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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아.”

외마디 비명을 지른 도희는 두 팔을 간신히 움직여 자신의 가슴을 깨무는 남자의 목을 끌어안았다.

“아, 현우야.”

그리고 애타게 그의 이름을 불렀다.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나고 있었다. 만난 지 겨우 12시간 남짓 지난 민현우라는 남자와 침대에 누워 서로의 몸을 만지고 있다니. 부끄러움에 고개를 돌리자 커튼을 치지 않은 창밖으로 프라하성이 보였다.

어두운 밤하늘 아래에서 환한 조명을 받으며 존재감을 과시하는 프라하성. 엽서에서만 봤던 저 장관을 직접 보기 위해 프라하에 온 보람이 있었다. 평생 봐도 질리지 않을 것 같은 압도적인 웅장함이 도희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지금 프라하성이 눈에 들어와?”

앙탈 섞인 투정을 부린 현우가 도희의 귓불을 깨물었다. 간지럽고도 야릇한 느낌에 어깨를 움츠린 도희는 떨림을 감추기 위해 안간힘을 써야 했다. 지금 이 상황은 어디까지나 자신의 의지로 만든 일이었다. 피하고 싶지도, 멈추고 싶지도 않았다.

스물네 살. 친구들이 혀를 끌끌 찰 정도로 남자라고는 모르고 살아왔었다. 연애는커녕 꾸준히 연락하며 지내는 이성 친구조차 없었던 도희에게 있어, 지금 이 상황은 엄청난 사건과도 같았다.

“도희야.”

한 손으로 몸을 지탱한 현우가 다른 한 손으로 다정하게 도희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응, 현우야.”

화답하듯 도희도 현우의 이름을 불렀다.

참 이상했다. 분명 부끄러운데 어색하지 않다는 게. 오늘 만난 두 남녀가 어떻게 이럴 수 있을까? 모든 게 다 저 프라하성 때문일 것이다. 저 녀석이 부린 마법에 빠져서 내가 잠시 정신을 놓은 거겠지.

아무렴 어떨까. 어쨌든 중요한 건 지금을 놓치고 싶지 않다는 거였다. 도희의 두 다리가 현우의 허리를 감쌌다. 몸 어딘가에서 남자의 딱딱해진 중심이 느껴진 지는 오래였다. 브리프 하나만 걸치고 있던 그는 그마저도 거추장스럽다는 듯 홀가분하게 그것을 벗어 던졌다.

“2년 뒤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 앞에서 오전 10시. 맞지?”

확인하듯 재차 묻는 현우에게 도희는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응.”

그래. 이렇게 미래를 약속한 사이니까 지금부터 벌어질 일은 일탈이 아닌 거야. 영화나 소설에서 봤던 ‘원나잇’으로 끝날 사이도 아니야.

스스로를 설득시킨 도희는 깊은숨을 들이켜며 아련하게 현우를 바라보았다. 프라하성을 본다고 나무랄 땐 언제고 그도 고개를 돌려 프라하성을 보고 있었다. 하지만 이해할 수 있었다. 잠시 한눈팔 수밖에 없을 정도로 멋진 장관이긴 했으니까.

“2년 뒤엔 같이 미술관도 둘러보고 컵케이크도 먹으러 가자.”

“그러자.”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현우가 도희의 입술을 물었다. 본능적으로 도희의 입이 벌어졌고 그 틈에서 두 혀가 만났다. 꽉 맞물린 입술 사이로 더운 숨과 타액이 뒤섞였다. 야릇하고 아찔한 소리가 서로의 입 안에서 삼켜졌다.

“하아.”

고요한 방 안을 채우는 건 째깍째깍 움직이는 시곗바늘 소리와 젊은 남녀의 달뜬 신음이었다. 도희는 현우의 두 뺨을 감싸 쥐며 적극적으로 키스했다. 몇 시간 전, 생애 첫 키스를 했던 여자라기엔 제법 대담한 몸짓이었다.

입술이 조금씩 더 벌어질수록 두 사람의 혀가 더욱더 깊게 얽혔다.

“말이 안 되는 거 알아. 그런데 어쩐지 멈추고 싶지가 않아.”

겨우 입술을 뗀 현우가 간절함을 담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곤 곧 그녀의 티셔츠를 벗긴 뒤 브래지어 호크를 간단히 풀었다.

아담하고 예쁜 살덩이 두 개가 드러나자 그의 움직임이 바빠졌다. 곧장 그녀의 가슴 위에 입술을 내려놓았다. 여린 살결을 핥고 혀끝에 걸리는 딱딱해진 가슴 끝을 깨물었다. 그걸로도 부족해 그녀의 가슴을 강하게 빨았다.

“아, 이상해.”

의지할 것이라고는 얇은 천 조각이 전부였다. 시트를 쥐어 잡은 도희는 신음을 참지 않았다. 혀를 움직이며 가슴을 핥고 있는 현우를 보자니 온몸의 감각이 가슴에만 몰려 있는 기분이었다.

“흐읏.”

다들 이렇게 사랑을 나누는 걸까? 이 야릇한 감정을 어쩌면 좋을지.

도희의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현우는 이제 반대쪽 가슴을 삼키고 있었다. 단전 아래가 움찔거렸다. 자꾸만 몸이 꼬이고 말로 설명할 수 없는 황홀경이 밀려왔다.

친구 중 하나는 그런 말을 했었다. 남녀가 몸을 섞으며 밤을 보내는 데 있어 로맨스 영화와 현실 사이의 괴리는 당연히 존재할 수밖에 없다고.

하지만 도희의 생각은 달랐다. 지금껏 봐 왔던 그 어떤 로맨틱한 영화보다 지금이 더 아름다웠다. 아래에서부터 퍼지는 뜨거운 자극도, 자신의 몸을 물고 빠는 남자의 입술도, 그리고 두 사람을 에워싼 이 분위기도.

“아, 거긴 안 돼.”

가슴 위를 떠난 현우의 혀가 배꼽 주변을 배회하다 아래로 내려가려고 하자, 도희는 다급하게 그의 얼굴을 잡아 올렸다.

“왜 안 돼?”

두 눈이 마주친 상태에서 그가 짓궂게 웃어 보였다.

“어쩐지 안 될 것 같아. 거기를 네가…….”

뭔가 더 말하려던 도희는 입을 다물었다. 어차피 섹스를 하게 된다는 결론은 같겠지만 현우가 이끄는 대로 몸을 맡기면 부끄러울 것만 같았다.

아마도 이 남자는 내가 처음이 아니겠지. 혼자 추측할 뿐, 직접 물을 수는 없었다. 지금 이 상황이 소중하게 느껴지는 이유 중에 처음이라는 것도 분명 포함되어 있을 테니까. 그의 과거를 바꿀 수는 없으니, 사실을 모르는 쪽을 택했다.

“훗날 우리가 어려서 그랬다는 말은 하지 마. 난 지금 진지하니까.”

현우의 단호한 목소리에 도희는 그의 단단한 어깨를 잡는 걸로 긍정을 표했다.

현우는 쪽 소리가 나도록 도희의 입술을 다시 빨아 당겼다. 그대로 놔 주기엔 감질나서 도톰하고 빨간 입술을 한 번 더 물었다.

이 예쁜 입술을 보내야 하겠구나.

아쉽고 또 아쉬워서 숨소리가 커졌다. 속도를 늦추며 천천히 다가가려 애썼던 카를교 위에서의 키스는 잊고, 열정적으로 도희의 입술을 열고 혀로 혀를 찾았다. 주춤하는 말랑한 살덩이를 혀로 휘감기도 하고, 입술로 입술을 누르기도 했다. 섬세하게 뻗은 목덜미를 혀로 핥자 도희가 팔로 그의 몸을 감아 왔다. 그 틈을 타 그는 그녀의 바지와 팬티를 벗겨 냈다.

“아아.”

입술 사이로 인내의 가쁜 숨이 새어 나왔다.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삶의 벼랑 끝에 몰려 겨우 도망쳐 온 프라하에서 시선을 강탈할 정도로 예쁜 여자애를 만났고, 그 여자와 프라하를 거닐었다. 그것도 모자라 분위기에 이끌려 암묵적인 동의하에 같이 몸과 마음을 나누게 되었다.

“네가 예뻐서 많이 보고 싶을 거야.”

진심이었다. 주도희라는 여자가 너무 맑아서, 또 예뻐서 수많은 날을 그리워하게 될 것 같았다.

“나도. 이렇게까지 널 붙잡아 놓고서는 2년이나 기다려 달라고 해서 미안해.”

도희는 자신의 몸 위를 덮쳐 오는 현우의 목을 두 팔을 교차해 끌어안았다.

지금 일어나는 일들이 모두 영화 속 한 장면 같았다. 이게 영화라면 내가 영화 속 여주인공이 되는 건가? 로맨틱 영화의 결말은 하나같이 해피엔딩인데, 우리의 미래도 그럴 수 있겠지.

하지만 그와 별개로 긴장으로 팽팽해져 가는 몸을 어떻게 해야 할지 도희는 알지 못했다. 자꾸만 허리가 들리고 몸이 꼬였다. 다리 사이 깊은 곳에서 생경한 허전함이 시작됐다.

뜨겁고 또 뜨거워지는 자신의 몸이 갈구하는 것. 그게 무엇인지 도희는 곧바로 확신했다. 도희는 현우의 손을 자신의 맨살 위로 끌어당겼다.

잠자고 싶은 욕구, 놀고 싶은 욕구, 몸이 기본적으로 원하는 쾌락의 욕구를 모두 무시하고 살아온 몇 년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러고 싶지 않았다. 할 수만 있다면, 모두 다 해 보고 싶었다. 기계를 만질 때보다 백만 배는 더 부드러운 손길로 자신을 소중히 만져 주는 남자가 이끄는 대로라면 괜찮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아…… 도희야.”

낮게 잠긴 목소리로 신음을 내뱉으며 현우는 애원 같지 않은 애원을 했다. 자꾸만 중심으로 몰려오는 뜨거운 피 위로 도희가 기름을 부은 격이었다. 시작을 늦춰 보려 했는데 아무래도 틀린 듯했다. 현우의 손이 도희의 매끄러운 아랫배를 스치며 더 아래를 향해 내려갔다.

“읏…….”

손가락 마디마디에 힘이 들어갔다. 도희의 다리 사이를 손으로 파고들자 그녀가 신음했다. 아파서 내는 소리라기엔 조금 질척한 소리였다. 조금씩 더 그녀의 깊은 곳으로 파고들던 현우는 다시 그녀의 가슴에 입술을 내리며 혀로 정점을 탐했다.

“아. 나 이상해. 진짜 이상해.”

젖어 가는 아래를 느끼며 도희가 혼잣말 같은 애원을 했다. 울 것 같은 목소리를 내며 안겨 오는 도희를 꼭 끌어안은 현우가 큰 숨을 뱉었다.

이제 두 사람에게 남은 건 단 한 가지밖에 없었다. 반쯤 몸을 일으킨 현우는 도희를 내려다보았다. 감겨 있던 도희의 눈이 떠졌다.

“원래…… 한국 남자들은 다 이렇게 몸이 좋아?”

어색함을 무마시키려는 듯 도희가 현우의 가슴을 쓰다듬었지만 현우는 대답도 미룬 채 나름대로의 고민에 빠져야 했다.

“아, 어떻게 해야 할까…….”

사랑에는 책임이 따른다는 게 현우의 욕구에 제동을 걸고 말았다. 분위기에 취해 여기까지 오다 보니 지금을 온전하게 해 줄 콘돔을 준비할 틈이 없었던 것이다. 아무 방패막이도 없이 도희를 안는 무책임한 일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멈추고 싶지도 않았다. 현우도 건강한 20대 남자였다. 팽창하는 중심과 그만하라 다그치는 이성 사이에서 갈등의 골은 더욱 깊어질 수밖에 없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자신의 몸을 뜨겁게 헤집던 남자가 갑자기 멈추자 도희는 입술을 꾹 다물었다. 갑자기 무서워졌다. 왜인지는 알 수 없지만 순간 엄마의 얼굴이 떠올랐다. 자신이야말로 빛나는 청춘의 사랑이 만들어 낸 예상 못 한 결과물이었으니까.

그때였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엄지손톱을 물어뜯던 도희의 얼굴이 일순 환해졌다.

“잠깐만.”

얇은 시트로 몸을 칭칭 감싼 도희가 자신의 배낭을 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곧 납작한 정사각형 모양의 반짝거리는 비닐을 꺼냈다.

“이거, 1년은 된 것 같은데 괜찮을까?”

현우는 편한 웃음을 지으며 도희가 건넨 물건을 받아 들었다. 이것저것 재고 따질 겨를이 없었다. 그저 지금의 흐름을 계속 이어 가며, 이 여자와의 교감을 완성할 수 있다는 게 감사할 뿐이었다.

“이거 어디서 난 건지 왜 안 물어봐?”

“지금 그게 중요해?”

정말로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현우는 다시 도희를 침대 위에 쓰러트렸고 그녀의 몸을 감싼 시트를 걷어 냈다.