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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락 선비



1화

여는 글


“단내가 폭폭 풍기는구려.”

헐떡이는 숨결이 채 잦아들기도 전에 배 위로 턱 하니 올라탄 선비가 그니의 가슴을 빤히 내려다보며 하체를 뒤로 슬며시 물렸다.

선비의 헐벗은 가슴팍에서 피하여 내린 애희의 눈빛이 당황하여 허둥거렸다.

새삼스럽게.

나무라듯, 딴딴한 것이 허벅지를 쿡 찔렀다.

움찔.

벌어지려던 애희의 입이 꼭 다물렸다. 두 번이나 범람하는 강을 이루고도 언제 그러하였었느냐는 듯하였다.

“이리 가녀려서야.”

미농지처럼 자잘하게 찌푸린 콧등이 한입 깨물고 싶어 몸살이 나도록 관능적이었다.

“…….”

어디가 가녀리다는 말인지.

귓속을 녹일 듯한 속삭임에 머릿속마저 녹아 버릴 것만 같았다.

“애희 낭자…….”

선비가 상체를 숙이고 짓궂게 숨결을 후, 불어 그니의 기다란 속눈썹을 쓰러뜨렸다.

얼굴로 쏟아지는 뜨거운 열기에 사르르 눈이 감겼다. 방심한 사이, 하복부가 흉흉한 흉기 끝에 짓눌린 채 무참히 그어 내려졌다. 뜨끈한 피가 줄줄 흘러내리는 듯한 느낌에 흠칫 놀란 애희의 눈동자가 선비의 눈동자로 끌려 올라갔다.

타오르는 눈동자 속에서 얼어붙은 불꽃이 꿈틀꿈틀 일렁이는 것만 같은 음영에 심장이 벌렁거렸다.

대체 저 속에서 무엇이 나오려는 걸까.

번데기가 허물 벗는 우화(羽化)의 장면처럼 낯선 기대감에 몹시 긴장되었다.

“위험스러워…….”

애희가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그리?”

그니의 중얼거림이 미처 자각하지 못한 내밀한 욕망을 일깨웠다. 깨물고 싶어 몸살이 날 지경인 그곳이 따로 있음을.

보고 싶어졌다. 간절하게. 숨결로 훅, 흔들면 그곳도 파르르 떨며 쓰러질지. 한 입 꼭 깨물면…….

“예……?”

어지럽게 얽혀든 눈길이 팽팽하여졌다. 마치 두 번은 그저 맛보기에 불과하였다는 묵시처럼. 눈길을 타고 화르르 번져 내린 열기에 온몸의 솜털이 그을려 버릴 듯하였다.

그제야 제가 생각을 중얼거려 버렸다는 사실을 깨달은 애희의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염려되오?”

붉게 물든 그니의 뺨에 눈길이 닿은 선비는 욱신거리는 단전을 추스르듯 정반대의 말을 쉰 목소리로 속삭였다.

“안심하구려. 이번이 마지막이니. 더도 덜도 없이 삼세번이오.”

놀란 토끼 같아진 그니의 눈길을 휙 끌어 내려 백자처럼 매끄러운 살결을 더듬었다. 아니, 이제 백자는 적절치 않다. 고결한 백자 같던 그니의 몸에는 동백꽃이 흐드러지게 만개하였다. 하얀 부분이라고는 눈 씻고 찾으려야 찾을 수 없어졌다.

처음, 그니를 실오라기 하나 없이 알몸으로 만들어 버렸을 무렵, 타오르는 눈동자 아래 붉은 핏줄기가 비쳐 보일 것처럼 뽀얀 살결이 정신을 어지럽혔다. 그 위에 한 쌍의 달덩이가 봉긋 솟아오른 듯한 여체에 홀려 그리 만들어버린 줄도 몰랐다.

선비는 기대감에 떨려오는 눈길로 다급히 더듬어 내렸다. 하르르 물결치는 붉은 꽃송이들이 미치도록 요염하였다.

붉디붉은 꽃물결을 흐트러뜨리며 더듬을수록 허기가 졌다. 밤새껏 그니를 가지고 다시 가져도 이 굶주림의 허기를 면할 것 같지 않았다.

“선비님…….”

애희의 귀에는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그 말이 ‘이제 시작’이라는 말처럼 들렸다.

“어찌 이리 미혹하는 게요?”

가슴 위에 얹은 손바닥으로 바르르 진동이 전하여졌다. 선비는 희귀하디 희귀한 것을 아껴 먹기라도 하듯 손끝으로만 가볍게 스쳐 내렸다. 파르르 떠는 이마에서 가슴까지 숨 막히게 물결쳐 내려온 흥분이 한 번도 무너진 적 없던 사내의 의지를 단번에 무너뜨렸다.

홀쭉한 아랫배를 탄력 넘치도록 경직시킨 열기가 손금을 타고 온몸의 핏속으로 스며들었다. 일순간, 선비는 사라지고 오로지 허기진 짐승만 남았다. 탐욕스러운.

“하아아…….”

긴장감을 견디지 못한 애희가 참았던 숨을 내쉬었다.

“애희 낭자!”

충동하는 신음에 거칠어진 손아귀의 악력이 은밀한 그곳을 모질게 움켜쥐었다.

고통이 헤집어놓은 벌집에서 흘러나온 꿀처럼 달콤한 아픔과 아랫배로 몰려든 열기가 뒤엉켰다. 터져 버릴 듯 차오른 긴장감이 찔끔, 배설되며 습습한 기운이 느껴졌다. 화끈화끈 지져지고 있는 얼굴로 몰려들었던 피가 몽롱하게 온몸을 휘저었다.

“이리 위험스러운 짐승을 풀어놓고 어찌하려는 것이오?”

뻔뻔스러운 물음에 애희는 지독히 달콤한 아픔을 가두듯 미간을 찌푸린 채 그이를 올려다보았다.

그니의 미간에 고여 들어 홍시처럼 농익은 흥분을 빨아들이듯 내려다보던 선비가 손아귀에 한 번 더 힘을 주었다. 자지러지는 신음이 먹먹하게 귀청을 울릴 때야 손아귀에서 힘을 풀었다.

“그리 아프오?”

눈물 한 방울 오뚝, 맺혀 있는 눈 속이 묘하게 야하였다. 그니가 기다란 속눈썹을 깜빡이자 눈물방울이 애처롭게 뭉개졌다. 촉촉하게 젖은 눈에서 은밀한 열기가 퍼지고 있는 얼굴은 참을 수 없도록 매혹적이었다.

낯선 기분에 빠져들어 허우적거리던 선비는 물살을 거슬러 헤엄치는 물고기처럼 양손으로 허벅지를 더듬어 올렸다. 안쪽에서 긴장한 탄력감이 감각되었다. 쫄깃한 기대감에 목울대가 천천히 위아래로 움직였다.

“하…… 아아아…….”

스르르 더듬어 들어온 선비의 손끝이 금단의 경계에 닿은 순간, 몽롱하여진 정신을 깨우듯 아랫배가 경직되었다.

움찔 멈추었던 선비의 손길이 싱그러운 풀숲을 헤쳐 내렸다. 비릿한 풀 향내에 젖어 들어 눈을 감았다. 흥분이 손가락에 바르르 감기며 사타구니가 뻐근하여졌다.

“앙큼한 조약돌이구려.”

여린 꽃잎을 톡, 흔들어 보려던 손끝이 뾰족한 돌출부에 찔렸다. 선비는 뾰족한 돌출부를 단숨에 문질러 내렸다.

“선비님…….”

욕망이 은밀히 포진한 금단의 그곳을 자극당하자 체액이 찔끔 흘러나왔다. 애희의 눈 속으로 열기가 흥건하게 고여 들었다. 다리를 꼬고 싶었으나 선비가 짓누르고 있어 꼼짝도 할 수 없었다.

“좋소?”

매끄러워진 조약돌을 음험하게 타 넘어 애태우며 배회하던 손끝이 마침내 꽃잎을 톡, 흔들었다. 파르르 흔들리는 꽃잎의 진동이 손끝에 고스란히 전하여졌다.

수치감으로 떨고 있는 여린 꽃잎을 붉게 상처 내고는 뿌리마저 흔들어 버릴 듯 갈라 내렸다. 망설임 없는 야욕이 소용돌이치는 정염의 여울로 다급히 다가들었다. 저릿저릿한 머릿속 정강이에 짓궂은 생각이 걸렸다.

“제발…….”

돌 틈에 숨어 있는 가재를 잡듯 헤집어대는 장난질을 견딜 수 없어진 애희가 얼굴을 핏빛처럼 붉히며 애원하였다.

“그리 애원하니. 허면.”

능청스럽게 작은 동굴 안으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의뭉스러운 기습에 애희의 아랫배가 딴딴하게 뭉쳤다.

“이리 좁았소?”

좁은 동굴 안을 미처 휘젓기도 전이건만 덫에 채인 듯 옥죄였다. 회유하듯 손가락 끝을 까딱거리자 죄임이 느슨하여졌다. 그 틈을 놓칠세라 허술한 벽을 긁어내렸다. 이번에는 끊어 버릴 듯 죄어들었다.

끙 신음을 앓던 선비는 말미잘처럼 돋아나 잡아채는 돌기를 야심 차게 튕겨 올렸다.

파닥,

점막에 엉긴 흥분의 파편이 튀며 아우성쳤다.

흠뻑 젖어 든 그니의 요염한 눈빛에 한껏 들뜬 선비는 동굴 안을 들쑤셨다.

따개비처럼 딱딱하여진 돌기를 탐욕스럽게 들쑤시고 휘젓자 찔끔찔끔 흘려내던 욕망이 찐득찐득 엉겼다. 짜릿한 감각이 온몸으로 녹진녹진 번졌다.

“그리 맛있소?”

동굴을 빠져나온 손가락에 팽팽하여진 그니의 눈길마저 휘감아서는 맛있게 빨았다.

“…….”

뻔뻔하고 음란한 모습조차 근사하여 보였다.

“혼자만 맛보아서야.”

고개를 숙이고 그니의 다리 사이로 훅, 파고들었다. 예상치 못한 기습에 흠칫 놀란 애희가 다리를 바르작거렸다.

한껏 붉어진 꽃잎을 숨결로 훅, 흔들고는 한 입 꼭 깨물었다. 꽃잎이 바르르 떨며 물씬 풍기는 기묘한 향내에 떨려오던 온몸이 마비되어 버릴 지경이었다.

입안에 빨려든 것을 꿀꺽 삼키자 태양 한 조각을 삼킨 듯 핏속이 확확 타올랐다.

선비가 금단의 그곳을 지분거려대자 아슬아슬하면서도 짜릿짜릿했다.

어느 찰나, 온몸의 소리통이 한꺼번에 울리는 듯하여졌다.

속에서 터져 나오려는 뜨겁고 위험한 것을 숨기기 위하여 선비의 머리를 떼어내려던 애희는 오히려 양손으로 꽉, 압박하고 말았다.

“환장하게 맛있구려. 단꿀에 촉수가 절어 버릴 만큼.”

선비가 축축한 목소리로 어딘가를 핥듯이 속삭였다.

“안 돼!”

애희가 절박하게 소리쳤으나 늦고 말았다. 선비의 혀가 이미 치명적인 그곳까지 침범하여 버린 것이었다.

어느 찰나,

머릿속에 벼락이 떨어진 듯 새하얗게 타버렸다.



1. 금단의 서책


“집 안이 조용한 걸 보니 부모님은 바깥나들이 가셨나 보네?”

점심때가 되어갈 무렵 옆집 동갑내기 미옥이 애희의 방 안으로 헐레벌떡 뛰어 들어오다시피 하였다.

“안에서나 밖에서나 한결같이 사내처럼.”

부모님이 볼일로 나가시고 혼자 남아 적적하던 애희는 미옥이 찾아와 반가웠음에도 손에 들린 바구니를 보고는 대답 대신 툴툴거렸다.

“한결같아야 실수하지 않지. 조신한 반가의 규수는 내 천성에 맞지 않아서 말이야. 너에게 꼭 보여 줄 서책이 나왔거든. 조신한 반가의 규수들이 읽어서는 안 될 금단의 서책이라고나 할까.”

‘금단의 서책’ 대목에서 목소리를 한껏 낮추어 소곤거린 미옥이 호기롭게 외치며 재빨리 바구니 뚜껑을 열어젖혔다.

“짠! 개봉박두!”

“찐 고구마가 금단의 서책이야? 그런 거 자꾸 가져오지 말라니까.”

애희는 제 입막음을 하려 선수 친 미옥을 가자미눈으로 흘겨보았다. 은밀히 유행하는 서책일수록 귀신처럼 알아내어서는 으레 먼저 읽고 같이 읽자며 군것질거리와 함께 가져오곤 하였다. 주목적이 서책인지 군것질거리인지 헛갈릴 지경이었다.

“툭툭 터져서 포슬포슬한 속살이 살짝살짝 엿보이는 모양새가 꿀꺽 군침 넘어가게 하지?”

서책을 낭독하듯 눈짓과 표정질을 추임새처럼 넣었다.

“웬 헛소리야.”

미옥의 넉살에 애희가 바구니에서 눈길을 거두고는 시큰둥하게 대꾸했다.

“요 야무진 것은 당연히 오라버니의 눈속임을 위한 위장이지만 오늘 군것질거리로 그만이겠다는 생각을 불러일으켜서 낙점하였는데 꽤 그럴듯하여 보이는 모양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