행으로 넘길 수 있었지만 두 번째는 아니었다. 주원이 사람의 얼굴을 잘 기억하지 못하거나 아니면 아예 자신에게 관심이 없기를 바라며 은제는 지옥의 엘리베이터를 탔다. 이사실 문이 지옥문 같았다.

다시 보는 주원은 여전히 빛이 났다. 그러면 뭐 해. 자신은 저 빛에 깔려 죽을 것 같은데. 주원의 배경까지 알고 났더니 더욱더 들키기가 싫었다.

평이한 보고가 이어지자 은제는 잠시 마음을 놓았다. 첫 번째처럼만 이어지면 얼굴을 보이지 않고도 이사실을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은제는 그렇게 믿었다.

그러나 과장이 은제를 데려온 이유가 뭐겠는가. 은제를 써먹기 위해서였다. 주원의 질문을 받은 과장이 옆에 있는 은제를 찔렀다.

“그 부분은 저희 서 대리가 설명해 줄 겁니다.”

콰쾅! 은제의 머리에 벼락이 쳤다. 은제는 잠시 어버버 굳어 있다가 간신히 몸을 일으켰다. 은제는 과장을 원망하며 빙 돌아 주원에게 향했다. 주원이 가운데에 앉아 있고 과장과 은제가 나란히 왼쪽에 있었으니 설명을 하기 위해서는 은제가 오른쪽으로 가야만 했다.

은제는 안경이 제구실을 하길 바라며 주원의 옆에 앉았다. 주원이 자신의 얼굴을 보자 심장이 입 밖으로 터져 나올 것처럼 뛰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